소설 <28> 그리고 옛대통령

정말 간만에 삽시간에 읽어내린 소설이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 다른 누구보다 절절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쫓는 나에게 정유정이라는 소설가는 여러가지 의미로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더 그녀의 소설을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러움이 질투가 되어 나를 괴롭힐것만 같아서.

아무튼 이제야 읽게 된 <28>이라는 소설은 500페이지 가까이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훅훅 넘어간다. 처음 한두페이지를 넘긴 기억은 나는데 그뒤부터는 어떻게 종이를 넘겼는지 기억이 안나고 정신 차려보니 책의 반이상을 읽은 후다. 그만큼 흡인력 있고 단시간에 100%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이야기는 자신이 아끼던 썰매개들을 썰매경주에서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한남자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시작한다. 슬픈 눈을 한채 세상을 등진 이 남자는 산속에서 수의사로 살아가며 다치고 버려진 개들을 홀로 돌본다. 그러다 이야기가 다른 국면을 맞는 것은 그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써 동물병원에 들어오는 후원을 끊기게 한 여기자의 등장과 사람과 개에게만 감염되는 전염병이 돌면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착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 끝맺었다면 끝이 허무한 헐리웃 영화로 기억에 남았을테지만 소설은 소설 내내 등장했던 ‘착한 인물’들을 차례로 죽이고 끝에는 주인공 남자까지 죽이며 우리에게 묻는다. 도덕과 윤리가 아닌 생존본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게 의미있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매일 닥치는 상황들을 해결하기 급급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지금 내가 잘못살고 있는것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때가 많다. 나에게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연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신의,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은 연대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에서 동료들과의 연대를 찾다간 조직에서 떠밀려날테고 아무런 힘도 없는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연대를 요구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것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대한 핑계속에서도 스스로 우뚝 서 연대를 부르짖는 남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나는 딱 한번 그런 사람을 본적이 있고 그사람을 내손으로 선택하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그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뛰어넘지 못하고 조직에서 떠밀려 안타까운 결말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빛바래지진 않는다.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남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문득문득 떠올리게 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동물들과의 연대조차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자의로 사람들과의 연대를 거부한 채 산속에 틀어박힌 남자 주인공은 속죄하듯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생명)을 타인에게 내놓는다. 인간답게 사는것,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주인공을 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손으로 선택한 옛대통령을 떠올린다. 요즘 한국뉴스를 보며 특히 더.

인간답게 살자, 그러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삶이 의미있지 않을까.

 

가을…

이맘때쯤 덕수궁 돌담길 걸어보면 좋을텐데

그길이 예뻤던건지 어깨 부딪히며 걷던 그 느낌이 좋았던건지…

바람이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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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눈에 보이는 순간

일상과 타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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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채 저장소로 보내기도 전에 (밀려있던)파도같은 일상이 몰아쳤으니까. 잠깐, 잠깐만 5분만 시간을 줘..라고 말할새도 없이 파도가 밀려오면 바다에 몸을 담근 이상 맞아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몰아치는 파도. 정신없이 맞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다. 제자리에 있다가는 파도만 맞다가 하루를 다 보낼 수 있으니까.

유진이로 인해 반복하게 되는 일상이 버겁다고 느낄때가 있다. 아니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두가지를 모두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일상의 버거움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딘가에 감염된 것처럼 상처가 부풀어 오르고 미열을 동반한 고통이 일상을 지배해 사는게 버겁다고 느껴졌었는데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항생제를 먹은듯 부풀어 오른 곳이 서서히 가라앉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비단 한국을 다녀왔다는 환경의 변화때문만은 아니리라.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유진이와 온전히 단둘이서 3주를 보내고 나니 일상의 버거움을 이제는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물에 풍덩 빠졌다가 나와보니 이제 물이 편해진 느낌.

그리고 그사이 유진이는 또 컸다. 내가 살것 같으니까 이제서야 유진이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건지 아니면 나와 유난히 정서적으로 많이 연결되어 있는 아이니까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유진이도 그에 맞게 변화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보니 유진이가 많이 달라져 있다.

유진이는 이제 어른의 말을 알아듣는다. 상황의 인과관계, 어떻게 했을때(혹은 하지 않았을때) 어떤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프린스의 sometimes it snows in april 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며 나도 모르게 이제 이 아저씨의 노래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했다. 왜냐고 끈질기게 묻는 아이에게 건강이 안좋아져서 죽었다고 이야기 해줬다. 딱히 떠오르는 거짓말도 없었고, 좀더 아름답게 얘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유진이는 죽음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죽으면 엄마 아빠를 다시 못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가슴아프도록 좋아한 프린스의 전설은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채소를 잘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로 결국 끝을 맺었다(나의 젊은날 우상이 이렇게 또 일상속으로 평범하게 묻혀간다). 그날 이후 유진이는 채소를 먹으라는 내 잔소리에 죽은 그 아저씨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상을 쓰면서도 스스로 더 먹으려고 애를 쓴다.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불안을 행동의 동기로 이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하면 안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뭔가 내가 가진 중요한 동기의 원동력을 비슷한 방법으로 심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불안이 뭔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끌림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그 비율이 반반 혹은 삼분의 이정도는 되어야 할것 같은데…그래 앞으로는 방법을 좀 달리해보자.

이런 돌이켜봄이 있을 수 있는것도 이제는 일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일상의 ‘변화’ 라는게 사실은 엄청난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변주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내게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상과 맞서 싸울수는 없다. 일상이라는 파도를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바꾸는게 좋은것 같다. 이제는 이 반복되는 일상을 이용해 매일 단 얼마간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한가지에 몰입해 수행하듯이 반복해나가는게 낫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체인을 끊을 방법은 없고, 그걸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겨우 찾아낸 합의다. 나쁘지 않다. 이 작은 변주가 10년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보기로 하자.

 

변화에 대하여 그 핵심을 표현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주제다. ‘지금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는 불행한 자각으로부터 변화는 시작한다. 이 간격을 못견디는 절박한 사람들만이 이 길을 선택한다. 변화는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작업이다. 자신에 대한 창조적 증오 없이는 이 에너지를 공급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변화가 매우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로 향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구본형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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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언제나 나를 기분 좋고 흥분되게 하는 일이다. 아무런 기대없이 모래사장을 걷다가 전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독특한 조개껍데기를 발견한 기분과 비슷하다. 오묘하고 매력적이어서 집으로 가지고 오려고 주머니속에 넣어오는 기분. 너무 궁금하고 설레여서 집에 가는 내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조개껍데기를 만지작 거리게 된다. 자꾸만 그 사람에 대해 꺼내보고 생각해보고 기억해낸다.
최근 나를 즐겁게 한 만남들의 기록.

 

1. 그녀
몇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그때의 첫인상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매력적이었다.
뭐랄까 너무 자연스럽고 솔직한데 그 모습 그대로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매력적이라고 해야하나. 털털한듯 아기자기하고 무딘듯 예민하며 툭툭 내뱉지만 언제나 배려넘치는 상냥한 말투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말투로 자신의 딸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다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고싶어진다.

이런 그녀의 심성은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어떤 사진작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가득한 그녀의 사진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독특한 그녀만의 감성이 있다. 자주자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2. 그들
주말에 후즈넥스트에 갔다가 알게 된 ‘페이드 아웃’이라는 브랜드의 디자이너 둘. 남들이 버린 청바지를 수거해 해체한 후 다시 새로운 의상으로 탄생시킨다. 근데 그 의상들이 보통 괜찮은 옷들이 아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안입는 옷 들고와서 오리고 붙여서 만든 그런 학예회 의상이 아니라 정말 독특하고 쿨한 옷들이다.

게다가 이런 의상을 만드는 이들은 더더욱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커플인 두남자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확신있는 말투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데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순간 팬이 되어버렸다. 브랜드의 직원은 그들 단 두명뿐이다. 둘이서 디자인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것을 한다. 과장이나 허세는 찾아볼 수 없고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느낌이었다. 세번째 컬렉션밖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기대하며 이들의 발자욱을 쫓게 될것 같다.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마음이 통해서, 최근 나를 들뜨게 한 이들과 어떤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 조개껍데기처럼 내 마음속에 문을 하나 열어놓은 기분. 대화를 나누는 순간과 그 이후에도 반짝이는 무언가가 빛났고 그게 계속해서 빛나고 있으니까 만남은 교감으로 변화한거다. 그 교감이 정말이지 오랫만에 나를 행복하게 한다.

 

 

사토루 이야기

사토루는 바로 내 앞자리에서 일하는 회사 동료다. 일본인인 그는 나보다 한살이 어리다. 그런데 경력은 18년차다. 그러니까 열여덟살때부터 쉼없이 이 일을 한거다. 사토루만큼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을만큼 그는 내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전문가다.

그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아틀리에의 연장자로 또 전문가로 나름 내 영역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내 ‘선배’로 들어왔다. 그의 실력에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좌절과 겸손을 번갈아 느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나를 더 힘들게 했던건 그가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거들먹 거리며 마초적인 행동과 발언들을 해댔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힘들게 겸손해지려고 열심히 노력중인데 저런 태도를 가진 누군가때문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속에서 열불이 났다. 게다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으니 허구헌날 서로 말싸움과 신경전을 벌이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나는 사춘기 이후 사라져 버린 비꼬는 말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그는 점점 더 무례하게 나를 대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갈땐 늘 갑옷입고 화살같은 모진말을 열발 정도 장전하고 가는 기분이었달까. 아침에 서로 얼굴 마주보며 인사할땐 어떤 비장함도 느껴지고 말야..

그런데 이 전쟁의 무게중심을 늘 이리저리 옮겨놓는 이는 그와 나의 상사였다. 어쩔땐 내편, 어쩔땐 쟤편 이러면서 나름 중심을 잡으려고 하긴 했는데 그게 우리 사이의 감정을 더 악화시켰다. 어느날은 정말 하루 종일 일도 안하고 둘이 앉아서 말싸움만 한 적도 있다. 주제는 대부분 너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 너때문이다. 뭐 이런식…가족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데 이런 말싸움을 왜 쟤와 하고 있었던건지 나도 잘 이해가 안간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관계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아무튼 그런 기간을 6개월 정도 지내고 어느날 그가 무심한듯 이런 말을 했다. 불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때문에 프랑스인 상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같은 동료로 대접해주지 않는것 같다는 얘기.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래도 어쩔땐 여러 언어를 잘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나라 말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냉정한건 사실이다. 나도 그게 서러워서 처음에 죽어라 불어를 공부했던 케이스니까. 나에게는 사람들과 관계맺는게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보다 절박한 이유가 있었고 그게 좀더 빨리 불어를 배울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사토루의 경우 그 에너지를 일에 쏟은거고.

그와 내가 전쟁을 멈춘건 이때쯤이었던것 같다. 낯간지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좀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다고 해야하나. 질문을 할때 왜그렇게 방어적으로 답하는지, 실제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나쁜 사람처럼 보이게 행동하는 이유들에 대해 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신기한건 어느쪽이던 한쪽이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싸움이 멈췄다는거. 아무튼 지금은 그에게 담배를 몇대 피웠는지만 물어도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동료는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그는 친한 친구중 한명이다. 말주변이 없어 자주 주변의 오해를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밉지 않은 것은 일관성 있는 그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의 세계가 나는 별로 싫지 않다.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사토루도 절약이 몸에 베어있는데, 휴가를 다녀와서 7000유로 짜리 빈티지 롤렉스를 사왔다. 나를 보자마자 약 5분 후에 한 얘기는 휴가 잘 다녀왔냐도 아니고 ‘내 시계 봤어?’ 였다. 일주일 내내 롤렉스 얘기만 한다. 자기가 산 모델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200% 쯤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전형적인 덕후…

언젠가 소설을 쓸 날이 오면 얘에 대한 얘기를 꼭 하고싶다. 게다가 사실 그 정도로 싸우면서 쏟은 에너지를 생각하면 친구를 안하는게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고. 자자, 이제 칭찬은 그만하세. 내일 또 티격태격 하면 이 글 쓴걸 후회할 수도 있으니.

 

 

진짜가 아닌것들은 싫다

이 블로그로 말할것 같으면, 10년 넘게 내가 비밀스럽게 가꾸며 간직해온 곳으로 게시판도 두번이나 이전하고 도메인도 한번 바뀌는 온갖 수난을 겪어 지금은 찾는 이가 손에 꼽을만큼 적지만 나에게는 기쁠때나 우울할때나 슬플때나 언제나 내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준 기특한 곳이다. 나조차도 이제는 길고 지루하고 감정적인 것들은 1분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겨버리는데 이곳에서는 길고, 감정적이고 우울한 글들을 마음껏 써재껴도 된다. 한마디로 진득하고 참을성 있는 진짜배기중에서도 진짜, 진짜다.

별로 멋있지도 밝지도 않은 나를 마음놓고 드러낼 수 있는 이곳을 이렇게 오랜시간까지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괴팍하고 변덕이 심한 나의 심성 깊은곳 어느 지점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서 그런지 반전이 있는 사람들이 매력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때 미친듯이 몰입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것같은 것들, 몇십년에 걸쳐 지켜온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신뢰가 간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꽤 보수적인 분야라 경험이 경력의 모든것을 설명한다. 여기서 진짜 전문가를 구분하는 잣대는 실패의 경험이 많이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것이다. 노력도 해야 하지만 인내가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조건이다. 버티면 진짜가 되는 것이다.

가죽으로 된 가방을 직접 만들고 싶었던 이유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가죽의 매력, 분명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든 가죽제품은 그래서 시간이 지나야 진짜인지를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진짜다. 그런건 명품이라고 불러야 한다.

진짜라고 불리는 것들 대부분은 이렇게 시간이 만들어준 것들 아닐까. 고통스럽고 참기 힘든 시간들 조차 몇번이고 넘기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씩 진짜가 되어가는 것 아닌지. 그렇다면 진짜가 아닌 것들은 패션의 경우 zara나 h&m 같이 잠깐의 유행을 노리고 성공을 꾀하는 것들을 말하는건가. 음…그런 방법으로 꾸준히 몇십년이고 존재해왔다면? 그러면 가짜로 시작했지만 진짜가 되버린 것들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안갈땐 시간에게 물어보는게 최고다. 지금 너무 좋지만 당장 다음달이 되면 생각도 안나고 손도 안대고 싶어질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해서 몇번이나 결정을 바꿨던가. 시간이 모두 결정해줬다.

시간을 믿자. 진짜인지 진짜가 아닌지 저절로 알게 될거라 믿는다.

나를 잘 알던 그녀에게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화두는 육아와 직업적 독립이다.

육아는 아이를 낳기 훨씬 전부터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왜 나는 이 모양인거지?’  ‘나와 같은 아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거지?’

이런 끔찍한 질문들로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어설프게 느껴져 닥치는 대로 육아서적을 읽어댔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컸다.

나도 어렸을때 저랬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끔은 그냥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나의 어린 시절이 치유가 될때가 있다.

마냥 행복하고 별것 아닌일에 웃어 넘어가던 그런 아이였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만으로 네살이 된 아이를 보면서 이제부터 육아의 목표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키우는 것이 아닌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함께해주는 것.

훨씬 많은 인내를 요하지만 여기까지 별탈없이 와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직업적 독립은 이제 마흔이 가까워 지니까 스스로 생산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점점 더 많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직업적으로 어딘가에 부속된 사람이다. 나는 생산의 주체도 아니고 책임의 주체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직업적 성취감은 딱 평균이다.

생산의 주체가 되기 위해, 직업적 자존감을 느끼기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중이다.

단지 독립을 하고 내 일을 하면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조직에 속한채로 주체적이 되기는 힘든것인가.

결론이 나지 않고 생각이 딱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조직을 떠날 준비는 안된것 같다.

 

결정을 하기 힘들땐 문제를 단순화하면 된다고 얘기했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 말고, 중고등학교때 아무런 조건이나 보상없이 내가 하기 좋아했던 것이 뭐였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던 그 일.

그것에 대한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면, 그 기억을 지금의 나에게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아마도 결정하기가 좀 수월해지겠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나를 바라봤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솔직하고 순수했던 그런 모습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을까.

마흔이 가까워져도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내가 문득, 10대의 내 모습에서 훨씬 확신에 찬 모습을 기억해냈다.

 

 

첫정

나에게 어린시절은 좋은기억보다는 가슴아픈 기억들로 남아있다.

가슴아픈 기억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되는지는 나이가 들어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

단지 성인이 되어 갖게 된 다른 더 좋은 기억들이 그런 상처들을 점점 더 깊숙히 덮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그 좋은 기억들 중 첫아이 유진이가 차지하는 부분은 꽤 크다.

 

첫사랑, 첫눈, 첫아이….

첫감정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꽤 크다.

아마 평생동안 각인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연료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을만큼.

유진이를 뱃속에서 느낀 순간부터 지금까지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과 느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오게 된건지, 그렇게 길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견뎌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음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고마운 존재.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 벅찬마음을 유진이가 느끼며 자랐으면 좋겠다.

나에게 그녀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알려준 첫번째 사람.

시간이 지나 유진이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 사랑 잊지 말아야지.

평생을 지금 그녀의 기억들로 행복해해야지.

 

 

출산..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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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한지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출산 당일 여전히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아니 내가 저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출산이 정말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24시간을 굶고 깨어있어야만 했던 기억, 난생처음 느껴본 고통, 애기를 품에 안겨줄때 느꼈던 어리둥절한 감정…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이 상상해보고 준비했었기에 누구보다 잘해낼거라 자신했었는데

출산일도, 그 과정도 내가 예상한대로 된건 하나도 없었다.

20시간이나 진통을 할지 누가 알았겠나..그저 아기가 4키로 넘을 것 같다는 예상만 맞았을뿐.

(출생 당시 4.05키로. 의사도 산파도 다들 애기 머리숱에 한번 놀라고 애기 크다고 한번 더 놀라고…)

애기를 낳은 날 새벽, 내가 애기를 낳았나 싶은 의구심이 들때 옆에서 자고있는 애기얼굴을 보면 그저 신기해서

아홉달 동안 내 뱃속에서 발을 차며 신호를 보내던 그 아기가 이 아기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했던 듯 하다.

지금도 가끔 내가 아이를 낳았나? 실감이 안날때가 많지만 조금씩 아기있는 일상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출산하기 직전까지는 제발 빨리 애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더니 막상 낳아보니 육아는 또 별천지다.

매일매일이 다르고 어떤 상황에도 딱 맞는 정답이 없는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먹고 자기만 하는 아기에 불과해도 이미 많은 것을 이해하고 교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너무 서툰 엄마를 많이도 이해하고 용서해준다는 것…

딸아이를 생각할때면 가끔 가슴이 아플만큼 애틋하다.

벅차게 사랑한다. 정말 이말이 맞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