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이미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후자쪽인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행복한 사람은 이미 자신이 행복한 이유에 대해 확신이 있다. 어떨때 행복하고 어떨때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에 그렇지 않은 이유들은 되도록 피한다. 그게 선순환이 되어 계속해서 행복해질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런 사람곁에 있는 것은 햇볕을 쬐는것과 같이 따뜻하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혹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라면 위와같은 선순환은 결과적으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 와 같이 본능적이고 솔직한 이유가 있을까. 행복해지고 싶어서 너를 떠난다. 와 같이 더이상의 이유가 필요없는 절박한 이유가 또 있을까.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

예전엔..아니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이 참 버겁게 느껴졌었다. 가족, 동료, 친구 사이라도 비틀어짐이 있고 실망은 물론이고 증오도 있을수 있다. 그런 격한 감정을 느낄때마다 슬픈건 둘째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만큼 답답하고 괴로웠다.

간혹 그렇게 숨쉬기 힘든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 마음의 병이라는걸 알게 된건 최근의 일이다. 무서운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지, 실망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갖은 방법으로 거리를 둬도 다시 또 그 관계속으로 밀려 혹은 끌려 들어가 또다시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통이 반복되면서 절대로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텅이에 떨어져있는 기분이었다. 

어떤날은 혼자 있다가 이유없이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하고 그러다 또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이 고통의 근원을 찾아보고 싶어 과거를 수백번 되짚어보고 나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해봐도 나아지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내곁에 왔다간 친근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다 주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냥 돌아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점점 기대치가 낮아지자 모든일이 시큰둥해졌다. 

별로 화나는 일도, 매우 기쁜일도 점점 줄었다.
마음속이 텅 비워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하다. 사람사이에서 느껴지는 기쁨이나 고통도 오래 가지 않는다. 스쳐지나가는 기분이다. 어느것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으니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 다시 나간다.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며 조금씩 건너온 다리를 마침내 다 건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제 좀 살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겨우 다리 하나 건넜는데. 근데 왠지 앞으로는 좀더 쉽게 건널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날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참 신기하다…

 

 

빛의 고문

매일 일어난다. 
매일 밥을 먹는다. 
매일 집을 나선다.
매일 집으로 향한다. 
매일 잠이 든다. 

반복이 고문이 되는 일상의 순간들이 있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처럼 숨이 차오르는 느낌. 선택할 수 있다면 반복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같은것을 반복하지 않은채로 존재하게 된 것이 있었을까.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것과 같이 평범하고 위대한 모든 것들은 반복을 통해 존재를 증명해 왔다. 그렇다면 반복은 고문이 아니라 수행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수행하듯 매일의 모든것을 조용히 반복하는 것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 

 

휴식이 필요해

정신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30대중반까지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들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머리가 맑다 라는 기분으로 일어난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일주일에 4일은 하루종일 두통이 있으니 뭔가를 생각하려 해도 집중이 잘 안된다. 그나마 정신이 맑다고 느꼈던 적은 목에 염증이 심해 코티솔을 복용했던 단 며칠간 뿐이다. 

체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집념이 따라주지 않으면 헛된 일이지만 몸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으면 집념이든 인내심이든 들어설 자리가 없는것 같다. 작은일에도 심히 기분이 다운되고 일단 식욕을 비롯해 모든 의욕이 저하된다.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이런 몸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급격하게 녹슬고 있는 이 체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뭘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물론 운동을 하고 끼니도 거르지 말아야겠지만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다. 한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으면 좋겠다. 어디 특별한 곳엘 안가도 된다.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하루종일 앉아 있고 싶다. 아무것도 안하고.

예전에 영욱이가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잖아..라고 스치며 했던 말이 요즘들어 많이 생각난다.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 특히 나이들수록. 좀 쉬었다가 운동이든 뭐든 해보자.

 

우리는 누구나 어리석다고…

어디서 읽은것 같은데. 이말이 이상황에서 위로가 될줄 몰랐네.

오늘 나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다섯살짜리 아이에게 논리적인 설명이 왜 통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채 화를 냈다. 이렇게 꽉 막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많이 봤던것 같은데 그게 나였다니.

엄마로서 깊이 반성하며 다음번에 또다시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땐 약간이라도 덜 어리석게 행동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적어놓는다. 또 함부로 누군가를 어리석다고 판단하기 전에 나야말로 다섯살짜리와 힘겨루기를 하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임을 잊지 말자.

 

 

소설 <28> 그리고 옛대통령

정말 간만에 삽시간에 읽어내린 소설이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 다른 누구보다 절절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쫓는 나에게 정유정이라는 소설가는 여러가지 의미로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더 그녀의 소설을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러움이 질투가 되어 나를 괴롭힐것만 같아서.

아무튼 이제야 읽게 된 <28>이라는 소설은 500페이지 가까이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훅훅 넘어간다. 처음 한두페이지를 넘긴 기억은 나는데 그뒤부터는 어떻게 종이를 넘겼는지 기억이 안나고 정신 차려보니 책의 반이상을 읽은 후다. 그만큼 흡인력 있고 단시간에 100%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이야기는 자신이 아끼던 썰매개들을 썰매경주에서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한남자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시작한다. 슬픈 눈을 한채 세상을 등진 이 남자는 산속에서 수의사로 살아가며 다치고 버려진 개들을 홀로 돌본다. 그러다 이야기가 다른 국면을 맞는 것은 그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써 동물병원에 들어오는 후원을 끊기게 한 여기자의 등장과 사람과 개에게만 감염되는 전염병이 돌면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착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 끝맺었다면 끝이 허무한 헐리웃 영화로 기억에 남았을테지만 소설은 소설 내내 등장했던 ‘착한 인물’들을 차례로 죽이고 끝에는 주인공 남자까지 죽이며 우리에게 묻는다. 도덕과 윤리가 아닌 생존본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게 의미있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매일 닥치는 상황들을 해결하기 급급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지금 내가 잘못살고 있는것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때가 많다. 나에게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연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신의,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은 연대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에서 동료들과의 연대를 찾다간 조직에서 떠밀려날테고 아무런 힘도 없는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연대를 요구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것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대한 핑계속에서도 스스로 우뚝 서 연대를 부르짖는 남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나는 딱 한번 그런 사람을 본적이 있고 그사람을 내손으로 선택하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그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뛰어넘지 못하고 조직에서 떠밀려 안타까운 결말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빛바래지진 않는다.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남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문득문득 떠올리게 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동물들과의 연대조차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자의로 사람들과의 연대를 거부한 채 산속에 틀어박힌 남자 주인공은 속죄하듯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생명)을 타인에게 내놓는다. 인간답게 사는것,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주인공을 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손으로 선택한 옛대통령을 떠올린다. 요즘 한국뉴스를 보며 특히 더.

인간답게 살자, 그러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삶이 의미있지 않을까.

가을…

이맘때쯤 덕수궁 돌담길 걸어보면 좋을텐데

그길이 예뻤던건지 어깨 부딪히며 걷던 그 느낌이 좋았던건지…

바람이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일상과 타협하다

cartier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채 저장소로 보내기도 전에 (밀려있던)파도같은 일상이 몰아쳤으니까. 잠깐, 잠깐만 5분만 시간을 줘..라고 말할새도 없이 파도가 밀려오면 바다에 몸을 담근 이상 맞아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몰아치는 파도. 정신없이 맞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다. 제자리에 있다가는 파도만 맞다가 하루를 다 보낼 수 있으니까.

유진이로 인해 반복하게 되는 일상이 버겁다고 느낄때가 있다. 아니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두가지를 모두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일상의 버거움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딘가에 감염된 것처럼 상처가 부풀어 오르고 미열을 동반한 고통이 일상을 지배해 사는게 버겁다고 느껴졌었는데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항생제를 먹은듯 부풀어 오른 곳이 서서히 가라앉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비단 한국을 다녀왔다는 환경의 변화때문만은 아니리라.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유진이와 온전히 단둘이서 3주를 보내고 나니 일상의 버거움을 이제는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물에 풍덩 빠졌다가 나와보니 이제 물이 편해진 느낌.

그리고 그사이 유진이는 또 컸다. 내가 살것 같으니까 이제서야 유진이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건지 아니면 나와 유난히 정서적으로 많이 연결되어 있는 아이니까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유진이도 그에 맞게 변화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보니 유진이가 많이 달라져 있다.

유진이는 이제 어른의 말을 알아듣는다. 상황의 인과관계, 어떻게 했을때(혹은 하지 않았을때) 어떤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프린스의 sometimes it snows in april 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며 나도 모르게 이제 이 아저씨의 노래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했다. 왜냐고 끈질기게 묻는 아이에게 건강이 안좋아져서 죽었다고 이야기 해줬다. 딱히 떠오르는 거짓말도 없었고, 좀더 아름답게 얘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유진이는 죽음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죽으면 엄마 아빠를 다시 못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가슴아프도록 좋아한 프린스의 전설은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채소를 잘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로 결국 끝을 맺었다(나의 젊은날 우상이 이렇게 또 일상속으로 평범하게 묻혀간다). 그날 이후 유진이는 채소를 먹으라는 내 잔소리에 죽은 그 아저씨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상을 쓰면서도 스스로 더 먹으려고 애를 쓴다.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불안을 행동의 동기로 이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하면 안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뭔가 내가 가진 중요한 동기의 원동력을 비슷한 방법으로 심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불안이 뭔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끌림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그 비율이 반반 혹은 삼분의 이정도는 되어야 할것 같은데…그래 앞으로는 방법을 좀 달리해보자.

이런 돌이켜봄이 있을 수 있는것도 이제는 일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일상의 ‘변화’ 라는게 사실은 엄청난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변주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내게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상과 맞서 싸울수는 없다. 일상이라는 파도를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바꾸는게 좋은것 같다. 이제는 이 반복되는 일상을 이용해 매일 단 얼마간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한가지에 몰입해 수행하듯이 반복해나가는게 낫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체인을 끊을 방법은 없고, 그걸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겨우 찾아낸 합의다. 나쁘지 않다. 이 작은 변주가 10년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보기로 하자.

 

변화에 대하여 그 핵심을 표현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주제다. ‘지금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는 불행한 자각으로부터 변화는 시작한다. 이 간격을 못견디는 절박한 사람들만이 이 길을 선택한다. 변화는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작업이다. 자신에 대한 창조적 증오 없이는 이 에너지를 공급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변화가 매우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로 향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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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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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언제나 나를 기분 좋고 흥분되게 하는 일이다. 아무런 기대없이 모래사장을 걷다가 전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독특한 조개껍데기를 발견한 기분과 비슷하다. 오묘하고 매력적이어서 집으로 가지고 오려고 주머니속에 넣어오는 기분. 너무 궁금하고 설레여서 집에 가는 내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조개껍데기를 만지작 거리게 된다. 자꾸만 그 사람에 대해 꺼내보고 생각해보고 기억해낸다.
최근 나를 즐겁게 한 만남들의 기록.

 

1. 그녀
몇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그때의 첫인상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매력적이었다.
뭐랄까 너무 자연스럽고 솔직한데 그 모습 그대로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매력적이라고 해야하나. 털털한듯 아기자기하고 무딘듯 예민하며 툭툭 내뱉지만 언제나 배려넘치는 상냥한 말투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말투로 자신의 딸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다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고싶어진다.

이런 그녀의 심성은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어떤 사진작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가득한 그녀의 사진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독특한 그녀만의 감성이 있다. 자주자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2. 그들
주말에 후즈넥스트에 갔다가 알게 된 ‘페이드 아웃’이라는 브랜드의 디자이너 둘. 남들이 버린 청바지를 수거해 해체한 후 다시 새로운 의상으로 탄생시킨다. 근데 그 의상들이 보통 괜찮은 옷들이 아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안입는 옷 들고와서 오리고 붙여서 만든 그런 학예회 의상이 아니라 정말 독특하고 쿨한 옷들이다.

게다가 이런 의상을 만드는 이들은 더더욱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커플인 두남자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확신있는 말투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데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순간 팬이 되어버렸다. 브랜드의 직원은 그들 단 두명뿐이다. 둘이서 디자인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것을 한다. 과장이나 허세는 찾아볼 수 없고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느낌이었다. 세번째 컬렉션밖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기대하며 이들의 발자욱을 쫓게 될것 같다.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마음이 통해서, 최근 나를 들뜨게 한 이들과 어떤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 조개껍데기처럼 내 마음속에 문을 하나 열어놓은 기분. 대화를 나누는 순간과 그 이후에도 반짝이는 무언가가 빛났고 그게 계속해서 빛나고 있으니까 만남은 교감으로 변화한거다. 그 교감이 정말이지 오랫만에 나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