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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내가 싫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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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내가 싫은거지..T.T

내게 접근을 하던 그 프랑스 남자, 이유없는 친절을 배푼다. 도와주고 싶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불어로 얘길 하는데 영..그것이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 같지가 않은 것이다. 자기네 나라 말로 도와주겠다고 하면 내가 어찌 안단 말야… 그러나 나는 다급했었다. 배낭이 날 죽이려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 느끼한 남자는 어딜 가고 싶냐고 묻는다. 고등학교때 배운 불어를 더듬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서투른 불어와(영어가 섞인.) 손짓 발짓으로 전화를 하고 싶다. 카드는 어디서 파느냐.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남자가 내게 돈을 달라는 시늉을 한다. 내 배낭이 무거우니 여기서 기다리면 자기가 사다주겠다고. 순간 겁이 났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또다시 우물쭈물 망설이는 가운데 그 남자가 자신은 도둑이 아니다. 돈 가지고 도망치지 않을테니 나를 믿어라. 라고 모션으로 보여준다. -_-
그래..가방도 무겁고 도저히 발도 안 떨어지는데 한번 믿어보자.

한 10분을 기다렸나보다. 그 프랑스 남자는 정말 전화카드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거스름돈을 주는데 그때 난 한참이나 어리 버리한 상태에다가, 그 남자가 사라지지 않고 나타난준 것만으로도 황송한 상태였었다. (속으론 의심해서 정말 미안..이라고 혼자 되놰이기도..-_-;;)
그리고 나는 거스름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지갑속에 넣었다.
어렵게 전화를 하여 민박집에서 마중나온다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그 남자는 먼저 가보겠다고 하고 사라졌다.

민박집에 도착해서야 거스름돈이 틀리다는걸 알았고, 당시 현지 물가에 대한 개념이 안잡혀 있던 나는 엄청나게 큰돈을 사기맞은줄로만 알았었다. (알고보니 한 5천원 정도 가져갔더군. 쪼잔한 자식~)
민박집에 들어서니, 그날따라 이상기온이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덥지 않은데 왠일로 파리가 너무 덥다고 민박집 아줌마가 한 말씀 하신다. 나는 참 운도 좋아~
유럽 곳곳에서 성행중인 한국인 민박집은 그야말로 언제나 만원이다. 그만큼 한국인 배낭족들이 많다는 말도 되겠고…그러다보니 한 도시 안에서도 여러개의 한국인 민박집이 생겨나고 서로 보다 좋은 서비스, 특화된 서비스로 민박집 간에 경쟁이 벌어진다. 그건 배낭족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 한국인 민박집에서는 묵지 말것을 권하고 싶다.
유럽의 각 도시들은 세금의 힘이 엄청나다. 하물며 그런 숙박시설이야 연중 만원인데 막대한 양의 세금을 걷어갈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그러다보니 한국인 민박집들은 불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흐흐.. 역시 한국인의 끈기. 먼 땅, 유럽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전략. -_-;;;) 대체적으로 한국인 민박집의 시설은 유스호스텔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수용소를 빗대면 좀 비슷할려나. 자신의 가정집을 민박으로 사용하다보니, 화장실도 한 개, 욕실도 한 개다. 사람은 20명 가까이 묵는데 화장실이 한 개라면 아침, 밤마다 전쟁이 벌어지는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방 하나에 여섯 명, 여덟 명이 잔다..이층 침대 빼곡히..
물론 좋은 점도 많다. 아침이 대부분 포함되는데 한국식으로 따뜻한 쌀밥에 국까지 챙겨준다. 그리고 전부 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수다 떨면서 전부 나눠주고, 쓰다 남은 패스나 전철표등은 그냥 뿌리기도 한다. 또, 사실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도난우려도 없고..
그렇지만 내 생각엔 이렇다. 기왕 큰돈 들여서 외국까지 갔으면 되도록 현지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활해보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 만나보고 그러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닌가 하고. 참고로, 한국인 민박집이 유스 호스텔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3천원에서 5천원 정도 가격 차이가 난다)

그 날 밤에는 파리시내의 야경을 보러 갔다. 민박집에 있던 사람들이 간다 하길래 나중에 혼자 가기는 좀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얼떨결에 같이 따라 나섰다. 밤의 에펠탑은 무척 낭만적이다. 정말 사진으로만 보던 파리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러나 내게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전 날까진 한국에 있었던 내가 지금 에펠탑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불빛보다도 더…
밤마다 그렇게 예쁘게 치장을 해놓으니 자연, 에펠탑 주변엔 밤마다 사람들로 만원이다. 파리 시민들, 관광객들, 젊은애들, 나이 든 분들, 애기를 데려온 부부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낮에 에펠탑을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에펠탑은 못생겨서 밤에 봐야 좀 가려져요~” 란다. 밤에는, 정각마다 에펠탑에 파바바박~ 순식간에 반짝이는 조명들을 켜주기도 한다. 예쁘다 정말..
그 날은 개선문까지 걸어가서 샹젤리제 거리까지 다 보고 왔다. 그때가 11시가 넘었는데 샹젤리제 거리의 노천 까페나 레스토랑에 사람들은 만원이었고, 마치 우리나라의 저녁 8시쯤 됐을 때의 풍경 같았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고 있다니..

파리에서 센느 강은 반드시 가봐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도착한 다음날, 이상하게 덥던 날 센느 강변을 따라 고서점들이 노점으로 늘어선 길을 걸어갔다.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애들이 거의 다 점령하고 있다. 부럽더군. 고서점을 따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 무척 재밌을 것 같다. 연인들도 곳곳에 짱박혀 있다.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점은 정말 키스를 찐하게…아무데서나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센느강변에 있는 둑에 5미터 간격으로, 막 꺼낸 빨래처럼 뒤엉켜있는 커플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파리에 4일을 있었는데, 이틀은 이상기온으로 찌는 듯이 덥더니 나머지 이틀은 비가 우울하게 내렸다. 소나기도 아니고 부슬부슬, 축축..원래 비가 자주 오는 파리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 안타까웠다. 결국 몽마르뜨 언덕을 못가보고야 말았다. 덕분에 비오던 날의 퐁피두 문화센터는 잊을 수가 없다. 너무 낭만적이었던 날..

 

2001. 5. 10. 서울 출발

2001. 5. 10. 서울 ->오사카 도착 (오사카 1박) ->5.11. 동경 출발 -> 5. 12. 파리도착

오사카에서 동경으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의 일본인과 이야길 했었는데, 콧수염이 있는 매우 점잖아 보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자신이 디자인한 집의 사진도 보여주고, 유럽 여행담도 들려주고, 나중에 헤어질땐 명함 주면서 나중에 동경이나 오사카 오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처음부터 느낌이 좋다. 그래 그렇게 낯선 나라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하더니 시작부터 이렇게 만나게 된다. 잘 풀릴 징조인가보다. 그렇게 파리로 가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었다.

2001년 5월 12일 오후 5시쯤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12시간동안 앉아있기만 했더니 어딘가 뻐근하다. 잠도 못이루겠고(너무 설레여서)계속 틀어주는 음악만 들었다.
중간에 영화도 보여줬었는데 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그때 기억으론 봤던 영화였던 것 같은데.

드골 공항은 매우 오래된 공항이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했던 나는 그 차이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에어컨을 안 틀어준다. 두 번째, 벽이 여기저기 녹이 슬고, 약간 음침하다. 내겐 그것이 그리 멋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척 피곤하고 더웠기 때문에.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 안 틀어주는 공항이 도대체 어떻게 국제적인 관광도시의 국제 공항이란 말야! 라며 온통 짜증이 날 뿐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에어컨을 틀어주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우리나라처럼 ‘빵빵하게’ 안틀어줄 뿐이었다. 사실 실내외 온도차가 많이 나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날씨에(내가 도착한 날이 또 갑자기 더워졌던 파리의 변덕스런 날씨였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공항이라는 곳에서, 더위로 인해 불쾌지수가 올라갈 수 천명의 사람들은 그저 짜증만 날 뿐이다. 그렇게 파리는 내게 처음부터 뭔가 낌새가 안좋았었다. (복선..)

아, 내가 탄 비행기가 도착할 때, 왠일인지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에, 정확히 말하면, 공항을 구분짓는 철조망 근처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그리고 모두들 어린애들을 한 명씩 동행하고 있었으며, 사진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내가 탄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내가 탄 비행기에 유명인사가 같이 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비행기에서 내려 비행기의 몸체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ANA(내가 이용한 항공사)의 50주년 기념으로 실제 크기의 500배 정도(여기서 실제 크기란 TV에서 보여지는 크기 ^^;;)되는 피카츄가 몸체에 그려져 있었다. 과연…피카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한국인 민박집을 찾아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실 한국인 민박집은 그다지 머물고 싶지 않았지만 첫도시 이니만큼 아는 곳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조금 쉽겠다하는 나의 얕은 생각이었었다.
메트로 노선표를 받고, 공항을 이리저리 헤매며 출구를 찾아나섰다. 한 시간을 헤매었다. 그것도 꼭 같은 길을 왕복하며…물어보면 계속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르키는 것이 아닌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무겁기만 하던 배낭을 매고 한 시간을 헤맨후에야, 땅바닥을 가르키던 손가락은 지하로 내려가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_-;

그렇게 겨우 메트로를 타고 출발하기 전 민박집 가는 방법을 적어둔 종이 한 장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근처까지 갔다. 메트로 어느 역까지 와서 전화를 하면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동전 공중전화를 찾아보았더니 어디에도 동전 공중전화가 없다. 오로지 카드전화기뿐…돈 아깝지만 카드를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 왠 프랑스 남자가 접근을 하는데…

 

여행기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우선,

본 여행기는 조현정이라는 24살의 막막한 청춘이 두 달간 무계획적으로 다닌 배낭여행의 개인적인 기록임을 밝힌다. 이 여행기에서 유럽의 물가표나, 환율, 숙박정보, 지리정보 등을 알아보고자 했다면 지금 바로 각종 검색엔진을 뒤져서 ‘유럽 여행’을 입력하고 자료를 찾아보기 바란다.(참고로, 이 사이트는 검색엔진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어떤 식으로 여행기를 쓸까, 좀 고민을 했었다. 날짜별로 써볼까, 여행지별로 써볼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쓸까..날짜별로 쓸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리 대단한 기록도 아닌데 날짜별로 쓰는건 무의미할 것 같고, 이동순서대로 쓰되 사이사이 간격을 급하지 않게 두기로 했다. 중간중간 구체적인 숫자나 날짜들은 기억을 더듬어 쓰다가 안되면 기록한 것을 인용하겠다. 사진을 함께 올리고 싶었으나(기대보다 너무 잘 나왔다. 모든 사진들이!!) 600여장의 사진을 당장 스캔 할 수가 없어서 사진은 차차 올리도록 하겠다.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려준 홈페이지 가족들… 얼마 안있었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았으나…

극기의 정신을 실현해보이고 싶었어요, 혹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와 같은 멋지고, 닭살스런 명제를 생각해보았지만, 나완 별 상관없는 것들이다. 시작부터 얘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3년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가기는 쉽지 않았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 없겠으나, 내겐 뭔가 의무와도 같았던 것 같다. 꼭…여행을 가야만 했다. 뭔가 목마른 것처럼. 그렇게 너무도 가고 싶던 여행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의 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몸부림은 두 번의 휴학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그러나 처음 휴학했을 때는 마침, 남자친구도 있던 때라 휴학해서 놀기 바빴던 것 같다. 여행 간다고 아르바이트도 엄청 했었는데 그렇게 모은 돈은 모래처럼 스스슬 손에서 빠져나가 버렸었다. 그래서 첫 번째 휴학했을땐 시원스레 놀고, 원없이 아르바이트 했던 때로 기억한다. 다시 복학해서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다시 한번 휴학 바람이 불었다. 내게…
4학년을 앞두고 도저히 이러다간 못 갈 것 같아서 다시 한번 휴학을 하게 된다.
남자친구랑도 헤어졌는데 이제 못 갈 이유도 없지 뭐~ . 모든게 속시원하게 뻥 뚫린 길처럼 이번 휴학은 오로지 여행을 가겠다는 나의 굳은 신념 하나로 뭉쳐 있었다.

3개월을 정신적 중노동을 통해 돈을 모으고 드디어 비행기표를 손에 넣었을 때.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나는 분명 색다른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매 여름 방학때마다 빠져나가는 그 수많은 대학생들처럼 우루루 관광지만 다니며 나 유럽 몇 개국 돌았다~ 이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사실, 어딜 가든 ‘그 곳’ 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다르지 않을거라고 상상하기에. 내게 중요했던건,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한 가운데 남겨질 ‘나 혼자’ 라는 사실이 가져다 줄 나의 변화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우유부단한 나도, 시시껄렁한 달콤한 고민들도, 지겹도록 낯익고 반복되는 일상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었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 혼자 있게 된다면 분명 달라질거라고 믿고 있었고.

혼자라는 사실이 처음엔 무척 두려웠었다. 그때 가장 절실했던건, 가족들과 우리집 개, 집이라는 곳이 내게 주는 안락, 그리고 그저 반복되기만 하던 낯익은 일상들이었다. 지겹다고 느꼈던 일상들이 그렇게 그리웠던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가꾸고 보내야 하는가 라는 사실을 늘 걱정하다보면 자연스레 고민하지 않아도 맞춰서 굴러갈 나의 일상이 그리워진다.

물론, 매일 아침 새로운 것들과 새로운 사람들 가운데서 눈을 뜨는 것도 꽤 괜찮다. 적어도 지루하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안드니까. 하루 일정을 만들고 먹고 잘 걱정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하루에 집중을 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게 되고, 무엇이 우선이고 꼭 필요한 것인지도 구별해낼 수 있다.
그러는 사이 골치 아픈 사사로운 고민들은 할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레 가장 깊숙한 곳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들로 옮겨 간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처음 만난 사람이나 문화가 다른 사람에 대한 매너라든지, 새로운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들. 이런 것들은 아주 기본적으로 모두 알고는 있지만 확인해줄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두달간의 막막했던 자유는 내게 당연한 것들을 돌려주었다.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것들. 느끼고는 있었지만 자각하지는 못했던 것들. 이를테면, 나와 연관된 사람들이 있는 이 반복되는 일상. 이 일상이 사실은 무척이나 그리운 것임을 알았다. 늘 옆에 있는 애인처럼, 있으면 지겨워도 없으면 허전한..
그리고, 그토록 궁금했던 나의 모습은 그 먼곳에서 그저 확인을 한 것 같다 . 얕게 배인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어줍잖은 자만심에게서도 달아나서, 본래의 나를 확인했다고나 할까.

나는… 알고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