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ugust 2001

땅끝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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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호스텔을 떠나면서 reception에 있던 멋진 오빠에게 여러 가지들을 물어보았다. 포르투갈어로 간단한 문장은 어떻게 말하는지, 여기에 한국인 많이 오는지..(내가 두 번짼가 세 번째란다… 한국인들이 포르투갈엔 정말 안간다.)그리고 포르투갈에 추천할 만한 곳을 물었다. 물론 관광객이 별로 없는데로. 멋진 오빠는 지도를 펴서 몇군데를 집어 주었다. 그래서 이 다음다음 갈 곳을 정했다.! 그러나 일단 먼저 리스본 근교에 있는 Sintra를 거쳐 Cabo da Roca를 가야 한다. Sintra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이 본을 떴다는 바로 그 성이 있는 도시다. 이 도시는 그래서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또 그만큼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Sintra로 가는 기차를 알아보면서 문제가 생겼다. Cabo da Roca가 Sintra 가기전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일단 Sintra의 유스호스텔을 예약해놨고, 거기서 또 기차를 타고 Cabo da Roca로 가야한다는 말인데.. 그러기는 시간도, 돈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Sintra 가는 길에 Cabo da Roca를 들르기로 했다.

Cabo da Roca로 가기 위해서는 Cascais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한다. Cascais역에 내렸을땐 오후 5시쯤 되었었다.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은 오후 5시가 되었는데도 우리나라에서의 오후 1시 처럼 밝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밑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 근처로 가보았다. 인심좋게 생긴 할아버지는 돌을 깨서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돌들은 벽을 저렇게돌로 마감할 집을 짓는데 쓰일 것이다. 그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물론 포르투갈어로..)그래서 난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다행히도 이 정도의 문장은 구사할 수 있었다.^^)그러자 한국이 전쟁났던 나라 아니냐고 또 묻는다. 그래서 맞다고 그러고 아는 것이 기뻐 크게 웃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랑 같이 일하던 보다 젊은 할아버지들은 자기들끼리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는 웃으며 날 보더니, 포르투갈은 볼 게 많다고, 오래 있다 가라고 한다. 할아버지중 한 명이 내 배낭을 보더니 놀라면서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눈을 크게 뜨고 묻길래 내가 팔힘이 좀 쎄다는 것을 제스쳐로 보여주었다. (각자 알아서 상상하시기를..)그렇게 땡볕 아래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거의 40분을 기다렸나보다…관광객이 꽤 될텐데 버스가 이렇게 드물다니.. 암튼 4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버스는 시설이 아주 좋다.) 한참을 시골길을 오른다. 거의 30분 가까이 갔나보다. 숲이 점점 울창해지고 집도 드문 고산지대가 나오고 마치 불가리아 CF같은 풍경들이 이어지더니 버스는 멈춰서 여기가 Cabo da Roca라고 알려준다. 도무지 진짜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 절경…. 너무 놀라워서 바람이 정말 세차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역시, 높은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쎄다. 무척 차기도 하고..)바로 앞엔 첩첩 산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 산수화처럼 안개 너머로 녹색의 풍경이 우뚝 솟아있었다. 어디선가 철썩..파도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바다가 펼쳐져 있다. 앞에는 까까지른 낭떠러지 밑으로 푸른 바다가 있고 뒤로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 핀 길이 이어져 있다. 마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그곳처럼. 그리고 저 멀리 꼭대기의 십자가와 함께 탑이 서있었다. 그 기념탑은 바로 절벽위에 세워져 있어서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이곳엔 탑과 등대 외에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서 있는 버스 정류장겸 ‘땅끝에 발을 딛은’ 증명서 발급소와 함께..너무도 조용해서 파도소리도, 바람이 펄럭이는 소리도 메아리 치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무척이나 고요하고 한적하다. 이럴땐 혼자라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정말 내가 땅끝에 와있다는걸 실감하게 된다.

거기에는 절벽과 파도, 바람이 전부였다. 바람 때문에 눈도 똑바로 뜰 수가 없다. 까딱하다간 바람에 떠밀려 절벽에서 발을 미끄러트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변엔 인공적인 안전장치나 철조망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념탑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Luís Vaz de Camões가 이곳을 보고 한 말을 새겨놓았다.
“여기는 땅이 끝나는 곳, 그리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이곳은 유럽 반도의 서쪽 끝으로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대륙의 끝으로 간주되었던 곳이다. 옛날 유럽 사람들은 이곳이 바로 땅 끝, 그래서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이었을까..’땅 끝’ 이라는 단어는.

Cabo da Roca는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옛날에 ‘자유시간’ 선전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곳이다. 기념탑에 새겨져 있는 저 문구도 CF에 그대로 사용되었고..그래서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같은 배낭족들 뿐이다. 백인들은 거의 단체 관람으로 관광버스로 오거나 자가용으로 오는 사람들 뿐이다. 그만큼 이리로 오는 시골길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 유럽여행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릴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약 한 시간 정도를 보고 (너무 추워서 더 있을 수가 없었다.)다시 버스로 기차역까지 내려왔다. 내려오던 길은 진짜 꿈에서 깨는 듯한 기분…

기차를 타고 Sintra 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기차역에 내려서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기차역에서 꽤 멀다는 소리에 덜컥 택시를 탔다..-_-;;; 택시를 타고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은 정말 공포스러웠다.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내 몸은 완전 뒤로 젖혀지고 날은 어둑어둑 길은 계속 꼬불꼬불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겠다…아까 봤을땐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설마, 설마… 갖가지 생각들을 하며 눈을 꾹 감았는데 이 젊은 운전사가 문을 탁 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여기는….. 흐흐 유스호스텔이다. Sintra 도시 자체가 언덕이다. 계속 언덕이고 숲이 울창하다. 게다가 언덕 중간중간 예쁜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한마디로 전원주택)그 절경을 멀리서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푸른색 숲에 깎아지른 듯한 언덕가에 집 한채. 캬…

유스호스텔에 막 도착해서 접수를 할려고 reception에 들어갔는데 내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던 아이가 앉아있다. 바로 린시… 여기서 다시 만날줄이야. 무척이나 어색한 분위기였다. 서로 기분좋게 헤어지진 못했으니. 그러더니 하는 말이, ‘너 나 따라왔구나~ ‘그러면서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짓는데 한 대 퍽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껄껄 웃으면 날 쳐다보고 있다..-_-;;; 마치 넌 뭐해 빨리 웃어 라고 강요하듯…그래서 베시시 웃어주고는 어서 접수를 했다. 이 유스 호스텔은 성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성을 개조했다고는 하지만 예전 ‘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시설이 현대적인면서도 무척이나 포르투갈적인 냄새를 풍겼다. 중세의 수도원을 온 듯한 기분… 짙은색의 나무문과 이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 벽에 걸린 중세 분위기의 사진들,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벽은 순백의 흰색에 바닥엔 카페트가 모든 가구는 진한 갈색을 띄고 있다. 화장실도 어찌나 낭만적으로 해놨는지 그냥 모든게 다 맘에 들어 버렸다.

여행 초반, 나는 무척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파리에서 너무나 피곤했고, 낯설음, 두려움 등등..즐거운 것보다 ‘이겨내야 한다’라는 생각이 언제나 따라다녔었다. 그래서 친구 사귀는데도 무척 소극적이었다. 관광도 낮에만 하고 밤에는 파리에서 에펠탑 야경 본 것 외에는 한번도 혼자 나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혼자 다니지 않았던 나의 결정은 무척 현명했던 것 같다. 유럽의 밤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위험했다.) 산책이나 할겸, 해가 진후 막 어두워지기 전에 나가보았다. 와..정말 무슨 고산 마을에 온 것 같았다. 안개가 짙고 공기가 너무도 맑았다. 곳곳에 초록색이 아닌곳이 없고… 이런 곳이 실제로 있기는 있구나. 현실세계와 잘 매치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Sintra에서 하루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리스본으로 향했다. 사실 백설공주성의 원조를 보고 싶긴 했는데 또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또 어서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기도 했다. 배낭을 매고 아직 안개가 낀 언덕을 내려가고 있으니 그 절경이 또 계속 나를 멈추게 한다. 언덕이라고 하기엔 까까지른 절벽에 가까운 이 언덕을 내려가면 왼편으로 저쪽편에 산등성이가 보인다. 내가 서 있는 언덕 바로 밑으로도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그렇게 여러 언덕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그렇게 신비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게다가 안개까지 자욱했다면 분명 저기서 말 타고 꽃 미남이 달려올법도 한데.. 그렇게 감탄하며 기차역에 도착하여 다시 리스본으로 향했다. 전국을 연결하는 모든 기차는 리스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어디로 이동하든 일단은 리스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 다음 목적지는 Evora, 유스호스텔의 멋진오빠가 추천해준 곳이다. 내 가이드북에는 소개도 안되어 있는 이 곳을 내가 어떻게 찾아갔을까… 그러나 겁나거나 걱정되진 않았었다. 어쩌면 이제 조금씩 여행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리스본의 끝없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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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뭐라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지? 내게 리스본은 그 옛날, 부루마블 게임을 할 때, 갈 수 있었던 저 미지의 땅끝이었다. 대항해시대에 스페인과 더불어 항해왕국의 자리를 지켰던 나라, 스페인어를 쓰지 않는 나라, 남미 유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브라질.. 이런 조각조각들이 내게 리스본을 떠올리게 해주는 단어들이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조차 잘 되지 않던 도시, 리스본에 내가 와 있는 것이다.

리스본의 인상은 무척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리스본을 ‘리스본’으로 익히들 알고 있지만 포르투갈어로 리스본은 ‘Lisboa’이다. 그러니까..리스보아라고들 부른다. 리스본은 영어식 발음이다. 1755년 리스본에 대지진이 있었다. 리스본의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당시의 시장쯤 되는 폼발 후작이 도시계획을 새로이 했는데 그 모습이 바로 지금의 리스본 시내의 모습이 되었다. 도시계획이 워낙에 잘 되어있는 곳이라 길 찾기는 무척 쉽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정확하게 구획이 나뉘어져 있어서 지도를 보기에도 편하다. 리스본 시내 중심가, 리베르다데 거리 ‘Avenida da Liberdade’ 는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상점과 기념품 가게, 백화점, 커다란 슈퍼, 음식점들… 무척 번화한 거리다. 그렇지만 그리 넓은 곳이 아니다. 명동의 삼분의 일 정도 된다고 보면 될까. 리스본이라는 도시자체가 테주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그 강을 중심으로 계획되어져 있다. 그래서 리베르다데 거리 끝자락엔 항구와 코메르시오 광장이 이어져 있다. 유럽엔 어딜 가나 광장이 참 많다. 그리고 모든 광장에 이름붙여진 사람들은 기념받을 만한 일들을 한 인물들이다. 무엇이든 오래도록 간직하고 잊지 않기 위해 기념하고 기억하려는 이런 노력들은 어쩐지 애교처럼 느끼지기도 했다.

기차에서 만났던 그 캐나다 소녀, 이름이 린시였다. 린시와 함께 유스호스텔을 잡고 바로 시내관광을 나섰다. 그 날은 리베르다데 거리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는데 30분만에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정말 작다. 그리고 나서 항구로 나가보았다. 항구 근처에 오셔내리움이라는 수족관에 갔다. 내 가이드북엔 나와 있지 않은데 린시의 론리 플래닛엔 나와 있다..-_-; 하여간에 그 책을 보고 수족관을 찾아갔다. 건물외관부터가 심상치 않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족관이라고 하는 광고를 하고 있다. 그런데,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만원 가까이 하는 돈이었는데 손 떨렸다..

수족관은 무척 잘 되어있다. 예전에 오사카의 수족관을 보고 최고의 수족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곳 또한 못지 않다. 이름 표기도 영어와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로 색깔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유럽엔 어느 도시를 가도 스페인어 안내서나 스페인어 표지판은 반드시 기본으로 갖추어져 있다.) 두 시간정도 수족관을 구경했는데 나중엔 어느새 다리가 아프다. 계속 서있기만 했더니. 가운데 큰 수족관이 있었는데 상어도 있고, 좀 큰 물고기들이 돌아다닌다. 그걸 보면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수족관을 다 보고 나와서 보니 굉장히 멋진 다리가 테주 강위에 길게 늘어서 있다. 정말 길었다. 다리 이름은 ‘4월 25일’ 다리라고 한다. 즉, 1974년 4월 25일 혁명을 기념해 붙여졌다.

그 다리를 보면서 린시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린시는 담배를 꺼내물더니 멋스럽게 폼 잡으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19살이지만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나서 뭔가 색다른 길을 가고 싶어서 대학은 가지 않았단다. 지금 유럽여행도 뭔가 새로운 일을 찾아보기 위해 다니는거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렇게 선택을 해서 여행을 왔다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막막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참 우린 다른 곳에 살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 날 저녁에 유스 호스텔에 돌아와보니 린시가 남자친구한테서 이메일이 왔는데 화해를 했다며 좋아서 난리가 났다. 잠깐 축하를 해주고나서 린시가 로비에 있던 바에 내려가서 같이 축하주를 마시잔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바에 내려갔더니 남자애들이 바글바글하다. 그 중 한명은 레게 파마를 했는데 린시가 그놈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그 남자애도 캐나다에서 온거다. 젠장.. 둘이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난 낄 틈도 없다. 그러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자 그 놈이 내게 하는 말, “Are you Japanese?”. 때려주고 싶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난 한국인라고 얘길 한 다음 불쾌한 기분을 안고 난 먼저 올라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 린시를 볼 일은 없었다. 난 다음날 바로 유스 호스텔을 옮겼기 때문에.

새로운 유스 호스텔은 리스본 시내 외곽에 있는거다. 서울로 치면 경기도 안양쯤 되려나..암튼 근교 기차를 타고 약 30분을 가서 그 유스 호스텔을 찾아가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정말 난생 처음 아무것도 모르는 땅에서 큰 배낭을 매고 길을 찾기란… 죽을 맛이다. 암튼간에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던 저기 저쪽의 미남 경찰에게 묻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어찌어찌 꼬불꼬불 길을 따라서 걷고 다시 고속도로를 따라 약 20분을 걸은 후에야 그 유스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도 꽤 멀다.. 그런데 시설이나 전망은 정말 너무 좋다. 바로 앞이 바닷가라서 너무 멋있었다.

숙소를 잡았으니 다시 리스본 시내로 돌아와서 알파마 지구를 구경하기로 했다. 알파마 지구는 1755년 대지진이 있었던 때에 유일하게 피해가 거의 없었던 곳이다. 리스본 시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전차를 타고 가거나 버스를 타도 되고 걸어가도 될 만한 거리다. 예전 구시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리스본을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알파마 지구를 방문한다고 한다. 구시가 곳곳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해서 그냥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후후..생각보다 고지대에 있다. 알파마 지구는..-_-;;. 중간에 즉석 오렌지 쥬스도 마시고 쉬엄쉬엄 올라갔다. 골목골목이 정말 예뻤다. 길다란 집들, 좁은 골목에 길은 돌이 깔려있다. 가끔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가기도 한다. 특히 언덕을 올라가서 내려다보이는 리스본 시내 전경은 무척 시원하다. 바다와 접해 있는 도시 풍경은 이런 느낌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카톨릭을 믿는 국가엔 반드시 Catedral이라고 불리는 대성당이 있다. 이곳에도 역시 대성당이 있었는데 내부는 놀랍도록 시원했다. 들어가기만 하면 뼈속까지 으스스해지는 한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중간중간 교회가 나올 때마다 에어컨 대신 자주 이용해주었다. 유럽와서 처음 가본 그 대성당은 천장이 듣던대로 궁륭 모양을 하고 있었고, 발코니는 커다란 무늬로 장식이 되어있다. 그대로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장면 그대로. 대성당을 나와서 상 조르제 라는 요새를 찾아갔다. 요새라서 특별히 요새 내부엔 볼 게 없지만 리스본 시내 쪽으로 요새의 성벽에 앉아 있으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앞이 트여있는 이런 천국이 또 있을까.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식당을 고르는데에만 한시간을 소비했다. 거의 아사직전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계속 들어가는 바처럼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무척 장사가 잘 된다. 바가 있고 그 뒤로는 식탁들이 쭉 늘어서 있다. 바 안쪽에선 나비 넥타이를 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서빙과 요리를 동시에 하고 있다. 후후..제대로 골랐나보군!!!! 메뉴를 보는데 도대체 포르투갈어는 감이 안온다. 그래서 오늘의 메뉴를 시켰다.(식당에 가서 뭘 시킬지 난감하다면 오늘의 메뉴를 시키길. 성공률 100%다.)음식이 나왔는데, 소고기의 여러 부위를 삶은 것, 순대 같이 생긴 이상한 소세지, 진짜 소세지, 내장으로 짐작되는 각 부위들, 커다란 감자 두 쪽, 양배추 삶은거, 그리고 밥이 나왔다.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밥이 너무 그리운 때여서…(포르투갈 음식은 무척 퍽퍽한 느낌이다. 단백하고 거친 맛이라고 해야하나. 항구도시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이 엄청 많아 보였다. 일단 살코기는 다 먹고, 밥도 다 먹고 나머지 부위들을 먹어보려고 노력했으나 한 입 먹어보고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특히 그 순대처럼 생긴 소세지는.. 고개를 들어보니 바 안쪽에 있는 할아버지중에 내 요리를 가져다 준 할아버지가 날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러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따봉?” 이라고 묻는다.(포르투갈어로 ‘taboa’는 ‘good’을 뜻한다.) 그래서 나도 따라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크게 웃는다. 소세지는 반정도 남겼다. 밥을 다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모두가 디져트를 먹고 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식후에 디져트를 먹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문화와 다른 점이었는데 유럽의 모든 국가들에서는 디져트를 식사와 함께 세트로 생각한다. 그만큼 무척 중요한 코스가 바로 디져트..)그래서 나도 디져트를 시켰다. 생 딸기를 왕큰 샴페인 잔 같은데다 담아서 그 위에 휘핑 크림을 듬뿍 얹어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주문하는거를 보고 손가락으로 따라 주문했다. ^^ 음..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맛이다. 식사보다도 더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그 디져트. 휘핑 크림이 마치 구름 같았다. 맛이..아, 정말 유럽 온 보람 있었다.

리스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은 Cabo da Roca라는 로까곶으로 가기로 했다. 바로 유럽의 서쪽 땅끝.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유스 호스텔의 앞바다에서 철썩이던 파도 소리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그 날 밤이란…

 

난생 첫 밤기차. 마음은 어느새 포르투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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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첫 밤기차. 마음은 어느새 포르투갈로..

파리를 떠나기로 한 날, 역시 비가 내렸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파리가 무척 냉정한 도시라는걸 느꼈기에 하루빨리 파리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고 싶었다. 처음엔 보르도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포르투갈이 너무 좋다고 하여 이끌리듯이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내 유레일 패스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3개국에만 해당되는 패스였던 관계로 나는 프랑스의 국경까지 유레일로 가서 거기서 포르투갈로 가는 기차는 그냥 현금을 내고 타야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파리의 예매소 직원이 괜찮다는거다. 이 유레일로 포르투갈도 여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또 그 직원의 바보같은 말을 어리버리 믿고 시키는 대로 모두 유레일로 표를 예매했다. 어찌되었든 프랑스 국경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그 기차가 10시간 정도 걸리는 밤기차라서 쿠셋을 예약했다. (간이 침대차)
그렇게 포르투갈로 향하기로 한 나의 결심은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었다.

파리를 출발해 국경도시인 Irun이라는 도시로 향하는 기차는 TGV다. 드디어 내가 이 먼땅까지 와서 TGV를 타보는구나. 괜히 설레였다. 내 옆자리에 누가 와서 앉는다. 가만히 보니 얼굴은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신체적으로 보면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거 같기도 하고.. 그냥 처음엔 어색하게 창밖만 쳐다봤다. 조금 지나서 내가 샌드위치 반쪽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19살이란다. 일하는데서 휴가를 받아 친척이 있는 프랑스 남부 해변 도시로 가고 있는 중이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애기도 있냐고 물으니 지금 뱃속에 있단다. 헉…8개월째. 남편이랑 파리 북쪽에 작은 도시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다며 파리로 돌아오면 꼭 놀러오라고 일러주는데 어쩐지 잘 실감이 안난다. -_-a

Irun에 도착해서 기차를 갈아타려는데 왠 허름한 기차만 정차해 있다. 난 내가 타야할 기차가 안온줄 알고 동분서주 물어보고 다녔다. 그런데 다들 저 허름한 기차가 맞다고 한다. 쿠쿵…보기엔 허름해도 안은 좀 낫겠지 하는 나의 핑크빛 상상은 내가 자야 할 칸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이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일지도….

여섯명이 꽉 찬 기차칸에 올라 칙칙폭폭 어둠속을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열심히… 그때, 검표원 등장…표를 보여달라고 하며, 내 유레일 패스를 보여달란다. 보여줬더니 뭐라고뭐라고 포르투갈 말로 얘길한다. 느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같은 칸에 있더 프랑스 여인네가 스페인어를 해서 내가 영어로 얘기하면(흥..그러고보니 그 여인네 영어도 잘하는군.)스페인어와 포르투갈 말을 섞어서 얘길 전해준다. 듣자하니, 내 유레일 패스에는 포르투갈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지금 무임승차를 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왠 날벼락… 이 오밤중에 그럼 기차에서 내리란 말야?! 검표원은 처음부터 아주 우호적이지 못했다. 내가 파리에서 예약을 할 때 그 직원이 괜찮다고 해서 나는 그 말만 믿고 예약했던거라고 했더니, 역시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어리 버리했던건 나였다. 그래서 난 지금 내려야 하는거냐구 물었더니 그렇진 않지만 기차비를 따로 지불해야 한단다. 그리고는 내 유레일 패스와 여권을 가지고 검표원은 불친절한 뒷모습으로 사라져 버렸다.

새벽같이 날 깨우는 검표원…지금 국경을 넘었으니 기차비를 내란다. -_-;;; 정말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또 처음 봤다. 그래서 새벽에 자다말고 일어나서 기차비를 내고 왔다. 기차비는 25000원 가량 되었다. 물론 비싼값은 결코 아니지만(포르투갈 국경에서부터 리스본까지의 km만큼만 지불하면 되므로..)새벽같이 깨워서 돈을 내라고 재촉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미련해 보일 뿐이었다. 암튼 기차 예약하는 법은 톡톡히 배운 것 같다.

같은 칸에 있던 19살 캐나다 배낭족과 어찌어찌 친해졌다. 그 애 말고는 다 20대 후반의 여인네와, 어떤 커플, 할아버지가 있었으니 어쩌면 친해질수밖에 없었는지도..-_-. 암튼, 이 아이도 참 우여곡절이 많다. 남자친구랑 같이 배낭여행을 왔는데 파리에서 싸웠단다. 그래서 헤어지게 됐고, 욱하는 마음에 혼자 포르투갈로 왔다는 것이다. 음… 생김새가 맥 라이언이랑 비슷하길래 그 얘길 해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며 남자친구도 그런 얘길 자주 했다며 잠시 추억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왠지 약간 피곤할 것 같은 느낌의 아이였다. 그래도 어쨋든 기뻤다. 이렇게 낯선 땅에 같이 발을 디딜 사람이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아침 10시… 산타아폴리나역은 바로 앞의 바다와 면해 있어서 역에서조차 바다 냄새와 소금기있는 바람이 분다. 낭만적일 수 있는 장면이었건만, 밤새 뒤척이다 방금 기차에서 내린 나는 그저 오한만 느껴질 뿐이었다. 밤기차는 정말 사람 망가지게 한다…

그래도, 어쨋든 여기는 포르투갈 리스본이다! 그렇게 신비롭다고들 입을 모으던 그곳이다. 드디어 나의 진짜 여행이 시작될 곳. 그 먼 땅 포르투갈에 와 있는 것이다.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고생을 하게 될 이곳이 왜 그렇게 설레이던지.!

 

루브르는 대감마님, 퐁피두는 한창때의 꽃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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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대감마님, 퐁피두는 한창때의 꽃처녀~

아침부터 부랴부랴  서둘렀다. 파리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의무인 것처럼 좀비마냥 루브르로 향했다. 파리에 왔으니 루브르를 가봐야지. 암 그럼. 유리 피라미드는 분명 사진보다 멋질꺼야~ 내가 진정 루브르로 가고 있단말야??! 등등의 상상으로 마음이 무척 들떠 있었다. 도착해서 표를 끊고, 박물관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막막했다. 입구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_-
어디로 들어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메소포타미아관과 연결된 입구쪽으로 들어갔다. 아, 그 전에 루브르 박물관의 지도를 집었다. 참 씁쓸했지만, 일본어, 중국어, 심지어 포르투갈어까지 있는데 한국어로 된 설명서는 없었다. 요즘엔 우리나라 배낭족들도 꽤 될텐데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박물관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조각상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박물관의 규모를 뭐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세시간동안 내가 루브르를 모두 돌아야 했던 것은 길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걸 말하고 싶다.
루브르에서 제일 인기있는 작품은 단연 모나리자다. 물론, 모나리자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곳곳에 모나리자로 향하는 이정표가 붙어있어 가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루브르의 노력에 내가 살짝 넘어가주었다.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작은 그림이다. 그러나 그 앞에 인파는 위에서 보면 알록달록한 개미들이 바글거리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모나리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분명히 플래쉬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있는데도 여기저기서 플래쉬가 터진다. 그래도 프랑스인 관리인은 먼산만 쳐다볼뿐 관리 따위엔 신경쓰지 않는다. (후에 알았지만 파리 사람들이 제일 게을렀던 것 같다.)
모나리자를 지나면 또 밀로의 비너스를 향해 이정표가 이어져 있다. 이런 이유였다. 사람들이 모나리자와 비너스앞에만 모이는 이유는… 박물관측의 탓이 컸던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배려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르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 두 개의 인기작품들 때문에 다른 작품들은 심지어 램브란트의 그림마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중이란…

루브르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봐서 도무지 기억에 남는게 없다. 그 규모 때문에 보는 사람이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랬다. 언제 다 보지..걱정하며 헤맸던 기억밖엔..그 날은 그렇게 박물관을 나와서 소르본느 대학가로 가서 점심을 먹고 대학가 주변을 구경하고, 센느강변을 쭉…걸어서 숙소까지 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하늘이 찌뿌둥했다. 원래는 오르셰를 가려고 했는데 그 날은 또 하필 오르셰 미술관이 문을 닫는 날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이었던 퐁피두 문화센터로 향했다. 그러고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퐁피두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본 퐁피두라는 이름의 거리만 해도 두 개나 되니깐.(각각 다른 지방) 퐁피두 문화센터는 현대 종합예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비가 올 것 같아 아침 일찍 서둘러서 나갔더니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문화센터 밖에서. 거의 한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나는 퐁피두 문화센터 주변을 돌아다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중 3일이상은 비가 온다 그러더니 소나기도 아니고 추적추적 우울하게 비가 내렸다. 그러나 누구도 뛰어다니질 않았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걸어다닌다. 뛰는 사람도, 급하게 가게처마밑으로 숨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어떤 여자는 그 빗속에 담배를 피며 걷고 있다. 말끔한 정장에 중절모까지 쓰고…
이런 모습의 파리는 정말 딱 파리 스타일이라고 느꼈다. 이 도시는 어쩐지 이 우울한 비가 딱 어울렸다.

퐁피두 문화센터는 무척이나 현대적인 건물이다. 외관에 철골이 다 드러난 이 건물은 언뜻 보기엔 흉물스럽지만 그 취지와 전시된 내용이 문화센터의 목적과 상당히 부합한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본 전시관으로 올라가는데 벽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여간 멋스러운게 아니었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는 둥근 원통처럼 생긴 유리벽에 둘러쌓여있다. (즉, 에스컬레이터는 건물과 연결된 야외에 있는 것이다.)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니, 말 그대로 이곳은 파리, 그자체였다. 내가 상상했던 그 파리였다. 이 모습을 사진을 찍지 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퐁피두 문화센터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주로 팝아트가 많다. 현대의 추상미술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설치 미술, 옵 아트 부분도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미술에 족적을 남긴 이름들이 눈에 띄었고, 그 미술작품만으로도 미술관 하나쯤은 거뜬히 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곳은 여전히 문화센터로 남아있다.
그 이유를 관람을 하며 알 수 있었다. 어느 유치원에서 단체로 관람을 왔나보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엄숙한 루브르와는 다른게 이곳은 전시된 작품들처럼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스럽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 버지가 애들을 모두 앉혀놓고 어떤 설치 미술의 원리,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애들을 시켜 나와서 시범도 보이고…보고 있는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할아 버지를 쳐다보고 있다. 바닥에 까는 회색 카페트 비슷한 천으로 모든 벽을 만든 어떤 방은 공명이 되지 않는다. 소리가 울리지 않으니 그곳에 들어가서 말을 하면 무척 이상하다. 아이들은 그 방을 뛰어다니며 벽에도 부딪혀보고 서로서로 말하고 들어보기도 한다. 정말 신기했던건 그 많은 아이들이 놀면서도 문화센터 안에서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는 거다.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유수의 작가들 작품앞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며 그 속에서 작가들의 예술혼을 듬뿍 받아가고 있었다. 아, 그래서 파리가 예술의 도시구나. 아니 그럴 수밖에 없겠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러한 문화센터가 이 곳에선 그야말로 제기능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말뿐인 문화센터가 아닌 누구나 쉽게 와서 예술작품을 즐기고 얘기하고, 공감하는 진짜 문화센터.
질투나게도 이곳 사람들에게 예술은 삶이었다. 어려서부터 가까이서 접하고 실천해내는 삶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