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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호스텔을 떠나면서 reception에 있던 멋진 오빠에게 여러 가지들을 물어보았다. 포르투갈어로 간단한 문장은 어떻게 말하는지, 여기에 한국인 많이 오는지..(내가 두 번짼가 세 번째란다… 한국인들이 포르투갈엔 정말 안간다.)그리고 포르투갈에 추천할 만한 곳을 물었다. 물론 관광객이 별로 없는데로. 멋진 오빠는 지도를 펴서 몇군데를 집어 주었다. 그래서 이 다음다음 갈 곳을 정했다.! 그러나 일단 먼저 리스본 근교에 있는 Sintra를 거쳐 Cabo da Roca를 가야 한다. Sintra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이 본을 떴다는 바로 그 성이 있는 도시다. 이 도시는 그래서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또 그만큼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Sintra로 가는 기차를 알아보면서 문제가 생겼다. Cabo da Roca가 Sintra 가기전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일단 Sintra의 유스호스텔을 예약해놨고, 거기서 또 기차를 타고 Cabo da Roca로 가야한다는 말인데.. 그러기는 시간도, 돈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Sintra 가는 길에 Cabo da Roca를 들르기로 했다.
Cabo da Roca로 가기 위해서는 Cascais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한다. Cascais역에 내렸을땐 오후 5시쯤 되었었다.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은 오후 5시가 되었는데도 우리나라에서의 오후 1시 처럼 밝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밑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 근처로 가보았다. 인심좋게 생긴 할아버지는 돌을 깨서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돌들은 벽을 저렇게돌로 마감할 집을 짓는데 쓰일 것이다. 그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물론 포르투갈어로..)그래서 난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다행히도 이 정도의 문장은 구사할 수 있었다.^^)그러자 한국이 전쟁났던 나라 아니냐고 또 묻는다. 그래서 맞다고 그러고 아는 것이 기뻐 크게 웃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랑 같이 일하던 보다 젊은 할아버지들은 자기들끼리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는 웃으며 날 보더니, 포르투갈은 볼 게 많다고, 오래 있다 가라고 한다. 할아버지중 한 명이 내 배낭을 보더니 놀라면서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눈을 크게 뜨고 묻길래 내가 팔힘이 좀 쎄다는 것을 제스쳐로 보여주었다. (각자 알아서 상상하시기를..)그렇게 땡볕 아래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거의 40분을 기다렸나보다…관광객이 꽤 될텐데 버스가 이렇게 드물다니.. 암튼 4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버스는 시설이 아주 좋다.) 한참을 시골길을 오른다. 거의 30분 가까이 갔나보다. 숲이 점점 울창해지고 집도 드문 고산지대가 나오고 마치 불가리아 CF같은 풍경들이 이어지더니 버스는 멈춰서 여기가 Cabo da Roca라고 알려준다. 도무지 진짜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 절경…. 너무 놀라워서 바람이 정말 세차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역시, 높은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쎄다. 무척 차기도 하고..)바로 앞엔 첩첩 산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 산수화처럼 안개 너머로 녹색의 풍경이 우뚝 솟아있었다. 어디선가 철썩..파도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바다가 펼쳐져 있다. 앞에는 까까지른 낭떠러지 밑으로 푸른 바다가 있고 뒤로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 핀 길이 이어져 있다. 마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그곳처럼. 그리고 저 멀리 꼭대기의 십자가와 함께 탑이 서있었다. 그 기념탑은 바로 절벽위에 세워져 있어서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이곳엔 탑과 등대 외에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서 있는 버스 정류장겸 ‘땅끝에 발을 딛은’ 증명서 발급소와 함께..너무도 조용해서 파도소리도, 바람이 펄럭이는 소리도 메아리 치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무척이나 고요하고 한적하다. 이럴땐 혼자라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정말 내가 땅끝에 와있다는걸 실감하게 된다.
거기에는 절벽과 파도, 바람이 전부였다. 바람 때문에 눈도 똑바로 뜰 수가 없다. 까딱하다간 바람에 떠밀려 절벽에서 발을 미끄러트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변엔 인공적인 안전장치나 철조망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념탑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Luís Vaz de Camões가 이곳을 보고 한 말을 새겨놓았다.
“여기는 땅이 끝나는 곳, 그리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이곳은 유럽 반도의 서쪽 끝으로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대륙의 끝으로 간주되었던 곳이다. 옛날 유럽 사람들은 이곳이 바로 땅 끝, 그래서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이었을까..’땅 끝’ 이라는 단어는.
Cabo da Roca는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옛날에 ‘자유시간’ 선전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곳이다. 기념탑에 새겨져 있는 저 문구도 CF에 그대로 사용되었고..그래서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같은 배낭족들 뿐이다. 백인들은 거의 단체 관람으로 관광버스로 오거나 자가용으로 오는 사람들 뿐이다. 그만큼 이리로 오는 시골길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 유럽여행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릴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약 한 시간 정도를 보고 (너무 추워서 더 있을 수가 없었다.)다시 버스로 기차역까지 내려왔다. 내려오던 길은 진짜 꿈에서 깨는 듯한 기분…
기차를 타고 Sintra 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기차역에 내려서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기차역에서 꽤 멀다는 소리에 덜컥 택시를 탔다..-_-;;; 택시를 타고 유스호스텔로 가는 길은 정말 공포스러웠다.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내 몸은 완전 뒤로 젖혀지고 날은 어둑어둑 길은 계속 꼬불꼬불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겠다…아까 봤을땐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설마, 설마… 갖가지 생각들을 하며 눈을 꾹 감았는데 이 젊은 운전사가 문을 탁 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여기는….. 흐흐 유스호스텔이다. Sintra 도시 자체가 언덕이다. 계속 언덕이고 숲이 울창하다. 게다가 언덕 중간중간 예쁜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한마디로 전원주택)그 절경을 멀리서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푸른색 숲에 깎아지른 듯한 언덕가에 집 한채. 캬…
유스호스텔에 막 도착해서 접수를 할려고 reception에 들어갔는데 내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던 아이가 앉아있다. 바로 린시… 여기서 다시 만날줄이야. 무척이나 어색한 분위기였다. 서로 기분좋게 헤어지진 못했으니. 그러더니 하는 말이, ‘너 나 따라왔구나~ ‘그러면서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짓는데 한 대 퍽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껄껄 웃으면 날 쳐다보고 있다..-_-;;; 마치 넌 뭐해 빨리 웃어 라고 강요하듯…그래서 베시시 웃어주고는 어서 접수를 했다. 이 유스 호스텔은 성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성을 개조했다고는 하지만 예전 ‘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시설이 현대적인면서도 무척이나 포르투갈적인 냄새를 풍겼다. 중세의 수도원을 온 듯한 기분… 짙은색의 나무문과 이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 벽에 걸린 중세 분위기의 사진들,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벽은 순백의 흰색에 바닥엔 카페트가 모든 가구는 진한 갈색을 띄고 있다. 화장실도 어찌나 낭만적으로 해놨는지 그냥 모든게 다 맘에 들어 버렸다.
여행 초반, 나는 무척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파리에서 너무나 피곤했고, 낯설음, 두려움 등등..즐거운 것보다 ‘이겨내야 한다’라는 생각이 언제나 따라다녔었다. 그래서 친구 사귀는데도 무척 소극적이었다. 관광도 낮에만 하고 밤에는 파리에서 에펠탑 야경 본 것 외에는 한번도 혼자 나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혼자 다니지 않았던 나의 결정은 무척 현명했던 것 같다. 유럽의 밤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위험했다.) 산책이나 할겸, 해가 진후 막 어두워지기 전에 나가보았다. 와..정말 무슨 고산 마을에 온 것 같았다. 안개가 짙고 공기가 너무도 맑았다. 곳곳에 초록색이 아닌곳이 없고… 이런 곳이 실제로 있기는 있구나. 현실세계와 잘 매치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Sintra에서 하루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리스본으로 향했다. 사실 백설공주성의 원조를 보고 싶긴 했는데 또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또 어서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기도 했다. 배낭을 매고 아직 안개가 낀 언덕을 내려가고 있으니 그 절경이 또 계속 나를 멈추게 한다. 언덕이라고 하기엔 까까지른 절벽에 가까운 이 언덕을 내려가면 왼편으로 저쪽편에 산등성이가 보인다. 내가 서 있는 언덕 바로 밑으로도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그렇게 여러 언덕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그렇게 신비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게다가 안개까지 자욱했다면 분명 저기서 말 타고 꽃 미남이 달려올법도 한데.. 그렇게 감탄하며 기차역에 도착하여 다시 리스본으로 향했다. 전국을 연결하는 모든 기차는 리스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어디로 이동하든 일단은 리스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 다음 목적지는 Evora, 유스호스텔의 멋진오빠가 추천해준 곳이다. 내 가이드북에는 소개도 안되어 있는 이 곳을 내가 어떻게 찾아갔을까… 그러나 겁나거나 걱정되진 않았었다. 어쩌면 이제 조금씩 여행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