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September 2001

아몬드숲에 쌓인 해변으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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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9시쯤 눈을 떴다. 어제 저녁 9시쯤 잤으니 12시간을 잤구나. 진짜 피곤했나보다. 일어나서 주섬주섬 짐을 또 싸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역시 팬션은 아침도 잘 나온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가방을 매고 프런트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기차역을 물었는데, 글쎄 이 놈이 내게 왠수 진게 있는지 버스 터미널을 가르쳐줬다. 난 그것도 모르고 기차역과 완전 반대쪽에 있는 버스 터미널까지 갔다가 또 물어물어 기차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 황당했던건, 고생고생해서 기차역을 찾아갔더니 해변도시 Lagos로 가는 유일한 기차는 30분전에 떠났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_-;; 아까 처음에 버스 터미널 왔을 때 기차역을 물으러 들어갔던 Bar 비슷한게 있었는데, 버스 터미널에 딸려있는 Bar다. 그런데 그때가 아침 10시 반쯤 됐었는데 성황리에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곳이다. 새롭게 알았지만 유럽 사람들은 대낮에도 맥주 한 두잔씩 꼭 마셔준다. 맥주 혹은 와인. 다른 얘기지만 프랑스는 에비앙 물보다 와인이 더 싸다. 다들 술을 즐기는 것 같다. 아무튼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오니, 그 Bar에서 내게 기차역을 가르쳐줬던 지배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못 찾았냐고 묻는다. 그래서 아니 찾았는데 기차를 놓쳐서 버스를 타야한다고 했더니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 해보인다. 으음..내가 생각해도 바보같다. 어제 기차 시간표도 안알아봤다니.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살려고 줄을 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줄이 안 줄어드는거다. 그래서 목을 빼서 앞을 봤더니, 표 파는 언니가 점심시간이라고 딱 걸어놓고는 안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것이 아닌가. -_-+ 그리고는 옆문으로 나와서 약 2M 떨어진 곳에 있는 간이 매점 같은 곳에서 푸짐해보이는 샌드위치를 하나 사온다. 그런 후 또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도 참..) 한 30분이 지나자 다시 표를 팔기 시작했다. Lagos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오후 세시에 차가 있다는 거다. 그때가 11시 반쯤 됐었으니 세시간 하고도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유일한 차편이라고 하니 얼른 그 표를 샀다. 그리고나서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책도 보고 집에 전화도 하고 밀린 엽서도 좀 쓰고…그런데도 두 시간이 남았다. 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진짜 신기한건 내가 앉아있는 벤치 바로 맞은편에 간이 매점이 있었는데 일단 터미널에 온 사람들은 모두들 간이 매점을 ‘우선’ 향하고 본다는 것이다. 일단 거기 가서 샌드위치 혹은 아주 작은 잔에 나오는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간혹 까페 꼰 레체(까페라떼)를 시키는 사람도 있다. 음..그건 맛있어 보인다. 암튼 사랑방 같은 구실을 하는 이 간이 매점의 주인 아줌마가 또 신기한다. 글세, 거기에 오는 온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오면 반색을 하며 반기며 부축해서 의자 있는데까지 데려다주고, 한 시간째 거기서 죽치고 있는 운전수 아저씨랑은 라디오에서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춤까지 춘다. 포르투갈의 국민가수격인 사람이 TV에 나와서 노래를 하면 거기 있던 주인 아줌마랑 일하던 다른 아가씨들 모두 입을 모아 TV를 보며 하나 같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_-;; 정말 재밌는 간이 매점이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려니 시간이 금방 갔다. 어느새 차시간이 됐고 버스를 탈려고 내려갔는데, 버스가 20분이 지나도 안 오는 것이다.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보이는 운전수 아저씨들한테 다 물어보았다. 표를 보여주면서 내 버스 어딨냐구.. 그랬더니 아직 안왔다고만 한다. 또 20분을 기다리니 사람이 꽉 찬 듯 보이는 왠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저 버스는 절대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쳐다보고만 있다가 혹시나 해서 다른 아저씨한테 다시 내 표를 보여주며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 아저씨가 떠나려는 그 문제의 사람 꽉 찬 버스를 다급하게 멈춘다. (사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다급해 보였을 뿐이다. -_-) 휴…이렇게 어렵게 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저 구석에 빈 자리가 있어서 낑낑대며 들어가서 앉았다. 이곳의 고속버스들은 우리나라와 다른 것이 중간중간 큰 도시마다 멈춰서 사람을 왕창 또 태우고 간다는 것이다. 말만 고속버스…그러나 시설은 진짜 좋다. 우리나라 우등 고속버스 정도 되는 시설이 보통 버스다. (하긴 여긴 우등버스는 없으니 그게 그건가.) 한참을 가던 버스가 또 어떤 도시에 멈춘다. 이 버스는 사실 Lagos까지 가는 버스가 아니다. 중간에 있는 이름모를 도시 (아아~ 기억이 안난다.)까지 가는 버스다. 그러니 거기에 내려서 다시 Lagos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 그것을 타야 하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또 40여분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알 게 된 독일 여인네는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여인네였다. 20대 후반?..음. 포르투갈만 여행한다고 하는데 베테랑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여인네는 내가 상상하던 독일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보이고 있었다. 버스가 안 오자 안절부절 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데도 이 여인네는 동분서주 왔다갔다 하며 제대로 된 일인지를 묻고 다닌다. (그렇다고 자기가 알아낸 정보를 모두에게 알려주느냐, 그것도 아니다.) 아,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쪽에서? 북쪽에서?”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남쪽” 이라고 했더니, “그럼 그렇지, 북쪽에서 나올려면 탈출(escape)해야 하잖아.” 라고 말하며 묘한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는 버스가 오자 얼른 집채만한 배낭을 실은 후 버스에 오른다. 어떻게 하다가 자리가 나뉘어서 난 좀 뒤에 앉게 됐는데, 이 여인네는 정말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10분이 멀다하고 운전수한테 가서 이 버스가 Lagos로 가는 버스 맞는지, 말이 안통하자 지도까지 들고 가서 맞냐고 몇 번씩 확인을 하고서야 안심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한 한 시간을 갔나. 갑자기 버스가 고속도로 변에서 멈춘다. 운전수가 다 내리라고 한다. 버스가 고장났다고.-_-;;; 이런..이게 또 왠 날벼락. 사람들은 투덜투덜 내린다. 버스 운전수는 지금 회사에 전화했으니 Lagos로 가는 다음 버스가 지나갈 때 그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을거라고 일러준다. 휴… Lagos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다. 지금쯤 Lagos에 도착하고도 남았을텐데. 그때 시간이 저녁 7시였을 거다. 그런데도 날은 대낮처럼 밝다. 다음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미국에서 왔다는 남자애를 알 게 됐다. 나보다 한 살이 많다. 뉴욕에서 왔다고 하는데 정말 이 애는 진짜진짜 백인이다. 얼굴이 핏기가 없는 듯 하얗고, 머리는 금색이다 못해 은빛이고, 속눈썹과 팔에 난 털까지 정말 금색이다. 반짝반짝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다음차가 와서 이애와 함께 탔는데 휴가를 내고 1주일간 포르투갈만 여행하고 간다는 거다. 일주일 휴가에 포르투갈까지 올 생각을 하다니. 재밌었다. 이 애는 약간 수줍음이 많은 타입이다. 그런데도 역시 미국인 특유의 자만심과 콧대는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첫인상은 안그랬는데 지낼수록 이 아이는 약간 어리 버리한 구석이 있었다. 차라리 안절부절 독일 여인네가 낫지, 이렇게 어리버리 사람 뒷통수 치는 타입은 질색인데, 처음에 내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함께 문제의 그 Lagos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야 한다. 어딜 가든 숙소를 잡아야 맘 편히 돌아다니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나는 마음이 다급했다. 여기 잘 알지도 못하는데 오자마자 헤매야 할까봐 슬슬 걱정이 되는데 글쎄 이 미국놈은 자기는 죽어도 dorm room은 쓸 수 없다는 거다. 당연히 유스호스텔은 여럿이서 방을 함께 쓰게 되어 있다. 물론 싱글룸이나 더블룸도 있지만 돈을 더 줘야하고 한 유스 호스텔에 한 두 개 씩밖에는 없기 때문에 유스 호스텔의 싱글룸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나는 돈도 없고, 유스호스텔을 찾아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강조를 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제안을 한다. 여기서 유스 호스텔에 전화를 해보자는 거다. 그래서 방이 있다면 넌 그리로 가고 방이 없다면 자기와 함께 팬션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뭐 합리적인 제안이니..그러자고 했다. 이 어리 버리한 녀석이 몇 번의 어리 버리한 시도 끝에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걸어본다. 물론 유스호스텔엔 한 사람이 쓸 침대는 언제나 남아있다. 그렇지만 그건 dorm room이고 싱글룸은 다 찼다는 것이다. 이 녀석이 날 보더니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난 가차없이 “유스 호스텔로 가야지!” 라고 외쳤다. 이 녀석은 dorm room은 지저분하고 물건을 도난당할 우려도 있고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한다. 그래서 내가 “그럼 넌 팬션 가면 되겠네. 난 돈이 없어서 그냥 dorm room 쓸래.” 그랬더니 아무소리 못하고 다시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팬션에 전화를 건다. 방이 있다고 하자 이 녀석은 기뻐하며 빨리 가자고 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뭐냐면 여기서 택시를 타고 가자는 것이다. 참내, 얼마나 멀다고…나는 그냥 걸어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결국엔 걸어서 가장 번화한 광장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 어두워졌는데 그곳은 대낮처럼 환하게 간판이며, 조명들이 켜져있다.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쓰는 관광객들이었다.

미국식 영어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백인 남녀들이 바글바글하다. 이곳은 진짜 번화한 관광도시였다. (해변이 있는 곳이 다 그렇지만…뭘 기대한걸까.) 아무튼 각자 숙소를 찾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런데 뭘 먹을지 얘기를 하는데 이 녀석이 내가 또 돈 없다고 할까봐 저녁은 자기가 살테니 꼭 식사다운 식사를 하자는 거다. 약간 머쓱하기도 하고, 내가 맘고생을 시켰나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 배도 많이 고파서 뭐 그러자고 했다. 고르고 골라서 들어간 (이 녀석도 만만찮게 우유부단한 구석이 있다.)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하는데 자기는 배지테리언이어서 육식은 못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생선요리를 시킨다. -_-;;(생선은 죽어도 된다 이거야?) 난 물론 고기를 시켰다. 먹으면서 내가 물어봤다. “넌 고기를 못 먹는거야? 안먹는거야?” 그랬더니, “너 소를 어떻게 죽이는지 알아? 고기를 맛있게 하기 위해서 도살하기 직전에 소의 뇌에 전기충격을 줘. 그렇게 해야 육질이 더 맛있어지기 때문이야. 그게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일인줄 알아? 그걸 알고도 어떻게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니.” 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한다. 그래서 그러면 넌 생선을 죽일 때 생선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들려? 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냥 조용히 먹었다. 배지테리언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니 조금 지나고 나면 맛있는 고기가 그리워지겠지 싶었다.

밥을 먹고 Lagos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었고, 이 작은 도시는 낮은 성벽으로 둘러쌓여져 있다. 군데군데 길을 가다가 아치형의 돌문을 지날 때도 있었다. 돌길이 이어지고, 성벽에 기대어 밤바다를 바라보는 기분..후후. 정말 멋진 밤이었다. 이 녀석이 조용히 걸으면서 말을 한다. “아까는 사실 내 고집대로 숙소를 잡으려고 했던 것 미안해. 생각해보니, 너는 오랫동안 여행을 할테니 돈을 아껴써야 하겠더라구. 하루에 계획된 예산이 있을텐데 니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 미안해.” 엄청나게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과를 하니 아까의 얄밉던 것은 조금 덜해졌다.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군. 잠시 생각을 고쳤다. 그 날은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날은 Sagres라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Lagos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여기를 가는 것도 참..이 미국아이가 가자고 해서 알 게 된 곳이었는데 이 아이가 아침부터 차를 렌트해서 Sagres까지 가고 싶다는 맑은 하늘에 봉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여기는 물가가 싸서 렌트비도 무척 저렴하다는 거다. 무척 당황했다. 뭐 결국엔 버스타고 갔지만..어쨋튼 나와는 스타일이 정말 다른 애였다.) 바로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기 전 왕을 알현했던 곳, 유럽대륙의 최남단. 이곳에 당시 돈 엥 히께라는 왕이 항해 학교를 세워 항해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수학자, 지도학자등 관련 전문가들을 육성했다고 한다. 그 항해 학교를 들어가 보았는데, 문을 하얀 문을 통과하니 그저 허허 벌판에 저쪽에는 해시계가 바닥에 그려져 있고(나침반 역할까지 하는 듯 했다.) 또 한참 떨어진 곳에 작은 교회가 있다. 듬성듬성 조그만 건물들이 있고 또 한참을 걷다보면 절벽끝에 바다가 나온다. 이런 곳이 학교라니, 정말 공부할 맛 났을 것 같다. 날씨가 좋아서 더더욱 하얀색 건물들과 정말 새파란 하늘이 예쁘게 어울린다. 옆에서 이 미국 아이, 이름을 불러야겠다. David가 이곳의 유래와 쓰임새를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그리고나서 Lagos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까지 David는 내게 어제 어리 버리했던 인상에서 서서히 수줍고, 자상한 아이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묵고 있는 팬션이 가까워오자 엉뚱한 소리를 한다. “너도 오늘 해변 갈거지? (Lagos의 최대 볼거리는 해변이다. 아몬드 숲에 둘러쌓인 해변) 그럼 같이 가자. 그리고 지금 내 방에 올라가서 내 등에 썬크림좀 발라줘.” 그때는 당황해서 얘가 지금 뭔 말을 하는지 수습이 안됐었다.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고 웃으면서 싫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얘가 하는 말이 정색을 하며 “왜? 우린 친구인데 왜 안돼?”라고 묻는다. 기가 막혀서.. 장난이 아니었군. 분위기를 짐작하고 처음엔 그냥 부드러운 어조로..”싫어, 정말 미안한데 해변가에 가면 사람 많을거야. 그 사람들한테 부탁하렴.” “왜? 난 널 알고 우린 친구잖아. 왜 싫은데?” 하도 캐묻길래 “나는 크림을 손에 바르는걸 아주 아주 싫어해!!”라고 말했다. 그래도 말길을 못알아듣길래 화를 내며 “정말정말 너에게 썬크림 발라주기 싫어!”라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ok, bye”그러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올라가 버린다. 진짜 웃겼다. 오케이 바이?!! 웃기고 있어~ 진짜. 니 눈에는 동양여자는 전부 마자시 걸로 보이니?? 중얼중얼 혼자 화를 내면서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진짜 기분 나빴다. 여태 잘해준게 그럼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단 말야?…정말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 날은 절대 해변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다. 정말 그 아이가 무섭다고까지 느꼈었다. 혼자 Lagos곳곳을 돌아다니고, 유명한 성당에도 들어가보고 성곽 근처까지 갔다가 아래쪽에 보이던 신기한 물 색깔의 해변사진을 한 방 찍고 일찍 들어갔다. 내 룸메이트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아이 한명, 그리고 프랑스에서 휴가를 받아 온 간호사 두 명이다. 간호사들은 연신 즐거워 하며 멋있는 남자 찾기에 골몰해 있었고(진짜 귀엽고 깜찍해보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소녀는 생각이 깊고 무척 신중한 아이었다. 일년째 여행을 하고 있는데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며,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들, 어쩌다 여행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얘기해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날, 자기가 왜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더란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걸 의논했더니 친구는 그럼 세계여행을 다녀와라 라고 충고를 해주었고, 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알겠다, 4개월 안으로 돈 모아서 여행 갔다오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약속한 대로 4개월 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서 영국에 오페어로 갔다가 거기서 돈을 모아 지금 유럽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엉뚱하지만 정말 기특해보였다. 이런 사람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괜시리 무척 아쉽다.

Lagos는 매력 만점의 도시다. 화려하고 북적거리고…언제나 파티 분위기다. 거기다 해변가가 바로 앞에 있으니 수영복 차림의 남녀들이 번화가 한 가운데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 자체는 정말 작은데 볼거리는 많다. 놀거리도 많고, 먹을데도 많고…그야말로 아기자기한 관광도시다. 모든 간판이며 상점들도 영어로 되어 있으니 지내기에는 수월할거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도시는 아니었다. 다음 날 Lagos를 떠나 Faro로 향하면서 아르헨티나 소녀의 침대에 짧은 쪽지와 한국에서 가져간 예쁜 선물을 놔뒀다. 가방을 찾으러 잠깐 들렀을 때 보니, 그녀가 내 가방에 답장을 얹어놓았다. “선물 정말 고마워. 절대로 널 잊지 못할거야. 널 알게되서 정말 행복하다.” 태양이라는 뜻의 이름(Sol)을 가진 그녀는 지금도 계속 여행중일 거다.

 

아몬드숲에 쌓인 해변으로! <3>

약간 느끼하게 생긴 이 아저씨는 왠지 어수룩해 보이는 데가 있어서 안심하고 차를 탔다. 목적지를 묻는데 Beja라고 했더니 그냥 타라고 하길래, 그냥 타 버렸다. 내겐 고를 수 있는 옵션도 없었다. 타자마자 나는 지도를 펴서 아저씨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손가락으로 쿡 찍어서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 중간까지만 갈거라는 좀 흐지부지한 말을 한다. 나는 어쨋든 탔으니 아저씨 가는데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바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차를 타고 가니 또 다른 분위기다. 앉아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오.. 내가 외국와서 히치 하이킹을 다 해보네. 암튼 난 좀 친해보려고 애썼다. 이 아저씨랑. 그런데, 이 아저씨의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 자꾸 나를 흘깃 흘깃 쳐다보는 것이 그냥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냥 창가만 쳐다봤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너무 더워서 그러는데 잠깐 까페에 들러서 자기랑 차 한잔 하고 가자는 거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진짜 덥기도 했고, 얻어타면서 이것저것 가리기는 싫었다. 진짜 시골 같아 보이는 곳에 내렸다. 그리고는 기사들 까페 라고 해석해야 할까. 그런 조그만 찻집에 들어가서 나는 아이스 티를, 아저씨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유럽에선 모두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우리는 Bar에 기대서 서서 마셨는데, 그 까페 안에 있던 남녀노소, 손님, 주인장, 웨이터, 웨이트레스 할 것 없이 모두들 우리에게 시선집중이다. 이런 시골에 왠 동양 여자애가 포르투갈 사람이랑 나타났으니 모두들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는건 당연할 거다. 암튼, 얼른 마셔 버리고 빨리 가자고 했다. 그래서 다시 차에 올라, 또 한 10분을 달렸나 보다. 이 아저씨가 손등으로 내 팔등을 쓰다듬으며 돈 필요하냐고 묻는다. 이런, 다 속셈이 있었던 게로구나. 늙은 사람이 더 밝힌다더니, 정말 겁이 났다. 속으론 심장이 쿵쾅, 쿵쾅 여기서 토막 살인나는거 아냐. 괴상망측한 생각들이 다 난다. 그러나 겉으론 하나도 겁안나는 듯이 말해야 쫄거다. 그래서 돈 필요 없고, 당장 여기서 내려달라고, 소리를 꽥 질렀다. 그랬더니 놀랐는지, 멋쩍은 말투로 그것(?!) 때문이 아니었으면 여기에 올일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었구나. 참내. 그러니 까페 가자고 할 때 순순히 따라간 나를 보며 반은 넘어갔다 생각했겠지. 쯧쯧. 그래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차는 바로 유턴을 해서 오던 길로 다시 가 버렸다. 짐들은 길 가에 내팽개쳐 있고 또다시 히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길도 모르는데 찾아갈 방법이 없다.

이번에 세운 차는 작은 경차다. 운전수를 먼저 살폈더니 이번에도 역시 나이 든 아저씨다. 약간 망설여졌지만 몸이 천근 만근이다. 타기로 했다. 조금 얘길 해보니 이 아저씨는 정말 Beja로 갈 일이 있는 것 같다. 자기 가족소개까지 깔끔하게 하는걸 보고는 안심하며 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이제 Beja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난데 없이, 남자친구 있냐고 묻는다. 그래서 이럴땐 뻥을 쳐줘야 하겠지하는 마음에 당연히 있다고 했다. 한국에 있다고. 그랬더니 포르투갈에는 있냐고 묻는다. 그래서 순진하게도 두 번째의 어택에는 걸려들고 말았다. 없다고 순진하게 대답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렇다면 자기집에 방이 하나 있으니 거기 가서 자기랑 같이 하룻밤 자자고 하는 것이 아니냐. 기가 막혔다. 어째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다 이런 아저씨들 뿐일까. 도대체 여기서 히치 하는건 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건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번엔 좀 차분하게(역시 학습의 인간..) 싫다. 그리고 당장 여기서 내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아저씨가 정색을 하며 이런다. 아니, 싫으면 됐다고, 어쨋튼 Beja까지 다 왔으니까 시내까지 가서 내리라고 그런다. 의외로 깔끔하게 포기하는데. 그러겠다고 했다. 정말 순순히 시내까지 데려다주고 가방 내리는 것 까지 도와준 후 그 아저씨는 자기 갈 길 갔다.

Beja에 드디어 도착했다. 휴..이 왠수 같은 Beja에. 처음엔 여기에 올 계획도 없었는데 순전히 Evora에서 걸어보고 싶었던 그 치기어린 생각 때문에 하루를 묵게 된 이 Beja. 오는 길에 다 꼬여 버린 이 여정. 꾀죄죄하고 얼굴이랑 콧잔등이랑, 팔이 빨갛게 익어 버린 우스꽝스런 모습. 또 이 Beja사람들은 외계인 보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애, 어른,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모두 뚫어져라…’저 배낭 맨 외계인은 누구야?’ 처럼.

일단 유스 호스텔을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물어물어, 경찰차까지 타가면서(이 경찰 아저씨들은 정말 착했다. 이 작은 동네를 순찰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길을 물으니 서슴없이 타라고 손짓을 했다. 무,무무물론 처음엔 반사적으로 겁이 났다. 하루종일 당한게 있으니. 그러나 경찰이니깐 믿고 탔더니 정말 이 아저씨들은 목적지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고 함박웃음까지 지어준다. 너무 고마워서 미리 사갔던 탈 모양의 열쇠고리를 선물로 줬다. 그랬더니 또 너무 좋아하면서 활짝 웃는다.) 찾아갔더니 이유스 호스텔은 비수기라서 문을 닫았다. 아..막막하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는 길에 차를 타고 와서 그 꼬불꼬불 길을 돌아갈 방법을 모르겠다. 똑같은 길로 가보려는데 자꾸 다른 길이 나온다. 할 수 없이 또 거기 있던 오토바이 경찰-_-;;;(경찰이 많네..그날 따라.)한테 물어서 시내까지 다시 올라왔다. 그때가 이미 저녁 7시였다. 물론 해는 절대 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내 몸은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시내에 있는 팬션에 방을 잡았다. 생각보다 비싸다. 게다가 더블룸을 주었다. 못되게 생긴 젊은 프론트의 남자가 나를 바가지 씌운거겠지만 따질 기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속은척하고 그냥 그 방을 쓰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왕 큰 침대에 가방을 다 풀었다. 그러고도 자리가 남아서 거기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았다.

이렇게 황당한 날이 내 평생 또 찾아올까. 정말… 왜 느닷 없이 걷겠다고 그 먼길을 나섰을까. 어떻게 14kg짜리 배낭을 매고 땡볕을 4시간씩이나 걸었을까. 겁도 없이 히치할 생각을 했구나. 이 나라 남자들은 왜이리 느끼해..일기에 적어놓고 그걸 보니 웃음이 난다. 황당한 하루였다. 그런데 내 여행중, 아니 지금에 와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던 걸 그땐 몰랐을 거다. 피곤에 지쳐 꿈도 안꾸고 곤하게 잠들어 버리면서도 어휴..내 여행이 어디까지 꼬이려나. 이 생각 뿐이었으니.

 

아몬드숲에 쌓인 해변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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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어제 아침에 Sintra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산비탈 언덕을 배낭을 매고 한 시간 넘게 내려왔더니 이세저야 후유증이 나타나려나 보다.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지만 오늘은 결심의 날이다! 다짐하고 일어나서 어제 널어논 빨래를 만져보았다. 이런..아직도 안 말랐다. 할 수 없지 그냥 짐 싸는 수밖에. 다음 도시에서 쨍쨍한 낮에 다시 말려야겠다. 짐부터 먼저 싸고 준비를 한 다음 아침을 먹으러 갔다. 테라스에 아침식사가 준비되어져 있는데 보통 유스호스텔과 다름없는 빵 + 버터 + 커피 (or 핫 초코) + 쨈 + 쥬스다. 처음엔 바게뜨 빵 먹으면서 입천장이 그렇게도 까지더니 이젠 그런 불편도 없다. 유스호스텔과 달랐던 점은 역시 팬션이라 그런지 예쁘게 담겨져 있다는 것. 은 쟁반에 흰색 탁자보를 두르고..모니카가 먼저 와 있어서 함께 아침을 먹으며 오늘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모니카는 이 곳 Evora에 이틀 정도 더 묵을 예정이란다. 그래서 난 오늘 떠날거라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무척 개인적이지만 의외로 큰언니같은 구석이 있어서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며 스페인에 가면 집시들을 많이 만날텐데,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강조를 한다. 집시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서 뭘 사라고 권할텐데 용기있게 뿌리치고 떼거지에게서 벗어나라고 일러준다. 이렇게 재밌는 표현까지 썼다. “Don’t be afraid to push little gypsy children” ^^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 녀는 내 양볼에 입을 맞춰 주었다. 괜히 코끝이 시리다.

배낭을 힘차게 짊어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물도 i.5L짜리를 한 통 사고. 기차를 타고 오며 봤던 그 예쁜 풍경들. 그곳을 직접 내 발로 걷고 싶다는 사소한 소망에서 비롯된 내 무모한 기차길 여행. 그냥 그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너무 유혹적이어서 꼭 내 발로 하나하나 찍어두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포르투갈 전체의 도로와 기차길 지도를 얻었다. 그래서 Evora역에서 출발하여 Lagos라는 휴양도시 중간에 있는 Beja라는 도시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내 야무진 꿈은 만약 그게 괜찮다고 생각되면 Beja에서 Lagos까지 걸어가야지 하는 거였다. -_-;;

Evora에서 Beja까지는 약 78km…시속 10km로 걷는다면 대략 8시간 정도 걸리겠군. 그러면 밤중엔 Beja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근데 시속 10km로 꾸준히 걷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것도 13kg짜리 배낭을 매고. 물론 그땐 그런 계산 따위는 하지도 않았었다. 단지 내 머리속엔 기차길을 따라가다보면 다음역에 도착하겠지. 중간에 작은 역들이 몇 개 있으니 정 힘들면 거기서 기차를 타고 Beja로 가도 될테고.. 어쨋튼 Evora와 Beja는 기차로도 갈 수 있는 길이니 기차길만 따라가다보면 Beja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렇게 기차길을 따라 뙤약볕 아래서 세 시간을 걸었다. 나도 느껴질 만큼 콧잔등이 따갑다. 게다가 아까 잠깐 기차길에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손가락에 나무 가시가 왕 큰게 박혀서 그걸 뺐더니 피가 나고 아프다. 배낭이 30kg쯤 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30분을 걷고 반드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지 않으면 꼭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걷다보니 이 넓디 넓은 벌판에 도무지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을 알았다. 노랗게 익은 밀밭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한쪽은 크게 자란 잡초들이 무성하다. 기차길 옆으로는 가시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사유지인 밭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해놨다. 처음엔 기차길을 걷다가 그냥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철조망을 건너 뛰어서 기차길 바로 곁의 잡초밭을 따라 걸었다. 지도를 보며 계속 확인했다. 그런데…난관이 왔다. 바로 기차길이 중간에서 갈리지는 것… 두둥…결정의 순간이다. 지도를 열심히 보며 선택을 하려 했으나 지도대로 나온..예상되는 길을 갈려니 왠지 그냥 너무 너무 찝찝했다. 이것이 기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 길 말고 저 쪽 길로 가야할 것 같다. 지도에는 반대로 나온. 결정의 순간은 언제나 너무 고통스럽다. 처음엔 지도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가운데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 느낌을 따라 반대되는 방향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쩌면 엑스파일의 멀더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쨋든 내 느낌은 맞았다. (내가 지도를 잘못 봤던 것 같다..-_-;;지금 생각해보니.) 또 한참을 기차길을 걷다가 잡초밭을 걷다가..기차길을 걸을 때면 중간중간 철로에 손을 대어 진동이 있는지를 살폈다. 기차사고로 죽는 끔찍한 X죽음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거의 네시간 가까이를 걸었을 때, 누구라도 좋으니 아무나 나타나주길 바랬다. 그렇게 예뻐보이던 풍경은 이제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기만 하니 도대체가 흥이 안난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사진은 다 찍었다. -_-;; 삼각대에 독사진까지 찍었다. 그러다 잡초밭에 곰발자국 비슷한 것이 보였다. 어쩌면 대땅 큰 개의 발자국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꼭 곰일 것 같았다. 순간 겁이 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 떨어지기 전에는 Beja에 도착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가는데 왠 짚차가 기차길을 가로질러 가려고 한다. 아..드디어 사람을 만나는구나. 사람이 다니는 곳이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랬더니, 차가 멈추는게 아닌가!. 그리고는 한 남자가 내린다. 옷. 영어를 한다. 나더러 어디 가냐고 묻는다. 그래서 Beja에 간다고 했더니 ‘걸어서?’ 되묻는다.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당장 Evora로 돌아가서 기차를 타란다. 그래서 내가 아..안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다음 역에서 기차 탈려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 역? 다음역은 Beja고, 이 선로로는 한달에 한번 기차가 다닌다.’라고 한다. 헉…어쩌지. Beja까지 얼마나 더 가야 되냐고 물으니 오늘밤안에 도착하기는 힘들거라고 한다. 침낭을 가지고 있으니 안심이라는 생각은 곰 발바닥 비스무리 한걸 본 옛날 옛적에 접은지 오래고, 어떻한다 … 나더러 큰길로 나가서 히치를 하라고 한다. 음…그럴까. 하긴 이젠 다른 방법도 없다. Evora로 돌아가기는 죽어도 싫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건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었었다. 히치를 해야겠다. 고속도로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이곳 인심이 이렇게 박하더란 말이냐. 차가 진짜 안선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히치를 하는데 흰 색 트럭이 내 앞에 선다.

 

아몬드숲에 쌓인 해변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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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도착해서 리스본의 중앙역격인 산타 아폴리나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아래위로 한참을 해멨다. 알고보니 이곳에선 포르투갈 북쪽으로 향하는 기차만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것이다. 내가 가려고 하는 도시 Evora는 남쪽으로 가야하는데…물어물어, 테주강을 건너 거기 있는 또다른 중앙역인 바레이로 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라고 한다. 강을 어찌 건널까 싶었는데 10분 간격으로 페리가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었다. 강이 꽤 넒다..30분이 넘게 페리를 타고 강건너에 도착했다. 기차역으로 가서 Evora로 가는 표를 예매했다. 기차역엔 수많은 배낭족들로 붐볐다. 그들은 모두 백인이었으며, 프랑스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배낭족들이 써핑 보드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간다. 바로 포르투갈 남부 최고의 휴양도시, Lagos로 향하는 것일게다. 나도 처음엔 바로 Lagos로 갈 예정이었으나, 멋진오빠의 추천덕에 Evora를 들러 Lagos로 내려갈 생각이다. 기차를 기다리며 한적한 역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은 연한 우유빛으로 바뀐다. 그리고는 베이지색 크림빛으로..빛깔이 나는 이 기차역은 무척이나 멋스러웠다.

기차가 들어오고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예상외로 기차가 텅텅 비었다. Evora는 포르투갈에서도 예쁘고 중세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또한 그곳의 빵이 유명하다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는 불행하게도 맛보질 못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다만 포르투갈 전역의 유스호스텔 모음집만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Evora에 도착해 역에서 일단 Evora의 지도를 구하려고 물어보았다. 여기서는 ‘map’이라고 하면 절대 모르고, ‘mapa'(마빠)라고 해야 통한다. 그런데 역무원 아저씨는 이미 신물이 난 듯 ‘no mapa!!!’라고 무섭게 말한다. 휴…약간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 때, 나처럼 지도를 구할려고 역무원에게 묻는 배낭족이 보인다. 그녀도 역시 퇴짜를 맞고는 배낭을 내려놓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숙소 잡을거면 같이 가잔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같이 찾아보기로 했다. (또)캐나다 출신인 이 건장한 여인네는 27살이라고 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4개월동안 유럽 여행을 다니는 지금은 한달 째란다. 그녀가 말하길 자기가 이미 유스 호스텔에 전화를 해봤는데 자리가 꽉 찾아서 거기선 묵지 못할거라고 일러준다..이런, 예약을 했어야 했나. 아, 예약하고 다니는건 너무 싫은데 이럴땐 참 난감하다. 예약을 하면 중간에 더 좋은 곳이 눈에 띄어 머물고 싶어도 그러질 못하고 계획에 따라야 하는 불편이 있다. 그렇지만 예약을 하고 다니면 이렇게 숙소가 없어 걱정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아무튼 그녀는 자기가 조사한 팬션에 같이 묵지 않겠냐고 묻는다. 난 밑져야 본전이었기 때문에 그러자고 했다.

이 배낭족은 참으로 꼼꼼한 여인네였다. 첫인상부터 그런 느낌을 풍겼지만…여행하는 방식 또한 무척 꼼꼼하고 지루할 정도로 철저해서 매사에 신중, 신중했다. 이 캐나다 여인네로 말할 것 같으면… 머리는 붉은 갈색이다. 키는 나보다 약간 크지만 무척 건장한 체격이다. 게다가 빙글빙글 도수 높은 안경에 땀을 비내리듯 흘리고 있다. 배낭도 자기키의 반정도 되는 어마어마한걸 매고 다닌다.(보통 서양 애들의 배낭은 크기가 굉장히 컸다. 아무리 작은 애라도 배낭만큼은 집채만하다..이것이 바로 체력의 차이인가.!!) 이름이 모니카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길을 여러차례 물은 끝에 (모니카는 굉장히 신중해서 50m간격으로 길을 묻고 다녔다..나와는 굉장히 틀린 방식으로 길을 찾는다.)결국 모니카가 체크해둔 팬션을 찾았다. 팬션은 무척 가정집 같은 느낌의 여관을 이른다. 우리가 찾아간 팬션은 Evora에서도 깨끗하고 예전 모습 그대로 갖추고 있는 팬션이었다. 그러나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다. 그렇지만 이곳 말고는 모두 full이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도 없었다. 팬션 안으로 들어서니 너무 아늑하다.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오는 여행객들이 묵는 여관같은 느낌…그러면서도 무척 깔끔하다. 하얀 벽에 방문은 모두 커다랗고 짙은 갈색이다. 방안은 더욱 예쁘다. 여행중 처음으로 싱글룸을 쓰게 되었다. 너무 감격해서 빨래부터 했다..-_-;;;

모니카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부른다. 그래서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우리가 찾은 레스토랑은 작고 아담한 식당이다. 서양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저녁은 무척 푸짐하게 먹는다. 모니카도 풍성하게 시킨다. 나도 뭔가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밑반찬처럼 보이는 것들이 작은 종지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바게트 빵도.. 우리는 아무 의심없이 이것은 free인가 보다. 하고 먹었다. 흐흐..그런데 갑자기 의심이 든 나는 종지를 들어 보았다. 헉…이럴수가.!!종지 밑에 가격표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정말 너무했다. 우리는 궁시렁궁시렁 대면서 설마하면서 바게트 빵 바구니를 들어보았다. 흐흐..역시나 이것에도 가격이 붙여져 있다. 이런…아무래도 레스토랑을 잘못 찾은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이 작은 도시를 산책하기로 했다. 골목골목 가로등 불빛이 발짝이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음악소리를 좇아 가보니 오래된 성 같은 고건물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다. 대가족들이 마당으로 보이는 넓은 뜰에서 노래하고, 크게 웃고 있다. 아…갑자기 가족들이 그리워진다. 시끌벅적한 피로연장을 뒤로 하고 또 한참을 걸어내려가니 신전으로 보이는 몇 개의 기둥만이 남은 곳이 보인다. 조명을 밑에서 비쳐주니 으시시한 분위기도 풍기지만 어쨋든 무척이나 오래되보이는 이 몇 개 남은 기둥들은 우리들을 꽤 흥분시켰다. 건물터만 남아있는 그곳 위를 걸어다녀보고 기둥도 만져보고… 한참을 산책하다 우리가 성벽근처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작은 도시 Evora는 성벽으로 둘로싸인 곳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보니 빨래가 아직 안말랐다. 큰일이다. 내일 아침까지 말라 있어야 짐을 쌀 텐데.

일기를 쓰고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그 날은 이동이 많았던 날이라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잠 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참..유럽에 와서 시차적응을 못했던건 파리에서의 4일 뿐이다. 자다가도 꼭 새벽 5시엔 눈을 떴으니. 그러나 포르투갈로 와서는 밤 12시 이전에 자고 반드시 아침 8시 이전에 눈이 떠진다. 이것 또한 내 신상에 놀라운 변화이다. 아니…따지고 보면 한국 시간으로는 원래 내가 자고 일어나던 시간이다. 유럽이 7시간 느리니까. 하하. 정말 그렇다. 그러고보면 바람직한 생활이라는 것이 꼭 모두가 잘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나는 생활은 아닌 것 같다. 강요된 사회적 관습이 그럴 뿐이지 내게 맞는 생활을 찾으면 되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닌다면 12시에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결과물 위주의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작업을 하는 방식을 취하면 될 것 같다. 결코 그것이 게으름을 의미하지는 않을거다.

내일은 어쨋튼 Evora에서 이동을 해야한다. 내가 쓰는 방도 내일은 예약이 되어 있고, 또 Lagos로 가서 바다속에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어디를 통해서 이동할까… 그러다 기차를 타고 오다가 보았던 포르투갈의 풍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문득, 직접 내 발로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내일은 그냥 걸어서 다음 도시로 이동할까?..서슴없이 그러지 뭐. 그래, 내일은 배낭매고 강행군 해야겠다. 그 생각에 조금 설레였다. 내일은 무척이나 색다른 날이 되겠군… 가는길에 현지인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잠이 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대로 착착 들어맞는 일이란 없는 것 같다. 그 사실을 여행을 하며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 날 내가 했던 겁없는 결심은 지금 생각해보니 귀엽기 까지 하다. 다음 날 나는 난생 처음 기차길을 걸어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