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November 2001

프라도 미술관이 준 감동 –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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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보았던 마드리드 시내 중심가는 정말 번화했었다. 우리나라의 명동과 남대문과 시청을 합쳐논 것 같다. 그리고 구두 가게가 정말 많다. 스페인이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정말 어딜 가나 가방과 구두 가게가 즐비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프라도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프라도 미술관은 루브르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았다. 무척…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고풍스런 건물과 눈이 부시게 내리쬐던 햇살 탓인지 겉모습부터 프라도 미술관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버렸다. 실내는 약간 어둡게 되어있다. 길다랗게 쭉 이어져 있는 전시장을 통과하며 보았던 명화들. 라파엘로의 그림을 실제로 보니 그 완벽함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정말 완벽했다. 완벽하다는 말 외엔 달리 수식할 말이 없는 완벽함. 뚜렷하고 깊은 색깔들, 옷에 그려넣은 섬세한 주름과 무늬들, 역시 완벽한 구도. 어떻게 살아있을 적에도 그렇게 칭송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였던지를 이렇게 직접 보고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미술관에는 스페인이 사랑하는 화가, 고야의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고야의 전시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고야는 이곳에서 특별한 화가였다. 프라도 미술관이 자랑하는 작품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고야의 <마드리드, 5월 3일>이다. 물론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역시 나란히 함께 둠으로써 극적인 효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듯 했다. 스페인을 여행하며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화가중에 하나가 바로 이 고야다. 고야는 굉장한 열정가이기도 했고, 돌아온 탕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듯 하다. 굉장히 아프고 나서, 청각이 마비되고 그 이후에 그의 그림들은 확실히 달라졌으니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얻은거라면 여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고야의 그림들, 초기의 밝은 그림들과 함께 그의 인생역정을 그림의 흐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야는 정말 특별했다. 특히 내게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작은 규모였다. 게다가 관람객도 많지 않아서 마음놓고 느긋하게 즐기며 볼 수 있었다. 3층인가, 4층인가까지 밖엔 없었는데 1층엔 꽤 크고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작고 아담한 크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부 회화만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다.

미술관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 도착한 고야의 특별 전시관. 이곳에서 내가 만난 고야는 결코 암울하고 어두운 그림만 그리던 이전의 그 고야가 아니었다. 초기에 그렸던(아프기 전에) 굉장히 밝은 색상의 그림도 많았고, 초상화도 많았다. 전시관 입구엔 주로 밝은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전시관은 어두워지고 약한 불빛이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들도 덩달아 어둡고 암울한 그림들이 많이 보였다. 한참을 보다가 발길이 멈춘 곳은 <가려진 개>라는 그림 앞이었다. 불빛 탓이었나… 그 그림을 본 순간 다가온 감정은 고야의 가득한 고독이었다. 쓸쓸하기도 하고, 색깔로 가득 차 있지만 한 면이 텅 비어 있는 듯 했다. 젊은 나이에 퇴폐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고야는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결국 46세에 성병을 앓고 귀머거리가 된다. 그때부터 그의 그림은 암울하고 공포와 폭력, 무의식의 지하 세계가 혼합된 듯한 모습이 된다. 그림 속에는 악마와 마녀들이 우글거렸고 광기가 어린 듯한 음산함만이 보였다. 이것들은 마치 꿈 속에서 그린 그림처럼 몽롱하고 습하다. 그는 그러한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캔버스를 검은색으로 가득 칠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어두운 그림을 그려냈던 거겠지. 이상한 것은 그의 그림을 보면서 느껴지던 감정은 두가지였는데 우울하고 공포스럽지만 한편으론 어린애처럼 두려움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특히..<가려진 개>라는 그림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뭐랄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정도로 슬픈 느낌이었다. 공포스러운 그림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슬프게 느껴지던 이 그림 한 장. 나를 적시던 것은 꼭 그림에 대한 감성이 아니라 홀로 떠나 버린 여행에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었다. 두려움과 공포, 기대와 슬픔이 범벅이 되어 나를 떠밀던 그때. 여행을 떠나야만 했던 그때에 난 달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가는 길마다에 놓여 있을 또다른 나의 모습들을 찾아와야 했는걸. 어두컴컴한 그 곳에서 난 또 하나를 줏어왔다. 누군가 내게 깊은 남색을 닮았다는 말을 했을 때, 이해 할 수 없었던 나의 어두운 모습은 바로 저 고독이었을 거다. 고야의 그림속에 보았던 고독을 난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너무나도 친숙하게 말이지.

이렇게 고야의 그림속에 풍덩 빠진 후에 다시 환한 1층으로 내려왔다. 조금 달라진 마음으로. 꼭 이 기분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아까 봐두었던 고야의 그림 엽서를 몇 개 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엽서들보다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느낌이 훨씬 선명하다는 거다.

프라도 미술관을 나와 소피아 왕비 문화센터로 향했다. 이곳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로 유명하다. 소피아 왕비 문화센터는 정말이지 굉장히 현대적인 건물이다. 외관에 엘리베이터가 다니는 통로가 유리로 둘러싸여져 노출 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난 정말 너무나 마음에 들었었다. 퐁피두 문화센터도 그렇고..문화센터들은 대부분 이렇게 파격적인 건물들이 많은가보다. 유럽엔..

소피아 왕비 문화센터 역시 작은 규모의 문화센터인데, 이곳엔 미로의 그림과 피카소 그림이 많이 있다. 달리의 그림도 몇 점 보이고, 운 좋게도 로버트 프랭크의 특별 사진 전시회가 함께 열려서 구경하느라 정말 바쁘게 돌아다녔다. 특히 로버트 프랭크는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사람이었다. ‘The American’으로 아주 유명한 사진작가인데 실제 사진을 보게 된건 정말 평생에 한 번 뿐인 운이 따른거였을 거다. 늦게 입장을 한 탓에 마지막엔 급하게 봐야 했다. 마지막에 본 그림이 달리의 그림이었는데, 이 때 결심을 했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반드시 달리 미술관에 가보겠다고.

암튼 마드리드의 미술관 기행을 모두 마치고 나와서 내가 맘에 들어했던 유리관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서 빠른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문을 열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톨레도로 가던 기차 안에서 만났던 제대한 총각이었다. 후후..이런 인연이. 그래서 함께 저녁을 먹고 또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다음날 바로 바르셀로나로 향할 생각이었다. 마드리드는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왕비 문화센터를 빼면 딱히 끄는 매력이 없었다. 어쨋든 중요한 두 군데를 모두 관람 했으니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바르셀로나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바르셀로나.. 내가 그곳에서 접하게 될, 만나게 될 그 많은 것들을 예상이나 했을까. 너무나도 활기넘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되어 버린 곳. 난 바르셀로나에서 곧 여행의 진짜 즐거움을 만나게 될 거였다.

 

프라도 미술관이 준 감동 – 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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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반 기차이니 또 하루를 그라나다에서 보내야했다. 또다시..그라나다 곳곳을 뒤지고 다니는 요상한 짓거리를 했다. -_-;; 대성당 앞을 지나가다, 앞에 걸어가는 동양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를 쓰고, 썬그라스를 끼고, 쓰레빠를 신은 모습이 한국인 같았는데 그러기엔 너무 까맣단 말이지..확신이 서질 않아서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던 중에 확신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그의 배낭에 새겨진 상표명이었다. “young jin sports” 흐흐..영진? 이런건 분명 한국에만 있는 이름이렸다. 덥썩 말을 걸었다. 정말 한국 사람이었다. 알함브라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이틀이나 그라나다 곳곳을 헤매고 다녔으니 물론 난 그에게 상세히 길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와는 그리스로 향하던 배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면 참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다.

암튼, 기차를 놓친 빼아픈 기억을 되살려 기차역에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시간이 되서 기차에 오르니 생각보다 기차가 너무 좋다. 내가 사용하게 될 칸은 6인실 컴파트먼트였고, 역이 한적한걸로 보아 운이 좋으면 나 혼자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동양남자가 들어온다. 영어로 인사하고 영어로 서로 소개하고 영어로 국적을 물었다. “I’m from Korea” 라고 대답한다. 우습게도 말이지..-_-.. 멋쩍어 하며 모국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대를 하고 유럽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이 사람은 첫눈에도 다부져 보이는 인상이었다. 까맣게 탄 얼굴 때문에 그랬나. 암튼, 이런저런 경험담들로 새벽 2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아주 싹싹하고 깔끔하게 여행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 체코에서 만났다는 한국인 영화학도란다. 긴 생머리의 그 여인은 매우 당당하고 특이해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우울증 걸린 체코 청년을 만나 체코에서 가장 싼 맥주를 마신 기쁨에 대해서도 한참을 떠들었다. 그리고는 체코의 싼 물가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질 않았다. -_-;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 내가 내릴 역은 종착역이 아니라 거쳐가는 곳이기 때문에 새벽 7시쯤에 깨서 내려야 한다. 안그러면 마드리드까지 곧장 가게 된다. 더 짜증나는건 내린 역에서 톨레도로 가는 기차로 한번 더 갈아타야 한다는 거다. 한참 잠이 들었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시계를 보니 시간대로 보아 내가 도착해야할 그곳인 것 같아 내리기로 했다. 허겁지겁 배낭을 싸고 매고(이젠 특기가 되려나 보다…허겁지겁.-_-) 기차에서 쫓기듯 내렸다. 오…그러나 밖은 너무너무 추웠다. 눈도 제대로 못뜨고 어찌어찌 길을 찾아서 갈아탈 기차가 서는 곳으로 갔다. 한 시간을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한 30분쯤 가니 톨레도다. 톨레도역을 나와 유스 호스텔로 향하려는데 몸이 정말 천근만근이다. 수면 부족에 오한까지. 으으…유스 호스텔을 찾으면 반드시 잠부터 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르막길을 미친 듯이 올라 그렇게도 기대하고 고대하던 유스호스텔을 찾아갔다. 톨레도의 유스 호스텔은 성의 일부를 쓰고 있기 때문에 겉에서 보면 진짜 고풍스러운 성이라고 다들 입을 모아 칭찬을 했던 터라 난 꽤 기대가 컸다.

지나가는 할머니한테 물어물어 유스 호스텔을 찾았는데…모습을 본 순간 내 기대는 200% 만족이었다. 정말 멋있었다. 커다란 대문과, 성 꼭대기에 뾰족하게 만들어논 첨탑, 위층의 조그만 창까지..도대체 실내는 어떨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접수를 하고 얘기를 들어보니 글쎄 아침 10시부터 오후5시까진 청소시간이라 유스호스텔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거다. -_-;;; 할 수 없이 배낭만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이런 정신으로 관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매우 두려웠지만 역시 다른 도리가 없기에 다시 길을 나섰다.

톨레도는 완벽한 중세도시다. 우악스럽고 현대적인 건물들은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고, 도시 전체가 작고 성벽이 주변을 두르고, 그 앞엔 다리가, 그리고 그 밑으로 얕은 강이 흐르는..영화에서나 본 듯한 중세의 도시 그대로다. 스페인 사람들이 잘했다고 생각됐던건 말 그대로 이런데를 ‘가만히’ 냅뒀다는 거다. 이 사람들은 장차 그대로 냅두는 것이 더 큰 돈벌이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리라. 이 도시에 찾아드는 관광객의 수는 정말 엄청나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길거리 청소를 하는 것만으로 톨레도는 돈을 벌고 있었다. 톨레도는 은세공이 아주 유명하다. 옛날부터 무기나 갑옷류등을 손질하고 제작하는데에 특별한 전통이 있었단다. 그래서 성벽 안쪽의 구시가지쪽엔 온통 그런 기념품 가게다. 주로 은제품(칼이 대표적인 아이템. 봉투 뜯는 나이프나 장식용 중세 기사들이 쓰던 칼..등등)을 반짝반짝 수공해서 파는 곳이 많았는데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100% 핸드 메이드에다가, 장식이 많이 들어가면 상상할 수 없는 가격대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구시가지 안쪽엔 대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안쪽엔 스페인이 사랑하는 화가, 엘그레코의 집이 미술관 겸해서 자리잡고 있다. 구시가는 골목이 매우 좁고 건물들이 높은 것이 특징인데, 양옆으로 기념품가게, 식당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어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내가 제일 먼저 갔던 곳은 고야와 엘크레코 그림이 있다는 산타 크루스 미술관 이었다. 건물이 눈이 부시게 새하얗고, 예뻤다. 운이 좋았던 것은 내가 갔던 날이 무슨 기념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미술관 규모는 꽤 작아서 한 시간이면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역시 엘크레코의 그림 앞에 사람이 많이 간다. 야외 벤치에 잠깐 앉았더랬는데 바보같이 이때 내 가이드북을 벤치에 놔뒀었다. 그리고는 유유히 미술관을 나갔던 것이다.-_-; 미술관을 나와 한참을 구시가 안쪽으로 들어가서야 손에 가이드 북이 없다는 걸 알았고 거의 30분을 걸려 다시 걸어 올라와서 미술관으로 들어가보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서 덥썩 집어서 다시 들고 나왔다. 한 마디로 난 정오에.. 타들어가는 땡볕 아래서 똥개 훈련을 한 셈이다.

구시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적당한 식당을 찾아다녔다. 정말 나한테는 이 식당 고르는 일이 가장 큰 고욕이자 악몽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꼭 현지인이 많이 가는 식당을 악착같이 찾아다녔는지 지금은 잘 이해가 안간다. 그때는 아마도 관광객용 식당은 사기꾼들만 우글대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우습지만.. 순진해서 말이지. 어쨋튼 이번에도 거의 한 시간 넘게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들어간 식당은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었다. 고르는 일도 이젠 너무 귀찮아져서 그냥 오늘의 메뉴를 달라고 했다. 놀랍게도 사슴 고기였다.-_-.. 사슴 고기는 생각보다 별로 독특하진 않았다. 부드러운 쇠고기 같은 맛이다. 점심을 먹고 나와서 엘그레코의 집을 찾아나섰다. 씨에스타 시간이 걸려서 엘그레코의 집앞에 서 있는 사람들 뒤에 따라 줄을 섰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한마디로 암울하고 창백하다. 길쭉한 사람들과 어둡고 깊은 색깔이 난무하는 그의 그림을 이곳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이곳에는 엘 그레코의 그림을 그 어느곳에서보다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그 근처에 있는 산토토메 교회로 향했다. 이 교회는 엘 그레코의 그림 한 장 때문에 유명한 곳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그림은 웅장하고 음침하다. 입장을 하면 작은 홀에 이 그림이 높은 벽을 채우고 있고 그 앞에 낮은 울타리가 있는 것 빼곤 아무것도 없다.-_-

이렇게 엘 그레코 기행을 모두 마치고 나니 오후 5시였다. 다시 구시가지를 빙빙 돌며 배회하다가 다시 유스 호스텔로 돌아갔다. 이제는 정말 눈꺼풀이 오만톤은 되는 것 같았다.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같은 방을 쓰던 아이들이 모두 침낭을 쓰고 있길래 별로 춥지도 않은데 나도 침낭을 풀었다.-_-;; 그래서 잠이 든 시간이 저녁 7시..눈을 떠보니 다음날 아침 9시였다. 흐흐. 진짜 피곤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짐을 싸고 마드리드로 향할 생각에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그라나다에서 만났던 한국 남자아이가 소개해준 ‘서울 민박’이라는 곳에 묵을 마음을 먹고 기차역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기차역도 고풍스럽다. 여태 봤던 기차역들하곤 틀렸다. 뾰족한 탑이 있고 거기엔 옛날틱한 시계가 걸려있다. 멀리서 보고 있어도 역이라곤 잘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암튼 마드리드 가는 표를 사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스페인 남부하고는 다르게 북쪽으로 올라오니 날씨가 꽤 쌀쌀해진다. 앉아있는데 자꾸만 덜덜 떨리는 것이 심상치 않다.

마드리드로 가는건 한 시간 정도면 된다. 역이 많고 복잡해서 잘 골라 내려야 하는데 우물쭈물 하다가 내가 내렸어야 하는 역을 놓쳤다. -_- 그래서 할 수 없이 좀 지나서 내린 후에 다시 전철을 타고 한국인 민박이 있는 근처까지 갔다. 마드리드는 역시 대도시라 그런지 여태 남부에 있다가 온 내 눈엔 꽤 세련돼 보였다. 사람들 옷차림도 그렇고, 건물들도 그렇고. 마드리드가 하도 위험하단 얘길 많이 들어서 민박집을 택하긴 했는데 이 민박집이 너무 외진데 있어서 (주택가는 대부분 외진데에..) 오히려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민박집 아저씬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사람이었다. 아들은 워낙에 많은 형, 누나들이 집에 다녀가니 붙임성이 좋았고 형들 말을 잘 따랐다. 그리고 누나들에겐 무조건 ‘아줌마’라고 불렀다. 떽…-_-+ 이 아이도 꽤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외롭기도 할테고 친해진 형들, 누나들이 모두 하루, 길어야 이틀 지나면 다들 떠나니. 어린애가 한 눈에 보기에도 좀 조숙해보였다. 민박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하겠다고 하며 집을 나서려는데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한 마디 한다. “위험할텐데..여자 혼자 어떻게 다니려고. 여권이랑 다 놓고 나가(반말을 했다..부르르르. 날 언제 봤다구.)” 그리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내 옷차림을 보더니 또 한 마디 한다. (그때 치마에 소매없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물론 여긴 유럽이다. -_-;; 평소의 내 모습과는 잘 매치가 안되겠지만..요긴 유럽이었다.) 어쩌구 저쩌구.. 그래 잔소리 하란 말야. 난 한 귀로 흘리고 있으니. 어쨋튼 그렇게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으로 나왔다. 찜통같은 더위와 요란하고 화려한 극장간판들, 갖가지 상점들, 색색가지 옷차림의 사람들.. 여긴 정말 대도시였다. 사람들이 마드리드가 그렇게 위험하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더군.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중에 하나가 그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경험으로만 100%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5%의 경험을 하고선 나머지 95%의 일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는 사람이란 참… 좀도둑은 어딜 가나 있다. 쥐구멍 같은 시골도시여도. 나의 경우, 바르셀로나에서 길거리 공연을 한참 보다가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두리번거렸더니 내 옆에 있던 키 큰 남자가 내 앞의 가방의 지퍼를 열려고 옆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가방을 한번 보고 남자를 한번 올려다봤더니 손을 쏙 빼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이곳에도 역시 좀도둑이 많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더랬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건 딱 한 번 뿐이었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예상치 못했던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평생 보지도 못했던 건물 보고, 사람 보고, 음식 보고, 길거리를 보는 것만으로 벅찬데 어찌 좀도둑 걱정에, 지갑, 여권 걱정을 하며 다닌단 말이냐. 최대한 자연스러워지면 된다. 현지인인척 하고 유유히 걸어다니면 좀도둑 따위 얼씬도 안한다. 처음 가 본 곳이라구? 그러면 처음 와 본 느낌으로 즐기면 된다. 마음을 여는 만큼, 그만큼만 내게 들어온다.

 

안달루시아의 하이라이트 – 그라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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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놀라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내게 에두아르도가 여기는 밤길이 정말 무서우니 같이 가잔다. 순간 실망과 고마움..등등의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리곤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너 정말 니가 자진해서 온거야? 아니면 애들이 등 떠밀어서 온거야?” 그러자 머뭇거리더니 “애들이 가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갈려고 마음 먹고 있었어. 까에따노가 나더러 빨리 따라가보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뛰어오긴 했지만..” 다른 말은 하나도 안 들렸고 마지막에 까에따노가 따라가보라고 했다는 말만 귀에 들렸다. -_-; 그러나 또 이어지던 의문..도대체 왜 직접 오지 않은걸까.

암튼, 함께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30분을 기다렸나보다.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지긴 했지만 별 도리가 없어서 계속 기다렸다. -_- 겨우 버스를 탄 시간은 11시 10분. 20분안에 배낭을 찾고, 기차역까지 갈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역시 별 도리가 없어서 계속 버스를 탄채로 갔다. 유스호스텔 다 와서 버스가 고장이 났다. (날이네 날이야..) 할 수 없이 내려서 뛰어가서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역까지 가려고 택시를 탔다. 사실 거리는 얼마 안되는데 곧장 가는 길이 없어서 돌아가야 한다. 걸어서 가면 한 20분 정도 걸리고.. 그래서 택시를 탔다. 기차역에 도착했을땐 11시 40분이었다. 기차역은 껌껌하게 불이 모두 꺼져 있었고,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히 미터기엔 500 페세타라고 나와있건만 뭐 추가요금이라나 뭐라나 800을 달라는 기사의 말에도 순순히 응하며 여기까지 왔건만 기차를 놓치다니. 더군다나 같이 뛰어와준 에두아르도에겐 또 어떻게 사과를 한담…허무하고 짜증나고 막막했던 그 날. 처음으로 기차를 놓치고는 우울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터벅터벅 다시 유스 호스텔로 돌아왔다. 에두아르도는 계속 조급해하며 내가 접수 하는걸 기다리더니만 애들이 아직 놀고 있을텐데 자기는 먼저 가봐야겠단다. 자식 진작 말할 것이지. 내가 널 붙잡기라도 했단 말이냐… 가기 전에 에두아르도가 생각난 듯 말한다. 내일 아침 일찍 까에따노하고 시에라 네바다에 갔다가 저녁때 돌아올 생각인데 생각 있으면 같이 가잔다. 생각해보겠다고 대답을 하곤..그 녀석은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운이 좋은건지, 이런 날 싱글룸을 쓰게 됐다. 물론 dorm room이지만 아무도 없으니 나 혼자 쓰는 싱글룸이지 뭐. 일반석 끊었는데 어찌어찌 비즈니스 클래스 탄 기분. 흠.. 허탈하게 앉아서 오늘 하루를 좀 정리하며 내일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곳을 떠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까에따노와의 팽팽한 긴장감도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내일 뭐할까 생각하다가… 시에라 네바다에 같이 갈까 고민을 잠깐 했었는데 까에따노와 같이 가야 한다면..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함께 가고 싶은 마음도 함께 드는 것이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쪽지를 썼다. 같이 가겠다고. 아침에 나보다 일찍 일어나면 깨워달라고 적은 후 방 문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곤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8시다. 허겁지겁 또 배낭을 싸고 준비를 하고는 까에따노와 에두아르도네 방으로 가봤다. (옆옆 방..) 노크를 했더니 까에따노가 막 일어난 모습으로 서 있다. 날 보더니 매우 놀라며 어제밤에 여길 떠난거 아니었냐고 묻는다. 그래서 설명을 했다. 바보처럼 기차를 놓쳤다고. 그랬더니 어제 술자리에서 다들 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기차를 타게 될지, 아니면 놓치고 에두아르도랑 룰루랄라 놀면서 돌아올지로. 그럴줄 알았다며 나를 비웃는 저 눈빛이란… 참 나는 여러모로 그에게 잘 보이기도 하지. 에휴… 내가 시에라 네바다 안 갈거냐고 물으니 계획이 바뀌어서 내일 갈거란다. -_-;;; 난 오늘 밤 기차 타고 톨레도로 갈텐데..휴.. 잘 안되려나 보다. 까에따노가 아침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에두아르도를 깨우고, 독일인 남자도 데리고 와서 모두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일행들이 날 보더니 다들 놀란다. 어찌 된거냐고..그래서 또 한참을 설명을 했다. 버스가 고장나고, 택시를 타고, 기차역이 불이 꺼져 있었던 일. 에두아르도의 얘기를 들으니 또 미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날 데려다주고 급하게 일행들과 다시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아갔지만 결국 못만나고 혼자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의 기차 놓친 소식을 몰랐던거다. 한사람씩 내게 묻는 것을 보니..-_-; 아침을 먹는데 자리가 아주 우습게 되 버렸다. 에두아르도랑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독일인 남자가 앉고 또..방금 식당에서 알게된 스웨덴 여자가 앉자 우리 테이블은 꽉 찼다. 뒤늦게 온 까에따노는 저 멀리 뒤쪽의 테이블에 혼자 앉게 되었다. 그것도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리에. 안 쳐다보려고 애썼지만 옆에 앉은 에두아르도만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묘한 긴장감으로 서로 마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시에라 네바다도 못가고 오늘은 뭘하며 보낸담..밤 11시까지 말이지.

짐을 모두 싸고는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춰 방을 나선 후, 까에따노네 방문을 두드렸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까에따노가 문을 연다. 아주 작게.. 잠깐 얘기좀 할래? 라고 물으니 문을 닫고 나온다. 복도에 서서, “어제는 미안했어. 사실 내가 좀 이상하게 행동했지? 미안.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정말 미안해.”, “아.. 아냐. 괜찮아.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괜찮아 정말.”, “사실..이유는…” 머뭇머뭇..이제와서 뭔 말을 하려는걸까. 난 참 용기도 좋아. 무슨 말을 해야하지..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유가 뭔데? 말해봐.”, “네가 좋아진 후로 네가 참 불편해졌어.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 침묵이 흘렀다. 그리곤 해소의 기쁨이 찾아왔다.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겠지만 난 그것으로 좋았다. 어떤 결과나 피드백을 바라거나 기대하지도 않았고, 단지 그것으로 난 기뻤고 좋은걸 좋다고 말하고 푸른색을 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자유가 왠지 그때는 옴팡 내게 안겨진 기분이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것 뿐이야. 이유는. 다른 이유는 없어. 넌 정말 좋은 애야. 그런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서 그동안의 내 스페인 여행이 즐거웠던 것 같아.”, “……” 또 침묵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류의 침묵. “그럼 난 이제 가볼께. 오늘 톨레도로 갈 생각이야. 너도 여행 잘하고, 지구 어딘가에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하자구.”, 그때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내게 바라는게 없어? 보통 그런 말을 한 후엔 일련의 말들이 이어지잖아. 넌 내게 바라는게 아무것도 없냐구.”, “없어.”, “정말이야? 정말 없어? 난 못믿겠어.”, “바란다 해도 지금 너와 나의 입장에서 이루어질건 아무것도 없잖아? 될 일도 아무것도 없고. 그리고 정말 바라지 않아.”. “난 너랑 생각이 틀려. 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이루어지게 하면 되는거지. 나도 네가 좋아. 그리고 먼저 말해주어서 무척 기뻐. 그런데 너같이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물론 기뻤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뜻밖의 선물처럼 기쁜,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함께 여행을 다니고 그럴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안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마음놓고 그 말을 덥썩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난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라구! 바보..그렇게 말해 버리면 각본과 틀리잖아..’ 갑자기 내 여행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 같은 이 감정이 너무나도 싫게 느껴졌다. “바르셀로나 갈거라고 했지? 난 마드리드 들렸다가 바르셀로나로 갈 생각이니까 만약..거기서 만나게 된다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자. 어쨋튼 난 오늘 떠나. 또 보게 되더라도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겠다. 여행 잘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다신 못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아주 오랜 후에 우연찮게 지구 어딘가에서 불쑥 만나게 되길 바랬다. 그땐 불편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 그러나, 1주일 후쯤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Sebastiaõ Salgado의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우연히. 감정과 바램은 의지를 앞서는 때도 있다. 때론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그것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꽤 오랫동안 가우디의 건물 사이를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곤 거의 한 달을 만났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를 함께 다녔다.

여기까지가 스페인에서의 로맨스의 전부다. 여행과 함께 로맨스는 꿈에서 깨듯 사라졌으니 이젠 로맨스라고 부르기도 참 뭐한.. 그런 것이 되어 버렸다. 지우지 않은 30여통의 이메일과 사진 몇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없었던 일처럼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강렬해서 쉽게 다시 생각이 나지 않는 색깔처럼 말이다.

 

안달루시아의 하이라이트 – 그라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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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모인 우리 네 명은 함께 산타 아나 광장에 가기로 했다. 내가 하도 자랑을 했던 탓도 있고 애들 역시 매우 지루해 하길래 믿어보라고 그러고 델구 갔다. 아, 한 명 소개가 늦었다. 전날 만나서 함께 어울리게 된 호주에서 왔다는 처자는 나와 동갑이었다. 까뜨리나라는 예쁜 이름의 이 처자는 지금 국민학교 선생이란다. 지금은 방학이라서 스페인에 놀러왔고. 곧 모로코로 넘어갈거라고 했다. (그라나다와 모로코는 배타고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두 명의 브라질 소년들이 이 호주처자를 만나자마자 물어본 것은 “너 미국 좋아해???” 라는 것이었다.(이들은 이것을 기준으로 친구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듯. -_-) 내가 생각해도 무척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내가 저 질문을 받았을땐 거의 반사적으로 “노노노노노노노!!!!!”라고 말했더랬었다. -_-;;; 그런데 이 호주 처자는 의외로 신중했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 라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그녀는 확실히 선생다운 면모가 있었다. 함께 그곳까지 걸어가며 거의 분위기는 나 혼자 앞에 걸어가고 뒤에 지친 얼굴의 세 똘마니가 쫓아오는 식이었다. 그 높은데까지 올라가서 모두 한 숨 돌리고 또 한참을 감탄하고..그러다가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집시들의 주거지역인 사크라몬테를 가기로 했다. 이 곳은 옛날 그라나다에 살던 집시들이 만들었다는 전통적인 집시 주거지역이다. 집시들은 더운 날씨를 피해 동굴을 만들어 그 속에 살림살이들을 장만해놓고 살았는데, 모두 알겠지만 그 동굴안은 냉장고처럼 서늘하다. 멀리서 사크라몬테를 바라보면 큰 산이 있고 그 산에 벌집처럼 구멍이 파져 있다. 멀리서 보면 진짜 벌집 같다. 듬성듬성 검은 구멍들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각 주택의 대문이다. 대문이 있는 동굴도 있고 없는 동굴도 있다. 그건 주인 마음일거다. -_-; 지금 이곳에 사는 집시들은 열가구가 채 안된다고 한다. 집시들의 본능상,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떠났다는 말도 있고, 자기네들 주거지역이 너무 관광화되다 보니까 모두 떠났다는 말도 있다. 어쨋튼 지금 이 곳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인적이 드문 곳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곳을 정처없이 배회했는데 배회하다 보니 아무도 안사는 빈 집이 보였다. 물론 그곳 역시 동굴이었고, 하얀 대문이 완전히 젖혀진채로 버려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아이들은 모두 말렸고 크레이지라는둥, 넌 거기가면 죽는다는둥..겁을 주는 통에 더욱 호기심이 발동해 들어가보았다. 정말 놀랍도록 시원했는데 그 느낌은 서늘함보단 싸늘하다는 느낌이 맞을 것이다. 등골이 오싹한 분위기.. 안에는 방이 하나 더 있었고, 거실엔 옆쪽에 있는 또다른 대문과 이어져 통짜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벽이 자연스런 흙벽이었기 때문에 (하얀색으로 페인트 칠 했음.)울퉁불퉁한 모양이 꽤 마음에 들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이 산을 조금 더 오르면 꼭대기에 교회가 있다고 해서 거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정말 더운 날이었다. 게다가 그 산은 무슨 사막처럼 생겨서 나무라고는 거의 없고 오로지 황토색 흙이 전부였다. 그 오르막길을 또 한참을 올랐다. 우리는 가는 내내 “야 그만 가자..”, “우리 지금 거기 뭐하러 가는 거지?”, “만약에 10분만 더 걸어도 안 보이면 내려가자..” 등등..포기하고픈 마음을 부여잡고 그래도 꾸역꾸역 교회에 다달았다. 눈에 보인 것은 코카콜라 자판기였다. 우리는 냅다 뛰어가서 진짜 미친 부랑아들처럼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찾아 역시 떨리는 손으로 콜라를 뽑았다. (뽑아먹을 수 있는게 콜라밖엔 없었다.-_-; 이거 채우러 거의 1년에 한 번 올 듯..) 마침, 교회에선 결혼식이 있었는데, 무척 간소하게 치러진 그 결혼식엔 하얀색 정장을 입은 신부와 신랑,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인 사람들의 전부였다. 조촐한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고, 교회안에 있는 벤치에 넋나간 얼굴로 콜라를 마시고 있던 우리는 부케를 던지는 장면 등을 바라보며 신랑이 배가 나왔다느니, 신부가 아깝다느니..수다를 떨었다.

조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엔 까에따노랑 내가 짝이 되어 걸어갔는데, 그는 우리나라에 눈이 내리는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그래서 내가 기가 차다는 듯 “당연히 내리지. 작년엔 무릎까지 쌓였었어. 에헴.”(브라질엔 눈이 내리지 않는다.) 대답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며 느꼈던 사실인데,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동남아 국가들처럼 열대기후인줄 알고 있다. 내가 우리 나라에 눈이 내린다는 말을 하면 다들 알고 매우 놀라워했다. 그래서 내가 늘 “4계절이 뚜렷한 아~아~~대한민국”이라고 말해주었었다. 친구들은 나를 “Jo”라고 불렀는데(물론 그것은 내 성이 조씨라서 그런 것이다.) 까에따노는 늘 질문이 많아 “Hey Jo, %#$!^%$^??” 라는 말로 언제나 말문을 열었다. 즉,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그런 대화였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와 얘길할 때 엄청 버벅대고 얼굴도 못쳐다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에게 조금씩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분위기는 점점 더 어색해져 가고 답답해 하는 까에따노를 뒤로 하고 나는 까뜨리나 혹은 에두아르도와 앞장 서 가 버리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슈퍼에 들러 먹을 것을 사서 숙소에서 해먹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라쟈나와 파스타 등등을 데워서(냉동식품을 사왔더랬다. -_-) 에두아르도랑 나랑 나눠먹었다.(다른 사람은 다 안먹는다길래..)그러고 나서 나는 계속 에두아르도하고만 얘길 했는데 잠깐 에두아르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제 막 도착해 접수를 하려고 기다리던 한국 여인네들을 알게 됐고, 반가운 마음에 한국말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이 여인네들은 모두 네명이서 함께 여행을 다닌다고 했는데 다음 도시는 세비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유스 호스텔의 약도를 그려주고 그들은 내게 바르셀로나에서 싸고 맛있는 음식점들을 일러주었다. 이 여인네들은 서로서로 불만이 아주 많은 상태였다. 각각의 멤버들에게 들어보니, 유레일마저 함께 끊은터라 갈라질 수도 없는 듯 보였고, 그래서 그 시람들은 혼자 여행해서 좋겠다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여행객들, 2인 이상 함께 다니는 여행객들은 다들 이렇게 서로에게 감정이 안좋은 상태였었다. 심지어 어떤 자매는 함께 여행을 시작하다가 중간에 싸우고 헤어져서 out하는 국가인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단다. 다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혼자 다녀도 역시 짐 지켜줄 사람이 없어 화장실도 못가는 불편이 있거나, 거의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심심함, 때때로의 외로움과 무서움 등등.. 불편한 것들을 따지자면 끝이 없다. 자기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거다. 짐 지켜 줄 사람이 없어 불편하긴 해도 다른 애 화장실 가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 혼자 여행 다니는게 편할 것이다.

그 날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넉다운이 된채로 그냥 잠이 들었다. 하루종일 산을 올라다닌 기억밖엔 안난다.-_-; 다음날 나는 그라나다를 떠나 톨레도를 거쳐 마드리드로 갈 생각이었다. 아침에 가서 기차 예약을 하고 하루종일 그라나다 시내 곳곳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진짜 안가본 데 없이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또 지쳐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_-;; (도대체 뭔 짓을 하는건지..) 밤기차인 탓에 11시 반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유스 호스텔의 휴게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한참을 읽고 있는데 내 앞에 누가 나타나 우뚝 서 있다. 올려다보니 까에따노였다. 인사를 하며 그가 앞에 앉는다. 또 한참을 얘기했나보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찌 그런 내용으로 얘길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심각한 주제였다. 참..입에 올리기에도 부담스런..쯧쯧. 너무 열띠게 토론을 한 탓에 끝에 가서는 약간씩의 감정이 상했나보다. 저녁 시간대가 되자 애들이 몰려온다. 에두아르도, 까뜨리나, 어떤 독일인 남자, 어떤 캐나다 여자..독일인 남자하고는 세비야에서 만났다고 했던가 그래서 브라질 소년들이 내게 소개를 시켜주었고, 캐나다 여자는 방금 로비에서 만났단다. 암튼 사람이 이렇게 많아지자 다들 오늘 뭐하고 놀까로 궁리중이었다. 마침 오늘까지 하는 Beer festival이 있었는데 모두들 합심해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다들 모여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타고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까에따노와 나는 아주 어색한 채로 서로 쳐다도 안보고 다른 사람들하고만 얘길 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그 독일 남자가(이 사람은 정말 특이했는데 직업이 경찰이었다. 그래서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등..못하는 게 없었고 지금은 스페인 곳곳의 경찰들에게 합기도를 가르쳐 주는 ‘출장’중이었다.)모두들에게 맥주를 샀다. 백맥주, 흑맥주, 독일 맥주, 아일랜드 맥주, 생맥주..등등 세계 곳곳의 맥주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와인과 콜라를 섞어 마시는 음료가 있었는데 이건 정말 맛있다. 또..데킬라와 맥주를 섞은 ‘데스페라도’라는 음료를 먹어보았는데 특별한 맛이 없고 그냥..정체불명의 알콜이었다.

나는 에두아르도 옆자리였는데 자리가 그래서 그런 탓도 있고 계속 에두아르도하고만 얘길 하게 됐다. 내 왼쪽에 앉아있던 캐나다 여인은 독일인 남자가 무척 호감을 갖고 있는 듯 보였고,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까에따노는 불어로 캐나다 여인과 얘길 하며 (캐나다 여인은 파리에서 공부를 했던 탓에 불어를 아주 잘했다.) 즐거워 보였다. 까뜨리나는 새로 등장한 그녀의 캐나다 친구와 노느라 바빠 보였고… 이렇게 각자 즐기고 있는 가운데 까에따노와 나 사이의 긴장은 더욱 팽팽해져만 갔다. 가끔 힐끗 쳐다본 것이 그때 나눈 대화의 모든 것이었다. 아참, 중간에 그가 내게 건넨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야 너 기차 안놓치려면 그래도 10시에는 가야 되지 않아?” 거기에 내가 했던 대답은..”흥. 내가 빨리 가길 바란다 이거야?” 내참..-_-;;;

10시 반쯤 됐을 때. 난 기차를 타기 위해 중간에 먼저 일어났다.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저기에서 누군가 뛰어온다. 누굴까…

 

안달루시아의 하이라이트 – 그라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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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도바에서 그라나다로 향하던 날은 이별의 날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무척이나 정이 많이 들어 버린 마리아 라우라와 기차역에서 헤어지는데 그녀가 그만 눈물을 글썽이는 바람에 나도 빨리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녀는 내게 아르헨티나에 있는 집 전화번호와 직장 전화번호까지 상세하게 적어주며,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게 된다면 반드시 들르겠다는 나의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안심하는 듯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기차에 올라서 약 세시간을 가니 Granada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비야 다음으로 유명한 안달루시아의 관광지인데, 역시 대도시였다. 기차역에서 유스호스텔까진 조금 거리가 있는데 걸어다니기엔 큰 불편은 없었다. 역시 물어물어 유스호스텔에 도착한 나는 접수를 하는데서 세비야에서 만났던 약간 게이틱했던 미국 남자를 또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인사를 할 때, “오~ 하이~♡” 라며 손을 살짝 들어 손가락만 움직이는 앙드레 김 스타일 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못을 박은후에도 나는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그의 취향이 여자인 내가 뭘 부탁하기에도 부담이 없어 안심이 되곤 했다. 아, 참 조금 낯선 풍경이기도 했는데 유럽엔 게이가 정말 많다. 길거리에서도 많이 보고, 쇼나 공연을 할 때도 근처에 한 두 커플은 그런 경우다. (남자끼리 뽀뽀하는 장면.) 벨기에의 유스호스텔의 리셉션에 있던 남자 역시 게이었는데, 의외로 신경질적인 성격이라 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내가 동성연애에 대한 발표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우리팀의 남자 둘이 짧은 촌극까지 해가며 소개를 했었는데 그때 우리 발표의 주제는 결국 그들은 ‘결함자’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수많은 게이들은 밝게 살아가고 있었다. 사회적 환경이 다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성적취향에 대해 부담없이 얘기하며 자신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에 난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했었다. 이젠 동성연애 찬반을 논하기엔 그들의 삶과 존재가 이미 충분히 튼튼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접수를 하고 그라나다의 시내로 나가보았다. 이곳은 정말 번화가였는데 커다란 우체국과(스페인에 있는 모든 우체국들은 엄청나게 웅장하고 클래식한 건물을 쓰고 있었다.)각종 쇼핑센터, 크고 작은 환전소들, 대성당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오히려 이곳이 어딘지 잘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Granada는 안달루시아에서도 이슬람 세력이 최후까지 남아있었던 도시다.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쫓겨 이곳 그라나다까지 내려온 이슬람 세력은 이곳에 작은 이슬람 왕국을 세웠다. 그래서 이곳의 Alhambra(이슬람 궁전)는 그라나다 관광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다. 이 왕궁은 22명의 왕에 의해 부분부분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의 최고 걸작이라고까지 칭송받는 이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처럼 성벽이 붉은 색을 띄고 있다.(붉은 철이 많이 포함된 석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알함브라를 구경하기 위해선 당일날 아침에 특정 은행에서 입장권을 예매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고 볼거리가 많은 Casa real(왕궁) 은 쾌적한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관람자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즉, 20분 간격으로 관람자들을 일정수 만큼만 들여보내는데 그 시간을 예약하기 위해 표를 예매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 알함브라 입장객은 7000명으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그라나다는 이 알함브라 때문에 살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관광수입은 엄청나다.) 또, 표를 당일날 그 특정 은행에서 예매해야 하는 것은 당일날 표만 팔고 있기 때문이다.(진정한 의미의 예매는 아니지만.) 그곳 은행에선 2000장의 당일날표를 확보해두고 팔고 있는데, 그 표를 얻기 위해서는 은행문이 여는 시간에 그곳에 가서 선착순으로 표를 먼저 사는 수밖엔 없다. 안그러면 직접 알함브라에 가서 땡볕에 두세시간을 서서 기다린 후에 사던가. 나는 이 날 그 은행이 어디있는지만 봐두고 이리 저리 방황하다가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아침도 못먹고 표를 사러 갔다. 역시 줄이 길게 서있다. 내 앞에 서있던 레게 파마를 한 남자는 진짜 자다가 막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그 부시시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너무 생생했다. 한 40분을 기다렸나보다. 은행문이 열리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에야 은행에 들어가서 표를 구할 수 있었는데 내가 Casa real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10시부터 10시 20분까지였다. 얼른 다시 유스 호스텔로 돌아가 오늘 들고 나갈 것들을 챙겨서 잽싸게 나갔다. 그러나 역시 또 늦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탄 끝에 도착했지만 이미 10시 20분이었다. -_-;; 그런데 유럽 남부 국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어딘가 비슷한 정서가 있어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냥 들여보내주었다. 이 알함브라는 진짜 내가 여태 보아왔던 여타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과 확실히 달랐다. 그 웅장한 규모와 아기자기한 배치, 규모만큼이나 아름다워 감탄했던 히네랄리페 정원, 그리고 넋을 잃고 봤던 Casa real까지.. Casa real에 있는 대사의 방에서의 화려함과 아름다운 문양들이 음각으로 새겨진 벽과 천장은 별세계 같았고, 그 옆에 있는 두 자매의 방에서 보았던 천장은 꼭 무수한 별들이 있을 천계(天界)를 보는 것 같아서 고개가 아플 정도로 올려다 보았다. 각 방마다 특징이 있고 거기에 맞는 이름과 예쁜 발코니가 함께 있었다. 히네랄리페 정원은 왕들이 더위를 피해 쉬러 들렀던 곳이다. (히네랄리페는 아랍어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라는 뜻이란다. 말 그대로 이곳에 서서 보면 궁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점심때쯤 관람을 끝내고 걸어내려오는데 푹푹 찌는 더위가 정말 나를 죽이려 들 것 같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우체국에 들른 후 나의 계획은 대성당과 왕실예배당을 들어가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갔던 시간이 마침 씨에스타 라고 이곳 사람들이 점심을 먹은 후, 세상 종말이 와도 반드시 지키는 낮잠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 앞 그늘에 앉아서 책좀 읽다가 씨에스타가 끝나는 5시에 입장을 했다. (그러고보면 이 사람들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된다.-_-) 생각보다 소박했던 왕실예배당. 대성당과 왕실예배당을 모두 가보기엔 좀 시간과 돈이 아까울 듯 싶다. 그땐 꼭 두 개 다 들어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저녁때가 되서 숙소로 돌아와 보니,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알고보니 이 여인은 스페인 여인이었는데, 마드리드에 살고 있단다. 나보다 한 살이 많았는데, 사회학과 학부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시험보러 그라나다에 왔단다.(태어나서부터 줄곧 그라나다에 살아서 여기서 학교를 다녔단다.) 그런데 왜 마드리드에 가있냐고 물었더니, 1년전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랑 마드리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뉴질랜드 사람이고 졸업하자마자 둘은 뉴질랜드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졸업하기 전에 하는 결혼.. 호기심이 생겼다. 결혼 생활 재밌냐고 묻자 너무 행복해 미칠 지경이라는 것이다. -_-+. 그래서 내가 그래도 학교생활중에 결혼하기엔 좀 아까운 것 같다고 너의 일상과 개인적인 시간들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녀가 했던 대답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렇지 않아. 그도 내 일상에 한 부분이거든(included라는 표현을 썼다.). 우린 서로가 너무나 필요해. 개인적인 시간?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개인적인 시간인걸?” 할 말이 없었다. 난 그것을 ‘방해’라고만 생각했었는데..아무튼 난 그라나다 토박이를 만난 기쁨에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았다. 그라나다에 가볼 만한 데, 싼음식점, 맛있는거..등등등. 이 여인네가 가르쳐준 곳은 클린턴 대통령도 학생때 배낭여행을 와서 잊지 못하고 갔던 그곳, 대통령이 되어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던 그곳. 산타 아나 광장이다. 다음날 그 곳을 가기 위해 고생고생 언덕을 오르기를 한 시간, 옛날 이슬람 사람들이 살던 구역을 지나(지금도 레바논 사람들과 중동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데, 그곳엔 레바논 스타일의 까페와 이슬람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을 하는 레스토랑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또 가파른 골목을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곳은 내 눈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던 광경이 펼쳐지는 광장이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광장앞, 탁 트인 맞은편에는 알함브라 궁전이 숲속에 둘러싸여 비밀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위를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던 숲, 숲, 숲..저 멀리 눈을 얹은 시에라 네바다 산까지.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이것을 도대체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참을 넋이 나간체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선 사진기를 들어 내가 담을 수 있는 최대한… 파노라마로 이 광경을 담아왔다. 그런들 결코 같은 느낌은 될 수 없겠지만.

다시 언덕을 내려오며 골목골목, 하얀 벽에 아지랑이들이 피어올라 아기자기한 집들을 보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꼭 왕궁안쪽에 살던 사람들인 것처럼 그렇게 부러웠었다. 내려오면서 아까부터 다짐하고 다짐했던 레바논 음식을 먹기로 했다. 식당을 고르는데 또 30분을 보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식당을 연 곳이 많지 않다. 겨우 찾아서 들어간 곳은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식당이었다. 불청객의 느낌으로 가시방석에 앉아 메뉴를 살폈다. 대충 설명을 보고..닭고기에 레몬즙을 넣어서 삶았다는 거시기를 시켰다. 그리고 요구르트 한 잔. 그 쪽 지방은 요구르트가 유명하니… 잔뜩 기대를 하고 앉아 있었다 .두리번 두리번.. 한 20분이 지나서 내앞에 도착한 음식은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요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요상한 음식이었다. 묽은 카레빛이 감도는 이 닭고기 세 조각. 그 위에 뿌려진 각종 향료들. (초록색 검은색..)시큼한 향은 아마도 레몬 향이겠지. 한 입 먹어보았다. 헉…숨이 막힐 정도의 요상한 향. 코를 막고 다시 한 입 더 먹었다. 음…먹을만 하다. 요구르트가 나왔다. 닭고기의 이 요상한 향을 씻어내기 위해 요구르트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는데, 이 요구르트의 맛은 딱. 상한 우유였다. 그것도 무척 야릇한 향의. 먹다가 밥맛을 모두 잃은 나는 그래도 닭고기 세조각을 모두 먹고, 요구르트를 반이나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배가 아주 고팠던게지..) 물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는데 내 물통에는 물이 반도 안남았었다. 그래서 이 물을 두 번에 걸쳐, 중간에 참을 수 없이 향이 진동할 때 한번, 마지막에 입안을 씻어내기 위해 한 모금 마셨다. 보리차가 그렇게 그립던때가 또 있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소설책 한권을 샀다. 조금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로. 내가 고른 것은 하이틴 로맨스.-_-;;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하이틴 로맨스 삼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제 남자랑 여자랑 서로 오해해서 삐져있는 단계까지 왔다. 너무나도 목이 탔던 나는(그놈에 요상한..닭고기 땜에.-_-) 책을 들고 쓰레빠를 신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시시한 머리에..짧은 티셔츠, 돌아댕기기 편한 치마까지. 완벽한 만화책 보기 편한 모드로.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는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띠용… 브라질 소년들이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것도 무척 지친 모습으로. (막 도착했나 보다. 배낭이 옆에 널부러져 있었다.) 키가 큰 에두아르도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리고 그들이 내 모습을 아래위로 한번 보고나서야 나의 모습이 생각났고 돌아서서 복장을 갈아입기엔 너무 늦어 버린 것을 알아 버렸다. -_-;;

믿을 수 없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하는 그들. 특히나 까에따노하고는 얘기도 많이 하고 또 많은 부분 비슷한 점들이 있어서 조금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터라 나를 보자 놀람, 의아, 의심, 확인, 안도 등의 표정 변화를 보여주었다. 인사를 하고 또 한참 그동안의 얘기 보따리를 풀고 있자니 복장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불현 듯, 그들이 내가 읽고 있던 소설에 눈을 돌린다. 헉…제목도 찬란한 ‘조안 오닐 : 뜻밖의 일, 우울해..’ 라는, 설명하기도 야리꾸리한 책을 보며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냥 웃으며 넘어갔는데 책을 이리저리 구경하더니 여자들만 읽는거냐고 묻길래 그그그건 아니라고 대충 둘러대고 그동안의 일들을 물었다. 그들도 역시 꼬르도바에 있었는데. 바로 내가 떠나던 날 도착했던 것이다.(!) 거의 한 시간을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앞에서 자판기에 동전 넣기를 수백번째 반복하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까에따노가 말을 건다. (붙임성이 좋은 것이겠지..-_-+) 그래서 어찌어찌 넷이 마음이 맞아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거의 10시가 되어서 길을 나섰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까에따노와 또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이러쿵 저러쿵..니잘났네 나잘났네..나는 조금씩 그에게 호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는 아닐 것이다. 여러모로 한국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호기심이 많아 무엇을 가르쳐주던 이해를 빨리 해 수다 떠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줄어들지 않는 화제,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던 공감대, 놀랍도록 진보적인 이 아이의 생각들. 밤공기에 취했는지, 나는 그와 걸으면서 이런 사람을 지구 반대편에 와서 만나다니. 그동안 뭘 한거지. 계속해서 놀라워했다.

거의 모든 술집들이 파장 분위기여서 우리가 들어간 곳은 늦게까지 문을 여는 중국집. 그 날밤 조금 흥분했던 나는 좀 웃기는 행동을 했는데 (차마 내 입으론 밝힐 수 없는 오버 액션들.-_-;;) 그 행동들을 보고 모든 사람들은 넘어갈 듯이 웃어제끼고 그 중에서 내 눈은 호감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까에따노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는 스파크 파바바바바박 백만 볼트.-_-+++++++) 아..아마도 난 그라나다에 꽤 오래 있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