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의 하이라이트 – 그라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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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놀라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내게 에두아르도가 여기는 밤길이 정말 무서우니 같이 가잔다. 순간 실망과 고마움..등등의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리곤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너 정말 니가 자진해서 온거야? 아니면 애들이 등 떠밀어서 온거야?” 그러자 머뭇거리더니 “애들이 가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갈려고 마음 먹고 있었어. 까에따노가 나더러 빨리 따라가보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뛰어오긴 했지만..” 다른 말은 하나도 안 들렸고 마지막에 까에따노가 따라가보라고 했다는 말만 귀에 들렸다. -_-; 그러나 또 이어지던 의문..도대체 왜 직접 오지 않은걸까.

암튼, 함께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30분을 기다렸나보다.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지긴 했지만 별 도리가 없어서 계속 기다렸다. -_- 겨우 버스를 탄 시간은 11시 10분. 20분안에 배낭을 찾고, 기차역까지 갈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역시 별 도리가 없어서 계속 버스를 탄채로 갔다. 유스호스텔 다 와서 버스가 고장이 났다. (날이네 날이야..) 할 수 없이 내려서 뛰어가서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역까지 가려고 택시를 탔다. 사실 거리는 얼마 안되는데 곧장 가는 길이 없어서 돌아가야 한다. 걸어서 가면 한 20분 정도 걸리고.. 그래서 택시를 탔다. 기차역에 도착했을땐 11시 40분이었다. 기차역은 껌껌하게 불이 모두 꺼져 있었고,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히 미터기엔 500 페세타라고 나와있건만 뭐 추가요금이라나 뭐라나 800을 달라는 기사의 말에도 순순히 응하며 여기까지 왔건만 기차를 놓치다니. 더군다나 같이 뛰어와준 에두아르도에겐 또 어떻게 사과를 한담…허무하고 짜증나고 막막했던 그 날. 처음으로 기차를 놓치고는 우울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터벅터벅 다시 유스 호스텔로 돌아왔다. 에두아르도는 계속 조급해하며 내가 접수 하는걸 기다리더니만 애들이 아직 놀고 있을텐데 자기는 먼저 가봐야겠단다. 자식 진작 말할 것이지. 내가 널 붙잡기라도 했단 말이냐… 가기 전에 에두아르도가 생각난 듯 말한다. 내일 아침 일찍 까에따노하고 시에라 네바다에 갔다가 저녁때 돌아올 생각인데 생각 있으면 같이 가잔다. 생각해보겠다고 대답을 하곤..그 녀석은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운이 좋은건지, 이런 날 싱글룸을 쓰게 됐다. 물론 dorm room이지만 아무도 없으니 나 혼자 쓰는 싱글룸이지 뭐. 일반석 끊었는데 어찌어찌 비즈니스 클래스 탄 기분. 흠.. 허탈하게 앉아서 오늘 하루를 좀 정리하며 내일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곳을 떠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까에따노와의 팽팽한 긴장감도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내일 뭐할까 생각하다가… 시에라 네바다에 같이 갈까 고민을 잠깐 했었는데 까에따노와 같이 가야 한다면..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함께 가고 싶은 마음도 함께 드는 것이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쪽지를 썼다. 같이 가겠다고. 아침에 나보다 일찍 일어나면 깨워달라고 적은 후 방 문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곤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8시다. 허겁지겁 또 배낭을 싸고 준비를 하고는 까에따노와 에두아르도네 방으로 가봤다. (옆옆 방..) 노크를 했더니 까에따노가 막 일어난 모습으로 서 있다. 날 보더니 매우 놀라며 어제밤에 여길 떠난거 아니었냐고 묻는다. 그래서 설명을 했다. 바보처럼 기차를 놓쳤다고. 그랬더니 어제 술자리에서 다들 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기차를 타게 될지, 아니면 놓치고 에두아르도랑 룰루랄라 놀면서 돌아올지로. 그럴줄 알았다며 나를 비웃는 저 눈빛이란… 참 나는 여러모로 그에게 잘 보이기도 하지. 에휴… 내가 시에라 네바다 안 갈거냐고 물으니 계획이 바뀌어서 내일 갈거란다. -_-;;; 난 오늘 밤 기차 타고 톨레도로 갈텐데..휴.. 잘 안되려나 보다. 까에따노가 아침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에두아르도를 깨우고, 독일인 남자도 데리고 와서 모두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일행들이 날 보더니 다들 놀란다. 어찌 된거냐고..그래서 또 한참을 설명을 했다. 버스가 고장나고, 택시를 타고, 기차역이 불이 꺼져 있었던 일. 에두아르도의 얘기를 들으니 또 미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날 데려다주고 급하게 일행들과 다시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아갔지만 결국 못만나고 혼자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의 기차 놓친 소식을 몰랐던거다. 한사람씩 내게 묻는 것을 보니..-_-; 아침을 먹는데 자리가 아주 우습게 되 버렸다. 에두아르도랑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독일인 남자가 앉고 또..방금 식당에서 알게된 스웨덴 여자가 앉자 우리 테이블은 꽉 찼다. 뒤늦게 온 까에따노는 저 멀리 뒤쪽의 테이블에 혼자 앉게 되었다. 그것도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리에. 안 쳐다보려고 애썼지만 옆에 앉은 에두아르도만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묘한 긴장감으로 서로 마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시에라 네바다도 못가고 오늘은 뭘하며 보낸담..밤 11시까지 말이지.

짐을 모두 싸고는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춰 방을 나선 후, 까에따노네 방문을 두드렸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까에따노가 문을 연다. 아주 작게.. 잠깐 얘기좀 할래? 라고 물으니 문을 닫고 나온다. 복도에 서서, “어제는 미안했어. 사실 내가 좀 이상하게 행동했지? 미안.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정말 미안해.”, “아.. 아냐. 괜찮아.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괜찮아 정말.”, “사실..이유는…” 머뭇머뭇..이제와서 뭔 말을 하려는걸까. 난 참 용기도 좋아. 무슨 말을 해야하지..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유가 뭔데? 말해봐.”, “네가 좋아진 후로 네가 참 불편해졌어.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 침묵이 흘렀다. 그리곤 해소의 기쁨이 찾아왔다.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겠지만 난 그것으로 좋았다. 어떤 결과나 피드백을 바라거나 기대하지도 않았고, 단지 그것으로 난 기뻤고 좋은걸 좋다고 말하고 푸른색을 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자유가 왠지 그때는 옴팡 내게 안겨진 기분이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것 뿐이야. 이유는. 다른 이유는 없어. 넌 정말 좋은 애야. 그런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서 그동안의 내 스페인 여행이 즐거웠던 것 같아.”, “……” 또 침묵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류의 침묵. “그럼 난 이제 가볼께. 오늘 톨레도로 갈 생각이야. 너도 여행 잘하고, 지구 어딘가에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하자구.”, 그때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내게 바라는게 없어? 보통 그런 말을 한 후엔 일련의 말들이 이어지잖아. 넌 내게 바라는게 아무것도 없냐구.”, “없어.”, “정말이야? 정말 없어? 난 못믿겠어.”, “바란다 해도 지금 너와 나의 입장에서 이루어질건 아무것도 없잖아? 될 일도 아무것도 없고. 그리고 정말 바라지 않아.”. “난 너랑 생각이 틀려. 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이루어지게 하면 되는거지. 나도 네가 좋아. 그리고 먼저 말해주어서 무척 기뻐. 그런데 너같이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물론 기뻤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뜻밖의 선물처럼 기쁜,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함께 여행을 다니고 그럴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안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마음놓고 그 말을 덥썩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난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라구! 바보..그렇게 말해 버리면 각본과 틀리잖아..’ 갑자기 내 여행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 같은 이 감정이 너무나도 싫게 느껴졌다. “바르셀로나 갈거라고 했지? 난 마드리드 들렸다가 바르셀로나로 갈 생각이니까 만약..거기서 만나게 된다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자. 어쨋튼 난 오늘 떠나. 또 보게 되더라도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겠다. 여행 잘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다신 못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아주 오랜 후에 우연찮게 지구 어딘가에서 불쑥 만나게 되길 바랬다. 그땐 불편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 그러나, 1주일 후쯤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Sebastiaõ Salgado의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우연히. 감정과 바램은 의지를 앞서는 때도 있다. 때론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그것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꽤 오랫동안 가우디의 건물 사이를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곤 거의 한 달을 만났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를 함께 다녔다.

여기까지가 스페인에서의 로맨스의 전부다. 여행과 함께 로맨스는 꿈에서 깨듯 사라졌으니 이젠 로맨스라고 부르기도 참 뭐한.. 그런 것이 되어 버렸다. 지우지 않은 30여통의 이메일과 사진 몇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없었던 일처럼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강렬해서 쉽게 다시 생각이 나지 않는 색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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