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rch 2002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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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여행기를 다시 쓴다. 게으름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부족한 그런 늑장이었다. 몇 번이고 모니터 앞에 앉아 여행기를 쓰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시작하다 끝내 버리곤 했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내게 쓸모있게 작용하고 있다.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나 풍경속에서 난 문득문득 스냅사진처럼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꼭 한 장면씩만 떠오르는데, 그것이 지금의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어주는지 모른다. 나를 누군가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 난 터키에서 돈을 잃어 버리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결국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었던 때를 기억해낸다. 그때 난 초조하고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믿을 수 있는건 나밖에 없었기에 내 선택을 믿으며 확실하지도 않은 선택들을 연거푸 해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다른 선택을 했었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거나 내가 죽을뻔하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그러니까 무엇을 선택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선택을 해도 된다는 거다. 그랬어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내 선택이 의심스럽고 못미더운 주변 사람들을 통쾌하게 비웃어 주기 위해서라도 난 가던 길을 아주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된다. 다른건 몰라도 내 인생에 대한 선택이라면 말이지..

달리 미술관을 다녀온 다음날 난 이 예술적 분위기에 고무되어 다음날 까에따노랑 또 피카소 박물관엘 갔다. 박물관은 아담한 크기였는데, 미술작품들의 수는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까에따노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한 후, 까에따노네 유스 호스텔에 주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뭔가를 해먹기로 했다. 큰 마트에 들려서 뭘 먹을까 한참을..정말 아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냉동 피자를 먹자고 했다. -_-;; 냉동 피자를 사와서 전자랜지에 녹이는데 이게 함흥차사다. 20분을 녹여도 녹지가 않는 것이다. 이곳 전자랜지가 꼬져보이긴 하는데 이 정도란 말인가. 그 사이 이 호스텔에 묵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들락날락하며 요리를 해먹고 있었다. 음..먹는데에 드는 돈을 이렇게 아낄 수도 있겠군. 그런데 혼자 다니다 보니 이렇게 요리를 해먹는 일이 불가능하니 참 아쉬울 때가 많았다. 피자를 다 먹고 걔네 방에 놀러 갔는데 거기엔 독일인 남자, 인디언 남자, 그리고 스위스에서 온 남자가 있었다. 이 독일인 남자가 정말 유쾌했는데, 이 남자는 엄격한 배지테리언이었다. 그래서 육류는 물론 어류 유제품 모두 먹지 않는다. 오로지 과일과 채소만 먹는데 이것도 익힌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 날 것만 먹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이 사람의 침대위엔 각종 채소와 과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남자가 들어오더니 잽싸게 오렌지부터 까고 그걸 먹으며 얘길 한다. 키가 무척 컸고 예상대로 역시 무지 말랐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멸치처럼 말랐다는 느낌보단 깡다구 있게 마른 호리호리한 체격이란 느낌을 더 많이 풍겼다. 워낙에 골격이 크니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이 독일 남자의 눈은 정말 200만 볼트 반짝이고 있었다. 이 눈이 그런 강한 인상에 한 몫 했을거다. 큰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서 사람을 쳐다보는데 압도당할 정도였다. 내게 소개를 하고 국적을 묻더니 잘됐다며 아직 한국인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다행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곧 한국말로 숫자를 어떻게 세냐고 묻는다. 그래서 하나 둘 셋..가르쳐주었다. 이 남자는 그걸 전부 자기 노트에 배끼고 있었다. (독일어 발음으로. 즉 소리나는대로 독일어로 적었다.)그리곤 또 나더러 한국말로 다시 적어달라고 하고..정말 열심히 소리내서 연습하더니 이젠 그옆에 있던 인디언 에게 그 나라 말로 숫자를 어떻게 세는지 묻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언어로 숫자 세는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왜 그런걸 적어두냐고 물으니, 나중에 혹시 자기가 각각의 나라를 여행할 일이 생길지도 모를텐데 그때 되면 이런 숫자를 알아두는 것이 그래도 유용하게 쓰일거라고 말했다. 부지런한 이 남자는 아직도 내 기억속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는 인물중 한 사람이다.

그 방에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까에따노와 나는 에스빠냐 광장에서 열리는 분수쇼를 보러 나섰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9시쯤 자리를 잡고 기다리니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빛깔 있는 물이 분수에서 솟아오른다. 음악은 매일(매주였나?.)달라진다고 한다. 이 분수쇼를 한 번 하는데는 억단위의 돈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바르셀로나 시는 일주일에 네 번 이 행사를 통해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거다. 분수쇼는 기대이상이었다. 그냥 놀이공원에서나 보던 그런 분수쇼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음악도 계속 같은 음악이 나오는게 아니라 클래식에서 팝송(이 날은 마돈나 노래가 나왔었다.)까지 다양하게 틀어주고 그거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었다. 특이한 것은 그 분수쇼 하는데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튀는 물을 맞으며 옷이 다 젖을 때까지 그 앞에서 춤을 추거나 연인과 키스를 하며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 옆엔 남-남 커플이 찐하게 키스를 하며 주위 시선엔 아랑곳 없이 즐기고 있었다. 이런 기분, 이런 분위기 어디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쯤 이렇게 사람들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기분. 좋을 것 같다. 40분 정도의 분수쇼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기곤 다시 계단을 내려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엔 맥주도 한 잔 사먹고 룰루랄라 돌아왔었다.

그 다음날, 까에따노와 난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했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Nimes라는 곳엘 가기로 했는데, 그것이 예상대로 되질 않았다. -_- 흐흐.. 다음날 점심때쯤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내 마음이 또 요동치기 시작한거다. 이대로 계속 여행을 같이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혼자서 고민을 싸매고선 도저히 갈팡질팡하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메일 확인도 안한채 곳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고민만 계속 했다. 오후가 다 되어 메일을 확인해보니 까에따노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며 자신은 지금 Sants역이라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몇 번이고 메일을 보냈었다. 그래,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Sants역으로 향했다. 그래서 지금 내 생각은 어떻고 저떻고, 터키를 지나 이스라엘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을 얘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땐 그것이 정말 큰 문제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처럼 내 고민은 엄청났었고, 또 내 여행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를 두고 심각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으니까. 내 얘길 다 들은 후에 까에따노는 조용히..그 얘길 왜 여태 하지 않았냐고 화를 낸다. 왜 혼자서 결정하려고 하냐고..항상. 그러고보면 난 정말 그렇다. 뭐든지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고민한다. 이건 오랜 버릇인데 누구에게 상의를 하거나 의견 묻는 일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피하는 편이다. 그 이유를 따지고따지고 본다면, 어렸을 적의 애정 결핍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난 무척이나 관심받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언니나 동생에게 관심이 빼앗긴다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관심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혼자서 뭐든 잘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사춘기때의 반항심은 반대로 향하게 했지만..)이 오랜 버릇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데, 혼자서 쉽게 결정을 못내리고 고민이 많은 것도 틀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쓴 결과가 아닐까 싶다. 뭐 지금이야 많이 고쳐져서 일단 결정을 하고 보지만..암튼, 그때 서운해하는 까에따노를 대하며 많이 생각했었다. 이렇게 하다간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함께할 수 없을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난 항상 까에따노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언제나 항상 솔직했었고. 그 솔직함이 내겐 마음 깊은 곳까지 안도하게 하는 무엇이었다. 그렇게 해서 난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정말 그런 점은 내가 많이 배운 것 같다. 어린 친구였지만서도. 그런 열린 마음은 늘 내게 부러운 마음을 들게 했었다. 여행 후에 알게 된 글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나를 버리니 그가 내게 오더라..’ 나의 어느 것 하나 버리지도 않고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내게 관심 가져주거나 사랑해주길 바란다는건 지독한 이기심이 아니었을까. 난 적어도 버려야 가질 수 있다는 대단한 사실을 여행을 통해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이다.

까에따노와 함께 다음날 아침 일찍 Nimes로 향하기로 하고서 그 날 묵을 호스텔을 찾아다니는데(이 날 밤에 Nimes 갈 생각에 호스텔을 둘 다 체크아웃하였다. 그러나 이 날 기차표를 예약하지 못해 결국 떠나지 못하게 되었었다.)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빈 곳이 단한군데도 없었다. 단한군데도. 별 네 개짜리 호텔마저도.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우린 숙소 찾는 일을 포기하고 다시 Sants역으로 왔다. 역에서 자게 된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었다. 역안으로 들어가서 잘려고 했는데 역이 문을 닫았다. 새벽 6시에 문을 연다고 써붙여져 있으니 참 난감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비를 막기 위해 위에 지붕이 있는 벤치가 있다.)으로 가서 길다란 의자 위에서 자기로 했다. 사실 역 바로 앞에서 자고 싶었지만 그곳은 이미 거지들과 우리 같이 숙소가 없어서 역까지 오게 된 배낭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암튼, 그 길다란 의자에 누워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 (한 사람은 배낭을 지켜야 하기 땜에.) 그런데 까에따노는 자기가 지켜야 할 타임에도 자꾸만 졸아 나를 의자 밖으로 밀어내서 자다 깬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_-;;; 아침 7시쯤 부시시한 눈으로 역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인 후 (완전 부랑자들이구만..)따뜻한 밴치에서 또 잠이 들었다. 8시에 다시 깬 우리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어디든 씻을 곳을 찾자고 결정했다. 결국 우리가 간 곳은 까에따노가 묵던 유스 호스텔인데 그곳은 샤워실이 밖에 있기 때문에 누가 들어가서 씻든 모를거라고 했다. 그곳에 가서 몰래 샤워를 마치고 (난 거기다 아끼던 샴푸까지 놓고 오고..-_- 결국 프랑스 남부 가서 또 샴푸를 사게 됐지만.) 몰래몰래 그곳을 나와다시 역으로 향했다.(음..몰래몰래? 라고 할 순 없겠다. 탁구대가 야외에 있길래 둘이서 탁구를 한참 치고서 나왔으니.) 기차표를 사고 시간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였다. 기차를 타기 전에..내 스페인 돈이 많이 남아서 그걸 다 쓰고 가자고 합의를 하고 먹을걸 엄청나게 샀다. ‘살라미’ 라고 불리는..그 프랜즈의 조이가 좋아하는 햄도 사고 군 것질거리도 막 사고서 기차에 올랐다.

Nimes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린 둘다 녹초가 되어 처음 타자마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시간 외엔 내내 졸았다. 심지어 까에따노는 내 어깨에다가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었다. -_-;;;; 곳곳에서 들려오던 불어의 리드미컬한 발음, 이국적인 풍경, 여기저기의 불어 표지판을 보면서 자기는 지금 난생 처음 프랑스땅을 밟은 거라며 흥분해 펄쩍펄쩍 뛰는 까에따노(까에따노는 불어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포르투갈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쉽기도 했겠지만 이 친구는 정말 엄청 쉽게 불어를 습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와 침낭을 기차에 놓고 내려서 정신 없이 짜증 만땅인 나..이렇게 우린 프랑스 남부에 오게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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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쓰며 좋은 것은 지난 여행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전부터 그런 증세는 더해져서 내가 만약 다시 한번 이렇게 다녀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정말 잘할 수 있으리란 다짐으로 이어졌다.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여행은 중독이라더니…

그 다음날 역시 까에따노에게서 연락이 없자 나는 구엘 저택을 구경하기로 했다. 람블라스 거리 한 가운데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것이.. 주변 건물들에 묻혀서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뻔했다. 어쨋튼 찾아서 들어가보니 가이드와 동행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단다. 놀라웠던 것은 그 문구를 한글로도 써놨다는 것이다. 흐흐.. 처음엔 한글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일단은 그 삐뚤빼뚤한 글씨가 너무도 여러 가지 정황들을 상상케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처음으로 보게 되는 공공장소에서의 한글이라 반가운 마음에서였다.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가이드를 기다리고 15분 정도 후에 지하 마굿간서부터 차례대로 올라갔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이 구엘씨와 가우디의 관계다. 후원자 치고는 너무 든든했고, 후원자 치고는 가우디와 관계가 너무도 돈독했기 때문이다. 가우디 창의력의 밑거름이 되어준 구엘. 그는 젊은 가우디의 능력을 높이 사고 일찍이 그의 후원자로 나서게 된다. 가우디 역시 그런 그의 후원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구엘 저택을 둘러보며 느꼈던 것은 구엘은 가우디를 지나치게 믿었고, 가우디는 구엘을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는 것이다. 다이닝 룸의 의자와 조명, 벽의 무늬까지 가우디가 디자인을 했는데 그..의자의 무늬가 나를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알아채게 했던 것이다. 세심하게 새겨진 의자의 섬세한 동물들. 그리고 그것을 닮은 나무벽의 무늬. 그것을 본 순간 감탄하고 부럽고, 기쁘고, 놀라워했었다. (가우디 얘기는 다른 편에서 더욱 자세히..)

그곳을 나와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전부 다 돌았다. -_-;; 그때 나의 체력에 다시 한번 놀라 버렸다. 게다가 구엘공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진 걸어갔었다. 흐흐. (가우디 건축물에 대한 얘기는 다른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 위해 여기선 일단 간단히만 쓰겠다.) 암튼, 사그라다 파밀리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딱 한 사람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고 유선형으로 베베 꼬아진 계단을 정말 40분 넘게 올라갔다. 놀라운 것은 바람이 너무 잘 통해서 전혀 덥지가 않았다는 거다.) 뾰족한 봉우리(라고 표현해야 하나..-_- 암튼 그것.)사이에 놓여진 다리위에 서서 시내 전경과 맞은편에 서 있는 봉우리들을 바라보며(성당의 앞뒤로 뾰족한 봉우리들이 있다.)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매우 높은 곳이어서 바람이 굉장히 세차게 불었다. 머리가 여기저기 휘날리며 그냥 멍하니 바람을 맞고 서있는데 맥시코 여자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사진좀 찍어달라고..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한 장 부탁했다. 나더러 혼자 왔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나도 묻고 싶었지만 그 여자도 혼자 온 것 같아서(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으니.)그냥 잠자코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어디 갔으며 이제 어딜 갈건지를 얘기하다가 어디선가 이 여자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아이가 돌아보며 금방 가겠다고 한다. 봤더니 그녀는 일행이 있었다.-_- 그것도 장정 서너명이. 그런데 왜 나더러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거지.-_-a 남자아이들과 사라져 버린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서 나가려는데 출구가 또 기념품 가게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기념품들이 꽤 괜찮았다. 구경을 하고 나와보니 다리가 아픈 것보다 발바닥이 아팠다. 그래서 일단 메트로를 타고 람블라스 거리로 향했다. (발바닥이 아픈 것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이었다. 이제보니.-_-) 메일을 확인해보니 까에따노가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왕 큰 백화점 앞으로 나타나겠다는군. 그래서 그 앞에 서있었다. 백화점 앞엔 모로코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손으로 만든 팔찌며 목거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사는 사람들은 역시 대부분이 관광객들이었고, 장사꾼들은 특이한 말투들로 손님들을 마구 불러대고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까에따노가 나타났다. 람블라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항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엔 코엑스몰과 비슷하게 생긴 종합 놀이공간 비슷한 건물이 서 있었다. 특이했던건 그 건물이 항구에서 좀 더 나아가, 물위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 다리가 꽤 인상적이었다. 밤이라서 조명을 다 켜주는데 정말 예쁘다. 밥을 먹고나서 그곳을 나와 항구를 향해 나있는 널따란 공터에 앉아있었다. 정말 공터였다. 나무로 된 바닥엔 벤치 두 개가 다였다. 가로등이 곳곳에 서있었고. 항구쪽으로 나있어서 바람도 많이 불고, 저 너머로 보이던 람블라스 거리 끝자락의 어수선함.. 내가 앉아있는 이곳만 다른 세상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시간이 늦어서 각자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다음날은 달리 미술관을 가자고 약속했다.

아침에 만나지 않으면 시간안에 못 갈 것 같아서 서두르기로 했다. 아침 9시에 sants역에서 만나서 달리 미술관이 있는 Figueres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두 시간 반정도 걸리는데 계속 바다가 보이고 절벽도 보이고 그래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갔다. Figueres는 달리가 태어난 작고 아담한 마을 같은 도시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99%이상은 달리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달리 미술관은 겉모습부터가 굉장히 특이했다. 무슨 촬영장에 온 것처럼 화려하고 별났다. 벽돌이 둘러싸여져 있고 거기엔 또 요상한 무늬들이 튀어나고 파여져 있었는데 별모양 같기도 하고…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놀라웠다. 가운데에는 구식 자동차가 놓여져 있고 그 위론 달리가 조각한 듯한 나체의 여인(으로 짐작되는-_-)이 서 있었다. 외부에 있던 그 작품은 자동차안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뭘 뜻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난해했다. -_-;; 내부로 들어가니 가운데에 있는 천장이 넓은 홀의 벽 한 면을 꽉 채운 그림이 있었다. 충격적인 그림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떠밀리며 봐야했다. 3층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곳곳을 그의 크고 작은 그림들이 채우고 있어서 그 창작력에 감탄했었다. 달리가 초기엔 삽화 그림(삽화그림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비평적이고 냉소적인 문구들을 함께 넣어 그림을 그렸다.)을 그리는 일을 했다는 것도 여기서 알았다. 그때 보았던 그림에서 그의 스케치나 뎃생 실력이 어느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해서, 기괴한 그림들을 그린다고 해서, 결코 그 기본실력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달리가 흔히 정신착란을 겪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그의 괴팍하고 누구도 감당못할 불같은 성질 때문이었다. 어려서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 살바도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로 그는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감당못할 사랑만을 받고 자라게 된다. 어려서부터 죽음에 매우 익숙해있던 달리의 그림들은 그래서 죽음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들을 많이 담고 있다. 그의 특이한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갈라(달리의 부인)는 그에게 매우 특별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영감의 대상? 그림에서도 유독 그의 아내를 그린 그림이 많은 것도 그 이유다. 그의 그림들엔 성적인 환상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식욕과 탐욕과 같은 인간의 본성들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그림은 달리의 여동생 마리아를 그린 뒷모습과(이 그림은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비 문화센터에서 봤더랬다.), 그의 부인 갈라를 원구로 그려낸 그림이었다. 그의 작품중엔 설치미술도 있었는데 옆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앞으로 나와서 멀리서 내려다보면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설치물이 있었다. 재밌는 발상이었던 것 같다.

달리 미술관을 나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점심을 늦게 먹은 탓에 배는 고프지 않고 람블라스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브라질식 생과일 쥬스집에 들어가 내가 선택한 과일들로 쥬스를 주문했다. 으..그 맛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바나나랑 사과랑 오렌지였나..암튼 진짜 맛있었다. 그곳을 나와서 길을 묻기 위해 어느 바엘 들어갔는데 거기 일하던 바텐더가 까에따노더러 브라질에서 왔냐고 물었다.(티셔츠에 브라질 가수 이름이 적혀있어서..)그러자 둘이 반가워 하며 한참을 얘기하다가 알 게 된 사실은 그 바텐더가 까에따노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둘은 연락처까지 주고 받으며 뛸 듯이 좋아했다. 참..그러고보면 세상은 넓기도 하지만 좁기도 한가보다. 그리고나선 바로 그..기네스 맥주를 마시러 갔다. 후후..아이리쉬 펍을 찾아갈 생각은 아니었다. 내 가이드 북에 있던 괜찮은 술집에 가고자 했는데 도무지 그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발견한 펍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는데 우리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일당들은 영국인 or 아일랜드 사람들로 보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고 난리법석을 떠는지 온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통에(그것도 지나가던 똥개를 보며 다들 이상한 영어로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깔깔깔 자기네끼리 웃으며.-_-) 급기야 바텐더가 두 번씩이나 나와서 일당들을 진정시키고 나중엔 아예 내쫓았다. 기네스 맥주는 아일랜드 흑맥주인데 그 맛이..정말 끝내준다. 술이 달다면 이해가 되려나..정말 달다. 위에 얹어있는 하얀색 구름같은 거품 역시 절대 걷히지 않으며(약 1cm의 두께로 깔려있다. 게다가 그 거품이 꼭 생크림 같다. 뽀송뽀송..)마실 때마다 입술에 묻는다. 흐흐..정말 맛있었다.

그 날도 역시 늦게 들어갔다. 하지만 나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되는 것 같다. 어찌 이리도 잘..그것도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도 지치지도 않을 수가 있는 것이지. 나도 내가 무서웠다. -_- 이젠 람블라스 거리는 집앞마냥 편해졌고 밥이 입에 안맞아서 고생하는거? 물론 없고, 사람에 치이고 겁나는 것 역시 없어진지 오래고, 언어 때문에 불편하거? 나의 짧은 스페인어가 막히면 까에따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렇게 신나는 날들이 바르셀로나에선 계속이었다.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고생은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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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예전에 까에따노와 얘길 하다가 알게된 Sebastiaõ Salgado의 사진 전시회를 가보기로 했다. 마침 바르셀로나에서 하는 것이 나의 일정과 맞은거였다. 이럴 때 여행 온 보람이 느껴지는데 우리나라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공연이나 전시회가 유럽에선 자주 열리기 때문에 시간만 잘 맞으면 관심있는 전시회들을 두루두루 보며 여행 할 수가 있다. 참..그때 바르셀로나에선 마돈나 월드투어 콘서트도 있었다.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곳은 가우디의 건축물중에 하나였는데, 까사 밀라라는 건물이다. Pedrera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건물은 까사 밀라에 쓰인 석회암 소재를 두고 지어진 애칭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흥분되는 아침이었다. 까사 밀라에 가본다는 것이 그랬고, Sebastiaõ Salgado의 전시회가 너무나 기대가 됐기 때문에. Sebastiaõ Salgado은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90년대들어 인정받기 시작한 브라질 사진작가다. 브라질 북부의 광산 노동자들 사진으로 유명해졌고, 유진 스미스 사진작가상이었던가..그런 상도 받았다고 들었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을 아는 사람은 이 사람의 사진이 어떤 사진일지 조금은 예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사진이지만 한편으론 ‘한 장의 시’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이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 흑백사진에다가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끔찍한 사진들도 있었기 때문에. 주로 광산 노동자들 사진, 상파올로의 어두운 모습들, 근대화 혁명에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거의 다 보고 코너를 돌려고 하는데 누가 내 앞에 떡 버티고 서있다. 까에따노였다.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 이 녀석을 볼려고 여기 온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후후..함께 까사 밀라를 나와서 Gracia거리를 따라 쭉 내려왔다. 그리곤 람블라스 거리에 도착해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기로 했다. 처음엔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 묻고 답하고, 전시회에 대한 소감, 한국 문화와 여기 문화의 차이점을 묻길래 그것도 대답해주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평소대로 이야길 나눴다. 그러다가 저녁 노을이 지고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자 까에따노가 이런 말을 했다. “I wanna be your boyfriend.” 주변의 소음과는 상관없이 그 말만 또렷하고 선명하게 걸러져서 들려왔다. 그리고는 아주 흔쾌한 나의 대답. 약속이나 망설임없는 사귐이었다. 뭐랄까…어차피 마지막을 알고 만나는 관계? 그것은 의외로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산뜻하고 즐거운 느낌.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 만남이 훨씬 가볍고 쉬워졌었다.

우린 밤이 되자 까탈루냐 박물관 위로 올라가 에스파냐 광장의 야경을 보고 나서 함께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밤에 조명을 비춰주면 그렇게 멋있다고 하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소문대로..멋있었다. 고개가 아플정도로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고,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알 게 된 사실인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이 앞을 지나리란 사실이다. 이상하게 실감이 안나던 그 사실. 그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일상의 한 부분일테지. 가는 길에 놓여져 있는 한 건물같은거. 신기하다..

그 날 밤은 그렇게 헤어졌다. 이메일로 연락하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아무 연락이 없길래 난 어딜 갈지 아침부터 계획을 짜느라 고민고민을 했다. 어제 새로 들어온 남매가 있는데 오늘 투우 경기를 보러 간단다. 플라맹꼬도 못봤는데 스페인 와서 투우경기도 못보고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난 먼저 나왔다. 몬주익 언덕에 위치한 미로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몬주익 언덕은 그 유명한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걸어서 올라가기엔 힘들거라고들 했는데 난 몬주익 언덕을 순회하는 그 버스 타는 곳을 도저히 찾지 못해서 할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갔다. -_-;; 에고.. 중간에 공원도 보여서 공원에 앉아서 샌드위치도 먹고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가니 여러 박물관들이 보인다. 미로 미술관은 거기서도 또 조금 더 가야했다. 도착해보니 새하얀 건물이 산뜻하게 서있었다. 그 앞엔 미로의 조각작품이 놓여져 있고. 하얀 건물에 빨갛고 파란 조각작품은 그 자체로 함께 미술관이었다. 입장을 해보니 정말 깔끔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생전에 스케치했던 그림들과 설치 미술, 조각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미로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다. 선 몇 개와 색으로 채워진 공간. 굵고 검은 선들이 형체를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여자고 강아지고 하늘이고 새란다. 추상화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미로의 그런 선들이 수없이 반복된 습작과 완벽한 뎃생 실력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을땐 퍼즐을 짜맞추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삐뚤삐뚤한 선으로 주로 여자를 주제로 많이 그렸는데 이상하게도 굵고 검은 선들이 섬세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예술인들은 보면 여자를 주제로 해서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에게 여자의 형체는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일까. 주로 어머니 혹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여자’는 어떤 의미였을까. 유난히 여자라고 이름 붙여진 선들을 많이 그려낸 미로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이다.

미술관을 나와 또 한참을 걸어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투우 경기를 보러 갔다. 난 투우 경기가 잔인하고 지루하기만 할 줄 알았다. 왜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게도 투우에 열광하고 투우사에게 집착하는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티비로만 보던 투우는 꽤나 지루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우의 매력은 현장에서 실제로 열광하며 손에 땀을 쥐는 그 긴장감이 아닌가 한다. 왠만한 액션 영화보다도 더 재밌고, 긴장되고 스릴 넘친다. 정말 그곳에 앉아있으면 미친척 옷을 벗어던져서 투우사를 향해 손을 들어 버릴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첫 경기는 힘이 없는 소를 상대로 싸운다. 준비운동쯤 되려나… 마지막에 죽일땐 잔인하단 생각과 함께 시시하게 끝나는 것 같아서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소가 나오면서부터는 모든게 달라졌다. 펄펄 끓는 소는 미친 듯이 코를 흥흥 거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뿔로 박아대고 제 분을 못 이기는 듯 보였다. 긴장한 투우사도 피해있고 장내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투우사가 나와서 소와 신경전을 벌이고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겼을 때, 관중들은 똑같이 외쳐댔다. “올레!”

올레가 여기서 온 단어였다. 이번 투우사는 앳되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어찌나 몸이 날렵하고 유연하던지 인간의 몸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투우사의 몸놀림은 가히 예술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손 동작, 허리 놀림 하나하나가 어찌나 우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지 직접 보지 않으면 그 매력을 정말 모를거다. 마지막에 소 등에 칼을 꽂을 때, 한번에 칼을 꽂으면 그 투우사는 단번에 스타가 된다. 이 앳되 보이는 청년이 그 주인공이 되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 앳된 얼굴로 소 등에 한번에 칼을 내리 꽂았다. 사람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 비명소리가 들린다. 투우사가 경기장을 한 바퀴 돌 때, 어떤 남자는 자기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서 그 앳된 투우사에게 던졌다. 그 투우사는 자신의 땀을 그 티셔츠로 닦고 벌거벗은 남자에게 돌려줬는데, 그 남자는 그 땀 묻은 티셔츠에 마구 뽀뽀를 하더니 다시 입는 거였다. -_-;;; 배 나온 아저씨였는데.. 생소한 광경이었다. 저렇에 장렬하게 죽은 소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가 되어 아주 고가에 팔린다. 화내다 죽은 소라서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는데도 식당 주인들은 메뉴에 언제 무슨 경기에서 누구누구 투우사에게 칼을 맞고 쓰러진 소라고 자랑스럽게 표기를 해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소의 요리는 인기 만점이란다. 이렇게 한번에 칼을 맞고 죽은 소는 최상등급에 속하게 된다. (장렬하고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소라고..)

나조차도 놀랐지만 이런 잔인한 경기를 보면서 그런 흥분과 희열을 느끼다니.. 이곳 사람들의 다혈질엔 이런 경기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너무 재밌게 보고 나와서 저녁으로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여행 다니면서 알 게 된 사실 또 하나는 어디건 중국요리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 음식은 엄청나게 싸다는 것이다. 양도 푸짐하고. 그래서 나같은 배낭족들에겐 더없이 고마운 음식이 바로 이 중국요리였다. 게다가 같은 중국요리라 해도 나라마다 그곳의 특색에 맞게 맛이 조금씩 다르다. 역시 재밌는 사실이었다. 길다란 쌀을 먹으며 그 순간만큼은 서울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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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시내가 얼마나 큰지..설명을 못하겠지만 8일을 지내면서도 다 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모든걸 말해줄 것이다. 무척이나 스페인적이면서도 코스모폴리탄다운 면모가 느껴지는 이 곳. Las Ramblas거리의 항구 맞은편에 서 있던 콜럼버스의 동상이 말해주듯, 바다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그 모습은 이 곳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자부심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바르셀로나는 까딸루냐 지방의 심장이자 스페인 제1의 상업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까딸란”이라는 자기들만의 방언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바르셀로나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다. (TV 뉴스에선 두 가지 언어로 나오고, 바르셀로나의 모든 지방신문에선 기본적으론 자기들의 방언을 사용한다.) 스페인의 경제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는 요즘 독립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별개의 국가로 독립하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한 나라에 뒤지지 않으며, 문화, 사회면에서도 한 국가의 몫을 담당해내고 있는 이 곳 사람들은 그 자부심이 대단해서 스스로도 바르셀로나를 스페인 안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별개의 도시처럼 얘길 한다. 마치 자기들이 스페인을 먹여살리고 있는 듯이. 사실 그렇기도 하다. 상업도시답게 무척이나 부유한 도시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입장에선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그것이..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살리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 관광수입의 절반 이상을 가우디의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실, 성 가족 성당이나 구엘공원등이 아니면 바르셀로나를 굳이 방문하지 않을 관광객도 꽤 된다. 관광수입으로 부흥하게 된 스페인의 도시가 (수도도 아닌 상업도시가.) 다 컸으니 독립하겠다고 하는 모습이라니. 그네들 뿌리는 결국 스페인의 문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없이는 바르셀로나도 별볼일없는 관광도시에 불과한거다. 왜 모를까..장본인들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늦은 저녁을 먹고 시내구경을 하다가 2시간을 헤매다가 민박집을 찾아옴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 날 밤에 만나게 된 먼저 와있던 언니들. 20대 후반의 그 언니 둘은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저런 케이스가 많았는데(서양애들은 전부 다 나보다 어렸고, 길 가다 만났던 동양사람들은 거의가 나이가 많거나 가끔 동갑들이었다. 무슨 패턴일까 이것은..) 시대가 그런 것일까. 문화의 차이였던 것일까…어쨋든 각자 소중한 여행들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지켜보는 입장에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늦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다음날은 시체스 해변으로 향하기로 한 날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외를 도는 기차를 타고 약..30분을 가면 있는 해변. 언니들이 모두 해변을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나서기로 했다. 이 날 새로 투숙하게 된 두 명의 여성 배낭여행객도 합세하여 여섯명의 여인네들이 해변으로 가게 된 것이다.(내가 길가다 만난 한국인 여행자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이 여인네는 혼자 잠깐 쉬러 왔다는데 나보다 한 살이 많았고, 지금은 뉴욕 파슨스디자인 스쿨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었다. 첫눈에도 그녀는 눈에 뛸만큼 세련됐었다. 큼지막한 썬그라스 역시…기억에 남는 사람이다.)그리고 이 여인네들 통에 낀 남자 한 명. 바로 내가 어제 기차에서 만나서 함께 오게 된 그 남자 말이다. 이 남자는 여행내내 여자들하고만 다니게 된다고 자랑아닌 자랑을 입에 달고 다녔었다. 과연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지만..아참, 해변엔 오후 2시쯤 갔었는데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난 미스 반 데로우가 디자인한 건물이 있는 곳엘 다녀왔다. 다행히도 숙소 있는데서 멀지도 않아 걸어서 갈 수 있었는데, 내가 찾은 그 건물은 현대 건축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미스 반 데로우를 그닥 좋아하진 않았었는데 실제로 그가 디자인한 이 빠베욘을 방문해보니 사실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곡선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직선이다. 게다가 쓰인 재료들도 모두 차갑고 절재된 재료들이다. 1층의 낮은 건물 내부엔 적당한 크기의 거실 정도쯤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고, 그 안쪽에 보이는 조형물이 전부다. 거실있는 곳엔 역시 미스 반 데로우가 디자인한 의자가 놓여져 있었는데 늘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도무지 믿기질 않아서 털썩 주저 앉아보았다. 훗..진짜 그 의자에 내가 앉아있다가 왔다! 사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어쨋든 오전엔 각자 개인 시간으로 보내고 점심때쯤 만나서 함께 해변으로 향했는데 시체스 해변이 토플리스 해변으로 유명하다고 다들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수영복을 입고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세명밖엔 없었으니.-_-; 해변엘 도착해서 겉옷을 모두 벗고 물속에 풍덩 빠졌다. 물이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어서 좀만 멀리 나가도 금새 발이 닿질 않아서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_- 곁에서 이상한 배 비슷한 것을 저으며 놀고 있던 조그만 꼬마들이 우리더러 배에 타라고 부른다. 배에 미끄럼틀까지 달려 있어서 아까부터 무척이나 타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은 마음에 다들 올라갔다. 한참을 미끄럼틀 타고 놀다가 나중엔 지쳐서 그냥 물위에 둥둥 떠있었다. 그것도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둥둥..토플리스 해변이라 그래서 온여인네들이 모두 그런 차림일줄 알았는데 사실 그런 사람은 몇 안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럽의 많은 해변들이 토플리스다. 그러니까 꼭 ‘토플리스 해변’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어느 해변엘 가든 그러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고 있다.) 사실 이때 받았던 문화충격이 꽤 컸는데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을 수 있는 산뜻함’ 같은 것이었다. 애기를 안고 있는 짧은 커트머리의 애기 엄마도 토플리스였고, 10대소녀들 역시 토플리스였다. 할머니가 비키니 차림이었으며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도 웃옷을 벗은채로 썬텐중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은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지의 나라에서 온 우리 배낭족들이나 두리번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지, 모두들 무척이나 태연하게 각자 하고픈대로 뛰어놀고 있었다. 사실 그것이 좀 부러웠다. 토플리스건 아니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너무나 가볍고 산뜻해 보였기 때문이다. 난 비키니도 아닌 수영복에, 그것도 노랑색이어서 무척이나 난감하단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아무도 내게 신경 따윈 쓰질 않았던거다. 후훗..

해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정말 녹초가 다 되었었다. 숙소 근처로 돌아와선 근처 대형 슈퍼에서 샌드위치 재료들을 왕창 사서 다들 둘러앉아 열심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여럿이서 먹어서 그 떠들썩한 분위기가 친근했고, 또 적은 돈으로 정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었다. 그 날 밤엔 다들 또 맥주를 한 캔씩 들고 분수쇼가 열리는 에스파냐 광장으로 향했다. 이 분수쇼가 정말 굉장한데, 바르셀로나에 와서 분수쇼를 빼놓고 가면 그건 평생 후회할 일이라고 다들 하도 입을 모아 얘기하길래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음악이 나오고 그것에 맞춰 분수쇼를 한다는 것이다. 1회에 억단위의 돈이 들어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암튼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그래도 결국엔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으니 바르셀로나는 제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거였다. 목,금,토 에만 분수쇼를 해서 목요일이었던 그 날 기대를 하고 갔는데 그 광장에서 바자회를 하고 있어서 오늘은 분수쇼를 안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날은 분수쇼는 못보고 까탈루냐 국립 미술관에 올라가 높은데서 바르셀로나 시내의 야경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에스파냐 광장이 가운데로 있던 그 야경은 지금도 가끔 그때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던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이 난다. 야경을 볼 때마다 집생각이 나곤 했었는데 이 날도 역시, 야경에 그만 코가 찡해왔었다. 훌쩍… 도시의 야경은 어딜 가나 감동적인 것 같다. 낮보다 더 사람사는 동네같은 느낌을 주는 불빛들. 불빛에 취해 그땐 누구하고도 꽉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아진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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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로 향하던 날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모르겠다..바르셀로나에 금은보화를 숨겨둔 것도 아닌데. 어쨋든 이 민박집에 더 이상 묵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배낭도 다시 싸고…생각해보니 마드리드가 내 여행의 딱 절반이었을거다. 기간상으로도 그렇고 모든게…마음이 다시 새로워지는 것이 마냥 가뿐하기만 했다.

기차역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내가 탈 기차를 보곤 또 놀라웠다. 정말 좋아보였기 때문에..-_-;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새마을호를 조금 더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바꿔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티비도 달려있는데 바르셀로나로 올 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틀어줬었다. 기차안에서 영화를 보며 이동한다니..그런 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 있기도 하다.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내 옆자리의 남자… 큐트, 세련, 샤프하다. -_-++++ 초반의 어색한 침묵을 깨고 그가 영어로 전화 통화하는 것을 살짝 엿듣고는 말을 걸었다. “어머 당신은 영어로 통화하고 스페인어로 된 신문을 읽고 있군요!”(진짜 뻔한 대사가 아닌가!!! 흐흐..). 벨기에 사람인 이 남자는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단다. 마드리드에는 잠깐 볼일 보러 갔던거고 바르셀로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스페인어 역시 잘하는 모양이었다.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동안 내가 다녔던 곳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남자가 바르셀로나 가면 어디어디 꼭 가보라고 권해줬던 것 같다. 알고보니 유부남이어서 잘 기억이 안나는 듯..-_-; 영화를 틀어주는데 이 남자가 신이 나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내가 이 영화를 못봤다고 하니 역시 놀라면서 지금 당장 봐야한다고 강력하게 추천을 하였다. 물론 그 말을 따라 이어폰을 끼고는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난 잠들고 말았다…

기차안을 돌아다니다가 한국인을 만났다. 이 남자는 30대초반. 인터넷 관련 회사를 다니다가 천만원을 모아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을 다 돌거라고 했다. 북유럽 까지. 그리고는 이집트를 갔다가 중동을 여행하고 돌아올거라고 했다. 그에게 여행은 ‘휴식’ 혹은 긴긴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말대로 특별히 오랜동안 꿈꾸진 않았지만 무료해서 떠난 여행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귀한 시간을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아끼고 조심스레 즐기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물론 맘에 들지 않는 몇가지 이야기들도 있었다. 당연히 그는 생계를 뿌리치고 온 여행이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무척이나 비굴하였다. -_-;;; 쫌스럽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온갖 불법, 무료 방법들을 익히 알고서 그것을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 내게 쇄뇌하듯 들려주었었다. 그가 기차안에서 만나게 된 파키스탄 사람이 있는데 이 남자는 듀바이 라는 중동의 돈이 몰리는, 돈이 남아 돌아 어쩔줄 모르는 노른자위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얘기를 들으니 참..놀라운 세상이더구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돈 때문에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일주일, 한 달 단위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니콜의 가장 최근 기종을 알고 있었고, 단말기 중에서 애니콜이 제일 낫다는 평을 할 정도로 그는 모든 종류의 단말기를 써 본 경험이 있었다. 사촌 동생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에게 걱정은 없어보였다. 다만 무척이나 심심하고 무료해보였었다.

한국인 남자와 한참을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바르셀로나 산츠역이다. 역시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나는 그 남자와 함께 유스호스텔과 한국인 민박집 등등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보았다. 고생고생끝에 한국인 민박집과 통화가 되어(유스 호스텔은 꽉 찼고..)그쪽으로 걸어나가서 중간에 주인집 아줌마와 만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는 역에서부터 대도시다운 면모가 엿보였다. 산츠역의 규모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배낭족들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났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코인 락커룸이 크게 따로 (방처럼..)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나눠주는 시내 지도와 전철 노선도는 무척이나 깔끔했고, 그것을 설명해주는 직원들 역시 매우 친절했다. 내가 바르셀로나를 좋아하게 된건 이 산츠역의 역할도 크다. 8일을 이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하루에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은 지나치게 된 이 산츠역은(숙소가 바로 산츠역 근처였다. 게다가 메트로가 산츠역을 지나치기 때문에 시내 중심가쪽으로 가려면 이곳엘 들러야 한다.)천장이 매우 높은 현대적인 건물이다. 겉모습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커다란 공장을 연상시키는데 그 가운데 굉장히 세련된 글씨체로 “Sants” 라고 써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 이것이 바르셀로나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숙소를 찾아가서 짐을 풀고 나서 아까 그 한국인 남자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바르셀로나의 중심가. Las Ramblas거리로 향하기로 했다. 메트로를 타고 가는데 왠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한 여름인데 가을에 입는 비옷틱한 파카를 입고 있던 그녀 옆엔 아주 착하게 생긴 남자가 역시 비슷한 파카를 입고 커다란 우산까지 짊어지고 서 있었다.(여자는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맸는데, 남자는 왕 큰 배낭을 뒤에, 작은 배낭을 앞에 매고, 거기다 1단 우산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여성에게 물으니 옆의 그 캐나다 남자는 자기 남편이란다.(이 남자는 한국에서 영어 학원 강사였는데 이 여성이 학원 등록을 하고..수업을 듣다가 눈이 맞아 결혼을 하게 됐다는군.) 별로 사이가 좋아보이지 않던 둘은 그 캐나다 남자의 친척집이 있다는 스위스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스위스에서 막 도착한터라 파카를 벗지 못했단다. 마구 씩씩대며 화를 내고 있는 이 여성의 얘기를 들어보니 스위스에서 뭔가 일이 꼬여 별 네 개짜리 호텔에 묵게 되었단다. 거기서 피눈물을 흘리며 카드를 긁은 일.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야 한다고 짜증을 내며 전부다 남편 탓이라고 아예 남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이 캐나다 남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순진하고 맘씨 착하게 생겼다. 한국말을 잘 못하지만 그래도 몇 마디 알아듣는 것 같아 보였다. 둘은 지금 숙소를 찾고 있었다. 이젠 정말 유스 호스텔이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악착같이 말하는 한국인 여성에게서 ‘내가 정말 못살아, 이그..이 왠수 때문에.’라는 말을 열댓번쯤은 들었나보다. 도대체 남편이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저러나..너무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메트로를 내려 Las Ramblas거리에 있는 유스 호스텔까지 데려다 주면서 캐나다 남자에게 슬쩍 물었다. (앞에 둘이 걷고 뒤에 둘이 걷고..)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저렇게 화를 내냐고. 그랬더니 남자가 자기가 ‘big big mistake’를 저질렀기 때문에 저 여성이 화를 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유는 그다지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자가 어떤 영수증 비슷한 것을 잃어 버리고 그리고나선 우산까지 잃어 버리는 통에 비를 맞았다는 이유였던 것 같다.)암튼 유스호스텔까지 데려다주고(너무나도 걱정되는 커플이었기 땜에.-_-;;)나오려는데 이들이 유스 호스텔 분위기를 보더니 여긴 젊은 애들만 있어서 자기네랑 너무 안맞는다고 다른데를 알아봐야겠다고 그러면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냅두고 알아서 찾아가라고 했다. 배도 고프고 더 이상의 과잉친절은 우리쪽도 배풀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도 꽤 불편해보였기 때문에.

한 시간을 헤매서 찾아낸 ‘서민적인'(!) 식당엘 들어가서 밥을 먹은 후에 Las Ramblas거리를 구경했다. 이곳은 관광객이 정말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게다가 Las Ramblas거리 끝으로 이어지는 항구와 그 위에 세워진 대규모 코엑스 몰 비스무리한 오락단지(인기폭발인 나이트 클럽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그 옆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구식 까페들이 늘어서 있다. Las Ramblas거리는 그야말로 길게 쭉 뻗은 거리인데, 그곳에선 매일 밤 축제가 벌어진다. 양옆으로 상점과 호텔, 환전소, 음식점, 각종 숍들이 들어서 있고, 한 가운데로 보행자길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가운데에는 두꺼운 보행자 길, 그 양옆엔 차도, 그 양옆엔 상점, 호텔 등등이 들어서 있는거다.) 가운데 보행자길에서 하루 종일 구경만 하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거다. 행위 예술하는 사람, 퍼포먼스, 인형극, 작은 콘서트, 휴먼 스테이트먼트라 불리는 다양한 포즈의 사람들…같은 사람들이 다른 공연을 하기도 하고 매번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뭔가를 하기도 한다. 저녁때부터 밤시간까지가 가장 붐비는 이 보행자 거리는 좀도둑의 천국이자, 볼거리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곳곳엔 작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유서깊은 숍들과 크고 작은 광장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바르셀로나의 그 유명한 산 호세 시장이 들어서 있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딕지구 주변엔 온통 유명하고 전통 있는 매장과 레스토랑들이 있고, 또 그 옆의 골목들로 들어가다보면 마약에 취한 부랑자들이 이곳 저곳 쓰러져서 쾡한 눈으로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반대편엔 또 아랍인들이 모여사는 지구가 있는데 그곳은 워낙에 위험해서 현지인들도 잘 안가는 곳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Las Ramblas거리엔 없는 것이 없다. 길 한복판엔 ‘Wax’박물관이 있고(섹스 박물관이라고 들었다.) 골목을 조금만 들어가면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로등이 있는 레이알 광장이 있다. 또, 그 맞은편엔 구엘 저택이,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걷다가 항구를 끼고 돌아 조금 더 가면 피카소 박물관이 나온다. 모든 종류의 음식을 볼 수 있고, 아이리쉬 펍, 브라질식 생과일 쥬스를 파는 곳 까지…가만히 있고는 못배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도시의 묘한 기운이었다. 활기 가득한 기운. 골목골목 이어져 있는 구식 스페인 주택들과 늘어져 있는 빨래들까지 이 기운에 독특한 한 몫을 하고 있었다. 동화되지 않고는 못견딜거다. 숨막히는 더위와 함께 그 묘한 기운은 숨을 쉴 때마다 몸속으로 스며들어 내가 모르던 춤을 추게 하고, 모르던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게 만든다.

이곳은 정말… 살아 숨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