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September 2002

꿈꾸던 프랑스가 이곳에..-남부 프랑스 , 아비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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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여행기인지 모르겠다. 심호흡 한번 해주셔야겠군.

자자..다시 2001년 6월의 뜨겁던 프랑스 남부로 가보자. 동성애자로 몰린 나. 저녁을 먹고도 한참동안이나 까에따노와 그것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 결정적으로 여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적이 있냐는 질문에서 전혀 그런적 없다는 나의 대답에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 뒤로 난 절대로 까에따노 앞에서 모델 얘기나 어라, 저 여자 예쁘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길가는 여성을 쳐다보고 있으면(세상에..내 눈에 나와 다른 눈 색깔과 얼굴 모양을 지닌 애들이 얼마나 신기해보였겠어.)어김없이 까에따노는 나를 지켜보며 의심의 눈길을 던졌기 때문이다.

어쨋튼 다음날 우리는 님스를 떠나게 되었다. 아침에 까에따노가 빨래를 건조시키는 동안 난 유스호스텔 마당에 앉아 가이드북에서 아비뇽을 찾고 있었다. 이때 한 청년이 등장한다. 머리는 구불구불한 단발머리에 한눈에도 꽤 오랫동안 여행을 한 것처럼 보이는 꾀죄죄함. 이 청년은 내 앞 의자에 앉아 뭔가를 읽다가 까에따노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암스텔담? 나 거기서 꽤 오래 있다가 오는 길이야. 거기 정말 죽이지..’라며 말문을 연 이 청년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청년이었다. 지금 기억엔 나보다 한 두 살 많았던 것 같은데 외모상으론 도저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자랑처럼 암스텔담에서 즐긴 갖가지 유흥들에 대해 소개를 해주기도 했고 지금 바르셀로나로 갈 채비를 하고 있는 그의 계획들을 얘기해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바의 바텐더로 몇 달 일한 후 다시 여행을 다닐거라더군. 그외에 그의 가족 얘기며 별별 얘기들을 다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난다. 골초였단 기억만이 선명하다. 흐흐.

빨래를 다 말린 후,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를 타러 갔다. 아르헨티나 청년도 우리와 함께 나섰는데 셋이 나란히 걷다가 맘씨 좋은 프랑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린 아들을 태우고 자가용을 몰고가던 아저씨는 우리를 발견하고 기꺼이 차를 세워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히치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히치한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아비뇽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가르쳐주었다. 지도를 꺼내들고, 아비뇽이 님스와 마르세유 중간에 있다는걸 보여준 후, 아비뇽에 가면 교황청과 끊어진 다리를 꼭 보라고 이야기했다.

기차를 타고서 아비뇽에 도착했을땐 날씨가 약간 흐렸다. 아비뇽에 대한 인상은 그래서 지금도 우중충하게 기억된다.

아비뇽은 예술과 문화의 고도로 유명하고 한다. 강의 도시라고도 불리는데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며 리옹까지 이어지는 론강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아비뇽은 ‘아비뇽 유수’로 유명하다. 교황이 아비뇽으로 피신하게 되면서 교황청도 옮기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은 종교적 중심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의 분위기는 모랄까..우리나라의 경주같은 느낌을 풍겼다. 옛스럽고 보수적인 느낌. 높은 성벽과(교황청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 위에 세워진 위풍당당한 교황청이 분명 큰 이유일 것이다. 기차역에서 유스호스텔까진 버스를 타야했기에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또 물어물어 유스호스텔 근처에서 내릴 수 있었다. 버스는 강을 가로 질러 허허벌판에 우릴 내려주었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묻지 않았다면 영영 유스호스텔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유스 호스텔입구는 캠핑장 처럼 생긴 야영장이어서 나무가 많았다. 캠핑장을 지나 쭉 걸어들어가면 저 안쪽에 나무들에 둘러싸여 유스호스텔이 위치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산하고 음침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꽤 오래된 건물이라 아주 낡아보였다. 내가 쓸 방에 들어가 보니 방이 너무나도 좁고 침대는 많아 정말 발디딜 틈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 짐도 많아 내 짐 놀 자리도 마땅치 않은 정도였다. 할 수 없이 사물함을 하나 빌려 큰 배낭을 넣어놓고 필요한 것들만 밖에 빼두었다. 침대에 올라갈땐 삐걱삐걱 소리가 어찌나 심하게 나던지 올라가던 내가(난 2층침대의 위층을 배정받았으므로.)다 민망해 죽을뻔했다. 대충 짐을 챙겨놓고 까에따노를 만나 매점에서 저녁으로 먹을걸 샀다. 그곳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아비뇽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기차역쪽으로 가기로 했다.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가 시간에 맞춰 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자니 넘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기차역 거의 다와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우중충하더니 결국 비가 오고야 말았다. 한참을 뛰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피신해야했다. (단편소설 소나기를 상상해주기 바람.ㅋㅋ)비가 그치고 시내로 나가보니 시내에는 연극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알고보니 6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달 동안 열리는 것이었다.(이 연극축제는 50년도 넘은 굉장히 유서깊은 축제였다.)가능하다면 그것을 관람하고 싶었으나 축제기간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아 시간상으로 맞질 않았다. 아비뇽 시내는 누런색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입구의 뤼쁘블릭 문을 지나면 시내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관광도시라서 크고 작은 관광용품 가게가 많다. 노천 까페와 코너의 꽤 북적거리는 바도 있고…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우린 꽤 유명해보이는 crepe 가게를 발견했다. crepe는 아주아주 얇게 부친 전 같은건데 정말 너무나도 얇아서 놀라울 정도다. (이 얇게 굽는게 기술이란다.) 이 가게는 길가에 있는 가겐데,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처럼 생겼다. 즉, 길 쪽으로 가게가 트여있고 가게 주인장들은 길쪽을 향해 서서 crepe를 굽는 구조. 이해가 가시나요? 이 구조가 정말 음식 파는데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정말정말 식욕을 돋구는 구조. 흐흐흐. 안쪽에선 그곳 직원들이 정말 날렵한 손놀림으로 crepe를 구워대는데 그것도 하나의 구경거리다. 먼저 라지 피자 크기 정도로 crepe를 굽고, 뜨뜻한 상태에서 그 위에다가 얹어먹을 것을 선택하여 그것을 넣어 먹는거다. 치즈나 햄(햄도 가지가지 종류), 쨈 종류, 버터 크림, 초코렛 크림 등등을 주로 얹어 먹는다. 우린 모듬치즈를 골랐는데(싸이즈가 꽤 커서 둘이 먹어도 충분) 정말 그 맛이 환상이었다. 치즈가 살살 녹아있는 것이..흐흐. 아이고 배고프다. 야심한 새벽에 이런걸 생각하니 배가 고프군.

하여간 이 맛있는 crepe와 빠냐니 샌드위치가 유럽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먹거리이다. 이걸 후딱 먹어치운 후, 길을 배회하다가 코너의 바를 들어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유스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날도 역시 피곤에 지쳐 삐걱거리는 침대로 올라가 바로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또다른 숙박객이 들어와 삐걱소리에 잠을 깬거 빼고는.

다음날은 아침 일찍 교황청을 구경가기로 했다. 뤼쁘블릭가를 걸어가다 보면(이 길이 또 예술이다..정말 작고 예쁜 골목골목과 가계들이 많다)저~~~엉말 대빵만하게 큰 시계탑 광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엄청난 비둘기들과 그에못지 않게 꽤 많은 노천 까페들이 줄지어 있다. 이 광장에는 1900년에 만들어졌다는 회전목마도 있고 또 구시가지라는 묘한 느낌이 합쳐져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쳐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에선 꼭 가보라는 노천까페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느긋하게 앉아있으니 정말 오랜만에 긴장이 싹 풀리는 것이 사우나에 온 느낌이었다(흐흐..오버다) 비둘기들과 엄청나게 넓은 광장을 둘러보며 다시 교황청으로 향하기로 했다. 시계탑광장과 교황청은 꽤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그 근처가 구시가지로 정해져있다. 광장을 포함해 이 구시가지가 제일 볼거리가 많고 또 제일 잘 정돈되어 있다. 골목골목 중세의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이 정말 노력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교황청은 요새로도 쓰였을만큼 높고 크며 웅장한데, 투박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당시 교황들이 전전긍긍하며 얼마나 자신들의 위치에 위협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교황청에 들어가니 서늘하고 천장은 높고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교황청은 단조로운 느낌의 옛 궁전과 새 궁전으로 나뉘는데 미로 같아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난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요리조리 구경을 다녔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교황청에 있는 10개의 탑 중 하나에 올라가 봤는데, 아비뇽 시내와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람이 어찌나 세찬지, 눈을 못 뜰 정도였다.

유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엔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데 그 위에서 맞는 바람은 진짜 칼바람에 엄청 쎄다. 정말 날아갈 뻔했다. 신기한건 다리만 건너면 바람은 심하지 않다는 것. 다리를 건너다가 강 둔치에 벤치가 있는걸 보게 되었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은 때라 벤치에 앉아 구경하기로 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엔 유스호스텔이 저쪽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이 있는데 그게 꼭 중세와 현대를 각각 한 장소에서 보는 것 같아 색다른 느낌이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그 둔치에는 조깅하는 사람,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에는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왠일인지 중간에 끊어져 있는 것이었다. 내 가이드북엔 그런건 나와있지도 않았지만 론리 플래닛을 보니 저것은 17세기 대홍수 때 끊어진 ‘아비뇽 다리’라고 한다. 900M에 달하는 저 다리는 그 때 끊어진 이후 복구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저것도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옛날 것을 진짜 아끼고 갈고 닦는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저 다리를 보면서 정말 입이 딱 벌어지게 감탄했었다. 우리나라처럼 가꿀 생각은 안하고 탑이건 절이건 죄다 복원한다고 난리들인걸 보면 정말 비교될 만하다. 게다가 황룡사 9층석탑을 복원하겠다고 모교수들이 앉아 디자인했다는걸 보고 있으면 단지 어이가 없어진다. 어쩌면 복원을 생각해도 이리도 못생기고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복원할 생각을 한단 말인지.

흠흠..흥분을 가라앉히고, 다리를 한참 보고 있자니 끊어진 아비뇽 다리 넘어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정말 그 장관은 우리 학교의 노을 만큼이나 대단했는데..그 순간엔 다른 어떤 생각도 안났고 그냥 너무도 놀라웠다. 식어가는 태양이 이렇게 멋진 모습을 선물해주다니..

 

꿈꾸던 프랑스가 이곳에..-남부 프랑스 , 님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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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라는 나라가 주는 매력은 단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파리의 비오던 날들은 무척 우울하고 쌩뚱맞았으며(서울로 돌아가는 날마저도 비가 왔다!)니스와 마르세유에서의 활기와 뜨거운 햇볕은 열정 그자체였다. 또한, 같은 남부 프랑스라고는 해도 아비뇽과 니스의 날씨는 천지차이였다. 아비뇽은 내내 을씨년스런 가을날씨였더랬다. 비바람마저 불고..영국 사람들은 할말이 없을 때 날씨얘기를 꺼낸다지만 여행을 하면서 어느 나라의 날씨나 기후는 그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 풍습등을 한 눈에 쉽게 설명해주는 지표와 같다. 프랑스는 그래서 정말 설명하기 힘든 나라다. 한편으론 활기차고 명랑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나라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까에따노와 함께 도착한 곳은 Nimes라는 작은 도시였다. 님므라고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이 도시는 프랑스에 있는 가장 오래된 로마 도시이다. 이 곳에는 로마의 유명한 석교가 있고, 원형 경기장이 보존되어 있다. 원형 경기장은 이곳의 유물이 되어 그것을 보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그것을 보러 생소한 이 도시를 들렀다. 기차에서 내려 역에서 먼저 환전을 했다. 내릴땐 오래되고 후진 역 같았는데, 막상 역 대합실쪽은 현대적이고 깨끗하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초저녁이었던 터라(저녁 8시였던 것으로 기억..)역 안의 모든 서비스는 중지된 상태였다. 사람도 없고 낯선 이 역에 앉아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걸었다. 불어를 하는 까에따노는 전화를 걸고 난 앉아서 배낭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오늘 님므를 떠나는 한국인 남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도를 구하고,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타고 유스호스텔로 갈 생각이었는데 40분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를 따라 무작정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젊었기에 이런 무자비한 행동들을 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한참을 걸어도 도저히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가게문은 모두 닫혀있고 길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연히 포켓볼을 치고 있는 녀녀남의 콤비네이션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한 바(바라고 부르기도 뭐한..모두 오픈되어있는 동네 술집이었다.)를 발견했다. 그 사람들은 친한 친구들처럼 보였고,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포켓볼을 치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까에따노가 불어로 유스호스텔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여기서 한참이나 멀다고..걸어서 가면 12시 넘어서 도착할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서 바로 우리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탄 까에따노는 택시 운전사와 자신의 불어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했고 아는지 모르는지 택시비 내는 것도 잊고 있었다. 결국 돈이 없다길래 택시비는 내가 내고, 내일 환전하면 받기로 했다. 까에따노는 자신의 불어 실력에 칭찬을 받아서 들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서 유스 호스텔을 둘러보니 글쎄 스페인에서 보았던 유스호스텔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스페인에 있는 유스 호스텔도 무지 좋다고 느꼈는데 여기는 더 좋았다. 이곳은 Nimes로 여행온 현지인들이 묵고 가기 때문에 외국인보다는 프랑스인들이 많았다. 호스텔 매니저는 영국 청년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키가 크고 마른데다 목소리는 성우 같은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음악을 하는 이 청년은 Nimes 놀러 왔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아예 눌러 앉은 사람이었다. 카운터는 바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청년이 그 바텐더 이기도 했다. 영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직 해본 적 없고 그냥 여기 있으면 느긋하고 평화로워서 좋댄다. 곧 파리로 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일자리가 좋아서 다시 돌아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춤 출 수 있도록 식당을 나이트 클럽처럼 바꿔놓고 디제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침에는 시트를 가는 청소부 역할도 한다. 거의 하루 종일을 이 곳에서 보내는데도 이 일이 좋은 이유는 단 하나..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착한 날은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룸메이에트가 둘이 있었는데 둘 다 프랑스 사람들이라 도통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그냥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Nimes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원형 경기장 있는 곳 까지를 갈 생각인데, 아침도 못먹은 터라 가는 길에 우리 둘은 내내 ‘I’m hungry’라는 말만 죽어라 했다. 슈퍼나 식당이 나오면 뭐라도 사먹겠는데 인적이 드문 이 곳은 가게를 찾는 일도 꼭 숨박꼭질 같다. 결국 우리가 찾아낸 제과점에 우리는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 빵을 골랐다. 까에따노는 엄청 큰 버섯 피자를, 난 고로케를 골랐던 것 같다. 그것들을 먹으며 끼니를 떼우고 다시 원형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니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너머엔 큰 공원이 보였다. 그 공원에서는 그 날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행사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작은 과학 박람회 같은 것이었다. 마술도 보여주고 천막마다 각각 다른 아이템으로 아이들을 끌고 있었다. 공원안을 걸어다녀 보니 오래되긴 했는데 잘 가꾼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 그 나름대로 멋스러워서 어딜 가나 벤치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공원을 둘러보고서 다시 원형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 길이 정말 예뻤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차도 많이 안다니고 날씨도 무지 좋아서 이 작은 Nimes가 온통 내것 같았다. Nimes는 작은 도시라 중앙의 큰 길을 따라 가면 원형 경기장이 나오고 또 그 근처가 시내다. 원형 경기장은 볼 것도 없는데 입장료는 꽤 비쌌었다. 경기장안은 겉에서 보는 바와 같다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하겠다. 로마에서도 원형 경기장 안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러던데 나 역시 그것을 권한다. 나는 까에따노와 함께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고 제일 높이 있는 좌석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며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 안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나가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경기장 안엔 우리 둘밖에 없었는데 우리는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고 날도 아직 너무 밝아서 설마 정말 문을 닫았으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경비 아저씨가 우릴 보고서 뭐라고뭐라고~ 불어로 얘길 하며 우리를 뒷문으로 내보내 주었다.

시내를 헤매다가 어떤 광장에 도착했다. 그 광장 한 가운데엔 오래된 신전과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로마 시대때 세워진 신전인데 이 오래된 신전만 빼고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모두 현대적인 것들이라 이상한 부조화가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광장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놀고 있었고 산책나온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우리는 그 광장으로 이어진 식당가를 찾아갔다. 식당가는 물론 가격이 좀 비싼 편이었지만 아침을 빵으로 떼웠던 터라 뭐라도 좀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싶었기에 식당가를 샅샅이 뒤져 사람도 많고 값이 싼 곳을 골라 들어갔다. 유럽의 거의 모든 식당은 식당 앞에 작은 칠판에다가 오늘의 메뉴, 이 식당이 자신 있는 코스를 적어놓는다. 물론 가격과 함께. 그래서 관광객들은 이 식당의 수준이나 가격대를 짐작하고 골라 들어갈 수가 있다. 재미 있는 것은 오늘의 메뉴는 언제나 애피타이저(수프 혹은 샐러드)+본메뉴+디저트가 함께라는 것이다. 물론 본메뉴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긴 하지만 어쨋튼 정말 푸짐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아주 경제적인 메뉴라고 할 수 있겠다. 까에따노와 나는 파스타가 오늘의 메뉴라고 적힌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서 기다리는데 서빙을 하는 웨이트레스가 날 놀라게 했다!. 이 식당은 그래도 레스토랑이라고 부를 만한 분위기였는데 웨이트레스는 삭발을 하고 문신을 했으며 팔뚝을 그대로 드러낸체 검은 나시티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혀에다가 피어싱을 해서 뭔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입속에서 볼 수 있었다. 팔뚝의 문신은 커다란 해머였는데 내가 그것을 보고서 까에따노에게 얘기하자, 까에따노는 쓱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쟤 레즈비언이야” 라고 한다. 물론 그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그것보다 먼저..아니, 그는 정말 확신을 하나?, 저 사람을 알고 그런 얘길 하는건가? 아니아니 그보다도, 왜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시때때로 ‘저 사람은 게이야’, ‘저 여자는 레즈비언이네’, ‘저 둘은 연인 사이야.’ 라고 내게 인지시켜주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내가 언성을 높여 따지고 말았다. “넌 왜 그렇게 아는 척을 하는거야? 너 저 사람 알아? 레즈비언이면 어때서 니가 그렇게 매번 내게 가르쳐주는 거지? 네 의도가 뭐야?” 나의 따짐에 순간, 당황한 그는 몰라서 묻는거냐고 묻는다. “모르겠어? 저 사람들은 그걸 원해!!! 우리나라에는 매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동성연애자들의 인권 축제가 열리지. 나도 그들의 축제에도 참여했었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그런데 이렇게 내가 매번 그들을 동성연애자로 지목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그런걸 원하기 때문이야. 남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아주길 바라지.” 음..정말 그럴까?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많이 접하게 된 문화라면 바로 이 동성애 문화다.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동성연애자들을 볼 때면 난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그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스러웠었다. 익숙지 않은 문화에 대해 내가 겪은 진통은 그렇게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내가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대하고 있다면 까에따노가 했던 것과 같은 ‘이름짓기’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결코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꼭 남들이 날 알아주고 불러주길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삶은 일상적이고 편안한 것이듯, 그들 역시 그런 삶을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남자답고 스포츠 머리에 문신을 새긴 여자가 자신의 남성성, 동성애적 기질을 드러내고자 일부러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아니..그렇진 않을 것이다. 눈이 예쁜 여자가 화장을 할 때 눈을 강조해서 메이크업을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정도의 표현의 자유는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단지, 여자가 너무도 ‘남성스러워서’ 혹은 남자가 너무 ‘여성스러워서’, 그게 눈에 띄어 아는체를 하는거라면 그것은 너무 불공평하고 편협하다.

저녁을 먹고나서 유스호스텔로 걸어오는 길에 그는 내게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너 혹시 너의 성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처음엔 무슨 얘긴가 싶어서 한참 어리둥절했었는데, 조금 지나서야 그 뜻을 알았다. 내가 평소에 모델들 좋아하고 이쁜 여자들 보는 것을 즐기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런 사전지식과 오늘 내가 그에게 따졌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내가 레즈비언인줄로 안 것이다. 참, 황당했지만 나의 성정체성을 증명해보일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난 아냐, 내가 아는걸? 전혀 그렇다고 생각한 적 없어. 원한적도 없고.” 그러자, “그런건 원해서 되어지는게 아냐. 니가 원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너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되지. 너가 모르고 있다해도 너의 성정체성은 그럴지도 몰라..” 답답했다. 내가 나의 성정체성을 모른다면 대체 누가 안다는 것이지? “난 아냐!! 아니란 말야!!!누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겠어!” 까에따노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그건 나쁜게 아니라고 타일렀지만 도무지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