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December 2003

샤갈, 그리고 니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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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를 떠나던 날은 소풍가는 날처럼 따뜻하고 경쾌했다. 사실, 이 모든 발랄함의 이유는 ‘깐느’라는 도시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기대들 때문이었으리라. 깐느..단순히 영화의 도시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쁜 해변과 멋진 옷차림의 사람들, 곳곳의 숍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정말 레드카펫위에서나 볼 수 있는 새틴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깐느에 도착한 시간은 한낮이었다. 매 도시에서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는 것은 이제 이골이 나서 기차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방향부터 잡는다. 어느쪽으로 가야 유스호스텔이 나오는가.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작고 아담한 유스호스텔이었는데 론리 플래닛에 무지 좋게 평가를 해서 굳이 그곳을 찾기로 한것이다. 깐느가 원래 그런건지 암튼 그날은 진짜로 더웠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태양은 또 어찌나 뜨겁던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유스호스텔은 정말 책에 나온대로 예쁘고 가정집 같은 곳이었다. 실제로도 가정집을 개조해서 영업을 하는 곳이었는데 아주머니 인상도 서글서글한 것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버렸다.

이곳은 남녀가 한방을 쓰는 시스템인데, 한 방에 이층침대 두개를 놓고 반드시 여자 둘, 남자 둘. 이렇게 절묘한 성비를 맞춰 애들을 배치시키는 것이다. 나 역시 국적을 알 수 없는 백인 여자애와 까에따노, 에두아르도와 방을 쓰게 됐는데 가정집처럼 생긴 곳이라 방을 나서면 거실이 있고 화장실도 한 곳에 있다. 우리는 거실에서 한참을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사진을 찍으며 오늘 계획을 세웠다. 우선 모두 샤워를 하고 저녁때가 되서 나가기로 했는데(낮엔 넘넘 더워서..-_-) 한 사람씩 씻는거 기다리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밖에 나갔다.

깐느의 거리는 좀 어두워져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것 같다. 뻥 뚫린 도로 끝으로 보이는 바다.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불빛들. 그 불빛들을 뿜어내는 화려한 상점과 사람들..이 모든게 깐느 그 자체였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내내 두리번 두리번..아까 낮에 봤던 그곳이 이곳이 맞는가 몇번이고 확인을 했었다. 아까는 정말 기억도 안나는 가게들이 있었으니. 어쨋든 이 모든 놀라움을 뒤로 하고 일단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유스호스텔에서 바닷가쪽으로 쭉 걸어내려오다보면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그 길에는 간식거리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저녁을 떼우기 위해 들어간 곳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빵집이었다. 참..빵집이라고 부르기도 뭐한데 빵이라고는 대여섯개 정도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랑 에두아르도는 대빵 크고 텁텁한 피자빵을 골랐다. (다분히 양 때문에..ㅋㅋㅋ) 까에따노는 빵은 관두고 다짜고짜 아이스크림을 사먹길래 내심 걱정을 했다. (나중에 배고파 어쩔려구) 근데 그 아이스크림이 무지무지 맛있어 보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흐흐..결국 나는 한참을 걸어간 후 하겐다즈 매장이 나오길래 그곳에서 유혹을 참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거리를 배회하다가 깐느 영화제가 열리는 그 건물로 향했다. 거기서 사진도 찍고 놀다가 그 건물이었나 그 옆건물이었나 Casino 라고 번쩍번쩍 하는곳이 있어 무작정 들어가봤다. 우린 모두 반바지차림이었는데도 입장을 허락하길래 마음놓고 돌아다녔다. 나랑 까에따노는 그냥 뚜벅뚜벅 구경만 했고 우리중 가장 여유있는 에두아르도는 혼자 신나서 손잡이 잡아당기고 그림 맞으면 코인이 우루루 쏟아지는 그것을 마구 하고 다녔다. 그러다 에두아르도는 드디어 간이 부어 은밀하게 들여보내는 방같은 그런 곳에 들어가려는게 아닌가. 그러나 그 앞에서만큼은 복장검사를 하더라. 결국 그곳엔 못들어가보고 밖에 나와 바닷가를 거닐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담음날은 깐느를 떠나 니스로 향하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너무도 더워서 셋다 짜증이 이빠이 난 상태였다.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나왔으니 다들 초췌한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나뿐 아우라들을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기차역에 있는 보관함의 관리인은 뭐가 고장났다 그러면서 배낭 받을 생각을 안해 결국 우린 기차역에 쪼그려 앉아 기차가 올때까지 기다리게 생겼다. 나는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에두아르도보고 배낭좀 지키고 있으라 그러고 애들 돈 걷어서 아침시장에 나가 먹을걸 샀다.
시장이라고는 해도 규모도 크지 않고 시간도 점심시간대가 가까워져 파장한데가 많아 살 수 있는건 빵이랑 치즈 토마토 정도였다. 하여튼 그렇게 간소하게 사서 아침겸 점심을 대충 떼우고 기차에 올랐다.

니스에 도착했는데 아..그냥 깐느에서의 꿀꿀함이 니스의 분위기에 확 풀리더군. 깐느도 니스 못지 않은 관광지인데 두 도시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니스가 도시의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크기도 하지만 뭐랄까..니스는 보다 캐주얼한 청바지 느낌이랄까. 하여튼 다시한번 기운을 차린 우리는 일단 배낭을 보관함에 다 맡기고 관광을 나섰다. 해변가 근처의 큰 공원에서 책 박람회를 한다길래 우린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야외에서 열리는 이 박람회는 새로 나온 책은 물론이고 앤틱한 느낌의 고서, 영국과 독일 등의 책들도 전시를 하고 있어 바이어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다양한 책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게다가 그 공원으로 향하는 큰 대로 양 옆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쫙 늘어서 있으며 그 건물들에는 너무 예쁜 숍글과 서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박람회는 대충 보고..그 주변 서점들과 문구점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나는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대게 관광지의 서점이라면, 게다가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면 책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 것이고 있어봤자 눈길을 끄는 책이 얼마나 될까..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이 작은 서점은 관광객들로 넘쳐났지만 아늑한 분위기에 다들 책을 하나씩 들고 서서 읽고 있으며 잡지에서부터 전세계의 론리 플래닛, 히틀러라는 제목의 커버가 온통 빨간색인 책까지 없는게 없었다. 이 아기자기한 규모에, 실속과 주인의 신경안씀(?)…정말 이상적인 책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내관광을 대충 끝내고 유스호스텔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오후 4시가 지나야 입실이 가능하다 그래서 또 한참을 돌아다녔다. 인터넷까페의 위치를 익혀두고 에어컨이 빵빵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좀 쉬다가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 니스의 언덕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에 당도했다.

그런데, 그런데! 유스호스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광경! 깐느에서 니스로 향하던 짜증은 물론이고 하루종일 푹푹찌던 더위도 잊게 해주던 그 광경..이런 감동에 다들 여행하나보다..하고 새삼 느꼈었다.

 

샤갈, 그리고 니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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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월만의 여행기인가. 지금와서 생각하니 처음 여행기를 쓸때 바짝 써두지 않은 것이 넘넘 후회된다. 지금 쓸려니깐 묵은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는게 왜이리도 힘든지. 정말 뭘하든 미루는 성격 때문에 큰일이다..

아비뇽 다음편을 쓸 생각을 하니까 문득 까에따노가 보고싶어졌다. 정말이지 여행은 어디를 갔느냐보다, 누구와 갔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혹은 누구를 만났느냐..프랑스에 대한 내 기억의 대부분은 까에따노와 연결된다.
아비뇽을 떠나면서 정한 다음 목적지는 세계의 미항중에 하나로 꼽히는 마르세유. 불어 철자는 Marseille 인데 다들 ‘마르세이~’라고 발음한다. 그곳에서 내가 마르세유~ 라고 하자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현지인들의 표정..흐흐. 아무튼 기차역에 도착했을때의 첫느낌은 정말 정갈한 항구의 느낌이었다. 높은 천장과 밝은 빛이 사방에서 들어오도록 온통 유리로 설계된 마르세유의 중앙역은 지금까지도 내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항구도시답게 님므나 아비뇽과는 달리 기차역도 크고 오가는 사람도 무지 많았다.

기차역을 나와 이어지는 메트로 입구에서 경비원같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유스호스텔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옆에 서있던 키큰 아저씨(마르세유에 사는 주민으로 보임)가 유창한 영어로 유스호스텔까지 가려면 메트로나 버스를 타야하는데 지금 둘다 파업중이라 운행을 안한다고 이야기 해준다. 어쩐지 아까부터 매표소 입구부터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더라니..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나 이 사태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불만이나 분노없이 아주 당연한 일상인듯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혹시라도 우리가 오해할까봐 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줬다.

유럽 특히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인상깊었던 것 한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이런 노동파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한국에서는(적어도 내 주변의 생활권에서는) 지하철 파업이 있다하면 뉴스에서는 주민들의 분노에 찬 인터뷰를 내보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이곳에서 노동파업은 생활의 일부일뿐이다. 모든것이 그렇듯이 체제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있고 그러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유. 난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인권’이 아닌가 싶다. 인권에 관한한 전문가라고 불러도 될 프랑스에서는 국민 중 일부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파업을 택하는것에 대해 비난보다는 이해를 먼저 보여준다.(그로 인한 불편에 대해서는 감수하더라도) 나의 표현권과 내 인권이 소중한만큼 저들의 표현권과 인권도 소중하다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아무튼 키다리 아저씨는 우리를 역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쏼라 쏼라 하더니 조금만 기다리랜다. 자기 부인이 데리러 나오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유스호스텔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으아..이렇게 고마울데가! 그리하여 기나긴 침묵속에 -_- 20분을 기다린 후 자그마한 그의 부인차를 타고 유스호스텔 바로 앞에 당도했다. 이곳에는 유스호스텔이 두군데가 있었는데 하나는 마르세유 시내에서 쫌 가까운 해변 근처의 호스텔이고 우리가 택했던 다른 호스텔은 시내에서는 엄청나게 떨어져있지만 기차역에서는 쫌 더 가까운곳에 위치한, 주택가 꼭데기 외진 곳에 있던 곳이다. 단지 기차역과 쫌더 가깝다는 이유로(무,물론 훨씬 싸기도 했다.)이곳을 택하긴 했지만 나중엔 엄~~청 후회했다.

유스호스텔은 딱 보기에도 옛날 아주 옛날에 노인정으로 쓰였을법한 낡은 건물이었고 프런트 역시 왠 할배가 지키고 서있었다. 그 할배는 엄청 깐깐하고 재수없게 굴었으며 뭐가 그리도 안되는게 많은지 11시 넘어서 들어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거라는 둥 부엌은 7시 넘으면 쓸수 없다는 둥 주의사항을 이야기해줬다. 도착한 다음날 시내구경을 가기 위해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유스호스텔이 맨 꼭대기에 있어서 버스를 타려면 당연히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와 까에따노는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낮의 태양은 머리꼭대기에서 내리쬐고 있었고 아침도 못먹고 걸으려니 괴로운 생각들만 나더군. 이를테면 커다란 피자나 얼큰한 김치찌개 같은 것들..흐흐. 하여간 물어물어 또 한참을 걸어 빵집 맞은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일은? 물론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은 일이다. 계산을 하는 동안 버스가 와버려서 버스안에서 아침을 해결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서야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르세유의 시내풍경은 흔히 듣는 ‘남국의 정취’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길끝에는 바다가 보이며 야자나무가 군데군데, 사람들은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항구 앞에는 온통 노천식당과 까페들이 늘어서있고 멋진 옷차림의 사람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다. 우리는 먼저 구항 주변을 관람하고 소설 몽테크리스토백작의 배경이 되었던 이프섬을 구경할 예정이었다. 또 시간이 된다면 성니콜라요새두..까에따노는 해양박물관까지 보고 싶어했으나 내가 극구 반대하여 그건 포기하기로 했다. 처음엔 항구주변을 거닐다가 관광안내소를 들어갔다. 그래서 이프섬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알아봤는데, 배삯이 너무 비싸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했다. (한국돈으로 만원이 넘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구려)

그리하여 우리가 세운 계획은 마르세유의 시내곳곳을 한번 뒤져보자는 것이었다. 먼저 항구끝쪽에 있는 생니콜라요새와 만을 사이에 마주보고 있는 생장요새를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당최 가까워지질 않아 멀리서 그냥 실루엣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엄청나게 큰 광장이 있길래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도무지 문을 연 식당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는데도 이 큰 광장에 식당 하나 문을 열지 않았다니. 더 신기한 것은 이 넓은 광장에 손자 데리고 비둘기 구경나온 할머니와 우리 빼고는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흐흐..나는 첫날 파리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11시가 넘도록 저녁을 먹는 사람들이 이런 대낮에 문을 열수는 없을거라고 까에따노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근처 슈퍼에 들어가 재료를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먹기로 했다. 나는 진짜로 햄, 고기 같은데 넘넘 먹고 싶었는데(게다가 다 엄청나게 싸니까..)까에따노는 브라질에 있는 가족들이 광우병을 우려해 유럽에서는 절대로 육류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햄은 포기하고 빵이랑 치즈, 요구르트를 골랐다. 마음같아선 토마토랑 양배추도 사고 싶은데 씻고 썰을 생각하니..그래서 기냥 단촐하게 단돈 5천원으로 모든 재료를 구매했다.

까에따노가 알려준 것 가운데 정말 유용한 지식이 있다면 아마도 치즈에 관한 것일 것이다. 난 한국에서 체다치즈랑 모짜렐라 외에는 먹어본 적도, 본적도 없었는데 유럽에 오니깐 너무나도 엄청난 종류의 치즈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흐흐 얼마나 기쁘고 황송했는지는 둘째치고 도대체 무엇을 골라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까에따노가 브리(Brie)라는 프랑스 치즈를 알려줬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또 얼마나 유용한지는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야겠지만 하여간에 프랑스에서는 샐러드, 샌드위치, 각종 요리 등등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가장 대중적인 치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프랑스에서 길을 걷다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샌드위치인 빠니니중에서도 브리 빠니니는 가장 기본적인 메뉴이고 작은 슈퍼를 가도 이 치즈는 꼭 두세가지씩 종류를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까망베르나 꿀로미에 치즈들에 대해서도 알게 됐는데 까망베르나 브리나 다 하얀 곰팡이로 외피가 싸여져 있어서 좀 고약한 냄새가 나긴 한다. 아무튼 이후 프랑스에서 음식으로 인한 고생은 엄청 줄었으니 브리는 여행중 가장 든든한 양식이었던 것 같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문이 닫힌 식당의 한 노천 테이블에 앉아 바게뜨빵과 브리 치즈를 꺼냈다. 빵에 치즈만 넣었을 뿐인데 진짜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에두아르도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메일을 보낸 후(에두아르도는 스페인이의 빌바오를 거쳐 곧바로 마르세유로 오는 중이었다.) 시내보다 조금더 위쪽에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헤맨 후 중동인들만 사는 골목이 나왔다. 그곳에는 희안한 가게들도 많았고 대부분 같은 중동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가게는 허름했으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시내와는 딴판으로 초라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무슨 행사날이었던지 다들 들뜬 얼굴로 폭죽을 터트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또 그 주 주말에는 재즈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거의 어둑어둑해졌을때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쪽으로 나와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한산하던 길에 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있는지 저 밑에 항구쪽에서는 공연이 열려 음악소리까지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은 그리로 향하고 있었으나 하루종일 걸어다녔던 우리는 그저 빨리 유스호스텔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뭐든 식사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뿐..흑흑.

30분이나 기다려서 버스를 탄 후 유스호스텔에 도착해보니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에두아르도가 우릴 맞아줬다. 마르세유 도착해서 메일을 확인한 후 유스호스텔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무슨 고향사람 만난것처럼 껴안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쳤다. 우리는 냉동스파게티를 데우며 그의 빌바오 여행담을 들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얘기하며 클럽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해 길가에서 잠든 얘기들..아무래도 까에따노와 나는 지나치게 건전하게, 발품을 팔아 다니는 여행을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여행이 더 기억에 남았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돈이 넉넉했다면 클럽에도 가보고 술도 맘껏 마셔보고 미술관도 척척 들어가봤을것 같긴하다. 그러나 발품파는 여행은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수많은 골목을 뒤질 생각을 무슨수로 해본단 말인가. 흐흐..그런 의미에서는 나중에 돈 벌어 오더라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기억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라고 그당시 나를 위로했던 것 같고, 다행히도 그 생각은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난한 여행을 무슨수로 또 해볼 용기가 나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마르세유에 이틀을 더 있다가 깐느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