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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선 아이스크림을

++ 로마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인터넷에 있는 스페인 광장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로마에서 사진을 많이 안찍었다는 사실이 이제와 한으로 남네요. T.T ++

니스에서 보내게 되는 마지막 날. 드디어 해변엘 가보기로 했다.

니스의 유명한 천사의 만(Baie des Anges)이 말해주듯 니스에서 바다냄새, 소금기 가득한 끈끈한 바람을 맞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번화가에서 조금만 걸어가기만 하면 해변가가 펼쳐지고 그곳엔 어김없이 썬텐을 하는 미녀들이 가득하다. *.*

에두아르도, 까에따노는 수영복을 따로 안입는다 그러는데 난 지금 입은 옷 그대로 바닷가에 들어가기가 좀 찝찝했다. 왜냐면 오늘 밤기차를 타고 로마로 가야하는데 젖은 옷을 입고 기차에 오르긴 싫었걸랑..

그래서 기차역에 들러 배낭을 맡기고 수영복까지 갈아입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변으로 향했다. 하지만 니스의 해변은 생각보다 무지 지저분했다. 유명한 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탓이겠지만 나의 순진한 노랑수영복을 드러내기엔 너무 때가 묻었다고나 할까.. ^^;;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물에 들어가긴 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물이 지저분한것도 잊고 마음껏 놀았다. 에두아르도와 까에따노는 수영들을 어찌나 잘하던지..바다가 가까운 상파울루에 있다보면 친구들과 자주자주 헤엄치면서 놀 수 있다고 하니 수영 잘하는것이 당연하기도 한데 그래도 수영 배우러 한달이나 다녔던 나의 과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T.T

물놀이를 끝내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려는지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모래사장 주변에는 불량식품을 파는 노점상과 트럭들이 몇몇 눈에 띄었고 그것을 파는 사람들이 불어만 하지 않았다면 딱 해운대를 생각나게 했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둘러보다가 에두아르도는 무슨 파티에 간다 그러고 나와 까에따노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기분은 참 묘했다. 몇주만에 다시 혼자 여행할 수 있게 됐다는 설레임과 이제 까에따노를 다시는 볼 수 없을거란 아쉬움이 같이 있었으니까.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 운이 좋다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운이다…같이 여행다니면서 얼마나 많이 싸웠던가. 그리고 돈때문에 얼마나 많이 치사해지고 궁색해졌었나..이젠 정말 싫은 모습 안보여도 되고 안봐도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쉬움과 슬픔은 모든 이별에 항상 있는 거니까 가볍게 넘길 수 있어야 하는거라 생각하며 쿨하게 이별하고 싶었다. 기대로 가득차서…

기차에 올라 간단한 샌드위치로 저녁을 떼우고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풍경을 바라봤다. 이제 로마로 가는구나, 그곳에서 다시 그리스로, 터키로, 이스라엘로 가야지 마음 먹으며, 앞으로 이 궁색한 여행을 얼마동안 해야할까 걱정하며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아직 해도 안뜬 깜깜한 새벽이었다. 다행히도 실내에는 불이 다 켜져 있었고 앞자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뜬눈으로 앉아있었다. 깜깜한 창문 밖을 바라보는데 왜그렇게도 까에따노가 보고싶던지. 아직까지 난 이별하는 중이었나보다.

로마에 도착했을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밤기차를 탈때 제일 싫은건 다음날 기차에서 내릴때 느껴지는 한기다. 부시시한 몰골에 춥기까지 하면 정말 서럽다.

로마의 테르미니 역은 규모면에서 지금까지 지나왔던 대도시의 역들과 비교도 안될만큼 어마어마하다. 역 전체가 마치 삼성 코엑스몰같다고 해야하나. 플랫폼에서 매표소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도 일이지만 1층에 마련된 각종 시설과 쇼핑몰들..하루에 들고나는 사람수만큼이나 대단하다.

게다가 바르셀로나의 산츠역처럼 천장이 높고 굉장히 현대적인 구조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눈까지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되기까지 꽤 오랜시간동안 개-보수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만큼 테르미니역은 로마관광의 중심이 되며 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로마시내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역사도 오래되고 문화유적이 많아 길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를 볼때도 항상 테르미니 역을 중심으로 관광계획을 짜고 숙소로 돌아올때도 테르미니 역만 찾으면 쉽게 찾아갈 수가 있다.

로마에서 내가 묵을 숙소는 한국인 민박집인데, 여행하다 만난 한국인 여행객이 소개해준 곳이다. 인터넷도 되고 아침식사도 맛있다 그래서 마음먹고 니스에서 떠나기전에 예약까지 했다. 테르미니역에서 민박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굉장히 한국인답게 생긴 아저씨가 마중을 나왔다. 역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주택가가 있었고 그 중 좀 오래되 보이는 집으로 날 안내했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배낭족들은 다들 나갈 준비로 분주했고 몇몇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주머니가 나더러 일단 밥부터 먹으라 그래서 얼떨결에 같이 아침을 먹게 됐다. 밥맛이 어땠는지, 반찬이 뭐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국이 시레기 국이었다는 것만큼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샤워를 하고 좀 쉬고 있는데 약간 나이가 있어보이는 언니가 내 옆침대에 와서 앉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이 언니도 마침 그리스로 갈 예정이어서 함께 배를 타기로 했다.

대충 준비를 끝내고 로마관광에 나섰다. 로마는 바르셀로나나 파리에 비해 규모가 무지 크게 느껴지는 도시다. 물론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도시 전체적으로 무언가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그렇다. 테르미니 역을 지나 일단 그리스로 향하는 배표를 예매하러 갔다. Hellenic Mediterranean Lines 라는 선박회사를 찾아 무지하게 걸었다. 버스가 있긴 했는데 어느 도시나 버스는 타기가 늘 겁난다. 정거장을 놓칠까봐..그래서 무작정 걸어갔는데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은 안할 생각이다.

약 한시간 정도 걸어서 Via Umbria에 있는 그 선박회사 사무실을 찾아냈다. 그런데 말끔하게 생긴 이 사무소에서 표를 사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_-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책에 써있는대로 3만5000원 정도를 내고 표를 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선박회사가 유레일 패스 협찬사라서 패스가 있는 사람은 비수기에 무료로 탈 수 있다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돈 다 내고 배를 탔으니 나중에 진짜로 속이 쓰리더라. 더 나쁜건 나중에 알게 되서 항구에서 배타기 직전 내가 표를 샀던 그 선박회사 사무소를 찾아가 패스 보여주며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모르겠다고 딱 시치미 떼던 사무소 직원들..그 앞에서 30분이나 기다리며 헤맸었다.

아무튼 배표를 예매하고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다시 테르미니 역으로 갔다. 아테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남서쪽에 있는 브린디시나 바리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날 점심때쯤(배 시간이 저녁8시였으니까..) 로마에서 바리->브린디시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다행히도 이건 패스를 이용해 무료로 이동.

기차표를 예매하고 근처 피자집에서 조각 피자를 점심으로 사먹었다. 이 피자집은 커다란 직사각형 오븐냄비에 피자를 구워 그것을 조각으로 팔고 있는 굉장히 오래되보이는 가게였다. 팬에다 구운 피자라 약간 기름지긴 했지만 그래도 꽤 맛있게 먹고 나서 오드리 햅번이 앉아있었다는 그 스페인 광장에 가보리고 했다.

물론 처음엔 단순하게 지도를 보며 스페인광장까지 걸어가봤는데 아무리 가도가도 모르는 길만 나오는 것이었다. -_- 아..거의 두시간 가까이를 길을 잃고 헤매다가 꽤 번화해보이는 콘도티 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의 청담동처럼 유명한 옷가게들이 꽤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수제 가죽 장갑 집도 많고 또…직접 만든 아이스크림 즉 젤라또를 파는 곳이 무지 많았다~~~~

콘도티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수많은 젤라또들, 직접 만든 티가 팍팍 나는 이 귀티나는 젤라또들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먹기엔 너무도 예쁘고 예뻤다. 젤라또를 하나 사서 물고 스페인광장쪽으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생각보다 작은 광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리고 전설처럼 그 유명한 137계단이 눈에 띄었다. 나도 계단 어딘가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 젤라또를 먹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너무도..계단 옆에 위치한 베르니니의 부친이 만들었다는 <조각배 분수>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서서히 다가가니까 분수 바닥에는 왠 동전들이 그렇게 많던지. 이거이거 가만히 서있는 저 조각들이 무지 부럽다.

스페인 계단 맞은편에는 100년 넘게 있었다는 아주 유명한 젤라또 집이 있었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나기론 이 집은 딸기맛과 바닐라, 초코렛만 판다고 했던것 같다. 유명한 음식점들의 메뉴는 두세개를 안넘는것처럼 이집도 그런 장인의 냄새가 풍겼다. 하하..

하지만 내가 사먹었던 젤라또도 꽤 맛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스페인 광장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특히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씨들은 대부분 젤라또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잠깐이라도 영화속 오드리 햅번이 되고 싶은걸까. 스페인 계단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광장에 그냥 서서 혹은 어딘가에 기대어서 젤라또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광장과 아이스크림. 로마에서 아이스크림은 잠깐동안이라도 꿈을 꾸게 해주는 달콤한 환상이 아닌가 싶다. 스페인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것..내게 로마를 손에 닿지 않는 꿈같은 곳으로 만들어버린 일이 되어버렸다.

어두워진 거리를 또 한시간 넘게 걸어 걸어 숙소로 향하면서 세일중인 베네통 가게 앞에서 무지 망설였다. 언니한테 꼭 사주고 싶었던 쟈켓이 있었는데 결국 그냥 돌아오면서 꾸질꾸질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아까 그 젤라또랑 피자만 안먹었어도..하면서.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