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October 2006

인간연습-조정래

“그런데도 형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 달에 한번씩 꼭 면회를 왔다. 전주로 이감을 하면 전주로, 대구로 이감을 하면 대구로 변함없이 찾아왔다. 그것이 거역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행위였는지, 무한정 긴 옥살이를 하는 시동생을 딱하게 생각해 스스로 우러나서 하는 일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면회가 끝날 때면 자신은, 이제 면회 오지 말라는 말을 작별 인사 대신 하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보름이 지나면 면회날짜를 하루하루 꼽고는 했다. 그런 마음 또한 얄궂었다. 그러나 두 마음 다 어찌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 어머니와 형수가 먼 길을 오가는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도 고마웠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죄송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나오지 않고 고작 나오는 소리가, 이제 면회 오지 마세요, 였다. 또한, 어머니와 형수의 면회는 무기 징역살이 죄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기다림이었고 그리움이었다.”

얄궂고 모순된 그 마음을,
어머니가 그것을 모를리 없다.
피를 나눈 사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모순된 마음마저..하다못해 누추한 모습까지도 본능적으로 헤아리게 되는.

생각해보면 참 든든해지는 일.

그럴듯한 시작

200611023

한동안 게시판을 막아놨던 이유는 인터넷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계정인 이곳에다가 포트폴리오를 올려놨기 때문이었다. 나의 결점을 찾아보고자 들른 사람들이 내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싫어서 게시판만은 막아놨었는데…오히려 단골들에게서 빗발치는(ㅎㅎㅎ)항의를 받았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공개가 모두 끝난 지금 옛날 글들은 모두 나의 저장함에 넣어두고 새로운 게시판에 글을 쓰기로 했다.

난 이제 파리에 온지 1년을 갓 넘기게 되었다.
고작 1년에 무엇이 크게 달라졌겠나 싶지만 난 짧고도 그 긴 시간동안 이곳에서 이방인이 되는 법을 배웠다. 그토록이나 방랑자로 살고 싶었으면서도 실제 삶에서 혹은 일상에서 이방인으로, 외국인으로 사는데 익숙해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공기와 날씨에 적응하는 것 만큼이나 더디고 힘겨웠다.
물론 지금 그 과정이 모두 끝났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살면서 맞닥뜨리는 곳곳의 문제들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일의 기쁨, 힘든 만큼 돌아오는 만족감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것 같다.

사람이 문제이긴 하다.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하고, 힘든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것. 지금도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아니 그렇지 않은것 같다.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고, 속이기도 하며,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될땐 무시하기도 한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진심일거라 믿는 것은 순진함을 넘어 무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모든 순간에 진심일 수 없고, 최선을 다할 수 없으며 그러지 못했을때 죄책감을 느끼며 좌절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 놓여진 상황보다 더 잘하려는 생각은 결국 결과를 떠나 나를 괴롭히는 망상이 되어 돌아오기에. 상대방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에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데 나 혼자 좌절할 필요가 뭔가.

이 글을 쓰다 빗소리에 창문을 내다보니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며칠째 찌뿌둥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이렇게 여우비가 잠깐씩 내리다 말고, 내리다 만다.
이제 1년, 파리가 점점 익숙해지는 요즘은 새로 시작하기 좋은 때다.
새로운 게시판에 새 글을 쓰기에도 좋고.
세계의 평화보다 내 자신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 더더욱 좋은 때.
내면의 성장은 소리소문없이 일어나는 기적이기에.

## 사진은 최근에 찍었던 굉장히 아름답던 파리의 가을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