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pril 2007

혼자 또는 같이…

룸메이트가 오늘 한국에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올 여름에 한국으로 영영 들어갈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예상하고 있었는데 왜그렇게 마음이 허전하던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참 어렵게 느껴지네.
정도 많이 들었고, 마음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친동생처럼 많이 좋아했었는데 이제 헤어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만큼 마음이 저려온다.

이사를 해야할까.
다른 누구를 또 들일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또 이런 헤어짐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하고. 만약 이사를 하게되면 그냥 혼자 살 스튜디오로 가야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와든 같이 살면서 정을 안주기도 힘들지 않겠나 말이다.

점점 더 느려진다.
마음속에 사람을 들이고 내보내는 일이…
이제부터 만날 사람들은 평생 오래도록 봤으면 한다.

잡생각…

어제하고 오늘은 어찌나 머릿속이 멍하던지.
잡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처럼 멍해진다.
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림도 영 안그려지고…

이 모든게 아마 왼쪽 발목이 삐어서 그런것 같다.
어쩌다 삐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자다가 삔건지..)걸을때 온통 신경이 걷는 일에만 쏠린다.
그래서 걷는 일이 끝나면 갑자기 멍해진다고 해야하나.

아..아무튼 할게 너무 많으면 별 핑계거리가 다 생긴다.

레몬향이 나던 콘서트

20070419

지난주에 스웨덴 출신인 마리아를 따라서 스웨덴의 젊은 싱어송라이터 콘서트를 갔었다.

Frida 라는 예쁘고 젊은 여성인데 요즘 스웨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란다.
콘서트는 파리에 있는 스웨덴 문화원에서 열렸던 거라 아주 작은 소극장에서의 공연이었다.
노래가 과히 내 정서에 맞진 않았지만 그녀가 풍겨내는 분위기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이를테면 처음 등장하며 물 한컵과 배, 레몬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러더니 그것들을 피아노 위에 얹어놓고 연주를 시작하는거다. 노래와 노래 사이사이 배를 한입씩 크게 배어물며,
“이 과일은 허기를 달래기 위한거구요, 레몬은 아로마 테라피용이예요” 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혼자 과일을 먹는게 미안하다며 아로마테라피라도 같이 하자는 의미에서 레몬을 관람자들에게 돌렸다. 레몬향기도 좋았고, 그녀의 독특한 정신세계도 나름 매력적이었다.

모든 노래의 제목들이 도시이름들이었는데 그 이유가 여행을 다니면서 노래를 가장 많이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자신의 실제 이야기라고…그걸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그 도구가 음악이라서 참 좋았다.

재밌다 :-)

한인 프랑스 커뮤니티에 갔다가 재밌는 글이 있어서 퍼옴.
나도 늘 궁금하던거…
근데 그것보다도 이 사람 글 써논게 너무 웃기고 솔직하다. 너무 이해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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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보낸 지난 여섯달 동안 프랑스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불어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10가지 한국식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굳이 ‘한국식’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우리가 한국에서 정말 많이 쓰는 말들이라서요.
사전에 나온 표현들도 딱 들어맞는 것 같지 않더군요.
비단 10가지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발견한 건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제 불어실력이 낮아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장난으로 묻는 것이 아니고, 정말 궁금하고 때론 답답해서 여쭙는 것이니
프랑스에서 오래 사신 분들, 불어를 능통하게 하시는 고수님들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귀찮다

A: 지금 안 할 거야?
B: 응, 귀찮아.

여기서 ‘귀찮다’는 말은 ‘파리떼가 귀찮게 달려든다’라고 할 때 ‘귀찮다’와 다른 표현 아닙니까?
‘fatigue’도 아닌 것이, ’embetant’도 아닌 것이… 뭐가 좋을까요?

2. 억울하다

A: 너한테만 뭐라고 한다면서?
B: 억울해 못살겠다.

왠지 ‘injuste’하면 이 끓어오르는 분함을 반의반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왜 억울한 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3. 치사하다

A: 어제 빌려간 1유로 갚아.
B: 치사하게.

꼭 돈문제가 아니더라도… 정많은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치사한’ 프랑스사람들 좀 있지요?
‘쫀쫀하다’고 해야 하나.. ‘mesquin’이라는 말이 제일 비슷한 건가요?

4. 신기하다

A: 사진에서 보던 에펠탑 그대로지?
B: 우와, 신기하다.

‘incroyable’이라고 나와 있긴 한데… 어릴 적 외국사람들을 처음 봤을 때도
우리는 신기해했었지요? 좀 순진하면서도 좀 바보같은(?), 그 막연한 감정을 뭐라고 할까요?

5. 아깝다

A: 내 여친 실제로 보니 어떠냐?
B: 니가 아까워.

누가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버리려고 할 때, ‘여전히 쓸 만해!’ ‘여전히 많이 남았잖아!”라고
길게 풀어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늘어지는 어감은 어쩔 수 없군요), 사람이 아까울 때는…?

6. 안타깝다

A: 불어는 열심히 해도 안 늘어.
B: 내가 다 안타깝다.

‘c’est dommage!’라고 하기엔 너무 ‘쿨’하게 느껴지는데요.
정말 친구의 어떤 고민에 공감할 때, 전해주고 싶은 말입니다만…

7. 섭섭하다(1)

A: 파리에서 마지막 날이군.
B: 생각보다 많이 섭섭하네.

‘triste’는 너무 평범하고, ‘manquer’를 쓰자니 당장의 마음은 아닌 것 같네요.
객지에 나와서 살면, 이렇게 헤어져서 섭섭하다…는 말 자주 쓰게 되지 않나요?

8. 섭섭하다(2)

A: 파티에 초대 못 받았지?
B: 섭섭하다고 전해줘.

‘injuste’하다고 할 수도 없고, ‘fache’할 것까진 없는데
그래도 조용히 가슴을 파고드는 이 서운한 감정을 어찌 표현하면 좋을까요?

9. 어이없다

A: 정말 할 말이 없다.
B: 그러게, 어이없어 웃음만 나온다.

당황스럽기도 한 것이, 황당하기도 한 것이…
‘absurd’하면서 ‘bizarre’한데, 그 순간 허한 마음상태를 표현하고 싶은데요.

10. 답답하다

A: 어려운 일은 없고?
B: 말을 못하니 늘 답답하지.

성격이 ‘obtu’한 것도 아니고, 숨을 못 쉬어서 ‘etouffe’한 것도 아닌데…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 이 답답한 마음… 허긴 화병도 그냥 ‘hwabyung’이라고 씁디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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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살면 머릿속으로 생각을 안하고도 그냥 불어로도 말이 나온다고 하던데, 저런 표현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대신하기가 힘들것 같다.
아! 딱 한명, 뜨거운 국물 마시면서 ‘어~시원하다’ 라고 하는 한국말을 이해하는 프랑스인을 본적이 있다. 그도 그 말을 사용하더군.

계속 떠나야 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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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쉬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카멜레온을 발견했다.
주인장이 내손위에 얹어주며 물지 않는다고 얘길하는데도 무섭고 겁이 났다.

폴 오스터가 그랬던가.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상관없다고. 어딘가에서는 시작해야 한다고….
그동안 난 뭐가 그렇게도 겁이 났던 걸까.
매 여행이 그렇지만 이번 여행은 더더욱, 일상이 가볍지 않다고 묻히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게 뭐 다 그런거지, 라는 핑계로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치진 말아야겠다는 자각.
정말로 다시 글을 쓰고, 사랑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떠나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나다운 거라는 생각.

돌아와보니 그곳.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 참 신기하듯이, 살다보면 여기저기 치이고 멍이 들면서도 산다는 것에 적응이 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파리에 살게 된 이후 어딜 가든, 심지어는 한국엘 다녀와도 파리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처럼 설레고 마음이 편안하다. 집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그런 느낌.

덥고, 사람들로 가득하고, 생기가 넘치는 모로코에서 우울한 파리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읽던 책의 한 부분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문

모로코를 여행하며 느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할 필요없는 텅빔. 그곳 사람들의 눈빛엔 두려운 것도, 조급한 것도 없었다. 좌판에서 올리브를 파는 상인조차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될뿐, 우연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