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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떠났다

마리아가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언젠가는 이렇게 각자의 나라들로 돌아가야 해서, 이별이 예정되어 있어서 참 슬프다는 얘기를 프랑스애한테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내 프랑스 친구들도 나를 보며 내가 마리아에게 그랬듯 언제나 무언가 아쉬운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마리아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새로운 연애도 하고, 학교도 다닐거라고 했다. 파리를 떠나는 것이 너무 슬픈데 스웨덴으로 돌아가는 일 역시 너무나 설렌다고…나도 꼭 그랬다. 2년전쯤 한국을 떠나올때. 그래서 그녀의 말이 참 많이 이해가 됐고. 그래서 스웨덴으로 돌아가서는 잠깐의 설렘후 한동안 우울과 그리움이 찾아올거고..그리고 다시 아무일 없었던 듯 일상에 젖어들거라고 얘기해줬다.

마리아가 떠났지만, 우리 서로 참 많이 좋아하는데도 슬프진 않았다. 꼭 다시 만날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을거란걸 알아서 그런가, 헤어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거였다. 아니 어쩌면 내 안에서 ‘사람들과의 거리감’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년부터 쭉 생각해오던건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분리’라는 개념. 어머니의 뱃속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분리가 되던 순간, 우리의 뇟속에는 누군가로부터의 분리는 생명의 위협과 같은 원초적인 고통으로 기억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와 남을 분리하는 과정, 가족과의 사별, 나의 나머지 반을 채워준다고 믿었던 이와의 이별, 마음이 맞는 친구와의 의견 대립 등은 일상생활에선 느껴볼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는지도 모른다.
물론 또 그래서 나와 마음이 맞는 누군가를 만났을때, 나와 완벽하게 합치되는 듯한 기쁨을 안겨주는 사랑을 하게 될때 느끼는 ‘하나가 되는 기쁨’은 다시금 우리들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던, 인생의 첫 분리가 이뤄지기 전의 엄마 뱃속에서의 편안함을 되새김질 하게 하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결국, 이별 혹은 분리를 제대로 해내는 것은 또다른 성장의 과정일 것이다. 타인이 원하는 것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갓 태어난 아기들이 엄마를 자신과 구분하지 못하다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엄마를 첫 타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분리를 통한 성장은 평생동안 교육과 노력을 통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 분리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적으로 훌륭하게 해내면 점점 더 분리되는 고통에 대해 ‘나만의 아픔’이 아닌 관계속의 또다른 이면들을 좀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분리는 곧 성장의 첫번째 단계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리의 과정이 거듭될수록 그 고통이 경감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좀더 세련되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것일뿐….

마리아는 떠났지만 마리아는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물론 헤어짐은 슬프다.
그러나 단지 그녀가 이곳에 있지 않다고 해서 마리아가 더이상 마리아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녀는 예전부터 쭈욱 그녀였고, 나는 계속해서 나와의 관계속에 있는, 함께 웃을 일이 참 많았던 마리아를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시험을 끝내고, 오랫만에 여유있는 밤에 이별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별이 꼭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나는 분리되는 과정을 좀더 세련되고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게 된걸까. 혹은 이것이 정말 성장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