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삼일전부터 파리는 갑자기 겨울이 되어버렸다.
내내 가을날씨처럼 살랑거리더니 드디어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감기가 다 나았나 싶었는데 갑자기 바뀐 기온에 또다시 코를 훌쩍이고 있다.
파리에 살게 되면서는 이맘때쯤의 계절이 가장 싫다. 크리스마스, 연말. 이벤트가 많은 그런 시기가 싫어진 것 같다. 한국 생각도 많이 나고, 가족들 생각도 많이 나서 그런거겠지. 아무튼 이러한 때에 파리에서는 절대 보지 못할거라 생각됐던 ‘우리학교’를 보러 영화하는 친구와 저녁늦게 극장을 찾았다.(사실은 한-불영화제라는 유학생들이 만든 독립영화제같은건데, 한국단편영화와 독립영화들을 며칠간 상영해준다.)
3년 반동안 촬영한 다큐멘터리인데, 감독의 말마따나 그 3년 반의 시간은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애정, 그것 하나로 깊고 어두운곳까지 내려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그의 노고에 정말 많은 박수를 보냈다.
영화는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낯설은 북한말과 검은색 치마저고리를 보며 영화를 보던 중간까지도 내내 저들은 한국인인거야? 북한사람인거야? 라며 궁금해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영화는 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자신들의 국적, 그들의 존재감을 쫓아갈뿐 특별히 어떤 답을 주거나 관점을 제시하진 않는다. 스스로를 조선인이라 부르는 아이들 조차도 그들이 느끼는 고국에 북한과 남한은 분리되어 있는것 같지 않았다. 단지 고국은 그들에게 한가지 의미이며 그것은 자신들을 자신들이게 하는 뜨거운 무엇일뿐이었다.
아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가장 내 마음을 끌었는데 특히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조선학교로 편입해온 여학생의 인터뷰가 무척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말보다 일본말이 더 익숙하고, 일본말로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한 아이가 굳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낯선 치마와 저고리를 입으며까지 조선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그곳에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내가 나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사회에 속해있으면서 자신을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일까. 그런데도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것에, 스스로 인식하게 된 자신의 정체성에 기뻐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단계를 뛰어넘어 성장을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왜, 어떻게 알았느냐. 너는!!”
일본말을 쓰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교실에서 한국말이 서툰 그녀에게 일본말로 말을 걸어도 되도록 하자고 제안한 반장을 보며 그녀가 속으로 외쳤던 말. 너무나 기쁘고 흥분된 얼굴로 그 얘기를 전하던 그녀는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저 정도는 되야.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저렇게 깊은곳까지 닿았기 때문에 마음을 열수 있었던 거겠지.
영화는 외지에 사는 아이들의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저 깊은곳에 간직하고 있는 바램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거라고 느꼈다. 조국이 아무리 가난하고 욕을 먹고 별볼일 없는 곳이라도 무작정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해주는 무언가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나의 가장 깊고 깊은 곳까지 들어와 나를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런 사람 혹은 대상에게 나의 마음 전부를 주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나도 없다.
소통은 그렇게 시작이 되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