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January 2008

그녀가 좋다

20080130

철이 들어가고, 어른이 되어간다는건 눈매가 깊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마음속 깊이 주변사람들에 공감하면서 깊어지는 눈매.

거의 매일 전화를 하면서도 2년 반만에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게 된 언니와 나는 같은 방을 쓰던 그때처럼 자려고 누운 후에도 밤새 얘기를 이어가고, 바보같은 농담들에도 배꼽이 빠질만큼 웃을 수 있었으며 사소한 일로도 투닥거리며 즐거워했다. 함께 있을땐 그동안의 시간이 멈춰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싶었는데…지나고 보니 떨어져 지낸 시간 만큼 그녀의 눈매는 좀더 깊어져 있었던 것 같다.

함께 나이를 먹으며 그것을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막히게 행복한 일이다.
정말이다. 우리 둘을 연달아 낳아주시면서 고생했을 엄마에게 새삼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키우셨을때의 고생이 시간이 지나 이렇게 멋진 관계를 만들어주었으니 엄마의 고생은 조그만치도 헛된게 아니었다.
나도 나중에 애를 낳게 되면 꼭 딸들을 둘 이상 낳고 싶다.
이런 행복을 그들도 느낄 수 있게..

지하철에서 울던 사람

20080116

언젠가 한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메트로안에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 있는 여자를 봤었다. 눈이 빨갛던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손으로 계속 닦아내는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듯 보였다.
그때 그녀를 바라보며 분명 애인과 싸웠거나 헤어졌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그게 다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깨달았다. 지하철에서 울 수 있는 이유는 그보다도 훨씬 많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것과 상관없이,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다 쏟아내기 전까진 멈추지 않는다는걸.
이제 다 울었다.

그가 좋다

요즘 참 자주 생각하는 그.

폴 오스터씨…

그의 소설은 정말 단숨에 훅! 하고 읽게 된다면 그의 인터뷰는 아껴서 아껴서 매일 조금씩만 읽게 된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그가 했던 말들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는 정말 내가 사는 인생을 먼저 살았다, 그래서 너무나 많이 위로가 되고 나이를 떠나 나의 동료이자 선배같다. 그는 내게 언제나 자신감을 준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차근차근 어른이 되가기 시작할때,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올때 봇물 터지듯 이야기 하게 될 날이 올거라고 위로한다.
까뮈의 건조한 말투가 너무나 매력적이다가도 폴 오스터의 글처럼 미묘하고, 복잡하며, 결론적으론 참으로 단순한 글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는다. 오늘도 역시 그를 떠올렸다.
이곳에 글을 쓰면서도 우리가 말이 아닌 글로써 소통하고 있어서 참 좋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초 뒤에 날아가 버릴 말이 아니라서, 한참이나 멀리 갈 수 있는 글이라서 다행이다.

이제 남은건, 폴 오스터씨를 죽기전에 한번 만나보는것.

서른.

20080105

“이제 시간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지요. 무슨 얘기냐 하면, 예전처럼 자기 자신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일종의 놓아 버림인데, 그런 놓아 버리기를 통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12년 전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의 오랜 친구였던 시인 찰리 시믹이 축하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어린아이는 놀라운 존재지. 만약 내가 아이를 두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내가 랭보인 줄 알고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녔을거야.> 그는 아이를 갖는다는 경험의 핵심을 찔렀습니다.”

올해 초, 눈이 내리는 낯선 도시를 걸으며 내가 한국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어디인걸까,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걸까. 스무살에 들어서면서부터 잃기 시작한 방향감각이 시간이 지난다고, 상황이 변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서른을 맞았다.
스무살 그때보다 무언가가 나아졌다고 말할순 없지만 나에게로만 향한 궁금증, 스스로에게 퍼붓는 수많은 질문들이 이젠 더이상 괴롭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면 앞으로는 아니어도 약간 옆으로 한발짝쯤 움직였다고 봐야할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왠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사실 지금도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 사실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시간속에 내 자신을 놓아두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그렇기에 나이를 세는 일이 의미없는 일일수도 있다. 나이가 든다고 달라지는 것은 몇가지 없으니까..하지만 어쨋든 내가 나 이제 서른이다. 라고 내뱉었을때 그 말이 내게 가하는 전기적 충격은 짜릿함에 가깝다. 어쩌면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그런데도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내가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서.

올해도 작년처럼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이전과 같다는 것의 깊이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지금,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있길. 그래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조금전의 1초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공기의 흐름처럼 이음새 없이 이어져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