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February 2008

요즈음…

1. 인턴을 시작했다. LV 파리 아뜰리에에서..
아침 일곱시에 집을 나서 꽉꽉 찬 메트로를 타고 50분을 가서 커어어어다란 아뜰리에에 도착해 하루종일 집중해서 작업하고, 사람들 얘기에 귀 기울이고, 팀 디렉터가 하는 작업을 어깨 너머로 슬쩍슬쩍 훔쳐보다가…오후 다섯시 반쯤 다시 꽉꽉 찬 메트로에 지친 몸을 실어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겠고, 단지 주어진 작업, 오늘 하루에만 온 정신을 쏟아붓고 있는 일상.
만족, 불만족의 문제는 아닌것 같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

2. 머릿속으론 준비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집에만 돌아오면 정말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작업할려고 학교에서 도구도 모두 가져다 놨는데…인턴 끝나기 전에 하나라도 끝내야 마음이 편안해질것 같다.

3. 자비를 베푸는 행위에 대해.
지나가다 길거리의 사람에게 동전 하나 던져주는거 말고. 가까운 사람들을 매일매일 용서하는 행위…그것도 즉시, 바로 그자리에서, 생각같은것은 하지 말고. 상대방의 처지에 마음 깊이 동조하는 행위로서의 자비. 이 내용을 책에서 읽고 ‘진심으로 자비로워져야지’ 오늘아침 메트로에서 생각하고, 다짐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힘들어서 전화한 친구에게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다. ‘니 얘기 이제 그만 듣고 싶어’라고 소리질러버렸다….
물론 그러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생각한 것을 그날 저녁에도 지키지 못할거면서 어느 세월에.

4. 아참, 숭례문 기사를 봤다.
정말 우째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지 기가 탁 막혔다. 현판을 떼어낸다고 하는 것이 정말 말 그대로 ‘떼어내’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칠두게 하는 사진을 보고는 정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작년말부터 올해초까지..내내 한국만 생각하면 슬퍼지기만 한다. 우찌 될라고 도대체….

Promets-moi

affiche_promets_moi_zavet_2006_1

이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를 얘기해보라면, 이렇게 전혀 뜬금없게 멋진 영화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거. 마음만 먹으면. 토요일 아침 늦잠을 뒤로하고 오데옹까지 걸어간 수고를 웃음으로 돌려준 정말 멋진 영화!

## 이분은 대체 늙지도 않는지…정신없는 이야기와 대사들, 미쳐버린 음악..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괴물이 되는 쉬운 방법

최근에 있었던 몇가지 일.

1. 아는 동생이 곧 런던에 올 일이 있다며 파리에 들르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파리에서 저녁이나 한번 같이 먹자며 몇자를 적어보냈는데 그 말투가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건 무례가 아니다, 정말 무신경 그자체였다. 언제쯤 시간이 되냐도 아니고, ‘이삼일 정도 머물테니 저녁 한번 먹자, 어느때라도 상관없으삼?’ 이런 식이었다. 굉장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도 아닌데 말투며 내용이 모두 거슬렸다. 한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다가 결국 파리에 오게 되면 연락해라, 시간을 내보겠다 라고 좋게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저녁 그 이상, 그 이하도 같이 해주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말 한마디에, 아니 글 몇줄에서 사람을 잃고 사람을 얻기도 한다는데 한국말에 ‘S’il vous plait’ 나 ‘please’ 같은 표현이 없어서 생기는 미묘한 억양의 차이라면 길게라도 적어서 진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해볼 일이다.

2. 또 메일 얘기.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은 단 한줄이었다. 집주소 다시 알려줘. 메일을 읽는 순간 정말 문자 그대로 황당했다. 분명 내게 편지를 보내고 싶기 때문에 주소를 알려달라는 말일진데, 메일로는 인사도, 앞뒤도, 안부도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왜 나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걸까? 라는 의문이 든 것은 당연하다. 막역한 친구사이니까 더더욱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애틋한지 모르는 것일까. 왜 형용사와 부사, 심지어는 주어마저도 다 잘라내버리고서는 ‘말 안해도 알지?’를 강요하는 것인지…. 무신경. 그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단 한줄.

3. 새벽에 온 전화 한통. 여자친구를 쫓아 중국까지 간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자다가 전화를 받았으니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여자친구가 자기를 떠났다고, 자기는 이제 어떡하냐고 펑펑 울었다. 파리로 얼른 돌아오라고 겨우겨우 달래고 전화를 끊긴 했는데 그 뒤로 잠을 못이뤘다. 마음이 아팠고 걱정이 되어서,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너무나 미안했다.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혼자가 된 느낌이 어떨지 가슴 저리게 와닿았기 때문에 나도 함께 슬펐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로 그 친구와 연락이 안되었다. 전화기는 꺼져있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결국 어찌어찌 그 친구와 통화가 되었는데, 마치 별일 아니었다는 듯 얘길 했다. 괜찮다며, 해결해나가는 중이라고만 했다. 물론 멋쩍었던 것은 내쪽이었다.
괜찮아졌다고, 전화 한통 혹은 문자 하나 먼저 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을까.
별거 아닌것에 너무 예민한거라면, 그 별거 아닌 것을 못해주는 친구는 무신경한거겠지.

최근에 이런 일들을 겪으며,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느꼈다. 괴물이 별거인가, 관계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면 ‘나’만 존재하는 세상의 괴물이 되는거지.

사소한 디테일들에 정성을 다해야지, 정말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매일매일 노력하고 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