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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그리고 문주반생기

02022009

지난 일요일엔 루브르 박물관엘 갔었다.
남자친구하고 한동안 관람을 하고 나오는 길에 어쩌다, 정말 어쩌다 오벨리스크 얘기가 나왔다. 나폴레옹이 그것을 취하게 된 과정에 대해 그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사와는 너무나 달랐고 훨씬 덜 개관적이었기 때문에 그 일로 꽤 오랫동안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결국 증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여러가지 다른 관점들이 모두 그럴만한 것이라 여기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물론 이렇게 결론이 나기까지 서로 한두번씩은 삐친것 같다. ㅎㅎㅎㅎ)
아무튼 여차여차 그 과정에서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통찰력 있는 역사가를 통한 역사공부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날 그런 얘기를 하고나서 월요일날 출근길에 읽었던 문주반생기라는 책에 딱 그에 맞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참 그러고 보면 사람이 객관적이긴 정말 힘든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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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면오하였을 적의 자세한 기억은 지금 남지 않았으나, 그가 그 육중한 체구에 거대한 성량으로 이 초면의 백면서생을 위하여 종횡무진 도도, 쾌활히 설왕설래한 언설은 그가 듣던 대로 과연 심상한 학구가 아닌 열렬한, 패기만만한 대학자요, 정열적인 계몽운동자, 대교사임을 알기에 족하였다. 그러면서도 항시 미소를 띄우는 그 가느다란 눈은 어디까지나 다정하고 다사로운 인상을 내게 주었다. 그때 그가 내게 준 말은 일일이 생각나지 않으나, “역사가 과연 순수한 ‘학'(學)이라 생각합니까?” 라는 나의 소박한_그러나 내 딴에는 의미 심장한 물음에 대하여 그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였다고 기억된다. 그는 사학이 또한 본시 사람을 위한 ‘학’인 이상, 그것은 반드시 자연과학적인 의미의 냉철한 ‘과학’일 수는 없고, 또한 과학이어서는 안될 것이라 역설하며, 사학은 ‘목적’이 있어야하고 ‘감정’이 있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그때 아주 그의 이 다혈질적인 설에 경도되어 자리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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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퀴즈, 이 대목에 등장하는 육중한 체구에 거대한 성량을 가진 이 ‘심상한 학구가 아닌 열렬한, 패기만만한 대학자요, 정열적인 계몽운동자, 대교사’는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