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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알던 그녀에게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화두는 육아와 직업적 독립이다.

육아는 아이를 낳기 훨씬 전부터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왜 나는 이 모양인거지?’  ‘나와 같은 아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거지?’

이런 끔찍한 질문들로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어설프게 느껴져 닥치는 대로 육아서적을 읽어댔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컸다.

나도 어렸을때 저랬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끔은 그냥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나의 어린 시절이 치유가 될때가 있다.

마냥 행복하고 별것 아닌일에 웃어 넘어가던 그런 아이였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만으로 네살이 된 아이를 보면서 이제부터 육아의 목표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키우는 것이 아닌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함께해주는 것.

훨씬 많은 인내를 요하지만 여기까지 별탈없이 와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직업적 독립은 이제 마흔이 가까워 지니까 스스로 생산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점점 더 많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직업적으로 어딘가에 부속된 사람이다. 나는 생산의 주체도 아니고 책임의 주체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직업적 성취감은 딱 평균이다.

생산의 주체가 되기 위해, 직업적 자존감을 느끼기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중이다.

단지 독립을 하고 내 일을 하면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조직에 속한채로 주체적이 되기는 힘든것인가.

결론이 나지 않고 생각이 딱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조직을 떠날 준비는 안된것 같다.

 

고민이 훨씬 단순했던 10대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나를 바라봤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솔직하고 순수했던 그런 모습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을까.

마흔이 가까워져도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내가 문득, 10대의 내 모습에서 훨씬 확신에 찬 모습을 기억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