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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루 이야기

사토루는 바로 내 앞자리에서 일하는 회사 동료다. 일본인인 그는 나보다 한살이 어리다. 그런데 경력은 18년차다. 그러니까 열여덟살때부터 쉼없이 이 일을 한거다. 사토루만큼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을만큼 그는 내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전문가다.

그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아틀리에의 연장자로 또 전문가로 나름 내 영역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내 ‘선배’로 들어왔다. 그의 실력에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좌절과 겸손을 번갈아 느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나를 더 힘들게 했던건 그가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거들먹 거리며 마초적인 행동과 발언들을 해댔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힘들게 겸손해지려고 열심히 노력중인데 저런 태도를 가진 누군가때문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속에서 열불이 났다. 게다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으니 허구헌날 서로 말싸움과 신경전을 벌이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나는 사춘기 이후 사라져 버린 비꼬는 말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그는 점점 더 무례하게 나를 대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갈땐 늘 갑옷입고 화살같은 모진말을 열발 정도 장전하고 가는 기분이었달까. 아침에 서로 얼굴 마주보며 인사할땐 어떤 비장함도 느껴지고 말야..

그런데 이 전쟁의 무게중심을 늘 이리저리 옮겨놓는 이는 그와 나의 상사였다. 어쩔땐 내편, 어쩔땐 쟤편 이러면서 나름 중심을 잡으려고 하긴 했는데 그게 우리 사이의 감정을 더 악화시켰다. 어느날은 정말 하루 종일 일도 안하고 둘이 앉아서 말싸움만 한 적도 있다. 주제는 대부분 너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 너때문이다. 뭐 이런식…가족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데 이런 말싸움을 왜 쟤와 하고 있었던건지 나도 잘 이해가 안간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관계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아무튼 그런 기간을 6개월 정도 지내고 어느날 그가 무심한듯 이런 말을 했다. 불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때문에 프랑스인 상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같은 동료로 대접해주지 않는것 같다는 얘기.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래도 어쩔땐 여러 언어를 잘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나라 말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냉정한건 사실이다. 나도 그게 서러워서 처음에 죽어라 불어를 공부했던 케이스니까. 나에게는 사람들과 관계맺는게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보다 절박한 이유가 있었고 그게 좀더 빨리 불어를 배울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사토루의 경우 그 에너지를 일에 쏟은거고.

그와 내가 전쟁을 멈춘건 이때쯤이었던것 같다. 낯간지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좀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다고 해야하나. 질문을 할때 왜그렇게 방어적으로 답하는지, 실제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나쁜 사람처럼 보이게 행동하는 이유들에 대해 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신기한건 어느쪽이던 한쪽이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싸움이 멈췄다는거. 아무튼 지금은 그에게 담배를 몇대 피웠는지만 물어도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동료는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그는 친한 친구중 한명이다. 말주변이 없어 자주 주변의 오해를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밉지 않은 것은 일관성 있는 그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의 세계가 나는 별로 싫지 않다.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사토루도 절약이 몸에 베어있는데, 휴가를 다녀와서 7000유로 짜리 빈티지 롤렉스를 사왔다. 나를 보자마자 약 5분 후에 한 얘기는 휴가 잘 다녀왔냐도 아니고 ‘내 시계 봤어?’ 였다. 일주일 내내 롤렉스 얘기만 한다. 자기가 산 모델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200% 쯤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전형적인 덕후…

언젠가 소설을 쓸 날이 오면 얘에 대한 얘기를 꼭 하고싶다. 게다가 사실 그 정도로 싸우면서 쏟은 에너지를 생각하면 친구를 안하는게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고. 자자, 이제 칭찬은 그만하세. 내일 또 티격태격 하면 이 글 쓴걸 후회할 수도 있으니.

 

 

진짜가 아닌것들은 싫다

이 블로그로 말할것 같으면, 10년 넘게 내가 비밀스럽게 가꾸며 간직해온 곳으로 게시판도 두번이나 이전하고 도메인도 한번 바뀌는 온갖 수난을 겪어 지금은 찾는 이가 손에 꼽을만큼 적지만 나에게는 기쁠때나 우울할때나 슬플때나 언제나 내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준 기특한 곳이다. 나조차도 이제는 길고 지루하고 감정적인 것들은 1분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겨버리는데 이곳에서는 길고, 감정적이고 우울한 글들을 마음껏 써재껴도 된다. 한마디로 진득하고 참을성 있는 진짜배기중에서도 진짜, 진짜다.

별로 멋있지도 밝지도 않은 나를 마음놓고 드러낼 수 있는 이곳을 이렇게 오랜시간까지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괴팍하고 변덕이 심한 나의 심성 깊은곳 어느 지점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서 그런지 반전이 있는 사람들이 매력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때 미친듯이 몰입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것같은 것들, 몇십년에 걸쳐 지켜온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신뢰가 간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꽤 보수적인 분야라 경험이 경력의 모든것을 설명한다. 여기서 진짜 전문가를 구분하는 잣대는 실패의 경험이 많이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것이다. 노력도 해야 하지만 인내가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조건이다. 버티면 진짜가 되는 것이다.

가죽으로 된 가방을 직접 만들고 싶었던 이유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가죽의 매력, 분명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든 가죽제품은 그래서 시간이 지나야 진짜인지를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진짜다. 그런건 명품이라고 불러야 한다.

진짜라고 불리는 것들 대부분은 이렇게 시간이 만들어준 것들 아닐까. 고통스럽고 참기 힘든 시간들 조차 몇번이고 넘기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씩 진짜가 되어가는 것 아닌지. 그렇다면 진짜가 아닌 것들은 패션의 경우 zara나 h&m 같이 잠깐의 유행을 노리고 성공을 꾀하는 것들을 말하는건가. 음…그런 방법으로 꾸준히 몇십년이고 존재해왔다면? 그러면 가짜로 시작했지만 진짜가 되버린 것들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안갈땐 시간에게 물어보는게 최고다. 지금 너무 좋지만 당장 다음달이 되면 생각도 안나고 손도 안대고 싶어질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해서 몇번이나 결정을 바꿨던가. 시간이 모두 결정해줬다.

시간을 믿자. 진짜인지 진짜가 아닌지 저절로 알게 될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