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타협하다

cartier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채 저장소로 보내기도 전에 (밀려있던)파도같은 일상이 몰아쳤으니까. 잠깐, 잠깐만 5분만 시간을 줘..라고 말할새도 없이 파도가 밀려오면 바다에 몸을 담근 이상 맞아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몰아치는 파도. 정신없이 맞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다. 제자리에 있다가는 파도만 맞다가 하루를 다 보낼 수 있으니까.

유진이로 인해 반복하게 되는 일상이 버겁다고 느낄때가 있다. 아니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두가지를 모두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일상의 버거움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딘가에 감염된 것처럼 상처가 부풀어 오르고 미열을 동반한 고통이 일상을 지배해 사는게 버겁다고 느껴졌었는데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항생제를 먹은듯 부풀어 오른 곳이 서서히 가라앉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비단 한국을 다녀왔다는 환경의 변화때문만은 아니리라.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유진이와 온전히 단둘이서 3주를 보내고 나니 일상의 버거움을 이제는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물에 풍덩 빠졌다가 나와보니 이제 물이 편해진 느낌.

그리고 그사이 유진이는 또 컸다. 내가 살것 같으니까 이제서야 유진이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건지 아니면 나와 유난히 정서적으로 많이 연결되어 있는 아이니까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유진이도 그에 맞게 변화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보니 유진이가 많이 달라져 있다.

유진이는 이제 어른의 말을 알아듣는다. 상황의 인과관계, 어떻게 했을때(혹은 하지 않았을때) 어떤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프린스의 sometimes it snows in april 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며 나도 모르게 이제 이 아저씨의 노래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했다. 왜냐고 끈질기게 묻는 아이에게 건강이 안좋아져서 죽었다고 이야기 해줬다. 딱히 떠오르는 거짓말도 없었고, 좀더 아름답게 얘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유진이는 죽음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죽으면 엄마 아빠를 다시 못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가슴아프도록 좋아한 프린스의 전설은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채소를 잘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로 결국 끝을 맺었다(나의 젊은날 우상이 이렇게 또 일상속으로 평범하게 묻혀간다). 그날 이후 유진이는 채소를 먹으라는 내 잔소리에 죽은 그 아저씨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상을 쓰면서도 스스로 더 먹으려고 애를 쓴다.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불안을 행동의 동기로 이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하면 안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뭔가 내가 가진 중요한 동기의 원동력을 비슷한 방법으로 심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불안이 뭔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끌림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그 비율이 반반 혹은 삼분의 이정도는 되어야 할것 같은데…그래 앞으로는 방법을 좀 달리해보자.

이런 돌이켜봄이 있을 수 있는것도 이제는 일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일상의 ‘변화’ 라는게 사실은 엄청난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변주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내게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상과 맞서 싸울수는 없다. 일상이라는 파도를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바꾸는게 좋은것 같다. 이제는 이 반복되는 일상을 이용해 매일 단 얼마간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한가지에 몰입해 수행하듯이 반복해나가는게 낫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체인을 끊을 방법은 없고, 그걸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겨우 찾아낸 합의다. 나쁘지 않다. 이 작은 변주가 10년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보기로 하자.

 

변화에 대하여 그 핵심을 표현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주제다. ‘지금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는 불행한 자각으로부터 변화는 시작한다. 이 간격을 못견디는 절박한 사람들만이 이 길을 선택한다. 변화는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작업이다. 자신에 대한 창조적 증오 없이는 이 에너지를 공급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변화가 매우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로 향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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