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남겨두고 싶은것 / Pour se souvenir

우리는 누구나 어리석다고…

어디서 읽은것 같은데. 이말이 이상황에서 위로가 될줄 몰랐네.

오늘 나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다섯살짜리 아이에게 논리적인 설명이 왜 통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채 화를 냈다. 이렇게 꽉 막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많이 봤던것 같은데 그게 나였다니.

엄마로서 깊이 반성하며 다음번에 또다시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땐 약간이라도 덜 어리석게 행동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적어놓는다. 또 함부로 누군가를 어리석다고 판단하기 전에 나야말로 다섯살짜리와 힘겨루기를 하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임을 잊지 말자.

 

 

소설 <28> 그리고 옛대통령

정말 간만에 삽시간에 읽어내린 소설이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 다른 누구보다 절절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쫓는 나에게 정유정이라는 소설가는 여러가지 의미로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더 그녀의 소설을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러움이 질투가 되어 나를 괴롭힐것만 같아서.

아무튼 이제야 읽게 된 <28>이라는 소설은 500페이지 가까이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훅훅 넘어간다. 처음 한두페이지를 넘긴 기억은 나는데 그뒤부터는 어떻게 종이를 넘겼는지 기억이 안나고 정신 차려보니 책의 반이상을 읽은 후다. 그만큼 흡인력 있고 단시간에 100%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이야기는 자신이 아끼던 썰매개들을 썰매경주에서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한남자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시작한다. 슬픈 눈을 한채 세상을 등진 이 남자는 산속에서 수의사로 살아가며 다치고 버려진 개들을 홀로 돌본다. 그러다 이야기가 다른 국면을 맞는 것은 그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써 동물병원에 들어오는 후원을 끊기게 한 여기자의 등장과 사람과 개에게만 감염되는 전염병이 돌면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착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 끝맺었다면 끝이 허무한 헐리웃 영화로 기억에 남았을테지만 소설은 소설 내내 등장했던 ‘착한 인물’들을 차례로 죽이고 끝에는 주인공 남자까지 죽이며 우리에게 묻는다. 도덕과 윤리가 아닌 생존본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게 의미있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매일 닥치는 상황들을 해결하기 급급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지금 내가 잘못살고 있는것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때가 많다. 나에게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연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신의,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은 연대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에서 동료들과의 연대를 찾다간 조직에서 떠밀려날테고 아무런 힘도 없는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연대를 요구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것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대한 핑계속에서도 스스로 우뚝 서 연대를 부르짖는 남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나는 딱 한번 그런 사람을 본적이 있고 그사람을 내손으로 선택하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그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뛰어넘지 못하고 조직에서 떠밀려 안타까운 결말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빛바래지진 않는다.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남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문득문득 떠올리게 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동물들과의 연대조차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자의로 사람들과의 연대를 거부한 채 산속에 틀어박힌 남자 주인공은 속죄하듯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생명)을 타인에게 내놓는다. 인간답게 사는것,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주인공을 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손으로 선택한 옛대통령을 떠올린다. 요즘 한국뉴스를 보며 특히 더.

인간답게 살자, 그러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삶이 의미있지 않을까.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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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언제나 나를 기분 좋고 흥분되게 하는 일이다. 아무런 기대없이 모래사장을 걷다가 전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독특한 조개껍데기를 발견한 기분과 비슷하다. 오묘하고 매력적이어서 집으로 가지고 오려고 주머니속에 넣어오는 기분. 너무 궁금하고 설레여서 집에 가는 내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조개껍데기를 만지작 거리게 된다. 자꾸만 그 사람에 대해 꺼내보고 생각해보고 기억해낸다.
최근 나를 즐겁게 한 만남들의 기록.

 

1. 그녀
몇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그때의 첫인상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매력적이었다.
뭐랄까 너무 자연스럽고 솔직한데 그 모습 그대로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매력적이라고 해야하나. 털털한듯 아기자기하고 무딘듯 예민하며 툭툭 내뱉지만 언제나 배려넘치는 상냥한 말투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말투로 자신의 딸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다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고싶어진다.

이런 그녀의 심성은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어떤 사진작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가득한 그녀의 사진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독특한 그녀만의 감성이 있다. 자주자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2. 그들
주말에 후즈넥스트에 갔다가 알게 된 ‘페이드 아웃’이라는 브랜드의 디자이너 둘. 남들이 버린 청바지를 수거해 해체한 후 다시 새로운 의상으로 탄생시킨다. 근데 그 의상들이 보통 괜찮은 옷들이 아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안입는 옷 들고와서 오리고 붙여서 만든 그런 학예회 의상이 아니라 정말 독특하고 쿨한 옷들이다.

게다가 이런 의상을 만드는 이들은 더더욱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커플인 두남자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확신있는 말투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데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순간 팬이 되어버렸다. 브랜드의 직원은 그들 단 두명뿐이다. 둘이서 디자인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것을 한다. 과장이나 허세는 찾아볼 수 없고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느낌이었다. 세번째 컬렉션밖에 발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기대하며 이들의 발자욱을 쫓게 될것 같다.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마음이 통해서, 최근 나를 들뜨게 한 이들과 어떤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 조개껍데기처럼 내 마음속에 문을 하나 열어놓은 기분. 대화를 나누는 순간과 그 이후에도 반짝이는 무언가가 빛났고 그게 계속해서 빛나고 있으니까 만남은 교감으로 변화한거다. 그 교감이 정말이지 오랫만에 나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집에 오게 될 작은 사람

이제 출산일이 다가오니 마음도 바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너무 많다.

새로운 사람을 집에 맞는 거니까 청소도 다시 해야하고 옷이랑 이불도 다 빨아놔야 한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이 모든 일이 귀찮지가 않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

어디서 읽은 글인데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출산준비를 하는 일 중에는 그저 단순노동이란 하나도 없는 듯 하다. 모두 마음을 가다듬는 일, 좋은 생각을 동반하게 되는 일’

아기를 갖지 않았더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이 문장에 요즘 정말 많이 공감하게 된다.

아기를 위한 옷을 사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때도 그냥 사게되는 건 하나도 없다.

머릿속으로 아기가 입고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여러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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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아기 갖고나서 얼마 안있어 만든 이불.

처음엔 옷도 만들고 이것저것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완성한건 요 이불 하나.

뭐라도 하나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어찌되었든 만족한다.

나중에 아기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자기만을 위해서 직접 만들어준 물건이라고 기억하고 오래도록 간직해줬으면 좋겠다…

이 작은 사람이 내 뱃속에 있기 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사랑해왔던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만날 날이 얼마 안남았다!

 

 

굿바이 평양

한동안 한국영화를 못보다가 바캉스를 맞아 오랫만에 한국영화들을 찾아봤다.

그중에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들을 운좋게 보게됐다.

첫번째는 ‘악마를 보았다’.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정말 영화란 참 재밌는 도구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화면이라는 작은 공간안에서 그렇게 깊고도 넓은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지.

화면이 아주 자극적이긴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메세지는 굉장히 무겁고 쓸쓸하다.

영화가 가진 모든 방법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장면은 경철이 택시안에서 두사람을 살육하는 장면.

좁은 공간에서의 살인이라는 장면을 너무나 리듬감있게 표현한 감독의 감각에 놀랐다.

그리고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엔딩.

좀 놀랐었다… 후회, 회한, 쓸쓸함, 고독, 패배감..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너무 실제적으로 다가와서.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이병헌의 연기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영화는 ‘굿바이 평양’

이런식의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특히 북한에 사는 일본태생의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더욱 좋았다. 지금까지는 주로 일본에 사는 조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으로 터전을 옮긴 조선인들의 사는 얘기는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 같다.

북한태생도 아닌 제주도 태생의 한 가장이 자신의 삶 전체는 물론 자식들의 삶까지도 모두 북한의 그것으로 ‘결정’을 했다는 것에 이런저런 호기심이 생겼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와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과 실천, 용기가 깃든 결정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감독의 조카인 선화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엔딩도 역시 좋았고.

 

 

Inspiration! 멋진 여성!

오늘 이것저것 뒤져보다 찾아낸 디자이너.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젊은 중국계 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옷이 정말 예쁘다.

갑옷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저렇게 많은 주름을 하나하나 잡았다고 하는데 의외로 너무나 여성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디자인인것 같다.

아시아계 여성, 남성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정말 놀라울 뿐….

아시아 디자이너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여백에 대한 충분한 여유와 디자인에 대한 정성이랄까,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는듯한 디자인.

게다가 이름까지 참 특이하니 서양사람들이 안좋아할 수가 없다.  Yiqing Yin 이낑 잉.  멋있다!!!!!

 

오벨리스크 그리고 문주반생기

02022009

지난 일요일엔 루브르 박물관엘 갔었다.
남자친구하고 한동안 관람을 하고 나오는 길에 어쩌다, 정말 어쩌다 오벨리스크 얘기가 나왔다. 나폴레옹이 그것을 취하게 된 과정에 대해 그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사와는 너무나 달랐고 훨씬 덜 개관적이었기 때문에 그 일로 꽤 오랫동안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결국 증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여러가지 다른 관점들이 모두 그럴만한 것이라 여기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물론 이렇게 결론이 나기까지 서로 한두번씩은 삐친것 같다. ㅎㅎㅎㅎ)
아무튼 여차여차 그 과정에서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통찰력 있는 역사가를 통한 역사공부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날 그런 얘기를 하고나서 월요일날 출근길에 읽었던 문주반생기라는 책에 딱 그에 맞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참 그러고 보면 사람이 객관적이긴 정말 힘든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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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면오하였을 적의 자세한 기억은 지금 남지 않았으나, 그가 그 육중한 체구에 거대한 성량으로 이 초면의 백면서생을 위하여 종횡무진 도도, 쾌활히 설왕설래한 언설은 그가 듣던 대로 과연 심상한 학구가 아닌 열렬한, 패기만만한 대학자요, 정열적인 계몽운동자, 대교사임을 알기에 족하였다. 그러면서도 항시 미소를 띄우는 그 가느다란 눈은 어디까지나 다정하고 다사로운 인상을 내게 주었다. 그때 그가 내게 준 말은 일일이 생각나지 않으나, “역사가 과연 순수한 ‘학'(學)이라 생각합니까?” 라는 나의 소박한_그러나 내 딴에는 의미 심장한 물음에 대하여 그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였다고 기억된다. 그는 사학이 또한 본시 사람을 위한 ‘학’인 이상, 그것은 반드시 자연과학적인 의미의 냉철한 ‘과학’일 수는 없고, 또한 과학이어서는 안될 것이라 역설하며, 사학은 ‘목적’이 있어야하고 ‘감정’이 있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그때 아주 그의 이 다혈질적인 설에 경도되어 자리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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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퀴즈, 이 대목에 등장하는 육중한 체구에 거대한 성량을 가진 이 ‘심상한 학구가 아닌 열렬한, 패기만만한 대학자요, 정열적인 계몽운동자, 대교사’는 누구일까요?

해지 그리고 재가입-2006/08/12

이사를 할때쯤 나는 파리에서 내가 등록되어 있는 모든 것에서 놓여났었다.
모든 계약을 해지했고, 모든 자동이체로부터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집계약까지 모두 끝난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몸만 훌훌 떠나면 되는거였다. 난 파리에 있는 그냥 자유인이었던 거다.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모든 것이 유쾌했고, 당장 끝나버려도 미련이 남지 않을것 같은 만남에도 온 마음을 다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부터 놓여난다는 것.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는 느낌은 잠깐이지만 생경하면서도 참 편안했다.

이사를 한지 한달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 유선전화는 물론 인터넷도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시금 어딘가에 매여져야 한다는 것에 나도 모르는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딘가에 정박하고 싶다, 그러나 어딘가에 매여지고 싶지 않다는 모순 사이에서 나는 매일 갈등을 한다. 떠나온 것이 결국 어딘가로의 정착으로 귀착되어 버린 이 일상의 무서운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건지. 더이상 떠날 곳도 없는데 말야..

재가입, 그러나 언제든 줄을 끊고 멀리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박. 그런 생각을 한다 요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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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4
2년전 이사할때와 며칠전 이사를 했을때의 기분은 참 많이 달랐다. 예전엔 정말 무언가 다급했고, 벼랑에 몰려있는 듯 했다.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곧 떨어질것처럼 아슬아슬한 날들이었는데….지금은 일상에서 놓여나는것도, 묶여있는것도 모두 선택해서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으니, 언제든 on/off 할 수 있을 것만 같긴한데…잘 모르겠네.

지평을 넓혀라 -2006/09/04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을것 같다.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시간?..뭐 거창한 이름을 붙이자면 그런거지만, 내면에서 뭔가가 확 바뀌는 듯한 요동이 일어나는 내면의 2차 성징기.
나의 경우는 대학에 입학해서 2학년1학기를 마친 후 처음으로 휴학을 했을때였던 것 같다..물론 아르바이트 한답시고 휴학을 하긴 했지만 사실 일을 한 시간보다 집에서 혼자 보냈던 시간이 더 많았었다. 그때, 정말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서 집에 있던 책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우리집에 이런 책이 있었나? 싶을만큼 생전 처음 본 책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는데, 첨엔 심심해서 읽다가 나중엔 오기가 생겨서 휴학한 동안 집에 있던 안본 책들을 전부 다 읽어보리라 결심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초겨울 코끝이 찡해오는 차가운 공기처럼 믿을 수 없을만큼 신선하고 생경하다.

생물의 진화라는 라면국물이 여기저기 튀어 있던 만화부터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지상의 양식..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까지 허기진 짐승처럼 아구아구 섭취했었다.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두려움에 떨며 입속으로 집어넣던 크로노스의 절실함으로 지식을 먹어댔던 기억.

휴학한 동안엔 몰랐지만 그리고나서 학교로 돌아갔을때 그때 보이던 세상은 분명 뭔가 다르긴 달랐다. 네오가 빨간 알약을 삼키고 나서 보게 된 진짜 세상의 모습같은거?..아무튼 확실히 무언가 넓어진 것 같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의 이면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무엇을 주입하기 위해 저리도 열심인건지를 볼 수 있을것 같았다.
그 스무살 즈음에 지금의 내 머리사이즈가 다 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흐흐.

아무튼 그리고 나서 제대한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미친듯 여행을 다니고, 졸업, 사회생활, 사업, 파리 그리고 홀로됨.
스무살 그때처럼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던 그런 팡!하는 성장은 느껴볼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아주 느리게 조금씩 나도 남도 느낄 수 없을만큼 아주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것 같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어디에서 그것을 확신할 수 있냐면, 타인과의 어울림이 더이상 불편하지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이 보여질때다. 그것은 어떤 지식같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기때문에 단지 나만이 알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차이다.

타인과의 어울림. 나 외에 타인이 느끼는 감정, 내 존재 외의 다른 존재가 나만큼이나, 때론 나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렇게도 당연한데도 인정하기 힘든 일인건지.
이미 그것을 터득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넓디 넓다란 내면이, 자신을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그 상태가 얼마만한 경지인건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충만감이란 어떠한 것인지..감조차 잡기 힘들다.

나를 잊어야 한다. 내 자신을 잊어야 비로소 나의 지평은 넓어지고, 내 속에 내가 하나도 없게 될때,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은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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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4
몇년전에 예전 게시판에 적어두었던 글인데, 우연히 이곳저곳 뒤지다가 발견했다.
2년전에 썼던 글속에 내가 추구하던, 이르고 싶어하던 모습에 대한 얘기가 적혀 있길래 여기에 다시 옯겨 적는다.
“타인과의 어울림. 나 외에 타인이 느끼는 감정, 내 존재 외의 다른 존재가 나만큼이나, 때론 나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니.

참 멋진 답변

최근에 폴 스미스가 한국을 방문해 김 뭐시기라는 스타일리스트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김 뭐시기의 질문은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폴 스미스의 답변은 한결같이 멋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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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폴 스미스 가게에는 모든 것들이 젊어요. 이미지도 젊고 매우 독특하죠.

폴 : 감사합니다. 저는 뻔한 방식으로 사고하려고 하지 않아요. 기존의 디자이너나 디자인 회사에 실망할 때가 있어요. 그들이 서로만 바라보고 잡지만 들여다보면서 뭐가 유행이고 최신인지만 알려고 하기 때문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잡지나 인터넷을 잘 보지 않아요. 저는 그저 제가 되려고 합니다. 제 본모습을 찾으려고 하죠. 순수한 태도가 중요해요. 그건 유치한 것과는 다르죠. 늘 호기심을 갖고 “왜?”라고 물어봅니다. 또 파티나 인맥에 연연하거나 유명인처럼 살지 않아요. 몇몇 친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하게 지내려고 해요.

김 : 저는 런던이라는 도시가 참 좋아요. 당신은 어떤 도시를 가장 좋아하세요?

폴 : 저는 런던에 살고 런던이 좋지만, ‘가장’이나 ‘최고’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간마다 기분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런던을 사랑하지만, 파리의 낭만을 좋아하고 뉴욕의 에너지를 좋아해요. 로스앤젤레스의 여유로움도 좋아하죠. 모든 것에는 좋아할 수 있는 거리나 연유가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나 호텔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나요? 그 때 기분에 따라 다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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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어른으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의 말대로 언제나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