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똥파리 / Paris

소소하지만 꽤 진지한 일상들

2011년, 파리에 산지도 어느새 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한참 후에 50이 넘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를 꼽아보라면 아마 지난 5년여가 꼭 들어가있지 않을까 생각된다.(지금 이후에도 계속 열심히 살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에 ‘중 하나’로 남겨두세~)
지지부진하게 사랑에만 관심을 보이던 20대를 지나 나 자신과 어떤 일에 꾸준한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기쁨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 최근의 몇년이 20대의 10년의 시간보다 훨씬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얼마전 엄마와 통화하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지금 한국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한참 사회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사는 곳은 달라도 내 동기와 선배, 후배들도 나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열정을 쏟아 일하고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멀리 있어도 같이 가고 있는 것 같아 흐믓해진다. 같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그냥 그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에너지를 내뿜는가보다.

직장생활 2년차. 이제 또다시 도전하고 싶어진다. 더 멀리가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쯤에 있건 그냥 내 자신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다. 그래서 올해는 또한번 도전을 할 생각이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과연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모두 뛰어넘게 될지…걱정되는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벌써 마음은 설레고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가 나는 참 좋다.

만약 원하던 결과가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그냥 지금까지의 일상을 그대로 살 수 있을 에너지와 자신감이 남아있을거란걸 확신한다. 그건 내 힘이 아니라 나를 무조건 믿어주는 남편의 힘이다.

2011년은 내게 기대이자 도전이다. 
이곳에 오는 모든이들게도 이 기대감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서른둘

서른둘….
하나씩 하나씩 별개의 벽돌을 쌓는 건줄 알았는데 올해 쌓는 돌은 작년의 것에서 나온 건가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내일을 실감한 것이 벌써 몇년이나 됐는데 이제야 겨우 어제가 작년으로 개념이 넓어지고 있다.

참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와버린 것 같은 나이.
나는 하나도 안변한것 같다.
여전히 서툰 것들엔 늘 서툴고 기분좋게 하는 것들은 늘 비슷한 이유들이다.
그런데도 새삼스레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나역시 서른둘의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지금의 나보단 훨씬 나은 사람인 것 같아서…나와는 다른 것들에 서툴고 내가 기분좋게 여기는 것들에 별것 아닐 수 있는 무덤덤함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에.

그래도, 어찌되었건, 난 지금 여기 있지 않은가. 제일 중요한 거지.
어쨋거나 존재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니까.

서른둘에 이렇게 투덜대는 나를 보며 남편은 또 늙은척 한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가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한국말을 할때쯤엔 그도 서른둘을 이미 살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 이렇게 늙은척 했던 나를 귀엽게 봐줄거라 기대한다. 후후후…

결혼

05232010

누군가는 솔로들의 무덤, 모든 자유의 끝이라 하지 말라고 그러고.
혹자는 또다른 성장의 시작이라 어른이 되기 위해선 꼭 지나야 하는 과정이라 그러고.

잘은 모르겠지만. 해보려고. 자유의 끝엔 뭐가 있나 끝까지 가보려고.

중요한 것들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
웃음은 모두를 편안하게 함
무엇보다 옳다고 믿은 일은 끝까지 믿을것
성공적인 경력보다는 내면의 균형이 훨씬 중요함

회사에서 정말 화나는 일이 있었다. 정말 오랫만에 이렇게 뚜껑이 열렸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오랫만에 당당하게 화를 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나서 3일 정도 지나 생각해보니 일이 내게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일이 아니고 그냥 내가 하는 여러가지 중 하나일뿐인데 왜이렇게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했었지. 언제든 그만두고 나가도 상관없는것 아닌가. 왜 이렇게 일에 미친사람처럼 매달려 있는거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화를 낼 일도, 그렇게 심각한 일도 없었는데.
화가 났을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언젠가는…..

정말 오랫만에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보낸 주말이었다.
서른번째 생일을 맞는 친한 친구의 3일간의 대규모 파티를 지켜보며 너무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속에서 오랜시간동안 갇혀있는 것이 정말 불편하다. 아는 사람들이든 모르는 사람들이든 며칠간 연속으로 함께 지내다보면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미치도록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집이 생겨난걸까 싫은 것들이 전보다 훨씬 더 싫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속에 지내는 것이 싫은 이유가 아마도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인것 같다. 혼자일때보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때 외로움이 더 심하다. 다양한 여러사람들이 있기에 ‘쓸데없는’ 그러나 그 상황에선 매우 쓸데있는 농담들이나 그냥 별 내용없는 얘기들을 생각없이 하고 듣는것이 괴로운 것 같다.

게다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음식.
3일내내 고기만 먹으려니 나중엔 정말 힘들었다.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5년이 다되어 가는데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것들이 남아있구나….
마음맞는 친구들과의 저녁 술한잔, 시간가는줄 모르고 나누던 정말 쓸데 있는 대화들, 정갈한 나물반찬들…언젠가는 이 모든것들이 그립지 않아도 될때가 올까.
여전히 자신이 없다.

화려함뒤에 너무 많은 절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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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Anna가 디자이너 Alexander McQueen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메일로 보내줬다. 기사를 읽다가 눈에 들어온 Isabella Blow 라는 이름.
알렉산더 맥퀸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를 후원해줬던 에디터겸 스타일리스트라는데 2007년에 자살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자살과 얼마전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 그를 자살로 이르게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도대체 Isabella Blow가 누구길래 그녀의 죽음이 그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줬던걸까 궁긍해져서 그녀의 행적을 뒤적거렸다.
그런데 그녀의 기구한 삶이 나에게 너무나 큰 의문과 여운을 남겼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남동생의 죽음, 부모의 이혼, 불안했던 부모와의 관계, 두번의 결혼, 불임, 남편의 바람, 우울증, 난소암 선고, 여러번의 자살시도로 상처투성이가 된 몸….결국엔 마흔여덟의 나이에 파티가 한창이던 어느날 친구들을 집에 남겨둔채 살충제를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삶의 고문속에서도 패션에 대한 열정과 타고난 감각으로 천재적인 모자디자이너 Philip Treacy와 패션계의 악동이자 바로 며칠전에 자살한 Alexander McQueen 그리고 여러명의 세계젹인 슈퍼모델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재능을 세상과 연결시켜주었다. 자신의 어머니의 분홍색 모자를 써본것이 처음 패션을 접하게 된 계기였다고 고백한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선 어머니를 평생 용서하지 않을거라고 얘기했었다고 한다.

불안했던 부모와의 관계를 만회하려는 듯 그녀는 그녀가 발굴한 디자이너를 돕기위해 자신의 아파트를 작업실로 내주거나 컬렉션의 모든 옷을 자비로 사들이는 등 물심양면으로 디자이너들을 도왔다. 그러나 그러한 애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돌아왔던 것은 사람들로 인한 좌절과 상처였고 방패를 하고 다니는 사람처럼 어디든 늘 엄청나게 커다란 모자나 아예 얼굴을 가려버리는 독특한 모자들을 쓰고 나타났다. 실제로 어떤 인터뷰에서 누군가 왜 그렇게 큰 모자를 쓰고 다니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사람들이 내게 가까이 오지않게 하기위해” 라고 대답했었다.

Alexander McQueen이 그녀의 자살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 역시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첫눈에 그의 재능과 끼를 알아보고 당시 학생이었던 그의 졸업컬렉션의 모든 옷을 구입하며 그를 후원했음에도 결국 몇년 후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고가에 매각했고 매수인까지 연결해준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협상테이블에서 제외된채 공짜 드레스 몇벌이었다.

모든것이 너무나 불안했던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패션 그리고 모자. 우울할때면 Philip Treacy를 찾아가 그의 새로운 모자들을 써보고 그러고 나면 치료를 받은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는 그녀. 그렇게 재능있고 열정이 넘치며 매순간 모두에게 모든 것을 주었던 이가 왜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왜 그런 사람들은 자주 그렇게 불행해지는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 불행이 그녀를 그토록 재능있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그래야만 우리는 무언가를 절실하게 열망해 다른 누구보다 잘해내고 마는 것일까. 그 모든 불행과 절망이 바로 재능의 다른 이름이라면 삶은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우리의 아니 나의 마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무겁다. 그들이 더이상 이곳에 없어서가 아니라 부러움을 샀던 그들의 재능이 바로 그들의 심장을 파고드는 아픔의 댓가였다는 사실이…

마지막 자살시도 후 그녀를 발견한 여동생에게 “(살충제를)충분히 들이키지 않았을까봐 걱정됐었어” 라고 얘기한 후 그녀는 다음날 숨을 거뒀다. 그녀는 죽음 후에도 Philip Treacy가 그녀를 위해 만든 모자와 함께 묻혔다고 한다. 멋이라는건 이렇게 일관성있는 사람들에게만 헌사해야 하는 단어가 아닐까.

근황….

홈페이지에 글 올리는 일이 이다지도 뜸한것을 보니 아마도 나의 연애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뜻인가보다.
대략 나의 글쓰는 패턴을 보면 솔로이거나 이별직후일때 하루에도 두세개씩 글이고 사진이고 마구 올린다. 그러다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 글이 진짜 뜸해진다. 전체적으로 대외적인 모든 활동이 뜸해지는것 같다.
아무튼 연애를 핑계삼아 게을리했던 최근의 안부를 전하자면..


여전히 회사 잘 다니고 있다. 올해는 나도 입사한지 1년이 넘어서 보너스를 받는다. 연봉도 아주 쬐금 오르고.
원래 경쟁하기를 좋아하고 이기는것도 좋아하고 그래서 인정받는것을 좋아하는 기질이라 다른 팀원과 똑같은 제품을 비슷한 시기에 진행할땐 정말 재밌다. 실수도 덜하고 빨리 끝내고 평소보다 더 잘하는데 나한테만 맡겨지는 프로젝트들은 이상하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도 많고 재미도 덜하다.
앞으로 세걸음쯤 갔다가 뒤로 한걸음물러서고 지금은 다시 한걸음쯤 다시 앞으로 나가는 중.
올해도 계속 이 회사를 다닐 생각이고 적어도 몇년간은 그럴 계획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은.


보통의 존재를 읽다가 내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 2년전만 했어도 이런 류의 에세이집의 많은 내용들이 나를 감동시켰을텐데 이젠 더이상 재밌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이런 자기고백서가 싫증이 난 것은 아마도 그런 것들이 굳이 돈을 내서 사 읽을만큼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오래전부터 인정을 하게 된것이다. 나 역시도 그저 보통의 존재라고….그걸 뭐 굳이 책까지 읽어가며 되새길 필요가 있나.
속죄라는 소설을 읽고있는 중인데 이언 맥큐언이라는 작가가 가진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 처음엔 꽤 지루했는데 이 사람의 표현법에 익숙해지자 곳곳의 표현들이 아주 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한국말로 번역된 것일텐데도 운율이 느껴진다.

영화
아바타를 봤다.
정말 오랫만에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들었던 영화.
상상력을 자극하고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사롭잡히게 만들었다.
특수효과라는 것이 정말 멋지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생개근상

한 두달쯤전인가 동네슈퍼에서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동양여자를 본적이 있다. 날카로운 얼굴선과 눈매가 한국인일거라는 인상을 줬었다. 무표정한 얼굴표정이 모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도 같고. 그 며칠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우연찮게 횡단보도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오는 발걸음이 무거워보였고 회색빛의 얼굴이 슬퍼보인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건물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사라질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뒤로도 몇번씩 집 근처에서 마주친걸 보면 아마도 그 건물이 그녀가 사는 집이었나보다.
그리고는 지난 금요일아침 인터넷에서 한국모델 김다울이 파리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니 집근처에서 몇번이고 마주쳤던 그녀였다. 무거운 발걸음, 슬퍼보이던 얼굴은 거짓이 아니었나보다. 외국에서 그것도 동네에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과 몇번이나 마주쳤으면 말이라도 걸어봤어야 했던건 아닐까 하는 알수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녀의 죽음이 내가 파리에서 보낸 첫해를 떠올리게 했다. 온지구로부터 혼자 떨어져 나온것만 같던, 외로움과 두려움이 내 주변의 공기를 가득 채우던 그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의 외롭고 혼란스럽고 죽은듯이 더딘 시간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도 그녀를 길에서 몇번이나 보고도 곧 잊어버렸을테고 금요일 아침 그녀의 사망기사를 보고도 내 인생의 어떤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녀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일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4년전 그 시간들이 지금의 다른 나를 있게 했으니 또 그런 나를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으니 어찌되었든 더디기만 했던 그시간들을 살아낸건 잘한것일것이다.

사는건 저마다 힘든 일이다. 외로우면 외로워서, 유명하면 유명해서, 친구가 많으면 많은대로, 똑똑하면 똑똑해서. 그런데도 이 시간들을 끝까지 살아내는건 중요하다. 결국 삶 끝에 어떤 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논리나 슬픔 감정보다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명확하고 확실한 삶의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개근상은 늘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상같은데도 가장 오랜 노력이 필요한 상이기도 한 것 같다.
‘단지’ 지속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일은 쉬운게 아니다.

서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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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친해지면 사람들이 자주 내게 하는 말들이 생각보다 덜렁대고 허술하단다.
예전엔 그냥 ‘매력적인 빈틈’으로 나름 좋게 해석했는데 요즘엔 그말이 다르게 해석된다. 내가 사는데에 참 서툴다는 쪽으로..
사는게 서툴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는데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면서 내가 손해를 안보는 그런 처신이 참 서툴다고 해야하나.

이번에 여행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었는데 이것 역시 그중에 하나. 서툴어서 좋은 사람들을 그냥 보내고 서툴어서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단 생각.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데 꼭 필요한 기술들이 있다면 나는 그 기술들을 별로 잘 갖추고 있지 못한것 같다는 고통스러운 수긍같은거…
아마도 최근 들어서 그 기술들이 더더욱 아쉬웠던 것은 이제 나는 서른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할때 이게 지금 내 나이게 맞는건가 그런 의문들이 들어서 한동안은 정말 힘들었으니까…
어쩌면 어른스럽게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현정이 아닌 그냥 보통 서른살의 여느 여자들처름 되도록 이끌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때때로 나를 돌아봤을때 너무나 견딜수 없었던 이유도 나에 대한 그런 인상들 때문이었던것 같고.

그런데 꽤 고통스러웠던 반추의 과정끝에 마침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어른이 안되어도 상관없다고..그냥 나는 어느 나잇대의 누구로 정의되기 보단 조현정 그자체이고 싶다고. 만약 그 자체가 별로 괜찮은 사람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나는 그 자체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서툴어서 그런거라면 괜찮다.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기술들은 이렇게 배우면 되는거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건 참을수가 없을 것 같다.

어쨋든 여행은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분간은…

나도 모르게 배우는 것들

요즘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해가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라는 말을 감히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예전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던 것들이 용납되어지고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거야’라고 얘기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 그럴수도 있겠지라고 진심으로 되놰이는 단계까지 이르려면 그냥 나이만 먹어서는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나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고 고쳐야 하며 내가 별것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요즘 불행한 내 친구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무진장 애쓰면서 ‘이해’라는 것이 얼마나 더디고 폭넓으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배우고 있다.

나에겐 참 소중한 친구, 그는 모든면에서 나보다 나아보이지만 늘 무언가가 불안해보이는 사람이다. 자신감 없고 우울해보이며 창백하다. 내가 그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게 된 이유는 많고도 많지만 인간관계 좋고 모든 것을 가진듯한 일면과는 달리 항상 자신없어보이는 모습이 나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그를 관찰했고 화려한 그 모든 겉모습들이 자신없는 내면의 반증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느꼈던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이해이자 공감이었다.
함께 고생한 끝에 돌아온 결과가 달랐을때 그가 느꼈을 질투와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돌이켜보면 그의 모든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것 같다. 나 역시 그처럼 혼란스럽고 힘들었을테니까….아니 더하면 더했지, 내 친구처럼 오히려 상대방을 응원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진 못했을거다. 그런 그를 존경한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 그 친구를 존경한다…

최근 날 슬프게 하는 그의 행동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이 슬퍼진다. 그 친구가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느껴져서, 혼자 있을때 그가 느낄 지옥같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에. 하지만 가슴깊이 널 이해한다, 나는 항상 네편이다 라는 것을 자주 알려주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배워가고 있다. 결국 문제의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찾아내는 것도 본인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도, 나도 알고 있기에. 어찌되었든 그가 어떤 위치에 놓이느냐에 상관없이 그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이해한다, 이해한다, 이해한다….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쳐보라, 어느날 진짜 이해를 하게 된다. 가짜 이해 말고, 자신이 상대가 되어버리는 진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