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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선 아이스크림을

++ 로마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인터넷에 있는 스페인 광장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로마에서 사진을 많이 안찍었다는 사실이 이제와 한으로 남네요. T.T ++

니스에서 보내게 되는 마지막 날. 드디어 해변엘 가보기로 했다.

니스의 유명한 천사의 만(Baie des Anges)이 말해주듯 니스에서 바다냄새, 소금기 가득한 끈끈한 바람을 맞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번화가에서 조금만 걸어가기만 하면 해변가가 펼쳐지고 그곳엔 어김없이 썬텐을 하는 미녀들이 가득하다. *.*

에두아르도, 까에따노는 수영복을 따로 안입는다 그러는데 난 지금 입은 옷 그대로 바닷가에 들어가기가 좀 찝찝했다. 왜냐면 오늘 밤기차를 타고 로마로 가야하는데 젖은 옷을 입고 기차에 오르긴 싫었걸랑..

그래서 기차역에 들러 배낭을 맡기고 수영복까지 갈아입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변으로 향했다. 하지만 니스의 해변은 생각보다 무지 지저분했다. 유명한 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탓이겠지만 나의 순진한 노랑수영복을 드러내기엔 너무 때가 묻었다고나 할까.. ^^;;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물에 들어가긴 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물이 지저분한것도 잊고 마음껏 놀았다. 에두아르도와 까에따노는 수영들을 어찌나 잘하던지..바다가 가까운 상파울루에 있다보면 친구들과 자주자주 헤엄치면서 놀 수 있다고 하니 수영 잘하는것이 당연하기도 한데 그래도 수영 배우러 한달이나 다녔던 나의 과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T.T

물놀이를 끝내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려는지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모래사장 주변에는 불량식품을 파는 노점상과 트럭들이 몇몇 눈에 띄었고 그것을 파는 사람들이 불어만 하지 않았다면 딱 해운대를 생각나게 했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둘러보다가 에두아르도는 무슨 파티에 간다 그러고 나와 까에따노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기분은 참 묘했다. 몇주만에 다시 혼자 여행할 수 있게 됐다는 설레임과 이제 까에따노를 다시는 볼 수 없을거란 아쉬움이 같이 있었으니까.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 운이 좋다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운이다…같이 여행다니면서 얼마나 많이 싸웠던가. 그리고 돈때문에 얼마나 많이 치사해지고 궁색해졌었나..이젠 정말 싫은 모습 안보여도 되고 안봐도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쉬움과 슬픔은 모든 이별에 항상 있는 거니까 가볍게 넘길 수 있어야 하는거라 생각하며 쿨하게 이별하고 싶었다. 기대로 가득차서…

기차에 올라 간단한 샌드위치로 저녁을 떼우고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풍경을 바라봤다. 이제 로마로 가는구나, 그곳에서 다시 그리스로, 터키로, 이스라엘로 가야지 마음 먹으며, 앞으로 이 궁색한 여행을 얼마동안 해야할까 걱정하며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아직 해도 안뜬 깜깜한 새벽이었다. 다행히도 실내에는 불이 다 켜져 있었고 앞자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뜬눈으로 앉아있었다. 깜깜한 창문 밖을 바라보는데 왜그렇게도 까에따노가 보고싶던지. 아직까지 난 이별하는 중이었나보다.

로마에 도착했을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밤기차를 탈때 제일 싫은건 다음날 기차에서 내릴때 느껴지는 한기다. 부시시한 몰골에 춥기까지 하면 정말 서럽다.

로마의 테르미니 역은 규모면에서 지금까지 지나왔던 대도시의 역들과 비교도 안될만큼 어마어마하다. 역 전체가 마치 삼성 코엑스몰같다고 해야하나. 플랫폼에서 매표소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도 일이지만 1층에 마련된 각종 시설과 쇼핑몰들..하루에 들고나는 사람수만큼이나 대단하다.

게다가 바르셀로나의 산츠역처럼 천장이 높고 굉장히 현대적인 구조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눈까지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되기까지 꽤 오랜시간동안 개-보수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만큼 테르미니역은 로마관광의 중심이 되며 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로마시내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역사도 오래되고 문화유적이 많아 길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를 볼때도 항상 테르미니 역을 중심으로 관광계획을 짜고 숙소로 돌아올때도 테르미니 역만 찾으면 쉽게 찾아갈 수가 있다.

로마에서 내가 묵을 숙소는 한국인 민박집인데, 여행하다 만난 한국인 여행객이 소개해준 곳이다. 인터넷도 되고 아침식사도 맛있다 그래서 마음먹고 니스에서 떠나기전에 예약까지 했다. 테르미니역에서 민박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굉장히 한국인답게 생긴 아저씨가 마중을 나왔다. 역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주택가가 있었고 그 중 좀 오래되 보이는 집으로 날 안내했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배낭족들은 다들 나갈 준비로 분주했고 몇몇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주머니가 나더러 일단 밥부터 먹으라 그래서 얼떨결에 같이 아침을 먹게 됐다. 밥맛이 어땠는지, 반찬이 뭐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국이 시레기 국이었다는 것만큼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샤워를 하고 좀 쉬고 있는데 약간 나이가 있어보이는 언니가 내 옆침대에 와서 앉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이 언니도 마침 그리스로 갈 예정이어서 함께 배를 타기로 했다.

대충 준비를 끝내고 로마관광에 나섰다. 로마는 바르셀로나나 파리에 비해 규모가 무지 크게 느껴지는 도시다. 물론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도시 전체적으로 무언가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그렇다. 테르미니 역을 지나 일단 그리스로 향하는 배표를 예매하러 갔다. Hellenic Mediterranean Lines 라는 선박회사를 찾아 무지하게 걸었다. 버스가 있긴 했는데 어느 도시나 버스는 타기가 늘 겁난다. 정거장을 놓칠까봐..그래서 무작정 걸어갔는데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은 안할 생각이다.

약 한시간 정도 걸어서 Via Umbria에 있는 그 선박회사 사무실을 찾아냈다. 그런데 말끔하게 생긴 이 사무소에서 표를 사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_-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책에 써있는대로 3만5000원 정도를 내고 표를 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선박회사가 유레일 패스 협찬사라서 패스가 있는 사람은 비수기에 무료로 탈 수 있다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돈 다 내고 배를 탔으니 나중에 진짜로 속이 쓰리더라. 더 나쁜건 나중에 알게 되서 항구에서 배타기 직전 내가 표를 샀던 그 선박회사 사무소를 찾아가 패스 보여주며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모르겠다고 딱 시치미 떼던 사무소 직원들..그 앞에서 30분이나 기다리며 헤맸었다.

아무튼 배표를 예매하고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다시 테르미니 역으로 갔다. 아테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남서쪽에 있는 브린디시나 바리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날 점심때쯤(배 시간이 저녁8시였으니까..) 로마에서 바리->브린디시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다행히도 이건 패스를 이용해 무료로 이동.

기차표를 예매하고 근처 피자집에서 조각 피자를 점심으로 사먹었다. 이 피자집은 커다란 직사각형 오븐냄비에 피자를 구워 그것을 조각으로 팔고 있는 굉장히 오래되보이는 가게였다. 팬에다 구운 피자라 약간 기름지긴 했지만 그래도 꽤 맛있게 먹고 나서 오드리 햅번이 앉아있었다는 그 스페인 광장에 가보리고 했다.

물론 처음엔 단순하게 지도를 보며 스페인광장까지 걸어가봤는데 아무리 가도가도 모르는 길만 나오는 것이었다. -_- 아..거의 두시간 가까이를 길을 잃고 헤매다가 꽤 번화해보이는 콘도티 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의 청담동처럼 유명한 옷가게들이 꽤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수제 가죽 장갑 집도 많고 또…직접 만든 아이스크림 즉 젤라또를 파는 곳이 무지 많았다~~~~

콘도티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수많은 젤라또들, 직접 만든 티가 팍팍 나는 이 귀티나는 젤라또들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먹기엔 너무도 예쁘고 예뻤다. 젤라또를 하나 사서 물고 스페인광장쪽으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생각보다 작은 광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리고 전설처럼 그 유명한 137계단이 눈에 띄었다. 나도 계단 어딘가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 젤라또를 먹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너무도..계단 옆에 위치한 베르니니의 부친이 만들었다는 <조각배 분수>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서서히 다가가니까 분수 바닥에는 왠 동전들이 그렇게 많던지. 이거이거 가만히 서있는 저 조각들이 무지 부럽다.

스페인 계단 맞은편에는 100년 넘게 있었다는 아주 유명한 젤라또 집이 있었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나기론 이 집은 딸기맛과 바닐라, 초코렛만 판다고 했던것 같다. 유명한 음식점들의 메뉴는 두세개를 안넘는것처럼 이집도 그런 장인의 냄새가 풍겼다. 하하..

하지만 내가 사먹었던 젤라또도 꽤 맛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스페인 광장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특히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씨들은 대부분 젤라또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잠깐이라도 영화속 오드리 햅번이 되고 싶은걸까. 스페인 계단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광장에 그냥 서서 혹은 어딘가에 기대어서 젤라또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광장과 아이스크림. 로마에서 아이스크림은 잠깐동안이라도 꿈을 꾸게 해주는 달콤한 환상이 아닌가 싶다. 스페인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것..내게 로마를 손에 닿지 않는 꿈같은 곳으로 만들어버린 일이 되어버렸다.

어두워진 거리를 또 한시간 넘게 걸어 걸어 숙소로 향하면서 세일중인 베네통 가게 앞에서 무지 망설였다. 언니한테 꼭 사주고 싶었던 쟈켓이 있었는데 결국 그냥 돌아오면서 꾸질꾸질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아까 그 젤라또랑 피자만 안먹었어도..하면서. ㅎㅎㅎㅎㅎ

 

샤갈, 그리고 니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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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를 떠나던 날은 소풍가는 날처럼 따뜻하고 경쾌했다. 사실, 이 모든 발랄함의 이유는 ‘깐느’라는 도시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기대들 때문이었으리라. 깐느..단순히 영화의 도시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쁜 해변과 멋진 옷차림의 사람들, 곳곳의 숍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정말 레드카펫위에서나 볼 수 있는 새틴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깐느에 도착한 시간은 한낮이었다. 매 도시에서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는 것은 이제 이골이 나서 기차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방향부터 잡는다. 어느쪽으로 가야 유스호스텔이 나오는가.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작고 아담한 유스호스텔이었는데 론리 플래닛에 무지 좋게 평가를 해서 굳이 그곳을 찾기로 한것이다. 깐느가 원래 그런건지 암튼 그날은 진짜로 더웠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태양은 또 어찌나 뜨겁던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유스호스텔은 정말 책에 나온대로 예쁘고 가정집 같은 곳이었다. 실제로도 가정집을 개조해서 영업을 하는 곳이었는데 아주머니 인상도 서글서글한 것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버렸다.

이곳은 남녀가 한방을 쓰는 시스템인데, 한 방에 이층침대 두개를 놓고 반드시 여자 둘, 남자 둘. 이렇게 절묘한 성비를 맞춰 애들을 배치시키는 것이다. 나 역시 국적을 알 수 없는 백인 여자애와 까에따노, 에두아르도와 방을 쓰게 됐는데 가정집처럼 생긴 곳이라 방을 나서면 거실이 있고 화장실도 한 곳에 있다. 우리는 거실에서 한참을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사진을 찍으며 오늘 계획을 세웠다. 우선 모두 샤워를 하고 저녁때가 되서 나가기로 했는데(낮엔 넘넘 더워서..-_-) 한 사람씩 씻는거 기다리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밖에 나갔다.

깐느의 거리는 좀 어두워져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것 같다. 뻥 뚫린 도로 끝으로 보이는 바다.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불빛들. 그 불빛들을 뿜어내는 화려한 상점과 사람들..이 모든게 깐느 그 자체였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내내 두리번 두리번..아까 낮에 봤던 그곳이 이곳이 맞는가 몇번이고 확인을 했었다. 아까는 정말 기억도 안나는 가게들이 있었으니. 어쨋든 이 모든 놀라움을 뒤로 하고 일단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유스호스텔에서 바닷가쪽으로 쭉 걸어내려오다보면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그 길에는 간식거리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저녁을 떼우기 위해 들어간 곳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빵집이었다. 참..빵집이라고 부르기도 뭐한데 빵이라고는 대여섯개 정도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랑 에두아르도는 대빵 크고 텁텁한 피자빵을 골랐다. (다분히 양 때문에..ㅋㅋㅋ) 까에따노는 빵은 관두고 다짜고짜 아이스크림을 사먹길래 내심 걱정을 했다. (나중에 배고파 어쩔려구) 근데 그 아이스크림이 무지무지 맛있어 보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흐흐..결국 나는 한참을 걸어간 후 하겐다즈 매장이 나오길래 그곳에서 유혹을 참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거리를 배회하다가 깐느 영화제가 열리는 그 건물로 향했다. 거기서 사진도 찍고 놀다가 그 건물이었나 그 옆건물이었나 Casino 라고 번쩍번쩍 하는곳이 있어 무작정 들어가봤다. 우린 모두 반바지차림이었는데도 입장을 허락하길래 마음놓고 돌아다녔다. 나랑 까에따노는 그냥 뚜벅뚜벅 구경만 했고 우리중 가장 여유있는 에두아르도는 혼자 신나서 손잡이 잡아당기고 그림 맞으면 코인이 우루루 쏟아지는 그것을 마구 하고 다녔다. 그러다 에두아르도는 드디어 간이 부어 은밀하게 들여보내는 방같은 그런 곳에 들어가려는게 아닌가. 그러나 그 앞에서만큼은 복장검사를 하더라. 결국 그곳엔 못들어가보고 밖에 나와 바닷가를 거닐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담음날은 깐느를 떠나 니스로 향하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너무도 더워서 셋다 짜증이 이빠이 난 상태였다.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나왔으니 다들 초췌한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나뿐 아우라들을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기차역에 있는 보관함의 관리인은 뭐가 고장났다 그러면서 배낭 받을 생각을 안해 결국 우린 기차역에 쪼그려 앉아 기차가 올때까지 기다리게 생겼다. 나는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에두아르도보고 배낭좀 지키고 있으라 그러고 애들 돈 걷어서 아침시장에 나가 먹을걸 샀다.
시장이라고는 해도 규모도 크지 않고 시간도 점심시간대가 가까워져 파장한데가 많아 살 수 있는건 빵이랑 치즈 토마토 정도였다. 하여튼 그렇게 간소하게 사서 아침겸 점심을 대충 떼우고 기차에 올랐다.

니스에 도착했는데 아..그냥 깐느에서의 꿀꿀함이 니스의 분위기에 확 풀리더군. 깐느도 니스 못지 않은 관광지인데 두 도시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니스가 도시의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크기도 하지만 뭐랄까..니스는 보다 캐주얼한 청바지 느낌이랄까. 하여튼 다시한번 기운을 차린 우리는 일단 배낭을 보관함에 다 맡기고 관광을 나섰다. 해변가 근처의 큰 공원에서 책 박람회를 한다길래 우린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야외에서 열리는 이 박람회는 새로 나온 책은 물론이고 앤틱한 느낌의 고서, 영국과 독일 등의 책들도 전시를 하고 있어 바이어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다양한 책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게다가 그 공원으로 향하는 큰 대로 양 옆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쫙 늘어서 있으며 그 건물들에는 너무 예쁜 숍글과 서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박람회는 대충 보고..그 주변 서점들과 문구점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나는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대게 관광지의 서점이라면, 게다가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면 책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 것이고 있어봤자 눈길을 끄는 책이 얼마나 될까..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이 작은 서점은 관광객들로 넘쳐났지만 아늑한 분위기에 다들 책을 하나씩 들고 서서 읽고 있으며 잡지에서부터 전세계의 론리 플래닛, 히틀러라는 제목의 커버가 온통 빨간색인 책까지 없는게 없었다. 이 아기자기한 규모에, 실속과 주인의 신경안씀(?)…정말 이상적인 책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내관광을 대충 끝내고 유스호스텔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오후 4시가 지나야 입실이 가능하다 그래서 또 한참을 돌아다녔다. 인터넷까페의 위치를 익혀두고 에어컨이 빵빵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좀 쉬다가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 니스의 언덕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에 당도했다.

그런데, 그런데! 유스호스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광경! 깐느에서 니스로 향하던 짜증은 물론이고 하루종일 푹푹찌던 더위도 잊게 해주던 그 광경..이런 감동에 다들 여행하나보다..하고 새삼 느꼈었다.

 

샤갈, 그리고 니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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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월만의 여행기인가. 지금와서 생각하니 처음 여행기를 쓸때 바짝 써두지 않은 것이 넘넘 후회된다. 지금 쓸려니깐 묵은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는게 왜이리도 힘든지. 정말 뭘하든 미루는 성격 때문에 큰일이다..

아비뇽 다음편을 쓸 생각을 하니까 문득 까에따노가 보고싶어졌다. 정말이지 여행은 어디를 갔느냐보다, 누구와 갔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혹은 누구를 만났느냐..프랑스에 대한 내 기억의 대부분은 까에따노와 연결된다.
아비뇽을 떠나면서 정한 다음 목적지는 세계의 미항중에 하나로 꼽히는 마르세유. 불어 철자는 Marseille 인데 다들 ‘마르세이~’라고 발음한다. 그곳에서 내가 마르세유~ 라고 하자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현지인들의 표정..흐흐. 아무튼 기차역에 도착했을때의 첫느낌은 정말 정갈한 항구의 느낌이었다. 높은 천장과 밝은 빛이 사방에서 들어오도록 온통 유리로 설계된 마르세유의 중앙역은 지금까지도 내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항구도시답게 님므나 아비뇽과는 달리 기차역도 크고 오가는 사람도 무지 많았다.

기차역을 나와 이어지는 메트로 입구에서 경비원같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유스호스텔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옆에 서있던 키큰 아저씨(마르세유에 사는 주민으로 보임)가 유창한 영어로 유스호스텔까지 가려면 메트로나 버스를 타야하는데 지금 둘다 파업중이라 운행을 안한다고 이야기 해준다. 어쩐지 아까부터 매표소 입구부터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더라니..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나 이 사태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불만이나 분노없이 아주 당연한 일상인듯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혹시라도 우리가 오해할까봐 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줬다.

유럽 특히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인상깊었던 것 한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이런 노동파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한국에서는(적어도 내 주변의 생활권에서는) 지하철 파업이 있다하면 뉴스에서는 주민들의 분노에 찬 인터뷰를 내보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이곳에서 노동파업은 생활의 일부일뿐이다. 모든것이 그렇듯이 체제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있고 그러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유. 난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인권’이 아닌가 싶다. 인권에 관한한 전문가라고 불러도 될 프랑스에서는 국민 중 일부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파업을 택하는것에 대해 비난보다는 이해를 먼저 보여준다.(그로 인한 불편에 대해서는 감수하더라도) 나의 표현권과 내 인권이 소중한만큼 저들의 표현권과 인권도 소중하다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아무튼 키다리 아저씨는 우리를 역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쏼라 쏼라 하더니 조금만 기다리랜다. 자기 부인이 데리러 나오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유스호스텔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으아..이렇게 고마울데가! 그리하여 기나긴 침묵속에 -_- 20분을 기다린 후 자그마한 그의 부인차를 타고 유스호스텔 바로 앞에 당도했다. 이곳에는 유스호스텔이 두군데가 있었는데 하나는 마르세유 시내에서 쫌 가까운 해변 근처의 호스텔이고 우리가 택했던 다른 호스텔은 시내에서는 엄청나게 떨어져있지만 기차역에서는 쫌 더 가까운곳에 위치한, 주택가 꼭데기 외진 곳에 있던 곳이다. 단지 기차역과 쫌더 가깝다는 이유로(무,물론 훨씬 싸기도 했다.)이곳을 택하긴 했지만 나중엔 엄~~청 후회했다.

유스호스텔은 딱 보기에도 옛날 아주 옛날에 노인정으로 쓰였을법한 낡은 건물이었고 프런트 역시 왠 할배가 지키고 서있었다. 그 할배는 엄청 깐깐하고 재수없게 굴었으며 뭐가 그리도 안되는게 많은지 11시 넘어서 들어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거라는 둥 부엌은 7시 넘으면 쓸수 없다는 둥 주의사항을 이야기해줬다. 도착한 다음날 시내구경을 가기 위해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유스호스텔이 맨 꼭대기에 있어서 버스를 타려면 당연히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와 까에따노는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낮의 태양은 머리꼭대기에서 내리쬐고 있었고 아침도 못먹고 걸으려니 괴로운 생각들만 나더군. 이를테면 커다란 피자나 얼큰한 김치찌개 같은 것들..흐흐. 하여간 물어물어 또 한참을 걸어 빵집 맞은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일은? 물론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은 일이다. 계산을 하는 동안 버스가 와버려서 버스안에서 아침을 해결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서야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르세유의 시내풍경은 흔히 듣는 ‘남국의 정취’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길끝에는 바다가 보이며 야자나무가 군데군데, 사람들은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항구 앞에는 온통 노천식당과 까페들이 늘어서있고 멋진 옷차림의 사람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다. 우리는 먼저 구항 주변을 관람하고 소설 몽테크리스토백작의 배경이 되었던 이프섬을 구경할 예정이었다. 또 시간이 된다면 성니콜라요새두..까에따노는 해양박물관까지 보고 싶어했으나 내가 극구 반대하여 그건 포기하기로 했다. 처음엔 항구주변을 거닐다가 관광안내소를 들어갔다. 그래서 이프섬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알아봤는데, 배삯이 너무 비싸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했다. (한국돈으로 만원이 넘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구려)

그리하여 우리가 세운 계획은 마르세유의 시내곳곳을 한번 뒤져보자는 것이었다. 먼저 항구끝쪽에 있는 생니콜라요새와 만을 사이에 마주보고 있는 생장요새를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당최 가까워지질 않아 멀리서 그냥 실루엣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엄청나게 큰 광장이 있길래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도무지 문을 연 식당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는데도 이 큰 광장에 식당 하나 문을 열지 않았다니. 더 신기한 것은 이 넓은 광장에 손자 데리고 비둘기 구경나온 할머니와 우리 빼고는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흐흐..나는 첫날 파리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11시가 넘도록 저녁을 먹는 사람들이 이런 대낮에 문을 열수는 없을거라고 까에따노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근처 슈퍼에 들어가 재료를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먹기로 했다. 나는 진짜로 햄, 고기 같은데 넘넘 먹고 싶었는데(게다가 다 엄청나게 싸니까..)까에따노는 브라질에 있는 가족들이 광우병을 우려해 유럽에서는 절대로 육류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햄은 포기하고 빵이랑 치즈, 요구르트를 골랐다. 마음같아선 토마토랑 양배추도 사고 싶은데 씻고 썰을 생각하니..그래서 기냥 단촐하게 단돈 5천원으로 모든 재료를 구매했다.

까에따노가 알려준 것 가운데 정말 유용한 지식이 있다면 아마도 치즈에 관한 것일 것이다. 난 한국에서 체다치즈랑 모짜렐라 외에는 먹어본 적도, 본적도 없었는데 유럽에 오니깐 너무나도 엄청난 종류의 치즈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흐흐 얼마나 기쁘고 황송했는지는 둘째치고 도대체 무엇을 골라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까에따노가 브리(Brie)라는 프랑스 치즈를 알려줬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또 얼마나 유용한지는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야겠지만 하여간에 프랑스에서는 샐러드, 샌드위치, 각종 요리 등등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가장 대중적인 치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프랑스에서 길을 걷다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샌드위치인 빠니니중에서도 브리 빠니니는 가장 기본적인 메뉴이고 작은 슈퍼를 가도 이 치즈는 꼭 두세가지씩 종류를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까망베르나 꿀로미에 치즈들에 대해서도 알게 됐는데 까망베르나 브리나 다 하얀 곰팡이로 외피가 싸여져 있어서 좀 고약한 냄새가 나긴 한다. 아무튼 이후 프랑스에서 음식으로 인한 고생은 엄청 줄었으니 브리는 여행중 가장 든든한 양식이었던 것 같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문이 닫힌 식당의 한 노천 테이블에 앉아 바게뜨빵과 브리 치즈를 꺼냈다. 빵에 치즈만 넣었을 뿐인데 진짜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에두아르도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메일을 보낸 후(에두아르도는 스페인이의 빌바오를 거쳐 곧바로 마르세유로 오는 중이었다.) 시내보다 조금더 위쪽에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헤맨 후 중동인들만 사는 골목이 나왔다. 그곳에는 희안한 가게들도 많았고 대부분 같은 중동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가게는 허름했으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시내와는 딴판으로 초라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무슨 행사날이었던지 다들 들뜬 얼굴로 폭죽을 터트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또 그 주 주말에는 재즈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거의 어둑어둑해졌을때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쪽으로 나와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한산하던 길에 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있는지 저 밑에 항구쪽에서는 공연이 열려 음악소리까지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은 그리로 향하고 있었으나 하루종일 걸어다녔던 우리는 그저 빨리 유스호스텔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뭐든 식사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뿐..흑흑.

30분이나 기다려서 버스를 탄 후 유스호스텔에 도착해보니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에두아르도가 우릴 맞아줬다. 마르세유 도착해서 메일을 확인한 후 유스호스텔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무슨 고향사람 만난것처럼 껴안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쳤다. 우리는 냉동스파게티를 데우며 그의 빌바오 여행담을 들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얘기하며 클럽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해 길가에서 잠든 얘기들..아무래도 까에따노와 나는 지나치게 건전하게, 발품을 팔아 다니는 여행을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여행이 더 기억에 남았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돈이 넉넉했다면 클럽에도 가보고 술도 맘껏 마셔보고 미술관도 척척 들어가봤을것 같긴하다. 그러나 발품파는 여행은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수많은 골목을 뒤질 생각을 무슨수로 해본단 말인가. 흐흐..그런 의미에서는 나중에 돈 벌어 오더라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기억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라고 그당시 나를 위로했던 것 같고, 다행히도 그 생각은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난한 여행을 무슨수로 또 해볼 용기가 나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마르세유에 이틀을 더 있다가 깐느로 떠났다.

 

꿈꾸던 프랑스가 이곳에..-남부 프랑스 , 아비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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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여행기인지 모르겠다. 심호흡 한번 해주셔야겠군.

자자..다시 2001년 6월의 뜨겁던 프랑스 남부로 가보자. 동성애자로 몰린 나. 저녁을 먹고도 한참동안이나 까에따노와 그것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 결정적으로 여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적이 있냐는 질문에서 전혀 그런적 없다는 나의 대답에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 뒤로 난 절대로 까에따노 앞에서 모델 얘기나 어라, 저 여자 예쁘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길가는 여성을 쳐다보고 있으면(세상에..내 눈에 나와 다른 눈 색깔과 얼굴 모양을 지닌 애들이 얼마나 신기해보였겠어.)어김없이 까에따노는 나를 지켜보며 의심의 눈길을 던졌기 때문이다.

어쨋튼 다음날 우리는 님스를 떠나게 되었다. 아침에 까에따노가 빨래를 건조시키는 동안 난 유스호스텔 마당에 앉아 가이드북에서 아비뇽을 찾고 있었다. 이때 한 청년이 등장한다. 머리는 구불구불한 단발머리에 한눈에도 꽤 오랫동안 여행을 한 것처럼 보이는 꾀죄죄함. 이 청년은 내 앞 의자에 앉아 뭔가를 읽다가 까에따노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암스텔담? 나 거기서 꽤 오래 있다가 오는 길이야. 거기 정말 죽이지..’라며 말문을 연 이 청년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청년이었다. 지금 기억엔 나보다 한 두 살 많았던 것 같은데 외모상으론 도저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자랑처럼 암스텔담에서 즐긴 갖가지 유흥들에 대해 소개를 해주기도 했고 지금 바르셀로나로 갈 채비를 하고 있는 그의 계획들을 얘기해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바의 바텐더로 몇 달 일한 후 다시 여행을 다닐거라더군. 그외에 그의 가족 얘기며 별별 얘기들을 다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난다. 골초였단 기억만이 선명하다. 흐흐.

빨래를 다 말린 후,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를 타러 갔다. 아르헨티나 청년도 우리와 함께 나섰는데 셋이 나란히 걷다가 맘씨 좋은 프랑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린 아들을 태우고 자가용을 몰고가던 아저씨는 우리를 발견하고 기꺼이 차를 세워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히치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히치한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아비뇽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가르쳐주었다. 지도를 꺼내들고, 아비뇽이 님스와 마르세유 중간에 있다는걸 보여준 후, 아비뇽에 가면 교황청과 끊어진 다리를 꼭 보라고 이야기했다.

기차를 타고서 아비뇽에 도착했을땐 날씨가 약간 흐렸다. 아비뇽에 대한 인상은 그래서 지금도 우중충하게 기억된다.

아비뇽은 예술과 문화의 고도로 유명하고 한다. 강의 도시라고도 불리는데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며 리옹까지 이어지는 론강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아비뇽은 ‘아비뇽 유수’로 유명하다. 교황이 아비뇽으로 피신하게 되면서 교황청도 옮기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은 종교적 중심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의 분위기는 모랄까..우리나라의 경주같은 느낌을 풍겼다. 옛스럽고 보수적인 느낌. 높은 성벽과(교황청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 위에 세워진 위풍당당한 교황청이 분명 큰 이유일 것이다. 기차역에서 유스호스텔까진 버스를 타야했기에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또 물어물어 유스호스텔 근처에서 내릴 수 있었다. 버스는 강을 가로 질러 허허벌판에 우릴 내려주었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묻지 않았다면 영영 유스호스텔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유스 호스텔입구는 캠핑장 처럼 생긴 야영장이어서 나무가 많았다. 캠핑장을 지나 쭉 걸어들어가면 저 안쪽에 나무들에 둘러싸여 유스호스텔이 위치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산하고 음침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꽤 오래된 건물이라 아주 낡아보였다. 내가 쓸 방에 들어가 보니 방이 너무나도 좁고 침대는 많아 정말 발디딜 틈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 짐도 많아 내 짐 놀 자리도 마땅치 않은 정도였다. 할 수 없이 사물함을 하나 빌려 큰 배낭을 넣어놓고 필요한 것들만 밖에 빼두었다. 침대에 올라갈땐 삐걱삐걱 소리가 어찌나 심하게 나던지 올라가던 내가(난 2층침대의 위층을 배정받았으므로.)다 민망해 죽을뻔했다. 대충 짐을 챙겨놓고 까에따노를 만나 매점에서 저녁으로 먹을걸 샀다. 그곳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아비뇽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기차역쪽으로 가기로 했다.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가 시간에 맞춰 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자니 넘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기차역 거의 다와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우중충하더니 결국 비가 오고야 말았다. 한참을 뛰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피신해야했다. (단편소설 소나기를 상상해주기 바람.ㅋㅋ)비가 그치고 시내로 나가보니 시내에는 연극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알고보니 6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달 동안 열리는 것이었다.(이 연극축제는 50년도 넘은 굉장히 유서깊은 축제였다.)가능하다면 그것을 관람하고 싶었으나 축제기간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아 시간상으로 맞질 않았다. 아비뇽 시내는 누런색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입구의 뤼쁘블릭 문을 지나면 시내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관광도시라서 크고 작은 관광용품 가게가 많다. 노천 까페와 코너의 꽤 북적거리는 바도 있고…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우린 꽤 유명해보이는 crepe 가게를 발견했다. crepe는 아주아주 얇게 부친 전 같은건데 정말 너무나도 얇아서 놀라울 정도다. (이 얇게 굽는게 기술이란다.) 이 가게는 길가에 있는 가겐데,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처럼 생겼다. 즉, 길 쪽으로 가게가 트여있고 가게 주인장들은 길쪽을 향해 서서 crepe를 굽는 구조. 이해가 가시나요? 이 구조가 정말 음식 파는데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정말정말 식욕을 돋구는 구조. 흐흐흐. 안쪽에선 그곳 직원들이 정말 날렵한 손놀림으로 crepe를 구워대는데 그것도 하나의 구경거리다. 먼저 라지 피자 크기 정도로 crepe를 굽고, 뜨뜻한 상태에서 그 위에다가 얹어먹을 것을 선택하여 그것을 넣어 먹는거다. 치즈나 햄(햄도 가지가지 종류), 쨈 종류, 버터 크림, 초코렛 크림 등등을 주로 얹어 먹는다. 우린 모듬치즈를 골랐는데(싸이즈가 꽤 커서 둘이 먹어도 충분) 정말 그 맛이 환상이었다. 치즈가 살살 녹아있는 것이..흐흐. 아이고 배고프다. 야심한 새벽에 이런걸 생각하니 배가 고프군.

하여간 이 맛있는 crepe와 빠냐니 샌드위치가 유럽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먹거리이다. 이걸 후딱 먹어치운 후, 길을 배회하다가 코너의 바를 들어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유스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날도 역시 피곤에 지쳐 삐걱거리는 침대로 올라가 바로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또다른 숙박객이 들어와 삐걱소리에 잠을 깬거 빼고는.

다음날은 아침 일찍 교황청을 구경가기로 했다. 뤼쁘블릭가를 걸어가다 보면(이 길이 또 예술이다..정말 작고 예쁜 골목골목과 가계들이 많다)저~~~엉말 대빵만하게 큰 시계탑 광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엄청난 비둘기들과 그에못지 않게 꽤 많은 노천 까페들이 줄지어 있다. 이 광장에는 1900년에 만들어졌다는 회전목마도 있고 또 구시가지라는 묘한 느낌이 합쳐져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쳐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에선 꼭 가보라는 노천까페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느긋하게 앉아있으니 정말 오랜만에 긴장이 싹 풀리는 것이 사우나에 온 느낌이었다(흐흐..오버다) 비둘기들과 엄청나게 넓은 광장을 둘러보며 다시 교황청으로 향하기로 했다. 시계탑광장과 교황청은 꽤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그 근처가 구시가지로 정해져있다. 광장을 포함해 이 구시가지가 제일 볼거리가 많고 또 제일 잘 정돈되어 있다. 골목골목 중세의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이 정말 노력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교황청은 요새로도 쓰였을만큼 높고 크며 웅장한데, 투박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당시 교황들이 전전긍긍하며 얼마나 자신들의 위치에 위협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교황청에 들어가니 서늘하고 천장은 높고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교황청은 단조로운 느낌의 옛 궁전과 새 궁전으로 나뉘는데 미로 같아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난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요리조리 구경을 다녔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교황청에 있는 10개의 탑 중 하나에 올라가 봤는데, 아비뇽 시내와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람이 어찌나 세찬지, 눈을 못 뜰 정도였다.

유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엔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데 그 위에서 맞는 바람은 진짜 칼바람에 엄청 쎄다. 정말 날아갈 뻔했다. 신기한건 다리만 건너면 바람은 심하지 않다는 것. 다리를 건너다가 강 둔치에 벤치가 있는걸 보게 되었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은 때라 벤치에 앉아 구경하기로 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엔 유스호스텔이 저쪽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이 있는데 그게 꼭 중세와 현대를 각각 한 장소에서 보는 것 같아 색다른 느낌이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그 둔치에는 조깅하는 사람,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에는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왠일인지 중간에 끊어져 있는 것이었다. 내 가이드북엔 그런건 나와있지도 않았지만 론리 플래닛을 보니 저것은 17세기 대홍수 때 끊어진 ‘아비뇽 다리’라고 한다. 900M에 달하는 저 다리는 그 때 끊어진 이후 복구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저것도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옛날 것을 진짜 아끼고 갈고 닦는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저 다리를 보면서 정말 입이 딱 벌어지게 감탄했었다. 우리나라처럼 가꿀 생각은 안하고 탑이건 절이건 죄다 복원한다고 난리들인걸 보면 정말 비교될 만하다. 게다가 황룡사 9층석탑을 복원하겠다고 모교수들이 앉아 디자인했다는걸 보고 있으면 단지 어이가 없어진다. 어쩌면 복원을 생각해도 이리도 못생기고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복원할 생각을 한단 말인지.

흠흠..흥분을 가라앉히고, 다리를 한참 보고 있자니 끊어진 아비뇽 다리 넘어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정말 그 장관은 우리 학교의 노을 만큼이나 대단했는데..그 순간엔 다른 어떤 생각도 안났고 그냥 너무도 놀라웠다. 식어가는 태양이 이렇게 멋진 모습을 선물해주다니..

 

꿈꾸던 프랑스가 이곳에..-남부 프랑스 , 님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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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라는 나라가 주는 매력은 단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파리의 비오던 날들은 무척 우울하고 쌩뚱맞았으며(서울로 돌아가는 날마저도 비가 왔다!)니스와 마르세유에서의 활기와 뜨거운 햇볕은 열정 그자체였다. 또한, 같은 남부 프랑스라고는 해도 아비뇽과 니스의 날씨는 천지차이였다. 아비뇽은 내내 을씨년스런 가을날씨였더랬다. 비바람마저 불고..영국 사람들은 할말이 없을 때 날씨얘기를 꺼낸다지만 여행을 하면서 어느 나라의 날씨나 기후는 그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 풍습등을 한 눈에 쉽게 설명해주는 지표와 같다. 프랑스는 그래서 정말 설명하기 힘든 나라다. 한편으론 활기차고 명랑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나라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까에따노와 함께 도착한 곳은 Nimes라는 작은 도시였다. 님므라고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이 도시는 프랑스에 있는 가장 오래된 로마 도시이다. 이 곳에는 로마의 유명한 석교가 있고, 원형 경기장이 보존되어 있다. 원형 경기장은 이곳의 유물이 되어 그것을 보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그것을 보러 생소한 이 도시를 들렀다. 기차에서 내려 역에서 먼저 환전을 했다. 내릴땐 오래되고 후진 역 같았는데, 막상 역 대합실쪽은 현대적이고 깨끗하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초저녁이었던 터라(저녁 8시였던 것으로 기억..)역 안의 모든 서비스는 중지된 상태였다. 사람도 없고 낯선 이 역에 앉아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걸었다. 불어를 하는 까에따노는 전화를 걸고 난 앉아서 배낭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오늘 님므를 떠나는 한국인 남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도를 구하고,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타고 유스호스텔로 갈 생각이었는데 40분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를 따라 무작정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젊었기에 이런 무자비한 행동들을 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한참을 걸어도 도저히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가게문은 모두 닫혀있고 길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연히 포켓볼을 치고 있는 녀녀남의 콤비네이션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한 바(바라고 부르기도 뭐한..모두 오픈되어있는 동네 술집이었다.)를 발견했다. 그 사람들은 친한 친구들처럼 보였고,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포켓볼을 치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까에따노가 불어로 유스호스텔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여기서 한참이나 멀다고..걸어서 가면 12시 넘어서 도착할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서 바로 우리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탄 까에따노는 택시 운전사와 자신의 불어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했고 아는지 모르는지 택시비 내는 것도 잊고 있었다. 결국 돈이 없다길래 택시비는 내가 내고, 내일 환전하면 받기로 했다. 까에따노는 자신의 불어 실력에 칭찬을 받아서 들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서 유스 호스텔을 둘러보니 글쎄 스페인에서 보았던 유스호스텔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스페인에 있는 유스 호스텔도 무지 좋다고 느꼈는데 여기는 더 좋았다. 이곳은 Nimes로 여행온 현지인들이 묵고 가기 때문에 외국인보다는 프랑스인들이 많았다. 호스텔 매니저는 영국 청년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키가 크고 마른데다 목소리는 성우 같은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음악을 하는 이 청년은 Nimes 놀러 왔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아예 눌러 앉은 사람이었다. 카운터는 바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청년이 그 바텐더 이기도 했다. 영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직 해본 적 없고 그냥 여기 있으면 느긋하고 평화로워서 좋댄다. 곧 파리로 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일자리가 좋아서 다시 돌아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춤 출 수 있도록 식당을 나이트 클럽처럼 바꿔놓고 디제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침에는 시트를 가는 청소부 역할도 한다. 거의 하루 종일을 이 곳에서 보내는데도 이 일이 좋은 이유는 단 하나..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착한 날은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룸메이에트가 둘이 있었는데 둘 다 프랑스 사람들이라 도통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그냥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Nimes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원형 경기장 있는 곳 까지를 갈 생각인데, 아침도 못먹은 터라 가는 길에 우리 둘은 내내 ‘I’m hungry’라는 말만 죽어라 했다. 슈퍼나 식당이 나오면 뭐라도 사먹겠는데 인적이 드문 이 곳은 가게를 찾는 일도 꼭 숨박꼭질 같다. 결국 우리가 찾아낸 제과점에 우리는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 빵을 골랐다. 까에따노는 엄청 큰 버섯 피자를, 난 고로케를 골랐던 것 같다. 그것들을 먹으며 끼니를 떼우고 다시 원형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니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너머엔 큰 공원이 보였다. 그 공원에서는 그 날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행사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작은 과학 박람회 같은 것이었다. 마술도 보여주고 천막마다 각각 다른 아이템으로 아이들을 끌고 있었다. 공원안을 걸어다녀 보니 오래되긴 했는데 잘 가꾼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 그 나름대로 멋스러워서 어딜 가나 벤치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공원을 둘러보고서 다시 원형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 길이 정말 예뻤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차도 많이 안다니고 날씨도 무지 좋아서 이 작은 Nimes가 온통 내것 같았다. Nimes는 작은 도시라 중앙의 큰 길을 따라 가면 원형 경기장이 나오고 또 그 근처가 시내다. 원형 경기장은 볼 것도 없는데 입장료는 꽤 비쌌었다. 경기장안은 겉에서 보는 바와 같다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하겠다. 로마에서도 원형 경기장 안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러던데 나 역시 그것을 권한다. 나는 까에따노와 함께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고 제일 높이 있는 좌석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며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 안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나가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경기장 안엔 우리 둘밖에 없었는데 우리는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고 날도 아직 너무 밝아서 설마 정말 문을 닫았으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경비 아저씨가 우릴 보고서 뭐라고뭐라고~ 불어로 얘길 하며 우리를 뒷문으로 내보내 주었다.

시내를 헤매다가 어떤 광장에 도착했다. 그 광장 한 가운데엔 오래된 신전과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로마 시대때 세워진 신전인데 이 오래된 신전만 빼고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모두 현대적인 것들이라 이상한 부조화가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광장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놀고 있었고 산책나온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우리는 그 광장으로 이어진 식당가를 찾아갔다. 식당가는 물론 가격이 좀 비싼 편이었지만 아침을 빵으로 떼웠던 터라 뭐라도 좀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싶었기에 식당가를 샅샅이 뒤져 사람도 많고 값이 싼 곳을 골라 들어갔다. 유럽의 거의 모든 식당은 식당 앞에 작은 칠판에다가 오늘의 메뉴, 이 식당이 자신 있는 코스를 적어놓는다. 물론 가격과 함께. 그래서 관광객들은 이 식당의 수준이나 가격대를 짐작하고 골라 들어갈 수가 있다. 재미 있는 것은 오늘의 메뉴는 언제나 애피타이저(수프 혹은 샐러드)+본메뉴+디저트가 함께라는 것이다. 물론 본메뉴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긴 하지만 어쨋튼 정말 푸짐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아주 경제적인 메뉴라고 할 수 있겠다. 까에따노와 나는 파스타가 오늘의 메뉴라고 적힌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서 기다리는데 서빙을 하는 웨이트레스가 날 놀라게 했다!. 이 식당은 그래도 레스토랑이라고 부를 만한 분위기였는데 웨이트레스는 삭발을 하고 문신을 했으며 팔뚝을 그대로 드러낸체 검은 나시티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혀에다가 피어싱을 해서 뭔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입속에서 볼 수 있었다. 팔뚝의 문신은 커다란 해머였는데 내가 그것을 보고서 까에따노에게 얘기하자, 까에따노는 쓱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쟤 레즈비언이야” 라고 한다. 물론 그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그것보다 먼저..아니, 그는 정말 확신을 하나?, 저 사람을 알고 그런 얘길 하는건가? 아니아니 그보다도, 왜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시때때로 ‘저 사람은 게이야’, ‘저 여자는 레즈비언이네’, ‘저 둘은 연인 사이야.’ 라고 내게 인지시켜주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내가 언성을 높여 따지고 말았다. “넌 왜 그렇게 아는 척을 하는거야? 너 저 사람 알아? 레즈비언이면 어때서 니가 그렇게 매번 내게 가르쳐주는 거지? 네 의도가 뭐야?” 나의 따짐에 순간, 당황한 그는 몰라서 묻는거냐고 묻는다. “모르겠어? 저 사람들은 그걸 원해!!! 우리나라에는 매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동성연애자들의 인권 축제가 열리지. 나도 그들의 축제에도 참여했었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그런데 이렇게 내가 매번 그들을 동성연애자로 지목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그런걸 원하기 때문이야. 남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아주길 바라지.” 음..정말 그럴까?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많이 접하게 된 문화라면 바로 이 동성애 문화다.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동성연애자들을 볼 때면 난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그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스러웠었다. 익숙지 않은 문화에 대해 내가 겪은 진통은 그렇게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내가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대하고 있다면 까에따노가 했던 것과 같은 ‘이름짓기’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결코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꼭 남들이 날 알아주고 불러주길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삶은 일상적이고 편안한 것이듯, 그들 역시 그런 삶을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남자답고 스포츠 머리에 문신을 새긴 여자가 자신의 남성성, 동성애적 기질을 드러내고자 일부러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아니..그렇진 않을 것이다. 눈이 예쁜 여자가 화장을 할 때 눈을 강조해서 메이크업을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정도의 표현의 자유는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단지, 여자가 너무도 ‘남성스러워서’ 혹은 남자가 너무 ‘여성스러워서’, 그게 눈에 띄어 아는체를 하는거라면 그것은 너무 불공평하고 편협하다.

저녁을 먹고나서 유스호스텔로 걸어오는 길에 그는 내게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너 혹시 너의 성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처음엔 무슨 얘긴가 싶어서 한참 어리둥절했었는데, 조금 지나서야 그 뜻을 알았다. 내가 평소에 모델들 좋아하고 이쁜 여자들 보는 것을 즐기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런 사전지식과 오늘 내가 그에게 따졌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내가 레즈비언인줄로 안 것이다. 참, 황당했지만 나의 성정체성을 증명해보일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난 아냐, 내가 아는걸? 전혀 그렇다고 생각한 적 없어. 원한적도 없고.” 그러자, “그런건 원해서 되어지는게 아냐. 니가 원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너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되지. 너가 모르고 있다해도 너의 성정체성은 그럴지도 몰라..” 답답했다. 내가 나의 성정체성을 모른다면 대체 누가 안다는 것이지? “난 아냐!! 아니란 말야!!!누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겠어!” 까에따노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그건 나쁜게 아니라고 타일렀지만 도무지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가우디 특별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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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를 어떻게 알았는지 기억이 안난다. 고등학교때였나..집에 가우디 작품집 같은 것이 있었다. 커다란 책에 사진이 많아서 즐겨 보았다. 거기서 그의 건축물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어느새! 대학에 와서는 나도 모르게 가우디를 아주 잘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나 인생..등등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가우디라는 사람의 작품집이 우리 집에 있다는 것이 어느 순간 자랑스럽다고까지 느껴졌었다. (젠장 소박하기는..-_-) 물론 사진으로 접하는 것들은 그저 굉장히 대단하고 커다랗고 멋질거라고만 생각했다. 여행을 계획하는 도중에 내게 꼼꼼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 루트도 정말 엉성하게 짰었고 유레일도 대충의 계획에 맞게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만 되는 두 달짜리 패스를 구입했던 것이다. (물론 그래서 포르투갈에선 쫌 고생했다..아, 네덜란드와 벨기에 갈 때도 고생을 했다.) 그래서 여행 초기엔 가우디에 대한 생각은 사진에서나 본 것처럼 그저 멋지고 굉장하니깐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스펜인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도 모르게 정말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에 가우디 작품집에서 보았던 사진들이 떠올랐다. 분명 사진에 본 느낌이었다. 스페인이라는 곳은. 그래서 가우디를 생각하게 되었고 여행객들을 만나보면서 더더욱 바르셀로나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굳어졌다. 대부분의 바르셀로나 방문객들은 가우디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내 머릿속엔 바르셀로나를 생각하면 가우디가 떠오르곤 한다.

물론,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말고도 대단한 거장들을 경험할 수 있다. 미로, 피카소, 미스 반 데로우 등등..손으로도 다 꼽을 수 없는 많은 문화 유산들이 있다. 그럼에도 바르셀로나 국민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가우디를 제일 먼저 꼽는건, 도시 전체에 가우디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또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서 그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의 가로등, 벤치, 분수..가우디의 작품들은 시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곳 사람들의 열정이 곳곳에서 가우디의 일생을 얘기해준다. 가우디의 작품은 어느 파나 주의로 분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세계는 독특하고 새로웠다. 특별한 스승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것도 아니고 단지 자연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얻어진 창조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 중 비슷하거나 같은 모델은 찾아볼 수 없으며 이는 작은 소품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한 일화로 어느 기자가 그에게 건축의 교본은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창문 너머의 나뭇가지를 가르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교본은 바로 저 나뭇가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집안에 건축가도 없었으며, 어려서부터 건축가가 될 계획도 없었단다. 사실 그가 일생동안 했던 작업은 ‘건축’이라는 특정한 분야가 아니라 스스로 창조 작업이라고 명명한 것과 같이 다만 그가 좋아하고 더 알고 싶어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가우디가 매우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인물일 것으로 생각되어지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간단하고 구체적이며 확실한 사실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신앙에 있어서도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고 교부들의 충고와 질책들을 모두 받아들일만큼 절대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 예배의식이나 행위에 대해서는 논쟁을 벌일만큼 자기 신앙에 대한 주관이 뚜렷했다. 자신의 작업 역시 추상적인 해석들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조물주가 행한 창조작업의(특히 자연)일부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시를 싫어했다는 가우디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매력적이었던 이 인물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내가 제일 처음 보았던 가우디의 작품은 까사 밀라다. 이 건물은 바로 내가 까에따노를 다시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 건물을 ‘La Pedrera’라고 많이 부른다. 그 이유는 건물의 생김새가 (특히 기둥과 아치) 돌을 캐내는 채석장(La Pedrera)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민간인을 위한 주택으로 설계되었는데 초기엔 주택으로 사용되었지만 나중엔 관광용으로 바뀌면서 사람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이따금 전시회도 열며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이 건물의 베란다가 정말 특이했는데, 꼭 아구의 입모양을 연상시킨다. 여길 방문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이 건물 앞에서 고개를 들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띨해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펴서 지도를 가리키며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 가르쳐 달라고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하! 이 수법은 그동안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없이 봤던 여행담에 나오는 주의할 좀도둑이잖아!  여행객인 척 하면서 길을 묻다가 가방이나 지갑을 채간다. 눈도 풀린 것이 영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대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디라고 말해주었다. 참내..이렇게 유명한 건물 앞에 서 있으면서 지도도 못보나!!! 점점 의심스러웠다. 그런데도 계속 잘 모르겠다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씹어 버렸다. 투명인간 대하듯 싹 무시했더니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더군. 나침반까지 꺼내가면서 말야..그런데 이 남자는 내가 한 30분을 그 앞에 서 있었는데 내내 그곳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걸리는 사람에겐 계속 지도를 꺼내 묻는 것이었다. 좀도둑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지금까지도)어쨋튼 그 남자 역시 까사 밀라를 기억하게 하는데 일조한 사람이다.

두 번째로 내가 만났던 가우디 작품은 구엘 저택과 구엘 공원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구엘 저택은 앞선 여행기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했고 구엘공원에 대해서 얘길 해보겠다. 구엘 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꽤 높이 올라가야 했다. 메트로를 내려서 걸어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간 후, 또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수직 상승하면 왠 입구가 나타난다. 거기서 또다시 산인지 언덕인지를 오르다가 오솔길로 빠져들면 공원으로 진입할 수가 있게 되어있다. 먼저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어디 실내인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르막길에 계단이 있는데, 양쪽 계단 가운데로 올라가기만 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놓여있었다. 얼마나 힘들도 가파랐으면 이 사람들이 이런 것까지 다 놓아주었는지 상상해주길 바란다. 구엘 공원에 진입하기 전에 그놈에 언덕을 뱅뱅 돌다가(구엘 공원 가는 오솔길을 찾지 못해..)너무 힘들어 벤치에 앉았다. 나무 사이에 묘하게 가려진 벤치였는데 거기 앉아서 점심으로 싸가지고 간 블랙체리를 먹었더랬다. 이 때는 계절탓인지 스페인에 블랙체리가 정말로 쌌다. 그리고 그 맛은 정말 환상이다. 앵두와 비슷한데 좀더 달고 시다. 암튼 점심을 먹은 후, 오솔길로 접어들었는데 멀리서부터 공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멀리서 보아도 꿈인지 생시인지..참 몽환적인 세계였다. 만화에서나 보던 버섯기둥, 타일로 된 파도 같은 벤치들..이상한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그 곳에서 한참 사진을 찍다가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먼저 버섯모양의 돌 기둥들을 만날 수가 있다. 구엘 공원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직각의 직선이나 규칙적인 모양들은 찾아볼 수 없다. 초기에 이 공원을 짓게 된 것은 전원 주택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공원 자체가 굉장히 넓고 큼직하다. 그리스에서나 봄직한 도리아식 기둥 위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그 유명한 타일벤치가 쭈욱 이어져 있다. 그늘 하나 없는 이 광장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이 관광객들이었는데 혼자 갔던 나는 타일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일어났다. 타일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는 도마뱀 타일의 분수도 보았다. 역시 아이들이 그 주변에 제일 많았다. 바르셀로나의 어린아이들은 이런 공원을 바로 근처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기나 할까 모르겠다. 너무 신비롭고 독특한 공원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밤에도 한 번 갔던 적이 있고, 구엘 공원을 다녀왔던 이 날 낮에도 갔었다. 가우디의 작품이 다 그렇지만 굉장히 눈에 띈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이 현대적인 도시 바르셀로나에선 전혀 그것들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눈에 띄게 독특하지만 이 곳이 아니면 정말 안 어울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그랬다. 한 복판에 여전히 공사를 하고 있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이 대규모 공사에 불만인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그것마저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한 부분인 듯 보였다. 이 웅장한 성당을 보면서, 그리고 성당 벽면에 섬세하게 조각된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서 가우디의 신앙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도착한 곳은 옥수수 모양의 첨탑들 사이였다.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보다가 문득 맞은편에 있는 첨탑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Hosanna’ 색색의 타일로 삐뚤빼뚤 만들어진 저 글자들엔 보는 사람들을 숙연해지게 만드는 순수한 신앙이 숨어 있었다. 한동안 감동한 채 맞은편의 첨탑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성당을 나가는 문은 기념품 가계를 통해야 한다. 가우디가 바랬던 상술은 아니었겠지만…성당을 나와 멀리 떨어져서 성당을 바라보니 구석구석에 비둘기똥이 얹혀져 있었다. 이것도 유럽의 낭만에 속하려나 모르겠다.

그외에 내가 보았던 가우디의 작품은 까사 바뜨요와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데..어떤 연립주택의 낮은 벽이다. 까사 바뜨요는 발코니가 물고기의 아가미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직접 보진 못했지만 구엘 저택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지가지 모양들의 굴뚝들이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고나면 짖궂은 아이의 상상력을 떠오르게 한다. 구엘 저택에서 보았던 높이 솟은 천장에 새겨진 달과 별 모양의 작은 창문들, 구엘 공원의 버섯 모양 기둥들, 도마뱀 분수, 타일로 만든 벤치..그는 이런걸 사랑하게 될 지금의 우리들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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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여행기를 다시 쓴다. 게으름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부족한 그런 늑장이었다. 몇 번이고 모니터 앞에 앉아 여행기를 쓰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시작하다 끝내 버리곤 했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내게 쓸모있게 작용하고 있다.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나 풍경속에서 난 문득문득 스냅사진처럼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꼭 한 장면씩만 떠오르는데, 그것이 지금의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어주는지 모른다. 나를 누군가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 난 터키에서 돈을 잃어 버리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결국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었던 때를 기억해낸다. 그때 난 초조하고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믿을 수 있는건 나밖에 없었기에 내 선택을 믿으며 확실하지도 않은 선택들을 연거푸 해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다른 선택을 했었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거나 내가 죽을뻔하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그러니까 무엇을 선택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선택을 해도 된다는 거다. 그랬어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내 선택이 의심스럽고 못미더운 주변 사람들을 통쾌하게 비웃어 주기 위해서라도 난 가던 길을 아주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된다. 다른건 몰라도 내 인생에 대한 선택이라면 말이지..

달리 미술관을 다녀온 다음날 난 이 예술적 분위기에 고무되어 다음날 까에따노랑 또 피카소 박물관엘 갔다. 박물관은 아담한 크기였는데, 미술작품들의 수는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까에따노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한 후, 까에따노네 유스 호스텔에 주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뭔가를 해먹기로 했다. 큰 마트에 들려서 뭘 먹을까 한참을..정말 아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냉동 피자를 먹자고 했다. -_-;; 냉동 피자를 사와서 전자랜지에 녹이는데 이게 함흥차사다. 20분을 녹여도 녹지가 않는 것이다. 이곳 전자랜지가 꼬져보이긴 하는데 이 정도란 말인가. 그 사이 이 호스텔에 묵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들락날락하며 요리를 해먹고 있었다. 음..먹는데에 드는 돈을 이렇게 아낄 수도 있겠군. 그런데 혼자 다니다 보니 이렇게 요리를 해먹는 일이 불가능하니 참 아쉬울 때가 많았다. 피자를 다 먹고 걔네 방에 놀러 갔는데 거기엔 독일인 남자, 인디언 남자, 그리고 스위스에서 온 남자가 있었다. 이 독일인 남자가 정말 유쾌했는데, 이 남자는 엄격한 배지테리언이었다. 그래서 육류는 물론 어류 유제품 모두 먹지 않는다. 오로지 과일과 채소만 먹는데 이것도 익힌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 날 것만 먹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이 사람의 침대위엔 각종 채소와 과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남자가 들어오더니 잽싸게 오렌지부터 까고 그걸 먹으며 얘길 한다. 키가 무척 컸고 예상대로 역시 무지 말랐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멸치처럼 말랐다는 느낌보단 깡다구 있게 마른 호리호리한 체격이란 느낌을 더 많이 풍겼다. 워낙에 골격이 크니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이 독일 남자의 눈은 정말 200만 볼트 반짝이고 있었다. 이 눈이 그런 강한 인상에 한 몫 했을거다. 큰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서 사람을 쳐다보는데 압도당할 정도였다. 내게 소개를 하고 국적을 묻더니 잘됐다며 아직 한국인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다행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곧 한국말로 숫자를 어떻게 세냐고 묻는다. 그래서 하나 둘 셋..가르쳐주었다. 이 남자는 그걸 전부 자기 노트에 배끼고 있었다. (독일어 발음으로. 즉 소리나는대로 독일어로 적었다.)그리곤 또 나더러 한국말로 다시 적어달라고 하고..정말 열심히 소리내서 연습하더니 이젠 그옆에 있던 인디언 에게 그 나라 말로 숫자를 어떻게 세는지 묻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언어로 숫자 세는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왜 그런걸 적어두냐고 물으니, 나중에 혹시 자기가 각각의 나라를 여행할 일이 생길지도 모를텐데 그때 되면 이런 숫자를 알아두는 것이 그래도 유용하게 쓰일거라고 말했다. 부지런한 이 남자는 아직도 내 기억속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는 인물중 한 사람이다.

그 방에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까에따노와 나는 에스빠냐 광장에서 열리는 분수쇼를 보러 나섰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9시쯤 자리를 잡고 기다리니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빛깔 있는 물이 분수에서 솟아오른다. 음악은 매일(매주였나?.)달라진다고 한다. 이 분수쇼를 한 번 하는데는 억단위의 돈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바르셀로나 시는 일주일에 네 번 이 행사를 통해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거다. 분수쇼는 기대이상이었다. 그냥 놀이공원에서나 보던 그런 분수쇼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음악도 계속 같은 음악이 나오는게 아니라 클래식에서 팝송(이 날은 마돈나 노래가 나왔었다.)까지 다양하게 틀어주고 그거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었다. 특이한 것은 그 분수쇼 하는데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튀는 물을 맞으며 옷이 다 젖을 때까지 그 앞에서 춤을 추거나 연인과 키스를 하며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 옆엔 남-남 커플이 찐하게 키스를 하며 주위 시선엔 아랑곳 없이 즐기고 있었다. 이런 기분, 이런 분위기 어디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쯤 이렇게 사람들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기분. 좋을 것 같다. 40분 정도의 분수쇼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기곤 다시 계단을 내려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엔 맥주도 한 잔 사먹고 룰루랄라 돌아왔었다.

그 다음날, 까에따노와 난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했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Nimes라는 곳엘 가기로 했는데, 그것이 예상대로 되질 않았다. -_- 흐흐.. 다음날 점심때쯤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내 마음이 또 요동치기 시작한거다. 이대로 계속 여행을 같이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혼자서 고민을 싸매고선 도저히 갈팡질팡하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메일 확인도 안한채 곳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고민만 계속 했다. 오후가 다 되어 메일을 확인해보니 까에따노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며 자신은 지금 Sants역이라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몇 번이고 메일을 보냈었다. 그래,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Sants역으로 향했다. 그래서 지금 내 생각은 어떻고 저떻고, 터키를 지나 이스라엘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을 얘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땐 그것이 정말 큰 문제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처럼 내 고민은 엄청났었고, 또 내 여행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를 두고 심각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으니까. 내 얘길 다 들은 후에 까에따노는 조용히..그 얘길 왜 여태 하지 않았냐고 화를 낸다. 왜 혼자서 결정하려고 하냐고..항상. 그러고보면 난 정말 그렇다. 뭐든지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고민한다. 이건 오랜 버릇인데 누구에게 상의를 하거나 의견 묻는 일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피하는 편이다. 그 이유를 따지고따지고 본다면, 어렸을 적의 애정 결핍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난 무척이나 관심받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언니나 동생에게 관심이 빼앗긴다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관심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혼자서 뭐든 잘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사춘기때의 반항심은 반대로 향하게 했지만..)이 오랜 버릇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데, 혼자서 쉽게 결정을 못내리고 고민이 많은 것도 틀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쓴 결과가 아닐까 싶다. 뭐 지금이야 많이 고쳐져서 일단 결정을 하고 보지만..암튼, 그때 서운해하는 까에따노를 대하며 많이 생각했었다. 이렇게 하다간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함께할 수 없을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난 항상 까에따노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언제나 항상 솔직했었고. 그 솔직함이 내겐 마음 깊은 곳까지 안도하게 하는 무엇이었다. 그렇게 해서 난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정말 그런 점은 내가 많이 배운 것 같다. 어린 친구였지만서도. 그런 열린 마음은 늘 내게 부러운 마음을 들게 했었다. 여행 후에 알게 된 글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나를 버리니 그가 내게 오더라..’ 나의 어느 것 하나 버리지도 않고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내게 관심 가져주거나 사랑해주길 바란다는건 지독한 이기심이 아니었을까. 난 적어도 버려야 가질 수 있다는 대단한 사실을 여행을 통해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이다.

까에따노와 함께 다음날 아침 일찍 Nimes로 향하기로 하고서 그 날 묵을 호스텔을 찾아다니는데(이 날 밤에 Nimes 갈 생각에 호스텔을 둘 다 체크아웃하였다. 그러나 이 날 기차표를 예약하지 못해 결국 떠나지 못하게 되었었다.)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빈 곳이 단한군데도 없었다. 단한군데도. 별 네 개짜리 호텔마저도.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우린 숙소 찾는 일을 포기하고 다시 Sants역으로 왔다. 역에서 자게 된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었다. 역안으로 들어가서 잘려고 했는데 역이 문을 닫았다. 새벽 6시에 문을 연다고 써붙여져 있으니 참 난감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비를 막기 위해 위에 지붕이 있는 벤치가 있다.)으로 가서 길다란 의자 위에서 자기로 했다. 사실 역 바로 앞에서 자고 싶었지만 그곳은 이미 거지들과 우리 같이 숙소가 없어서 역까지 오게 된 배낭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암튼, 그 길다란 의자에 누워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 (한 사람은 배낭을 지켜야 하기 땜에.) 그런데 까에따노는 자기가 지켜야 할 타임에도 자꾸만 졸아 나를 의자 밖으로 밀어내서 자다 깬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_-;;; 아침 7시쯤 부시시한 눈으로 역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인 후 (완전 부랑자들이구만..)따뜻한 밴치에서 또 잠이 들었다. 8시에 다시 깬 우리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어디든 씻을 곳을 찾자고 결정했다. 결국 우리가 간 곳은 까에따노가 묵던 유스 호스텔인데 그곳은 샤워실이 밖에 있기 때문에 누가 들어가서 씻든 모를거라고 했다. 그곳에 가서 몰래 샤워를 마치고 (난 거기다 아끼던 샴푸까지 놓고 오고..-_- 결국 프랑스 남부 가서 또 샴푸를 사게 됐지만.) 몰래몰래 그곳을 나와다시 역으로 향했다.(음..몰래몰래? 라고 할 순 없겠다. 탁구대가 야외에 있길래 둘이서 탁구를 한참 치고서 나왔으니.) 기차표를 사고 시간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였다. 기차를 타기 전에..내 스페인 돈이 많이 남아서 그걸 다 쓰고 가자고 합의를 하고 먹을걸 엄청나게 샀다. ‘살라미’ 라고 불리는..그 프랜즈의 조이가 좋아하는 햄도 사고 군 것질거리도 막 사고서 기차에 올랐다.

Nimes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린 둘다 녹초가 되어 처음 타자마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시간 외엔 내내 졸았다. 심지어 까에따노는 내 어깨에다가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었다. -_-;;;; 곳곳에서 들려오던 불어의 리드미컬한 발음, 이국적인 풍경, 여기저기의 불어 표지판을 보면서 자기는 지금 난생 처음 프랑스땅을 밟은 거라며 흥분해 펄쩍펄쩍 뛰는 까에따노(까에따노는 불어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포르투갈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쉽기도 했겠지만 이 친구는 정말 엄청 쉽게 불어를 습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와 침낭을 기차에 놓고 내려서 정신 없이 짜증 만땅인 나..이렇게 우린 프랑스 남부에 오게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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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쓰며 좋은 것은 지난 여행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전부터 그런 증세는 더해져서 내가 만약 다시 한번 이렇게 다녀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정말 잘할 수 있으리란 다짐으로 이어졌다.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여행은 중독이라더니…

그 다음날 역시 까에따노에게서 연락이 없자 나는 구엘 저택을 구경하기로 했다. 람블라스 거리 한 가운데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것이.. 주변 건물들에 묻혀서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뻔했다. 어쨋튼 찾아서 들어가보니 가이드와 동행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단다. 놀라웠던 것은 그 문구를 한글로도 써놨다는 것이다. 흐흐.. 처음엔 한글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일단은 그 삐뚤빼뚤한 글씨가 너무도 여러 가지 정황들을 상상케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처음으로 보게 되는 공공장소에서의 한글이라 반가운 마음에서였다.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가이드를 기다리고 15분 정도 후에 지하 마굿간서부터 차례대로 올라갔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이 구엘씨와 가우디의 관계다. 후원자 치고는 너무 든든했고, 후원자 치고는 가우디와 관계가 너무도 돈독했기 때문이다. 가우디 창의력의 밑거름이 되어준 구엘. 그는 젊은 가우디의 능력을 높이 사고 일찍이 그의 후원자로 나서게 된다. 가우디 역시 그런 그의 후원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구엘 저택을 둘러보며 느꼈던 것은 구엘은 가우디를 지나치게 믿었고, 가우디는 구엘을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는 것이다. 다이닝 룸의 의자와 조명, 벽의 무늬까지 가우디가 디자인을 했는데 그..의자의 무늬가 나를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알아채게 했던 것이다. 세심하게 새겨진 의자의 섬세한 동물들. 그리고 그것을 닮은 나무벽의 무늬. 그것을 본 순간 감탄하고 부럽고, 기쁘고, 놀라워했었다. (가우디 얘기는 다른 편에서 더욱 자세히..)

그곳을 나와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전부 다 돌았다. -_-;; 그때 나의 체력에 다시 한번 놀라 버렸다. 게다가 구엘공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진 걸어갔었다. 흐흐. (가우디 건축물에 대한 얘기는 다른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 위해 여기선 일단 간단히만 쓰겠다.) 암튼, 사그라다 파밀리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딱 한 사람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고 유선형으로 베베 꼬아진 계단을 정말 40분 넘게 올라갔다. 놀라운 것은 바람이 너무 잘 통해서 전혀 덥지가 않았다는 거다.) 뾰족한 봉우리(라고 표현해야 하나..-_- 암튼 그것.)사이에 놓여진 다리위에 서서 시내 전경과 맞은편에 서 있는 봉우리들을 바라보며(성당의 앞뒤로 뾰족한 봉우리들이 있다.)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매우 높은 곳이어서 바람이 굉장히 세차게 불었다. 머리가 여기저기 휘날리며 그냥 멍하니 바람을 맞고 서있는데 맥시코 여자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사진좀 찍어달라고..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한 장 부탁했다. 나더러 혼자 왔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나도 묻고 싶었지만 그 여자도 혼자 온 것 같아서(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으니.)그냥 잠자코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어디 갔으며 이제 어딜 갈건지를 얘기하다가 어디선가 이 여자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아이가 돌아보며 금방 가겠다고 한다. 봤더니 그녀는 일행이 있었다.-_- 그것도 장정 서너명이. 그런데 왜 나더러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거지.-_-a 남자아이들과 사라져 버린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서 나가려는데 출구가 또 기념품 가게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기념품들이 꽤 괜찮았다. 구경을 하고 나와보니 다리가 아픈 것보다 발바닥이 아팠다. 그래서 일단 메트로를 타고 람블라스 거리로 향했다. (발바닥이 아픈 것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이었다. 이제보니.-_-) 메일을 확인해보니 까에따노가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왕 큰 백화점 앞으로 나타나겠다는군. 그래서 그 앞에 서있었다. 백화점 앞엔 모로코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손으로 만든 팔찌며 목거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사는 사람들은 역시 대부분이 관광객들이었고, 장사꾼들은 특이한 말투들로 손님들을 마구 불러대고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까에따노가 나타났다. 람블라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항구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엔 코엑스몰과 비슷하게 생긴 종합 놀이공간 비슷한 건물이 서 있었다. 특이했던건 그 건물이 항구에서 좀 더 나아가, 물위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 다리가 꽤 인상적이었다. 밤이라서 조명을 다 켜주는데 정말 예쁘다. 밥을 먹고나서 그곳을 나와 항구를 향해 나있는 널따란 공터에 앉아있었다. 정말 공터였다. 나무로 된 바닥엔 벤치 두 개가 다였다. 가로등이 곳곳에 서있었고. 항구쪽으로 나있어서 바람도 많이 불고, 저 너머로 보이던 람블라스 거리 끝자락의 어수선함.. 내가 앉아있는 이곳만 다른 세상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시간이 늦어서 각자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다음날은 달리 미술관을 가자고 약속했다.

아침에 만나지 않으면 시간안에 못 갈 것 같아서 서두르기로 했다. 아침 9시에 sants역에서 만나서 달리 미술관이 있는 Figueres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두 시간 반정도 걸리는데 계속 바다가 보이고 절벽도 보이고 그래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갔다. Figueres는 달리가 태어난 작고 아담한 마을 같은 도시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99%이상은 달리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달리 미술관은 겉모습부터가 굉장히 특이했다. 무슨 촬영장에 온 것처럼 화려하고 별났다. 벽돌이 둘러싸여져 있고 거기엔 또 요상한 무늬들이 튀어나고 파여져 있었는데 별모양 같기도 하고…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놀라웠다. 가운데에는 구식 자동차가 놓여져 있고 그 위론 달리가 조각한 듯한 나체의 여인(으로 짐작되는-_-)이 서 있었다. 외부에 있던 그 작품은 자동차안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뭘 뜻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난해했다. -_-;; 내부로 들어가니 가운데에 있는 천장이 넓은 홀의 벽 한 면을 꽉 채운 그림이 있었다. 충격적인 그림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떠밀리며 봐야했다. 3층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곳곳을 그의 크고 작은 그림들이 채우고 있어서 그 창작력에 감탄했었다. 달리가 초기엔 삽화 그림(삽화그림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비평적이고 냉소적인 문구들을 함께 넣어 그림을 그렸다.)을 그리는 일을 했다는 것도 여기서 알았다. 그때 보았던 그림에서 그의 스케치나 뎃생 실력이 어느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해서, 기괴한 그림들을 그린다고 해서, 결코 그 기본실력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달리가 흔히 정신착란을 겪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그의 괴팍하고 누구도 감당못할 불같은 성질 때문이었다. 어려서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 살바도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로 그는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감당못할 사랑만을 받고 자라게 된다. 어려서부터 죽음에 매우 익숙해있던 달리의 그림들은 그래서 죽음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들을 많이 담고 있다. 그의 특이한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갈라(달리의 부인)는 그에게 매우 특별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영감의 대상? 그림에서도 유독 그의 아내를 그린 그림이 많은 것도 그 이유다. 그의 그림들엔 성적인 환상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식욕과 탐욕과 같은 인간의 본성들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그림은 달리의 여동생 마리아를 그린 뒷모습과(이 그림은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비 문화센터에서 봤더랬다.), 그의 부인 갈라를 원구로 그려낸 그림이었다. 그의 작품중엔 설치미술도 있었는데 옆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앞으로 나와서 멀리서 내려다보면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설치물이 있었다. 재밌는 발상이었던 것 같다.

달리 미술관을 나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점심을 늦게 먹은 탓에 배는 고프지 않고 람블라스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브라질식 생과일 쥬스집에 들어가 내가 선택한 과일들로 쥬스를 주문했다. 으..그 맛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바나나랑 사과랑 오렌지였나..암튼 진짜 맛있었다. 그곳을 나와서 길을 묻기 위해 어느 바엘 들어갔는데 거기 일하던 바텐더가 까에따노더러 브라질에서 왔냐고 물었다.(티셔츠에 브라질 가수 이름이 적혀있어서..)그러자 둘이 반가워 하며 한참을 얘기하다가 알 게 된 사실은 그 바텐더가 까에따노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둘은 연락처까지 주고 받으며 뛸 듯이 좋아했다. 참..그러고보면 세상은 넓기도 하지만 좁기도 한가보다. 그리고나선 바로 그..기네스 맥주를 마시러 갔다. 후후..아이리쉬 펍을 찾아갈 생각은 아니었다. 내 가이드 북에 있던 괜찮은 술집에 가고자 했는데 도무지 그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발견한 펍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는데 우리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일당들은 영국인 or 아일랜드 사람들로 보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고 난리법석을 떠는지 온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통에(그것도 지나가던 똥개를 보며 다들 이상한 영어로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깔깔깔 자기네끼리 웃으며.-_-) 급기야 바텐더가 두 번씩이나 나와서 일당들을 진정시키고 나중엔 아예 내쫓았다. 기네스 맥주는 아일랜드 흑맥주인데 그 맛이..정말 끝내준다. 술이 달다면 이해가 되려나..정말 달다. 위에 얹어있는 하얀색 구름같은 거품 역시 절대 걷히지 않으며(약 1cm의 두께로 깔려있다. 게다가 그 거품이 꼭 생크림 같다. 뽀송뽀송..)마실 때마다 입술에 묻는다. 흐흐..정말 맛있었다.

그 날도 역시 늦게 들어갔다. 하지만 나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되는 것 같다. 어찌 이리도 잘..그것도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도 지치지도 않을 수가 있는 것이지. 나도 내가 무서웠다. -_- 이젠 람블라스 거리는 집앞마냥 편해졌고 밥이 입에 안맞아서 고생하는거? 물론 없고, 사람에 치이고 겁나는 것 역시 없어진지 오래고, 언어 때문에 불편하거? 나의 짧은 스페인어가 막히면 까에따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렇게 신나는 날들이 바르셀로나에선 계속이었다.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고생은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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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예전에 까에따노와 얘길 하다가 알게된 Sebastiaõ Salgado의 사진 전시회를 가보기로 했다. 마침 바르셀로나에서 하는 것이 나의 일정과 맞은거였다. 이럴 때 여행 온 보람이 느껴지는데 우리나라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공연이나 전시회가 유럽에선 자주 열리기 때문에 시간만 잘 맞으면 관심있는 전시회들을 두루두루 보며 여행 할 수가 있다. 참..그때 바르셀로나에선 마돈나 월드투어 콘서트도 있었다.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곳은 가우디의 건축물중에 하나였는데, 까사 밀라라는 건물이다. Pedrera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건물은 까사 밀라에 쓰인 석회암 소재를 두고 지어진 애칭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흥분되는 아침이었다. 까사 밀라에 가본다는 것이 그랬고, Sebastiaõ Salgado의 전시회가 너무나 기대가 됐기 때문에. Sebastiaõ Salgado은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90년대들어 인정받기 시작한 브라질 사진작가다. 브라질 북부의 광산 노동자들 사진으로 유명해졌고, 유진 스미스 사진작가상이었던가..그런 상도 받았다고 들었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을 아는 사람은 이 사람의 사진이 어떤 사진일지 조금은 예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사진이지만 한편으론 ‘한 장의 시’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이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 흑백사진에다가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끔찍한 사진들도 있었기 때문에. 주로 광산 노동자들 사진, 상파올로의 어두운 모습들, 근대화 혁명에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거의 다 보고 코너를 돌려고 하는데 누가 내 앞에 떡 버티고 서있다. 까에따노였다.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 이 녀석을 볼려고 여기 온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후후..함께 까사 밀라를 나와서 Gracia거리를 따라 쭉 내려왔다. 그리곤 람블라스 거리에 도착해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기로 했다. 처음엔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 묻고 답하고, 전시회에 대한 소감, 한국 문화와 여기 문화의 차이점을 묻길래 그것도 대답해주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평소대로 이야길 나눴다. 그러다가 저녁 노을이 지고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자 까에따노가 이런 말을 했다. “I wanna be your boyfriend.” 주변의 소음과는 상관없이 그 말만 또렷하고 선명하게 걸러져서 들려왔다. 그리고는 아주 흔쾌한 나의 대답. 약속이나 망설임없는 사귐이었다. 뭐랄까…어차피 마지막을 알고 만나는 관계? 그것은 의외로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산뜻하고 즐거운 느낌.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 만남이 훨씬 가볍고 쉬워졌었다.

우린 밤이 되자 까탈루냐 박물관 위로 올라가 에스파냐 광장의 야경을 보고 나서 함께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밤에 조명을 비춰주면 그렇게 멋있다고 하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소문대로..멋있었다. 고개가 아플정도로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고,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알 게 된 사실인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이 앞을 지나리란 사실이다. 이상하게 실감이 안나던 그 사실. 그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일상의 한 부분일테지. 가는 길에 놓여져 있는 한 건물같은거. 신기하다..

그 날 밤은 그렇게 헤어졌다. 이메일로 연락하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아무 연락이 없길래 난 어딜 갈지 아침부터 계획을 짜느라 고민고민을 했다. 어제 새로 들어온 남매가 있는데 오늘 투우 경기를 보러 간단다. 플라맹꼬도 못봤는데 스페인 와서 투우경기도 못보고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난 먼저 나왔다. 몬주익 언덕에 위치한 미로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몬주익 언덕은 그 유명한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걸어서 올라가기엔 힘들거라고들 했는데 난 몬주익 언덕을 순회하는 그 버스 타는 곳을 도저히 찾지 못해서 할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갔다. -_-;; 에고.. 중간에 공원도 보여서 공원에 앉아서 샌드위치도 먹고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가니 여러 박물관들이 보인다. 미로 미술관은 거기서도 또 조금 더 가야했다. 도착해보니 새하얀 건물이 산뜻하게 서있었다. 그 앞엔 미로의 조각작품이 놓여져 있고. 하얀 건물에 빨갛고 파란 조각작품은 그 자체로 함께 미술관이었다. 입장을 해보니 정말 깔끔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생전에 스케치했던 그림들과 설치 미술, 조각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미로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다. 선 몇 개와 색으로 채워진 공간. 굵고 검은 선들이 형체를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여자고 강아지고 하늘이고 새란다. 추상화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미로의 그런 선들이 수없이 반복된 습작과 완벽한 뎃생 실력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을땐 퍼즐을 짜맞추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삐뚤삐뚤한 선으로 주로 여자를 주제로 많이 그렸는데 이상하게도 굵고 검은 선들이 섬세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예술인들은 보면 여자를 주제로 해서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에게 여자의 형체는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일까. 주로 어머니 혹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여자’는 어떤 의미였을까. 유난히 여자라고 이름 붙여진 선들을 많이 그려낸 미로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이다.

미술관을 나와 또 한참을 걸어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투우 경기를 보러 갔다. 난 투우 경기가 잔인하고 지루하기만 할 줄 알았다. 왜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게도 투우에 열광하고 투우사에게 집착하는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티비로만 보던 투우는 꽤나 지루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우의 매력은 현장에서 실제로 열광하며 손에 땀을 쥐는 그 긴장감이 아닌가 한다. 왠만한 액션 영화보다도 더 재밌고, 긴장되고 스릴 넘친다. 정말 그곳에 앉아있으면 미친척 옷을 벗어던져서 투우사를 향해 손을 들어 버릴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첫 경기는 힘이 없는 소를 상대로 싸운다. 준비운동쯤 되려나… 마지막에 죽일땐 잔인하단 생각과 함께 시시하게 끝나는 것 같아서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소가 나오면서부터는 모든게 달라졌다. 펄펄 끓는 소는 미친 듯이 코를 흥흥 거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뿔로 박아대고 제 분을 못 이기는 듯 보였다. 긴장한 투우사도 피해있고 장내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투우사가 나와서 소와 신경전을 벌이고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겼을 때, 관중들은 똑같이 외쳐댔다. “올레!”

올레가 여기서 온 단어였다. 이번 투우사는 앳되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어찌나 몸이 날렵하고 유연하던지 인간의 몸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투우사의 몸놀림은 가히 예술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손 동작, 허리 놀림 하나하나가 어찌나 우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지 직접 보지 않으면 그 매력을 정말 모를거다. 마지막에 소 등에 칼을 꽂을 때, 한번에 칼을 꽂으면 그 투우사는 단번에 스타가 된다. 이 앳되 보이는 청년이 그 주인공이 되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 앳된 얼굴로 소 등에 한번에 칼을 내리 꽂았다. 사람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 비명소리가 들린다. 투우사가 경기장을 한 바퀴 돌 때, 어떤 남자는 자기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서 그 앳된 투우사에게 던졌다. 그 투우사는 자신의 땀을 그 티셔츠로 닦고 벌거벗은 남자에게 돌려줬는데, 그 남자는 그 땀 묻은 티셔츠에 마구 뽀뽀를 하더니 다시 입는 거였다. -_-;;; 배 나온 아저씨였는데.. 생소한 광경이었다. 저렇에 장렬하게 죽은 소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가 되어 아주 고가에 팔린다. 화내다 죽은 소라서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는데도 식당 주인들은 메뉴에 언제 무슨 경기에서 누구누구 투우사에게 칼을 맞고 쓰러진 소라고 자랑스럽게 표기를 해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소의 요리는 인기 만점이란다. 이렇게 한번에 칼을 맞고 죽은 소는 최상등급에 속하게 된다. (장렬하고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소라고..)

나조차도 놀랐지만 이런 잔인한 경기를 보면서 그런 흥분과 희열을 느끼다니.. 이곳 사람들의 다혈질엔 이런 경기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너무 재밌게 보고 나와서 저녁으로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여행 다니면서 알 게 된 사실 또 하나는 어디건 중국요리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 음식은 엄청나게 싸다는 것이다. 양도 푸짐하고. 그래서 나같은 배낭족들에겐 더없이 고마운 음식이 바로 이 중국요리였다. 게다가 같은 중국요리라 해도 나라마다 그곳의 특색에 맞게 맛이 조금씩 다르다. 역시 재밌는 사실이었다. 길다란 쌀을 먹으며 그 순간만큼은 서울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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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시내가 얼마나 큰지..설명을 못하겠지만 8일을 지내면서도 다 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모든걸 말해줄 것이다. 무척이나 스페인적이면서도 코스모폴리탄다운 면모가 느껴지는 이 곳. Las Ramblas거리의 항구 맞은편에 서 있던 콜럼버스의 동상이 말해주듯, 바다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그 모습은 이 곳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자부심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바르셀로나는 까딸루냐 지방의 심장이자 스페인 제1의 상업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까딸란”이라는 자기들만의 방언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바르셀로나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다. (TV 뉴스에선 두 가지 언어로 나오고, 바르셀로나의 모든 지방신문에선 기본적으론 자기들의 방언을 사용한다.) 스페인의 경제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는 요즘 독립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별개의 국가로 독립하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한 나라에 뒤지지 않으며, 문화, 사회면에서도 한 국가의 몫을 담당해내고 있는 이 곳 사람들은 그 자부심이 대단해서 스스로도 바르셀로나를 스페인 안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별개의 도시처럼 얘길 한다. 마치 자기들이 스페인을 먹여살리고 있는 듯이. 사실 그렇기도 하다. 상업도시답게 무척이나 부유한 도시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입장에선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그것이..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살리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 관광수입의 절반 이상을 가우디의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실, 성 가족 성당이나 구엘공원등이 아니면 바르셀로나를 굳이 방문하지 않을 관광객도 꽤 된다. 관광수입으로 부흥하게 된 스페인의 도시가 (수도도 아닌 상업도시가.) 다 컸으니 독립하겠다고 하는 모습이라니. 그네들 뿌리는 결국 스페인의 문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없이는 바르셀로나도 별볼일없는 관광도시에 불과한거다. 왜 모를까..장본인들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늦은 저녁을 먹고 시내구경을 하다가 2시간을 헤매다가 민박집을 찾아옴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 날 밤에 만나게 된 먼저 와있던 언니들. 20대 후반의 그 언니 둘은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저런 케이스가 많았는데(서양애들은 전부 다 나보다 어렸고, 길 가다 만났던 동양사람들은 거의가 나이가 많거나 가끔 동갑들이었다. 무슨 패턴일까 이것은..) 시대가 그런 것일까. 문화의 차이였던 것일까…어쨋든 각자 소중한 여행들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지켜보는 입장에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늦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다음날은 시체스 해변으로 향하기로 한 날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외를 도는 기차를 타고 약..30분을 가면 있는 해변. 언니들이 모두 해변을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나서기로 했다. 이 날 새로 투숙하게 된 두 명의 여성 배낭여행객도 합세하여 여섯명의 여인네들이 해변으로 가게 된 것이다.(내가 길가다 만난 한국인 여행자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이 여인네는 혼자 잠깐 쉬러 왔다는데 나보다 한 살이 많았고, 지금은 뉴욕 파슨스디자인 스쿨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었다. 첫눈에도 그녀는 눈에 뛸만큼 세련됐었다. 큼지막한 썬그라스 역시…기억에 남는 사람이다.)그리고 이 여인네들 통에 낀 남자 한 명. 바로 내가 어제 기차에서 만나서 함께 오게 된 그 남자 말이다. 이 남자는 여행내내 여자들하고만 다니게 된다고 자랑아닌 자랑을 입에 달고 다녔었다. 과연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지만..아참, 해변엔 오후 2시쯤 갔었는데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난 미스 반 데로우가 디자인한 건물이 있는 곳엘 다녀왔다. 다행히도 숙소 있는데서 멀지도 않아 걸어서 갈 수 있었는데, 내가 찾은 그 건물은 현대 건축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미스 반 데로우를 그닥 좋아하진 않았었는데 실제로 그가 디자인한 이 빠베욘을 방문해보니 사실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곡선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직선이다. 게다가 쓰인 재료들도 모두 차갑고 절재된 재료들이다. 1층의 낮은 건물 내부엔 적당한 크기의 거실 정도쯤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고, 그 안쪽에 보이는 조형물이 전부다. 거실있는 곳엔 역시 미스 반 데로우가 디자인한 의자가 놓여져 있었는데 늘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도무지 믿기질 않아서 털썩 주저 앉아보았다. 훗..진짜 그 의자에 내가 앉아있다가 왔다! 사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어쨋든 오전엔 각자 개인 시간으로 보내고 점심때쯤 만나서 함께 해변으로 향했는데 시체스 해변이 토플리스 해변으로 유명하다고 다들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수영복을 입고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세명밖엔 없었으니.-_-; 해변엘 도착해서 겉옷을 모두 벗고 물속에 풍덩 빠졌다. 물이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어서 좀만 멀리 나가도 금새 발이 닿질 않아서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_- 곁에서 이상한 배 비슷한 것을 저으며 놀고 있던 조그만 꼬마들이 우리더러 배에 타라고 부른다. 배에 미끄럼틀까지 달려 있어서 아까부터 무척이나 타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은 마음에 다들 올라갔다. 한참을 미끄럼틀 타고 놀다가 나중엔 지쳐서 그냥 물위에 둥둥 떠있었다. 그것도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둥둥..토플리스 해변이라 그래서 온여인네들이 모두 그런 차림일줄 알았는데 사실 그런 사람은 몇 안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럽의 많은 해변들이 토플리스다. 그러니까 꼭 ‘토플리스 해변’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어느 해변엘 가든 그러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고 있다.) 사실 이때 받았던 문화충격이 꽤 컸는데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을 수 있는 산뜻함’ 같은 것이었다. 애기를 안고 있는 짧은 커트머리의 애기 엄마도 토플리스였고, 10대소녀들 역시 토플리스였다. 할머니가 비키니 차림이었으며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도 웃옷을 벗은채로 썬텐중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은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지의 나라에서 온 우리 배낭족들이나 두리번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지, 모두들 무척이나 태연하게 각자 하고픈대로 뛰어놀고 있었다. 사실 그것이 좀 부러웠다. 토플리스건 아니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너무나 가볍고 산뜻해 보였기 때문이다. 난 비키니도 아닌 수영복에, 그것도 노랑색이어서 무척이나 난감하단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아무도 내게 신경 따윈 쓰질 않았던거다. 후훗..

해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정말 녹초가 다 되었었다. 숙소 근처로 돌아와선 근처 대형 슈퍼에서 샌드위치 재료들을 왕창 사서 다들 둘러앉아 열심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여럿이서 먹어서 그 떠들썩한 분위기가 친근했고, 또 적은 돈으로 정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었다. 그 날 밤엔 다들 또 맥주를 한 캔씩 들고 분수쇼가 열리는 에스파냐 광장으로 향했다. 이 분수쇼가 정말 굉장한데, 바르셀로나에 와서 분수쇼를 빼놓고 가면 그건 평생 후회할 일이라고 다들 하도 입을 모아 얘기하길래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음악이 나오고 그것에 맞춰 분수쇼를 한다는 것이다. 1회에 억단위의 돈이 들어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암튼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그래도 결국엔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으니 바르셀로나는 제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거였다. 목,금,토 에만 분수쇼를 해서 목요일이었던 그 날 기대를 하고 갔는데 그 광장에서 바자회를 하고 있어서 오늘은 분수쇼를 안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날은 분수쇼는 못보고 까탈루냐 국립 미술관에 올라가 높은데서 바르셀로나 시내의 야경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에스파냐 광장이 가운데로 있던 그 야경은 지금도 가끔 그때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던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이 난다. 야경을 볼 때마다 집생각이 나곤 했었는데 이 날도 역시, 야경에 그만 코가 찡해왔었다. 훌쩍… 도시의 야경은 어딜 가나 감동적인 것 같다. 낮보다 더 사람사는 동네같은 느낌을 주는 불빛들. 불빛에 취해 그땐 누구하고도 꽉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