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일상 / Quotidien

2020년의 어떤 상처

그녀가 떠난다.
단 며칠간에 결정된 일이라 내 마음은 기쁨과 아쉬움 둘중 어느쪽으로 정해야 할지 고민했던것 같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두가지 다 가능한 일이다. 그녀를 위해 기쁘고 그녀가 없는 빈자리를 생각하면 아쉽고 슬프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이곳에서 떠나보냈고 어떤 인연은 전혀 다른 상황, 장소에서 또다시 새롭게 이어져갔다. 그녀 역시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인연의 시작이길 바라며 기쁜 마음으로 떠나보낸다.

그런데 혼자 남은 시간, 그녀가 떠난 빈자리를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아프다. 떠나기 전까지의 시간동안이라도 함께할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이기적인 마음은 남겨진 나와 우리를 걱정하고 있다. 행복하게 떠나는 사람을 위해 눈물은 흘리지 말자고 다짐하는데 다사다난했던 2020년, 나에게 맺음과 같은 기억을 남긴 그녀의 작별이 상처로 남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상처가 어떤 씨앗이 되어 또다른 기쁨과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왠지 꼭 다시 만날것 같은 그녀에게 쓰는 내 속마음.

휴식이 필요해

정신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30대중반까지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들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머리가 맑다 라는 기분으로 일어난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일주일에 4일은 하루종일 두통이 있으니 뭔가를 생각하려 해도 집중이 잘 안된다. 그나마 정신이 맑다고 느꼈던 적은 목에 염증이 심해 코티솔을 복용했던 단 며칠간 뿐이다. 

체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집념이 따라주지 않으면 헛된 일이지만 몸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으면 집념이든 인내심이든 들어설 자리가 없는것 같다. 작은일에도 심히 기분이 다운되고 일단 식욕을 비롯해 모든 의욕이 저하된다.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이런 몸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급격하게 녹슬고 있는 이 체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뭘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물론 운동을 하고 끼니도 거르지 말아야겠지만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다. 한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으면 좋겠다. 어디 특별한 곳엘 안가도 된다.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하루종일 앉아 있고 싶다. 아무것도 안하고.

예전에 영욱이가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잖아..라고 스치며 했던 말이 요즘들어 많이 생각난다.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 특히 나이들수록. 좀 쉬었다가 운동이든 뭐든 해보자.

 

가을…

이맘때쯤 덕수궁 돌담길 걸어보면 좋을텐데

그길이 예뻤던건지 어깨 부딪히며 걷던 그 느낌이 좋았던건지…

바람이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일상과 타협하다

cartier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채 저장소로 보내기도 전에 (밀려있던)파도같은 일상이 몰아쳤으니까. 잠깐, 잠깐만 5분만 시간을 줘..라고 말할새도 없이 파도가 밀려오면 바다에 몸을 담근 이상 맞아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몰아치는 파도. 정신없이 맞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다. 제자리에 있다가는 파도만 맞다가 하루를 다 보낼 수 있으니까.

유진이로 인해 반복하게 되는 일상이 버겁다고 느낄때가 있다. 아니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두가지를 모두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일상의 버거움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딘가에 감염된 것처럼 상처가 부풀어 오르고 미열을 동반한 고통이 일상을 지배해 사는게 버겁다고 느껴졌었는데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항생제를 먹은듯 부풀어 오른 곳이 서서히 가라앉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비단 한국을 다녀왔다는 환경의 변화때문만은 아니리라.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유진이와 온전히 단둘이서 3주를 보내고 나니 일상의 버거움을 이제는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물에 풍덩 빠졌다가 나와보니 이제 물이 편해진 느낌.

그리고 그사이 유진이는 또 컸다. 내가 살것 같으니까 이제서야 유진이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건지 아니면 나와 유난히 정서적으로 많이 연결되어 있는 아이니까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유진이도 그에 맞게 변화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보니 유진이가 많이 달라져 있다.

유진이는 이제 어른의 말을 알아듣는다. 상황의 인과관계, 어떻게 했을때(혹은 하지 않았을때) 어떤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프린스의 sometimes it snows in april 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며 나도 모르게 이제 이 아저씨의 노래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했다. 왜냐고 끈질기게 묻는 아이에게 건강이 안좋아져서 죽었다고 이야기 해줬다. 딱히 떠오르는 거짓말도 없었고, 좀더 아름답게 얘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유진이는 죽음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죽으면 엄마 아빠를 다시 못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가슴아프도록 좋아한 프린스의 전설은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채소를 잘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로 결국 끝을 맺었다(나의 젊은날 우상이 이렇게 또 일상속으로 평범하게 묻혀간다). 그날 이후 유진이는 채소를 먹으라는 내 잔소리에 죽은 그 아저씨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상을 쓰면서도 스스로 더 먹으려고 애를 쓴다.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불안을 행동의 동기로 이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하면 안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뭔가 내가 가진 중요한 동기의 원동력을 비슷한 방법으로 심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불안이 뭔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끌림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그 비율이 반반 혹은 삼분의 이정도는 되어야 할것 같은데…그래 앞으로는 방법을 좀 달리해보자.

이런 돌이켜봄이 있을 수 있는것도 이제는 일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일상의 ‘변화’ 라는게 사실은 엄청난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변주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내게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상과 맞서 싸울수는 없다. 일상이라는 파도를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바꾸는게 좋은것 같다. 이제는 이 반복되는 일상을 이용해 매일 단 얼마간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한가지에 몰입해 수행하듯이 반복해나가는게 낫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체인을 끊을 방법은 없고, 그걸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겨우 찾아낸 합의다. 나쁘지 않다. 이 작은 변주가 10년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보기로 하자.

 

변화에 대하여 그 핵심을 표현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주제다. ‘지금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는 불행한 자각으로부터 변화는 시작한다. 이 간격을 못견디는 절박한 사람들만이 이 길을 선택한다. 변화는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작업이다. 자신에 대한 창조적 증오 없이는 이 에너지를 공급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변화가 매우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로 향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구본형

 

사토루 이야기

사토루는 바로 내 앞자리에서 일하는 회사 동료다. 일본인인 그는 나보다 한살이 어리다. 그런데 경력은 18년차다. 그러니까 열여덟살때부터 쉼없이 이 일을 한거다. 사토루만큼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을만큼 그는 내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전문가다.

그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아틀리에의 연장자로 또 전문가로 나름 내 영역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내 ‘선배’로 들어왔다. 그의 실력에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좌절과 겸손을 번갈아 느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나를 더 힘들게 했던건 그가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거들먹 거리며 마초적인 행동과 발언들을 해댔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힘들게 겸손해지려고 열심히 노력중인데 저런 태도를 가진 누군가때문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속에서 열불이 났다. 게다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으니 허구헌날 서로 말싸움과 신경전을 벌이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나는 사춘기 이후 사라져 버린 비꼬는 말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그는 점점 더 무례하게 나를 대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갈땐 늘 갑옷입고 화살같은 모진말을 열발 정도 장전하고 가는 기분이었달까. 아침에 서로 얼굴 마주보며 인사할땐 어떤 비장함도 느껴지고 말야..

그런데 이 전쟁의 무게중심을 늘 이리저리 옮겨놓는 이는 그와 나의 상사였다. 어쩔땐 내편, 어쩔땐 쟤편 이러면서 나름 중심을 잡으려고 하긴 했는데 그게 우리 사이의 감정을 더 악화시켰다. 어느날은 정말 하루 종일 일도 안하고 둘이 앉아서 말싸움만 한 적도 있다. 주제는 대부분 너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 너때문이다. 뭐 이런식…가족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데 이런 말싸움을 왜 쟤와 하고 있었던건지 나도 잘 이해가 안간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관계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아무튼 그런 기간을 6개월 정도 지내고 어느날 그가 무심한듯 이런 말을 했다. 불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때문에 프랑스인 상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같은 동료로 대접해주지 않는것 같다는 얘기.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래도 어쩔땐 여러 언어를 잘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나라 말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냉정한건 사실이다. 나도 그게 서러워서 처음에 죽어라 불어를 공부했던 케이스니까. 나에게는 사람들과 관계맺는게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보다 절박한 이유가 있었고 그게 좀더 빨리 불어를 배울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사토루의 경우 그 에너지를 일에 쏟은거고.

그와 내가 전쟁을 멈춘건 이때쯤이었던것 같다. 낯간지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좀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다고 해야하나. 질문을 할때 왜그렇게 방어적으로 답하는지, 실제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나쁜 사람처럼 보이게 행동하는 이유들에 대해 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신기한건 어느쪽이던 한쪽이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싸움이 멈췄다는거. 아무튼 지금은 그에게 담배를 몇대 피웠는지만 물어도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동료는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그는 친한 친구중 한명이다. 말주변이 없어 자주 주변의 오해를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밉지 않은 것은 일관성 있는 그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의 세계가 나는 별로 싫지 않다.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사토루도 절약이 몸에 베어있는데, 휴가를 다녀와서 7000유로 짜리 빈티지 롤렉스를 사왔다. 나를 보자마자 약 5분 후에 한 얘기는 휴가 잘 다녀왔냐도 아니고 ‘내 시계 봤어?’ 였다. 일주일 내내 롤렉스 얘기만 한다. 자기가 산 모델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200% 쯤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전형적인 덕후…

언젠가 소설을 쓸 날이 오면 얘에 대한 얘기를 꼭 하고싶다. 게다가 사실 그 정도로 싸우면서 쏟은 에너지를 생각하면 친구를 안하는게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고. 자자, 이제 칭찬은 그만하세. 내일 또 티격태격 하면 이 글 쓴걸 후회할 수도 있으니.

 

 

진짜가 아닌것들은 싫다

이 블로그로 말할것 같으면, 10년 넘게 내가 비밀스럽게 가꾸며 간직해온 곳으로 게시판도 두번이나 이전하고 도메인도 한번 바뀌는 온갖 수난을 겪어 지금은 찾는 이가 손에 꼽을만큼 적지만 나에게는 기쁠때나 우울할때나 슬플때나 언제나 내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준 기특한 곳이다. 나조차도 이제는 길고 지루하고 감정적인 것들은 1분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겨버리는데 이곳에서는 길고, 감정적이고 우울한 글들을 마음껏 써재껴도 된다. 한마디로 진득하고 참을성 있는 진짜배기중에서도 진짜, 진짜다.

별로 멋있지도 밝지도 않은 나를 마음놓고 드러낼 수 있는 이곳을 이렇게 오랜시간까지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괴팍하고 변덕이 심한 나의 심성 깊은곳 어느 지점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서 그런지 반전이 있는 사람들이 매력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때 미친듯이 몰입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것같은 것들, 몇십년에 걸쳐 지켜온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신뢰가 간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꽤 보수적인 분야라 경험이 경력의 모든것을 설명한다. 여기서 진짜 전문가를 구분하는 잣대는 실패의 경험이 많이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것이다. 노력도 해야 하지만 인내가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조건이다. 버티면 진짜가 되는 것이다.

가죽으로 된 가방을 직접 만들고 싶었던 이유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가죽의 매력, 분명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든 가죽제품은 그래서 시간이 지나야 진짜인지를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진짜다. 그런건 명품이라고 불러야 한다.

진짜라고 불리는 것들 대부분은 이렇게 시간이 만들어준 것들 아닐까. 고통스럽고 참기 힘든 시간들 조차 몇번이고 넘기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씩 진짜가 되어가는 것 아닌지. 그렇다면 진짜가 아닌 것들은 패션의 경우 zara나 h&m 같이 잠깐의 유행을 노리고 성공을 꾀하는 것들을 말하는건가. 음…그런 방법으로 꾸준히 몇십년이고 존재해왔다면? 그러면 가짜로 시작했지만 진짜가 되버린 것들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안갈땐 시간에게 물어보는게 최고다. 지금 너무 좋지만 당장 다음달이 되면 생각도 안나고 손도 안대고 싶어질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해서 몇번이나 결정을 바꿨던가. 시간이 모두 결정해줬다.

시간을 믿자. 진짜인지 진짜가 아닌지 저절로 알게 될거라 믿는다.

나를 잘 알던 그녀에게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화두는 육아와 직업적 독립이다.

육아는 아이를 낳기 훨씬 전부터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왜 나는 이 모양인거지?’  ‘나와 같은 아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거지?’

이런 끔찍한 질문들로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어설프게 느껴져 닥치는 대로 육아서적을 읽어댔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컸다.

나도 어렸을때 저랬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끔은 그냥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나의 어린 시절이 치유가 될때가 있다.

마냥 행복하고 별것 아닌일에 웃어 넘어가던 그런 아이였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만으로 네살이 된 아이를 보면서 이제부터 육아의 목표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키우는 것이 아닌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함께해주는 것.

훨씬 많은 인내를 요하지만 여기까지 별탈없이 와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직업적 독립은 이제 마흔이 가까워 지니까 스스로 생산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점점 더 많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직업적으로 어딘가에 부속된 사람이다. 나는 생산의 주체도 아니고 책임의 주체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직업적 성취감은 딱 평균이다.

생산의 주체가 되기 위해, 직업적 자존감을 느끼기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중이다.

단지 독립을 하고 내 일을 하면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조직에 속한채로 주체적이 되기는 힘든것인가.

결론이 나지 않고 생각이 딱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조직을 떠날 준비는 안된것 같다.

 

고민이 훨씬 단순했던 10대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나를 바라봤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솔직하고 순수했던 그런 모습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을까.

마흔이 가까워져도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내가 문득, 10대의 내 모습에서 훨씬 확신에 찬 모습을 기억해냈다.

 

 

의미

11월 21일, 이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서른세번을 지나오다보니 이 날짜가 그닥 새로워 보인다거나 새삼스레 기적같이 놀라운 날로 다가오진 않는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태어난 날에 대한 신선함이 줄어드는 것 같다. 그저 덤덤하게 지나가게 된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5월10일, 내 딸이 태어나기로 한 날은 너무나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아직 날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가, 다가올 저 날짜가 마치 지금까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5월10일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전혀 새로운 날,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의미를 지닌 날짜로 느껴진다.

정말 많이 기다려지고 기다려지는 그날.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우리에게 와준 참으로 신기한 존재에게, 나에게 전혀 새로운 의미의 날을 알려줄 딸에게..

너무나 고맙고 어서 보고싶다.

 

 

변했다

20110531

2년만인가,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닌것 같은데 이렇게도 서로가 다른쪽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니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거리의 차이가 시간에 더해져서 점점 더 큰 각도의 차이를 만들어간걸까. 나비효과처럼.

어쩌면 처음부터 비슷한 지점은 별로 없었는지도 모르지.

 

이제는 그 친구에게서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내안의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이 정도가 되면 더이상 만남을 유지하는 것은 나에게 고욕이다.

그만 만나야겠다.

그냥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각자 행복한 삶을 살면 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