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알던 그녀에게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화두는 육아와 직업적 독립이다.

육아는 아이를 낳기 훨씬 전부터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왜 나는 이 모양인거지?’  ‘나와 같은 아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거지?’

이런 끔찍한 질문들로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어설프게 느껴져 닥치는 대로 육아서적을 읽어댔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컸다.

나도 어렸을때 저랬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끔은 그냥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나의 어린 시절이 치유가 될때가 있다.

마냥 행복하고 별것 아닌일에 웃어 넘어가던 그런 아이였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만으로 네살이 된 아이를 보면서 이제부터 육아의 목표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키우는 것이 아닌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함께해주는 것.

훨씬 많은 인내를 요하지만 여기까지 별탈없이 와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직업적 독립은 이제 마흔이 가까워 지니까 스스로 생산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점점 더 많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직업적으로 어딘가에 부속된 사람이다. 나는 생산의 주체도 아니고 책임의 주체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직업적 성취감은 딱 평균이다.

생산의 주체가 되기 위해, 직업적 자존감을 느끼기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중이다.

단지 독립을 하고 내 일을 하면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조직에 속한채로 주체적이 되기는 힘든것인가.

결론이 나지 않고 생각이 딱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조직을 떠날 준비는 안된것 같다.

 

고민이 훨씬 단순했던 10대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나를 바라봤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솔직하고 순수했던 그런 모습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을까.

마흔이 가까워져도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내가 문득, 10대의 내 모습에서 훨씬 확신에 찬 모습을 기억해냈다.

 

 

첫정

나에게 어린시절은 좋은기억보다는 가슴아픈 기억들로 남아있다.

가슴아픈 기억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되는지는 나이가 들어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

단지 성인이 되어 갖게 된 다른 더 좋은 기억들이 그런 상처들을 점점 더 깊숙히 덮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그 좋은 기억들 중 첫아이 유진이가 차지하는 부분은 꽤 크다.

 

첫사랑, 첫눈, 첫아이….

첫감정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꽤 크다.

아마 평생동안 각인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연료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을만큼.

유진이를 뱃속에서 느낀 순간부터 지금까지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과 느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오게 된건지, 그렇게 길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견뎌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음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고마운 존재.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 벅찬마음을 유진이가 느끼며 자랐으면 좋겠다.

나에게 그녀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알려준 첫번째 사람.

시간이 지나 유진이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 사랑 잊지 말아야지.

평생을 지금 그녀의 기억들로 행복해해야지.

 

 

출산..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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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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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

출산을 한지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출산 당일 여전히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아니 내가 저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출산이 정말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24시간을 굶고 깨어있어야만 했던 기억, 난생처음 느껴본 고통, 애기를 품에 안겨줄때 느꼈던 어리둥절한 감정…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이 상상해보고 준비했었기에 누구보다 잘해낼거라 자신했었는데

출산일도, 그 과정도 내가 예상한대로 된건 하나도 없었다.

20시간이나 진통을 할지 누가 알았겠나..그저 아기가 4키로 넘을 것 같다는 예상만 맞았을뿐.

(출생 당시 4.05키로. 의사도 산파도 다들 애기 머리숱에 한번 놀라고 애기 크다고 한번 더 놀라고…)

애기를 낳은 날 새벽, 내가 애기를 낳았나 싶은 의구심이 들때 옆에서 자고있는 애기얼굴을 보면 그저 신기해서

아홉달 동안 내 뱃속에서 발을 차며 신호를 보내던 그 아기가 이 아기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했던 듯 하다.

지금도 가끔 내가 아이를 낳았나? 실감이 안날때가 많지만 조금씩 아기있는 일상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출산하기 직전까지는 제발 빨리 애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더니 막상 낳아보니 육아는 또 별천지다.

매일매일이 다르고 어떤 상황에도 딱 맞는 정답이 없는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먹고 자기만 하는 아기에 불과해도 이미 많은 것을 이해하고 교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너무 서툰 엄마를 많이도 이해하고 용서해준다는 것…

딸아이를 생각할때면 가끔 가슴이 아플만큼 애틋하다.

벅차게 사랑한다. 정말 이말이 맞는 듯.

 

 

우리집에 오게 될 작은 사람

이제 출산일이 다가오니 마음도 바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너무 많다.

새로운 사람을 집에 맞는 거니까 청소도 다시 해야하고 옷이랑 이불도 다 빨아놔야 한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이 모든 일이 귀찮지가 않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

어디서 읽은 글인데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출산준비를 하는 일 중에는 그저 단순노동이란 하나도 없는 듯 하다. 모두 마음을 가다듬는 일, 좋은 생각을 동반하게 되는 일’

아기를 갖지 않았더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이 문장에 요즘 정말 많이 공감하게 된다.

아기를 위한 옷을 사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때도 그냥 사게되는 건 하나도 없다.

머릿속으로 아기가 입고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여러번 생각하게 된다.

 

couverture1

couverture2

 

요건 아기 갖고나서 얼마 안있어 만든 이불.

처음엔 옷도 만들고 이것저것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완성한건 요 이불 하나.

뭐라도 하나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어찌되었든 만족한다.

나중에 아기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자기만을 위해서 직접 만들어준 물건이라고 기억하고 오래도록 간직해줬으면 좋겠다…

이 작은 사람이 내 뱃속에 있기 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사랑해왔던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만날 날이 얼마 안남았다!

 

 

의미

11월 21일, 이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서른세번을 지나오다보니 이 날짜가 그닥 새로워 보인다거나 새삼스레 기적같이 놀라운 날로 다가오진 않는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태어난 날에 대한 신선함이 줄어드는 것 같다. 그저 덤덤하게 지나가게 된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5월10일, 내 딸이 태어나기로 한 날은 너무나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아직 날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가, 다가올 저 날짜가 마치 지금까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5월10일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전혀 새로운 날,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의미를 지닌 날짜로 느껴진다.

정말 많이 기다려지고 기다려지는 그날.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우리에게 와준 참으로 신기한 존재에게, 나에게 전혀 새로운 의미의 날을 알려줄 딸에게..

너무나 고맙고 어서 보고싶다.

 

 

변했다

20110531

2년만인가,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닌것 같은데 이렇게도 서로가 다른쪽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니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거리의 차이가 시간에 더해져서 점점 더 큰 각도의 차이를 만들어간걸까. 나비효과처럼.

어쩌면 처음부터 비슷한 지점은 별로 없었는지도 모르지.

 

이제는 그 친구에게서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내안의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이 정도가 되면 더이상 만남을 유지하는 것은 나에게 고욕이다.

그만 만나야겠다.

그냥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각자 행복한 삶을 살면 되는거다.

 

 

만남

10년도 더 된 기억인데 대학 1학년때 선배가 내게 책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었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선배가 해줬던 이야기는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걸로 봐서 꽤 인상깊었던 것 같다.

선배는 책은 만남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해줬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데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른 시대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도구라고.

그이후로도 사람들과의 만남이 지칠때, 혹은 너무나 간절할때, 선배의 그 말이 생각났었다. 지나고보면 정말 그 수많았던 만남들을 통해서 지금의 내가 되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만남이 좋다고 해도 만나고 돌아서서 또다시 만날 날이 기대되는 만남이 있고, 다시 만나게 될 일이 벌써부터 싫어지는 만남이 있다.

특별히 싫은것도 없는데 만남이 불편하다면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땐 정말 용기있게 만남을 거절하는 것이 좋은걸까, 아니면 계속해서 기회가 생기면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좋은것일까. 모든 만남은 배움이라는 전제하에…

 

 

굿바이 평양

한동안 한국영화를 못보다가 바캉스를 맞아 오랫만에 한국영화들을 찾아봤다.

그중에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들을 운좋게 보게됐다.

첫번째는 ‘악마를 보았다’.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정말 영화란 참 재밌는 도구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화면이라는 작은 공간안에서 그렇게 깊고도 넓은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지.

화면이 아주 자극적이긴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메세지는 굉장히 무겁고 쓸쓸하다.

영화가 가진 모든 방법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장면은 경철이 택시안에서 두사람을 살육하는 장면.

좁은 공간에서의 살인이라는 장면을 너무나 리듬감있게 표현한 감독의 감각에 놀랐다.

그리고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엔딩.

좀 놀랐었다… 후회, 회한, 쓸쓸함, 고독, 패배감..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너무 실제적으로 다가와서.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이병헌의 연기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영화는 ‘굿바이 평양’

이런식의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특히 북한에 사는 일본태생의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더욱 좋았다. 지금까지는 주로 일본에 사는 조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으로 터전을 옮긴 조선인들의 사는 얘기는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 같다.

북한태생도 아닌 제주도 태생의 한 가장이 자신의 삶 전체는 물론 자식들의 삶까지도 모두 북한의 그것으로 ‘결정’을 했다는 것에 이런저런 호기심이 생겼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와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과 실천, 용기가 깃든 결정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감독의 조카인 선화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엔딩도 역시 좋았고.

 

 

별것 아닌일들에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거…마음이 약해진걸까

아래 글을 보고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예전에 키우던 순이와 초롱이 생각이 나서 그랬던 걸까.

동물이 사람같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을 알려줄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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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안에서 너를 보낼 수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다…  달려랏! 길고양이 2008/11/02 23:37

복사http://blog.naver.com/animalbook/90036838267

주니어를 마당에 묻은 다음날

아침을 먹은 삼색이 자매 하나와 두리가 사라졌습니다.

한 번도 밥 때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고

특히 두리는 집 근처를 많이 벗어나지 않은 녀석이라 이상했죠.

 

다음날이면 오려나,

또 그 다음날이면 오려나,,,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밥 때마다 불러도, 골목을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녀도 나타나지 않았죠.

 

엄마는

“걔네들도 주니어가 걸렸던 그 몹쓸 병에 걸린 모양이다. 다른 데 가서 죽은 거야.”

그런가?

하지만 아프면 집에 올 아이들이지 숨을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길고양이로 태어났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에겐 여기가 밥 먹고 잠 자는 집이었으니까요.

 

주니어를 마당에 묻어주는 걸 두 녀석이 담벼락에서 내내 보고 있었는데

혹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져서 떠난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줄어들지 않는 밥통을 보며 가슴을 졸이던 3일 후

제사 준비로 바쁜데 엄마가 마당에서 소리를 지르더군요.

“여, 여기 두리 왔다, 두리!”

3일 만에 나타난 두리는

세상에…… 주니어가 떠날 때 그 모습과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3일만에 비쩍 마르고 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고 기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거죠.

그리고 바로 하나도 나타났습니다.

하나 역시 같은 모습으로…

엄마와 저는 그 모습에 가슴을 쳤지만 그래도 돌아와준 것만도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제사 음식 준비를 하다 말고

캔과 고기, 제사에 놓을 전 등을 들고 아이들 앞에 디밀었습니다.

그런데 두 녀석 모두 아무 것도 먹지 못하더군요.

냄새만 맡을 뿐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먹을 걸 찾기 위해 집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이,

또…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담을 넘겨서 앞뒷집 마당을 봐도 어디에도 없었죠.

엄마는

“걔네들이 마지막 인사 하려고 왔나 보다.”

그러셨습니다.

말도 안돼…

하나는 비쩍 마른 몸으로 비틀비틀 절구로 걸어가 물을 먹고

두리는 앉아서 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잊으라니요…

 

하지만 그 다음날도 아이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엄마 말처럼 마지막 인사하러 왔던 것일까요?

 

그렇게 다시 이틀이 가고

어둑한 저녁 무렵

제가 식탁에서 뭔가 준비하고 있는데

두리가 열린 현관으로 들어와 비틀비틀 마루를 가로 질러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가 헛것을 봤나 했습니다.

 

궁금해서 집안을 기웃거리기는 해도

절대 집안에 들어오지 않던 겁 많던 녀석이거든요.

조용히 뒤를 따라가니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밑에 가서 기운 없이 푹 쓰러지더군요.

두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살려고 들어온 거겠지?

사람에게 기대야 살 수 있다는 걸 안 걸까?

 

하나는 그 이후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겁이 많아 항상 제게서 가장 멀리 있던 녀석이었지요.

아마도 다른 곳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 같습니다.

(엄마는 죽은 건 죽은 거라도 햇살 좋은데 묻어주기라도 해야 된다며 오늘도 마당 구석구석 하나를 찾으셨습니다.)

 

그렇게 두리와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두리는 집에 들어와서도 물 이외에는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간혹 찡이나 대장이 밥을 주면 식욕이 생기는지 비틀비틀 갔지만 전혀 넘기지 못하고 뱉어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두리는 인간에게 곁을 주기 시작했어요.

제게 와서 슬쩍 비비는 것은 물론

제가 담요로 감싸고 안아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 강아지가 아팠을 때 했던 것처럼 주사기로 먹을 것들을 강제로 먹이기 시작했지요.

설탕물, 스포츠음료, 닭죽 국물 같은 것들을요.

그랬더니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두리가 숨을 가쁘게 쉬더군요.

용기를 내어 담요로 싸서 두리를 이동장에 넣는 것을 시도했고

어렵지 않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갔지요.

폐렴이라고 하더군요.

그날부터 매일 병원으로 출근이 시작되었지요.

매일 가서 수액과 영양제를 맞았습니다.

 

매일 아침 병원에 갈 때마다

‘선생님이 안락사 시키자고 하면 어떡하지?’

하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러면 집에서 보내겠다고 얘기해야지 하고 대답을 준비하고 다녔지요.

 

그렇게 모든 식구가

두리가 조금 나아지면 웃고 조금 더 아프면 걱정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두리가 지난 토요일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습니다.

병원에서 선생님은 오늘이 고비가 될 것 같다고 하셨구요.

집에 데리고 오며 그 동안 그랬듯 또 다시 나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이동장에서 꺼내 마루에 누이자

두리는 그대로 한참을 자다 깨더니 비틀비틀 계단으로 가더군요.

그러더니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더군요.

그 사이 상태가 좀 좋아지면 계단을 스스로 오르내리고

상태가 나쁠 때면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곤 했거든요.

‘역시 병원에서 주사 맞고 오더니 상태가 좋아졌다보다.’

생각했습니다.

두리를 번쩍 들어 2층 방에 눕히고 내려왔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자려나 보다 생각했죠.

 

그리고 2시간쯤 지났나……

콩닥콩닥 소리가 나더니 두리가 나타났습니다.

2층에서 또 혼자 내려온 거네요.

자고 나니 더 기운을 차렸나 보다 하고 우리는 반색을 하며 반겼습니다.

“다 잤어, 두리야? 식구들이랑 같이 있을래? 물 좀 먹자.”

기쁜 마음에 설탕물 그릇을 두리 앞에 디밀었는데

좀 이상합니다.

 

숨을 너무 가쁘게 쉬네요.

그러면서 몸부림을 치더군요.

“두리 얘 이상하다. 얘…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믿기 싫었지만…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두리가 너무 힘들게 몸을 뒤틀며 숨을 몰아 쉬고 있었어요.

나아진 게 아니었습니다.

두리는 식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힘들게 내려온 것이었어요.

 

두리를 들어서 가슴에 품었습니다.

두리야, 괜찮아, 괜찮아…

두리의 눈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두리야, 무서워? 무서워?

그런데 언니도 너를 위로할 수가 없구나.

언니도 죽음이 뭔지를 몰라, 그래서 언니도 무서워.

언니가 안아줄게. 언니가 같이 울어줄게.

그럼, 덜 두려울 거야.

 

두리가 품 안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어느 순간 몸짓을 멈췄습니다.

“두리, 이제 갔나 보다.”

엄마가 말하며 우시네요.

저도 그 순간을 느꼈습니다.

순간 두리의 몸이 가벼워졌거든요.

그리고 두리의 몸에서 빠져 나온 배설물이 제 바지를 적셨습니다.

먹은 게 없어서 똥물은 거의 없고 오줌만 잔뜩 쌌네요.

저는 그게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는 길에 얼마나 배가 고플까…

 

그렇게 오래오래 두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엄마, 우리 두리 죽은 것 같지가 않아. 아직도 몸이 따뜻해.

-사람도 죽으면 24시간은 온기가 남는다고 하잖아. 그래서 죽지 않았다고 관에 못 넣게 하고 울고불고 하잖아.

-우리 두리 좋은 곳으로 갔을까?

-그럼, 저 얼굴을 좀 봐라. 사람도 좋은 곳으로 간 사람은 죽은 얼굴이 편안하다고 하는데 두리 얼굴이 정말 너무 편안하잖아. 우리 두리는 태어나서 6개월 동안 예쁘고 착하게만 살다 갔으니 당연히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우리 두리, 다음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사람이라고 다 좋나? 사람으로 태어나든, 개나 고양이로 태어나든 좋은 팔자로 태어나는 게 중요한 거야. 두리는 꼭 좋은 팔자로 다시 태어날 거니까 걱정마.

-두리는 너무 착해. 2층에서 그냥 갔으면 우리가 얼마나 미안했을까. 우리 미안한 마음 갖지 않게 그렇게 힘든데 1층까지 내려온 거잖아.

-그러게 말이다. 엄마랑 아빠랑 너랑 찡이랑 다 1층에 있으니까 가기 전에 마지막 인사하러 내려온 거야. 힘들었을텐데. 어쩌면 저렇게 착한 아이가 다 있니?

-두리는 왜 우리 집으로 들어왔을까? 죽기 전에 집고양이로 살아보고 싶었을까?

-식구들이 자기를 살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겠지.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았을텐데. 생명력이 아주 강한 녀석인데..

-며칠 전에 두리가 아빠랑 약속을 했는데..잘 먹어서 건강해지면 집안에서 같이 살자고…내쫓지 않을 거라고…걱정하지 말라고 약속을 했는데…

 

엄마, 아빠와 이렇게 얘기를 나누며,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울기도 하며,

그러는 사이

품에 안긴 두리는 조금씩 몸이 식어갔습니다.

 

그래도 내 품 안에서 그렇게 두리를 보낼 수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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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멋진 여성!

오늘 이것저것 뒤져보다 찾아낸 디자이너.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젊은 중국계 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옷이 정말 예쁘다.

갑옷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저렇게 많은 주름을 하나하나 잡았다고 하는데 의외로 너무나 여성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디자인인것 같다.

아시아계 여성, 남성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정말 놀라울 뿐….

아시아 디자이너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여백에 대한 충분한 여유와 디자인에 대한 정성이랄까,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는듯한 디자인.

게다가 이름까지 참 특이하니 서양사람들이 안좋아할 수가 없다.  Yiqing Yin 이낑 잉.  멋있다!!!!!